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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술패턴의 반복과 변주

사행록은 일반적으로 일본을 탐지하여 보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서술되기에, 그날 그날 일어난 일을 날짜별로 빠짐없이 서술하는 편년체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편년체라 해도 현전하는 통신사행록은 그 형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구성 방식은 크게 ①일기(日記)만으로 된 것, ②시(詩)만으 로 된 것, ③일기와 시로 된 것, ④일기와 잡문(雜文)76)으로 된 것, ⑤시와 잡문으 로 된 것, ⑥일기와 시와 잡문으로 된 것의 여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해유 록 은 ⑥에 해당한다.77) 해유록 도 여타 사행록과 마찬가지로 날짜별로 여정을 기 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행록이 거의 모든 날짜를 빠짐없이 기록 하고 있는데 비해, 해유록 은 반복된 여정이나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그날의 일 기를 생략하기도 하고, 2~3일에 걸쳐 일어난 일을 날짜의 구분 없이 하나의 날짜 아래 서술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문견잡록」을 통해 일기체 기행문의 단점을 보완하기도 한다. 예컨대 편지와 같이 일록(日錄)에서 다룰 경우에는 지루하고 산만해지기 쉬운 글은 「문견 잡록」에 수록하여 일록에서의 중요 사항들을 「문견잡록」에서 확대·부연하는 방식으 로 견문의 정확성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78) 이처럼 해유록 은 편년체 형식을 따르 면서도 작자의 의도에 따라 필요한 경우 내용을 생략하거나 집중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해유록 전체로 확장해서 생각해 볼 때 구성상 모종의 규칙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절 에서는 이러한 규칙성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그 원리를 검토함으로써 해유록 이 고 도의 안배에 따른 체계성을 지닌 문학작품이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통신사행의 노정은 오오사카에 이르기 전까지는 해로(海路)로, 오오사카에서 에도 까지는 육로(陸路)로 이루어져 있다. 해로의 경우는 배로 이동하며 주요 기착지에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일주일 이상 머물게 되며, 육로의 경우도 오오사카, 교오토, 에도(江戶)와 같은 대도시에서 여러 날을 머물게 된다. 이에 따라 서술 또한 자연스 럽게 중요 기착지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해유록 에서는 이와 같이 기

76) 잡문은 각종 공문(公文)과 ‘문견록’을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77) 한태문, 「신유한의 해유록 연구」, 동양한문학연구 제26집, 2008, 456면을 참 조.

78) 이상 통신사행록의 일반적 구성에 대해서는 한태문, 위의 논문, 456~459면 참조.

기착지 여정 경물묘사 인문지리 상호교류 삽입시

佐須浦 ○ ○ ○ × ○

豊崎 ○ ○ × ○ ○

西泊浦 ○ ○ ○ × ○

船頭港 ○ ○ ○ × ○

對馬島府中 ○ ○ ○ ○ ○

風本浦 ○ ○ ○ ○ ○

藍島 ○ ○ ○ ○ ○

地島 ○ ○ ○ ○ ○

赤間關 ○ ○ ○ ○ ○

鎌刈 ○ ○ ○ ○ ○

韜浦 ○ ○ ○ × ○

牛窓 ○ ○ × ○ ○

兵庫 ○ ○ × ○ ○

大阪 ○ ○ ○ ○ ○

착지를 중심으로 한 서술이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기착지를 중심으로 한 여정의 서술은 대체로 다음 몇 개 서술단락의 집 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기착지까지의 여정

② 기착지와 관련한 경물묘사

③ 기착지의 인문지리 정보

④ 기착지에서의 상호교류

⑤ 기착지와 관련한 삽입시

이러한 서술단락이 기착지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하나의 서술패턴을 이루게 된다.

해유록 은 위의 다섯 개의 서술단락이 하나의 군(群)을 이루어 반복 서술되는 방 식으로 서술상의 패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술패턴이란 일정한 서술의 유형이 작품 내부에서 연속되거나 반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단, 단순하고 기계적인 나열에 의한 반복이 아니라 작품의 구조적 완결성에 기여하는 연쇄적이고 상승적인 반복, 즉 의미 있는 반복을 말한다. 통신사행록은 기행문의 특성상 주요 기착지를 중심으로 서술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해유록 은 이러한 서술 전통을 따르면서도 좀 더 정련하고 형식화함으로써 서술에 있어서 모종의 규칙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규칙성은 서술패턴으로 정형화되어 작품의 구조적 완결성 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제시한 다섯 가지 서술단락이 기착지와 어떻게 관 련을 맺으며 패턴화하고 있는지 다음 표를 보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京都 ○ ○ ○ × ×

名古屋 ○ ○ ○ ○ ×

江戶 ○ ○ ○ ○ ○

‘여정’은 전 기착지에서 다음 기착지까지 이동하는 과정을 서술한 것으로 소품(小 品) 유기(遊記)와 같은 필치로 묘사하여 문예성을 부여한 경우도 보인다. ‘경물묘사’

는 지역의 경치나 인가(人家), 머물렀던 숙소의 웅장한 규모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 어 독자는 이를 통해 이국(異國)의 풍물을 추체험할 수 있다. 일록(日錄)에 ‘인문지 리’를 삽입한 것은 여타 사행록과 대별되는 해유록 의 독특한 구성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79) 주요한 기착지의 경우 인문지리 정보를 삽입하여 그 지역의 역사·지 리·문화·물산(物産) 등을 다른 서술단락과 연계해서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해 여정의 기록이라는 사적(私的) 서술과 해당 지역의 객관적 정보를 기록하는 공적(公的) 서술이 결합하게 된다. 삽입시는 여정의 서술과 밀접하게 교직(交織)되 어 서술을 보완한다.80)

서술패턴은 이 다섯 가지 서술단락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모든 서술패턴에 ‘여정’

과 ‘경물묘사’는 반드시 포함되어 있고, ‘시’ 역시 세 군데를 빼고 대체로 포함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인문지리’, ‘상호교류’는 선별적으로 포함된다. ‘상호교류’는 대 개 해당 지역의 문사들을 소개하거나 이들과 나눈 필담을 수록하고 있으며, 도요사 키(豊崎)나 지노시마(地島)의 경우처럼 민중과의 교류를 기록한 경우도 있다. ‘인문 지리’는 지역의 특색에 맞게 변주되어 서술되고 있다. 가령 쓰시마(對馬島)의 경우 는 농토가 극히 부족하여 일본의 각 도시 및 조선, 중국, 유구(琉球)와 교역하는 무 역 도시로서의 면모를 서술하였고, 오오사카의 경우는 상업도시로 성장하게 된 역 사적 기원이나 풍부한 물산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이에 비해 교오토(京都)의 경우 고도(古都) 교오토의 역사와 천황(天皇)의 역사적 기원에 관해 주로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서술패턴은 기착지를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서술되지만 해당 지역의 특색에 맞게 변주된다. 따라서 단순한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상승적인 반복, 의미 있는 반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서술방식으로 인해 해유록 은 구조적 완결성과 서사적 흥미성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례로 통신사가 가장 처음 기착한 쓰시마의 사스나우라(佐須浦)의 서술패턴을 검토해보도록 한다. 서술패턴을 구성하는 서술단락을 앞서의 일반적 서술패턴과 관 련하여 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79) 여기에 대해서는 본고의 제6장 제1절에서 상론한다.

80) 삽입시의 기능에 대해서는 본고의 제3장 제2절에서 상론한다.

서술패턴 사스나우라(佐須浦)의 경우 순서

①기착지까지의 여정 부산포를 출항하여 바다를 건너는 과정 1

②기착지와 관련한 경물묘사 사스나우라의 아름다운 정경 묘사 2

③기착지의 인문지리 정보 사스나우라의 인문지리 정보 4

④기착지에서의 상호교류 없음 ×

⑤기착지와 관련한 삽입시 7언 율시(무제) 3

사스나우라와 관련한 서술단락은 앞서 제시한 다섯 가지 서술단락 가운데 ‘④기 착지에서의 상호교류’를 제외하고 모두 충족되어 있다. 다만 인문지리 정보에 앞서 시(詩)가 먼저 제시되어 있는 점이 일반적 패턴과 조금 다르다. 이처럼 서술패턴은 모든 서술단락이 반드시 동일한 순서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착지의 특성 에 따라 내용이 가감되기도 하고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는 등 다채롭게 변주된다.

다음으로 사스나우라의 서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부산포에서 출 항하여 바다를 건너는 과정을 간략히 서술한 다음, 소품 유기(遊記)에 가까운 감각 적인 필치로 사스나우라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그림 그리듯 묘사하였다: “배가 산 이 끊긴 데로 들어가는데 여러 봉우리를 돌아보니 옥가락지처럼 겹겹이 포개어져 있었다. 이때 하늘은 한없이 아득하고 수면은 맑은데 다만 한 가닥 구름과 노을이 사방 산에 오르내렸다. 북과 피리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별과 은하수가 흔들거렸 다. 각 배마다 4,5개의 장대를 꽂아 큰 등을 달아 달을 대신하였다.”81) 산허리에 노을이 비치다가 곧 수면에 은하수가 어른거린다는 구절로 시간의 경과를 간접적으 로 표현하였다. 노을과 별, 은하수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달을 배에 달린 커다란 등 에 빗대어 말하여 잔잔한 바다에 은하수와 등불이 비친 광경을 간접적으로 묘사한 대목은 물 위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서정적이다. 입항 과정을 문예성 높은 필치로 묘사한 다음,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를 부리며 이를 떨쳐버리려는 심정을 노래한 7언 율시 한 수를 수록하였다.

푸른 바다 절모(節旄)를 옹위하고 海色蒼蒼擁節旄,

돛을 펴니 온 종일 물결이 잔잔했네. 張帆盡日靜波濤.

구름 가엔 옛날 웅대한 계림이요 雲邊故國鷄林大,

하늘밖 푸른 산은 쓰시마의 높은 산이네. 天外靑山馬島高.

81) “卽以船從山之缺而入, 顧見諸峯, 已作重重玉連環矣, 時天像泱漭, 水面澄朗, 但有一帶 雲霞, 與四山下上, 鼓管叫噪, 星河動搖. 各船樹四五竿, 懸一大燈, 以替弦月.”(6월 20 일, 海槎東游錄 , 靑泉集 續集 卷3, 문집총간200, 428면; 이하 날짜와 면수만 기 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