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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립 니 다
뭐든지 익숙해지기만 하면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로 적응하는 게 사 람의 습성인 것 같다. 출퇴근은 물론이고 가까운 거리에 누굴 만나러 가는 일조차 승용차를 동반했던 나였지만, 불과 몇 년 전부터 걷는 것 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먼 곳은 전철과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 다 보니 그 습관이 완전히 생활화되었다.
걷기를 하다 보면 평소에 자주 못 보던 남녀노소의 이웃들, 학 생, 상인 등 모두를 만날 수 있다. 아침에 만나는 이웃들의 얼굴은 굳어 있거나 긴장되어 있지만 저녁에 만나는 얼굴들은 여유가 있 어 보인다.
버스를 타고 항상 맨 뒷좌석 우측에 앉는데 시선은 창밖에 펼쳐 지는 사람들의 모습에 꽂힌다. 여성들의 얼굴, 머리, 옷차림을 보면 요즘 유행하는 패션을 알 수 있고, 거리의 샐러리맨들을 관찰해 보면 얼굴에 생기가 느껴지거나 고민도 읽혀진다.
모두 다 우리 사회의 얼굴들이다.
얼마 전 저녁,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뭔가를 설치하고는 히히덕 거렸다. 뭘 가지고 그렇게들 호들갑이냐고 묻자 “아빠는 가르쳐 드 려도 안 쓰실 거예요”라며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내가 스마 트폰 사용법을 잘 몰라 아이들한테 물을 때마다 “아빠는 이거 왜 사 셨어요? 그냥 구형 폰이 더 편하실 텐데”라며 핀잔을 주던 아이들 이었으니 스마트폰의 최신형 프로그램에 대해 관심을 갖는 내가 이
상했나보다.
여기서 슬그머니 오기가 발동해 뭐냐고 재차 묻자 큰놈이 최신형 내비게이션 앱이라며 작동 원리를 알려줬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어딜 간다면 만나기로 약속돼 있는 사람과 동시에 이 앱을 깔 아 놓은 상태에서 서로의 이동경로를 알려 주는 것이다. A에게는 B 의 위치와 현재 이동경로, 그리고 B에게도 A의 현재 위치와 이동경 로가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에 계속 표시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말 기 가 막힌 애플리케이션이 아닌가. 이런 게 바로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혁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를 만나려고 했을 때 무작정 기 다리지 않아도 되고 목적지까지 안전한 경로를 안내 받을 수도 있다.
그동안 목적지를 잘 몰라서 자가용을 운전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만남의 장소까지 제시간에 딱딱 데려다 주는 나의 거대한 전용 자가용인 전철이 있고, 창밖 풍 경을 감상케 하며 느긋한 여유를 주는 버스가 있으니 한결 여유가 있 다. 레일 위를 철커덕 철커덕 달리는 전철 안에서, 차창 밖의 풍경을 보며 달릴 수 있는 버스 안에서 4계절의 풍광을 보며 다닐 수 있으 니 얼마나 좋은가.
걸으며 마음의 여유를 얻고, 여유 속에 열심히 사는 이웃들을 한 번 더 보고 우리 땅의 대기 환경도 좋게 하는 1석3조의 효과. 오늘도 내일도 나는 뚜벅이족의 행복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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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섭 | 부산시 동래구 명장2동
뚜벅이족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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