앞 절에서 살펴본 서술패턴에는 대부분 시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수도 적게는 1 편에서 많게는 3~4편이 되기도 한다. 오오사카의 경우 30수의 연작 악부시가 수록 되어 있기도 하다. 전대 사행록의 경우는 시가 수록되어 있지 않거나 따로 모아 엮 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98) 그런데 1655년 사행록인 남용익(南龍翼)의 부상록 에 이르러 처음으로 시가 일록에 삽입되었다. 남용익은 문재가 뛰어난 문인으로 사행 록 글쓰기 전통을 계승하면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가령 일록에 처음으로 인문지리 정보를 삽입하였고, 시를 일록의 곳곳에 배치하여 새로 운 사행록의 형식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문견록의 항목도 전대의 것을 답습하지 않 고 스스로 분류의 기준을 세워 재구성하려 한 점이 눈에 띈다. 해유록 은 부상록 의 형식과 내용을 많이 참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99) 그 중에 구성과 관련하여 지 적할 수 있는 것이 인문지리 정보와 시를 일록에 끌어들인 점이다.
일록에 시를 수록하기 시작한 것은 남용익의 부상록 이 처음인데, 해유록 과 비교해 볼 때 양자의 수록 방식에는 차이가 보인다. 부상록 이 그때그때 차운한 시나 감회를 읊은 시를 두서없이 수록한 것에 비해, 해유록 에 수록된 시는 서술 패턴과 관련하여 일정한 규칙성을 보인다. 부상록 에 수록된 시 중 많은 경우가 누군가의 시에 차운한 것이고, 차운한 시의 원시(原詩)를 수록하기도 해서, 작자의 감회를 읊거나 일본의 경물을 노래한 시의 비중은 많지 않다. 해유록 에 수록된 시는 신유한이 일본의 풍경이나 풍속, 인물에 관해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신유한은 사행 도중 수창시(酬唱詩)를 포함하여 수천 편의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일록의 내용과 긴밀하게 관련된 시를 엄선하여 수록하였음을 알 수 있 다. 이로 보건대 해유록 은 단순한 일정의 기록이 아니라 한 편의 작품으로 구성 단계에서부터 기획된 텍스트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부상록 에서 시를 수용 하는 방식이 단순한 삽입 내지는 도입이라면, 해유록 은 이에 비해 좀 더 작위적 이라는 의미에서 ‘교직’이라 할 수 있다. 씨줄과 날줄이 얽히듯 해유록 의 서술패 턴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시가 일록의 내용을 보완하면서 서사와 서정이 유기적으
98) 1636년 사행의 경우 김세렴(金世濂)은 일록(日錄)과 시를 따로 분리하여 각각 해 사록 과 사상록 에 따로 수록하였다. 황호의 동사록 에는 시가 수록되어 있지 않 다. 1643년 사행의 경우 조경의 동사록 , 신유(申濡)의 해사록 에는 일록이 수록되 어 있지 않다. 반면 저자미상의 계미동사일기 의 경우는 일록만 수록되어 있다.
99) 해유록 에 수록된 일본 학지(學知) 가운데 부상록 의 내용을 참조한 것이 보이며, 일록에도 부상록 에 수록된 남용익의 시에 차운한 시가 실려 있어 신유한이 부상 록 을 참조했음을 알 수 있다.
지역 수록 시 내용 사스나우라(佐
須浦)
무제(7언율시) 무제(7언율시 2수)
호기로 스스로를 위로함 신선계에 노니는 흥취
도요사키(豊崎) 무제(7언율시) 豊崎 백성의 삶과 사행의 흥취 니 시 도 마 리 우
라(西泊浦) 西浦懷仙歌 선계와 같은 西泊浦의 풍경 센도오코오(船
頭港) 무제(5언배율) 선계와 같은 선두항의 절경과 사행의 어려움
쓰시마(對馬島)
舟泊馬島歌(7언배율) 戱用島中男女語作賽神曲 (5언절구 10수)
戲用島倭棹歌聲作促櫓曲 醉題西巖 (5언율시)
사행의 감회와 쓰시마의 풍속 쓰시마 여인의 삶
뱃사공의 노래 西山의 풍경 카 제 모 토 우 라
(風本浦) 遣悶(5언 배율) 사행의 근심과 일본 농민의 삶
아이노시마(藍 島)
哀博多津(賦) 藍島望神仙曲
暮登西山次張書記韻(5언 율시 2수)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 선계와 같은 藍島의 절경 西山에 노닌 감회
지노시마(地島)
次杜工部秋興(7언율시 8 수)
무제
蘓鐵行(玉川體를 모방함)
섬의 정경과 풍속, 사행의 포부 藍島의 절경과 사행의 감회와 포부 소철의 기이한 모양과 성질 아 카 마 가 세 키
(赤間關)
赤間關(7언절구 4수) 戲爲赤間歌擬太白通塘曲
赤間關에서 관찰한 일본의 군사력 赤間關의 풍광과 군사항의 모습 카모가리(鎌刈) 무제(7언율시) 사행의 어려움과 근심
토모노우라(韜
浦) 韜浦寫景(6언절구 8수) 韜浦의 풍광과 민중의 삶
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100) 그렇다면 해유록 에 수록된 시를 중심으로 서술패턴 과의 관련성, 구성상의 역할, 내용상의 특징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해유록 에 수록된 시는 대개 서술단락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기착지를 중 심으로 ‘여정’, ‘경물묘사’, ‘인문지리 정보’, ‘상호 교류’ 등의 서술이 끝난 다음 이 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을 시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해유록 에 수록된 시를 서술패턴과 관련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00) 이런 견지에서 본고는 ‘시가 삽입되어 일록의 의미를 심화한다’는 기존의 논의와 는 다르다고 하겠다.
우시마도(牛窓)
무제(5언율시)
牛窓卽事(6언절구 3수, 7 언율시 1수)
일본 술에 취하여 호기를 부림 牛窓의 절경과 감회
오오사카(大阪) 浪華女兒曲(악부시, 30수) 男娼詞(10수)
유곽 여성의 간난한 삶 남색의 풍속
교오토(京都) 없음 나고야(名護屋) 없음
에도(江戶)
그림에 쓴 제시(題詩) 하야시 가(林家) 문인과의 창화시(「문견잡록」에 수 록)
이 표를 통해 하나의 서술패턴에 적게는 1수, 많게는 30수 이상의 시가 수록되 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는 대체로 서술패턴의 마지막에 수록된다. 시체의 종 류도 다양해서 5언, 6언, 7언 절구, 율시, 배율, 가행(歌行), 사부(辭賦) 등이 골고루 수록되어 있다. 특히 6언시 같은 경우는 창작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반적으로도 잘 짓지 않는 시체이다. 후대에 이용휴(李用休, 1708~1782)가 한시의 규범성과 상 투성을 벗어나려는 일환으로 6언시 창작을 시도한 바 있다.101) 신유한이 해유록 에 6언시를 11수나 수록한 것 역시 사행록 글쓰기의 상투성을 탈피하기 위한 의도 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악부시의 비중이 큰 점도 역시 다른 사행록과는 대별되는 특징이다. 후술하 겠지만 신유한은 일본 하층민의 삶과 풍속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이를 주로 악부시로 형상화하였다.
해유록 에 삽입된 시의 내용은 일본의 이국적 풍광에 대한 찬탄, 사행의 어려움 과 번민, 하층민의 삶과 이국 풍속, 역사적 사건, 기이한 식물 등 다양하여 개인적 인 감회를 노래하는데 치중한 여타 사행록의 시와 차별된다. 서술패턴에 시를 삽입 함으로써 생기는 효과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102)
첫째, 일록의 형식에 변화를 주어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게 한다. 일록은 그날 그날의 일을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두기에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서술 형식 역시 천편일률적이기 쉽다. 또 보고 들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일록에는 작
101) 안대회, 앞의 책, 241면.
102) 한태문 교수는 일기와 「문견잡록」에 시를 삽입하여 사행 체험의 사실성과 현장성 을 확보하고, 시를 통해 내포적 의미를 확대·심화하고자 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충 분히 논증한 것은 아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지적을 수용하면서, 추가적으로 몇 가 지 효과를 제시하는 한편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이를 논증하고자 한다.
자의 내면이나 감상이 개입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서술 대상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는 이러한 서술상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가령 앞 절에서 인용했듯이 부산포를 떠나 첫 기착지인 사스나우라에 입항하는 과정을 신유한은 그림을 그리듯 서정적으로 묘사하였는데, 이 대목에서는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 마중 나온 일본인의 떠들썩한 소리, 석양에 물드는 구름 등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데 치중하고 있어 고국을 떠나 이국에 첫발을 내딛은 작자의 감정이 개입할 틈이 없다. 그런데 이런 풍광 묘사에 이어서 신유한은 한숨이 나와 잠을 이루지 못해 시를 지었다고 하면서, “고향 생각 먼 놀이에 실어 보내어 / 문 득 시격(詩格)이 호기로워 놀랐네 / 깊은 달밤 아름다운 물가에 닻줄 내리고 / 웃으 며 일본인과 술을 마시네”103)라고 하여 시를 통해 일본에 도착한 순간의 감정을 드러내었다. 뱃멀미에 시달리다 밤늦게 도착한 관소에서 이국의 거친 음식을 대하 고104) 느낀 외로운 감정을 애써 호기를 부리며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사스나우 라에 머무는 동안 지은 시에서 “흥이 나자 이국 풍속 누추한 것 잊어버리고 / 사슴 타고 신선의 집에 온 양 뽐내네”105)라고 하여 사행의 흥취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시는 일록의 서사적이고 객관적 서술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작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둘째, 서사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예각화해서 전달하는 데 삽입시가 이용 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도요사키에 정박했을 때 통신사가 해안의 바위 위에 서 풍악을 벌이고 비단옷을 입은 동자를 시켜 빙빙 돌며 춤을 추게 하였더니 주변 에 사는 일본 백성들은 물론 먼 포구에서까지 일본인들이 몰려와 빙 둘러서서 구경 하였다.106) 신유한은 이때 “노래를 부르며 통사와 문답을 나누다 아래를 내려다보 니 10여 채의 집이 흩어져 있고 밭 몇 이랑이 있는데 담배를 심었으며 베어낸 보 리 밑동이 보였다”107)라고 간략히 서술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바로 뒤에 삽입한 시 에서는 백성들의 삶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103) “已把鄕心輸汗漫, 頓驚詩格起雄豪, 芳洲繫纜三更月, 笑對蠻郞飮碧醪.”(6월 20일, 앞의 책, 428면)
104) “倭人以小朱盤, 貯黑木器數枚, 進飯蔬酒果, 味薄而物亦草草, 喟然不寐, 賦詩自慰.”
(같은 곳)
105) “乘興頓忘殊俗陋, 自矜騎鹿到仙家.”(6월 21일, 앞의 책, 429면)
106) “使臣從船梁而下, 就石上餔席而坐, 命工奏樂於樹陰間, 官童四五衣錦衣, 蹁躚對舞, 倭男女聚觀者在岸在舟, 有自遠浦而來者, 操舟若飛, 至皆環立波上, 其狀殊怪.”(같은 곳) 107) “余因詠歌槃薄, 與倭通事問答, 俯視渙舍堇十餘, 有田數畒, 植靈草, 刈麥而留根.”(같
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