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2. 사찰
사찰(inspection) 또는 현장검사(OSI)는 군비통제 검증에서 상대국의 조약 준수 여 부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실질적이고 핵심적인 방법이다.260)
특별히 주목할 것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미·소간의 중거리핵미사일폐기조 약(INF Treaty) 이행과정에서 양국은 사찰을 기초사찰, 폐기사찰, 폐쇄사찰, 불시사찰, 상주감시소 운영(permanent continuous monitoring system)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목적에 맞게 다양하게 시행한 사실이다. 기초사찰은 사찰 대상 재고목록을 작성하는 것이었고 폐기사찰은 중거리핵미사일과 발사대, 지원 장비를 폐기 기지에서 폐기하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폐쇄사찰은 조약에 해당되는 모든 대상 장비, 지원 설비, 조약 관련 활동이 종료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으며 불시사찰은 단기 통고 하에 운영 중인 미사일 기지, 지원시설, 또는 발사대 생산시설에 대한 사찰을 실시하는 것이었고 상주감시소 운영은 지정된 미사일 생산시설이나 최종 조립시설 출입구에서 상주하며 감시하는 것이었다.261)
IAEA의 전면안전조치협정(comprehensive safeguards agreement) 체제에서 수행되 는 사찰에는 세 종류가 있다. 임시사찰(Ad hoc inspection), 정기사찰(routine inspection), 특별사찰(special inspection) 등이다. 임시사찰은 IAEA와 안전조치협정 체결 이후에 최초로 받게 되는 사찰로 피수검국이 제출한 최초보고서를 확인하는 과정이며 불일치 사항이 발생하면 계속하여 사찰을 하게 된다. 정기사찰은 임시사찰 완료 후 보조약정 서를 체결하여 정기적으로 사찰을 실시하는 것이다. 특별사찰은 피사찰국이 제공한 정 보와 사찰을 통해 얻은 정보가 불일치하거나 불충분할 시에 실시하는 사찰이다. 1997 년 IAEA는 사찰 기능이 대폭 강화된 안전조치체제(strengthened safeguards system) 이행을 위한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를 채택하였다. 추가의정서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 <표 4-19>과 같다.
260) ‘사찰(査察)’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핌’ 또는 ‘사상적(思想的)인 동 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는 업무’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북한 또한 거부감이 많다. 영어의 'inspection' 또는 'on-site inspection'은 군비통제 검증방법 중의 하나로 ‘현장검사’로 번역하는 것이 적 절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기존 연구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inspection'을 사찰로 사용 하기로 하겠다. 전성훈, 앞의 책(1994), p. 10.
261) 불시사찰을 단기통고사찰, 상주감시소 운영을 출입구 감시사찰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국방부, INF 조약하의 현장사찰: ON-SITE INSPECTIONS UNDER THE INF TREATY , 서울: 군비검증단, 2009, pp. 9-11.
<표 4-19> IAEA 추가의정서
• 원자력 활동 전모에 대한 국가의 확대신고 의무(발효 후 180일 이내) - 우라늄 광산에서부터 핵폐기물까지 핵주기 활동의 모든 부분 - 원자력 부지내의 모든 건물
- 핵주기와 관련된 연구개발(R&D) 활동 - 핵관련 민감기술의 생산 및 수출입 정보
• 원자력 활동에 관한 IAEA 사찰 권한의 강화
- 조건 없는 접근 허용 : 원자력 부지 내 모든 장소(핵물질 존재여부 불문), 핵물질이 관련된 모든 장소, 과거 핵물질이 사용되었던 해체된 모든 시설 - 신고 내용에 의문이 있거나 불일치 문제 해결을 위해 접근 허용 : 핵주기
관련 R&D 활동, 우라늄농축 또는 재처리용 부품의 생산활동 정보, 원자력 전용품목 수출입 정보
• 환경 샘플링 권한의 확대
- 특정 장소(specific location) 환경 샘플링 - 광역(wide area) 환경 샘플링
• 사찰관 접근 허용시간 단축
- 통상적 접근은 24시간 사전 통고 후 가능(기존은 48시간)
- 설계검증 방문 또는 임시(ad hoc) 및 정기(routine) 사찰이 진행 중인 경우에 원자력 부지에 대한 접근은 2시간 사전 통고 후 가능
* 출처 :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해외검증사례 비교연구 및 검증방안 개발」, 2019(B), pp. 22-24 에서 재인용.
북한 핵에 대한 검증을 위해 핵사찰은 두 가지 경로로 추진해 왔다. 첫 번째는 북 한을 NPT 체제하에서 IAEA와 체결한 안전협정에 의거 IAEA 사찰단이 사찰을 실시 하는 방안이었다. 북한이 1992년 5월에 최초로 임시사찰을 수용하여 1993년 2월초까지 총 6차례의 임시사찰을 실시하였다. 1994년 3월에 추가적인 사찰을 실시한 바 있다. 두 번째는 남·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근거하여 상호 사찰을 실시하 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남·북한 간의 첨예한 입장 차이로 시행되지 못하였 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이 핵사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실이 있다. 김일성은 1991년 9월 26일 일본 이와나미(岩波) 서점 사장과의 인터뷰에 서 핵사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답변을 한 바 있다.262)
...우리는 핵사찰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핵사찰 그 자체가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국제적 정의에 배치되게 일방적으로 우리에 대해서만 핵사찰을 강요하려고 하는 부당한 처사입니다. ...남조선에는 현실적으로 1,000개의 미국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핵사찰을 공정하게 하려고 한다면 우리에 대해 서만 할 것이 아니라 남조선에 있는 핵 기지에 대해서도 응당 하여야 합니다.
김일성의 이러한 핵사찰에 관한 생각은 차후 남북 핵협상 과정에서 수령의 지침이 되어 북한 외교 관료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었고 남·북한, 북·미 간 6자회담 협상에서 도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었다.
북한의 핵검증 과정에서 사찰 측면에서 실패한 과정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핵사찰의 원칙 면에서 남·북한, 북·미간에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였다. 북한 은 남한의 미군기지에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모든 주한 미국기지에 대한 동시사찰을 요구하였다. 한국은 북한의 영변을 포함하는 황북 평산과 평남 순천의 우 라늄 광산, 황북 평산과 박천의 우라늄 정련공장, 평북 태천의 200MWe 원자력발전소 등과 의심되는 군사시설에 대한 상호 동수 원칙에 따라 사찰을 하자고 주장했으나 북 한은 영변과 의심되는 남한의 주한미군 기지 모두를 사찰하자는 비대칭사찰을 주장하 였다. 이에 한국은 1991년 9월 27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한반도 전술핵 철수 선언’
과 동년 11월 8일 노태우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과 동년 12 월 8일 ‘한반도내 핵부재선언’으로 한국 내에 핵무기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이 주한 미군 기지를 사찰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군사시설도 사찰해야 한다는 상호주의 원칙을 제시하였으나 북한은 자국의 군사시설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였다. 즉 한국은 ‘상호주의 원칙’을 주장하였으나 북한은 ‘의심동시 해소 원칙’을 고수하여 협상 은 결렬되었다.
둘째로 북한은 핵사찰 중 특별사찰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다. 북한은 1992년 1월 30일에 IAEA와 핵안전조치협정에 서명하고 동년 5월 4일에 핵물질 플루 토늄 보유량을 90g, 7개의 핵시설을 포함하는 최초보고서를 IAEA에 제출하였다.263) 262) 로동신문 , 1991년 9월 26일.
이어서 북한은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협상을 하는 기간 중 1992년 5월 25일부터 6월 5일까지 IAEA로부터 최초의 임시사찰을 받았고 1993년 2월까지 총 6회의 임시사찰을 받았다.264) 이 결과 북한이 보고한 내용 중 플루토늄 추출량, 추출장소, 추출시기 등에 관한 중대한 불일치(discrepancy) 사항과 미신고시설 2곳이 논란이 되었다. 먼저 IAEA 는 북한이 자체 신고한 플루토늄 추출량을 90g 보다 훨씬 많은 수 kg으로 추정하였다.
북한은 1990년도에 손상된 폐연료봉에서 90g의 플루토늄을 1회 추출하였다고 하였으 나 IAEA는 방사화학실험실에서 swipe sampling 방법 등 다양한 샘플을 채취하여 1회 가 아닌 3회에 걸쳐 플루토늄을 추출하였고 플루토늄 추출장소도 손상된 연료봉이 아 닌 사용 후 핵연료라고 판단하였다.265) 또한 북한이 최초 보고서에 포함하지 않은 시 설 2곳을 북한은 군사시설 이라고 주장하였지만 IAEA는 핵폐기물 저장소라고 판단하 였다. 미신고 시설 2곳 중 1개소는 IRT-2000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보관했을 것이라고 추정되었으나 흙으로 덮고 이 시설에 이르는 도로에 나무를 심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266) 또 다른 1개소(#500 이라고 불리는 건물)는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 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보관하고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어 1992년 9월 IAEA 사찰관 들 이 방문하였으나 지하시설이 없고 군용 차량 작업장이라고 주장하였다.267) 이에 IAEA 는 플루토늄 추출량, 추출장소, 추출시기 등에 관한 중대한 불일치 사항을 확인하기 위 해서는 핵폐기물 저장시설로 의심받고 있는 2개 시설을 방문하여 핵폐기물에 대한 정 밀분석이 필요하다고 특별사찰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를 끝까지 거부하였다.
셋째로 사찰의 다양한 방법을 북한에 적용하지 못하였다. 임시사찰은 실시하였지만 특별사찰과 상주감시소 운영 등은 실시하지 못하였다. 북한은 1992년 5월부터 1993년 2월 사이에 총 6회의 임시사찰을 수용했고, 특별사찰을 거부한 이후 1994년에 들어와 북한과 IAEA 간에 사찰의 범위와 종류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1994년 2월 15일 IAEA 정기이사회를 앞두고 북한이 5MWe 원자로 등 7개 신고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263) 북한은 1985년 NPT에 가입하고 18개월 이내에 서명해야 하는데 7년이나 지체하여 IAEA와 핵 안전
조치 협정에 서명을 하였다. 송민순, 앞의 책(2016), p. 37.
264) 북한은 IAEA로부터 6차례의 임시 핵사찰을 수용하였다. 1차(92. 5. 25∼6. 5), 2차(7. 8∼7. 18), 3차(9.
19∼10. 11), 4차(11. 2∼11. 13), 5차(12. 14∼12. 19), 6차(93. 1. 26∼2.6), 왕선택, 앞의 책(2013), p. 49.
265) swipe sampling은 헝겊이나 페이퍼 타올 등을 이용하여 어떤 시설 내의 연구용 테이블, 책상, 책장 등의 가구, 바닥 등의 먼지 등을 채집하여 샘플링을 하고 이 샘플을 고감도의 질량분석기를 이용하여 분석한다. 아메리슘 Am-241과 플루토늄 Pu-241의 반감기 차이를 비교하고 플루토늄 재처리 시간을 추 적하여 1989년, 1990년, 1991년 3회 이상 재처리 작업을 한 것으로 밝혀냈다.
266) 북한 영변 원자력연구소에 설치된 연구용 원자로를 말한다.
267) 박동형, 앞의 논문(2010), p.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