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충암 김정의 교육사상
2. 충암 김정의 이기심성론
보고 강학154)하였다는 점 역시 [김종직 → 신영희·김굉필 → 김정]으로 이어지는 학통의 연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더구나 충암은 조광조와 도의 (道義)를 결의한 교우(交友)로서 [김종직 → 김굉필 → 조광조]로 이어지는 도통 인물들과 모두 사우(師友)의 연을 형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충암은 김종직에 대해 “정밀하고 심오한 것에 뜻을 둘 수 있다면, 비록 배움이 지극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하물며 학문이 지극한 사람이랴? (중 략) 점필재에 이르러 정밀하고 심오한 학문으로써 떨쳐 일어나 위대하게 일가를 이루었다.155)”라고 하였다. 김종직을 높게 평가하면서 그의 학문만으로도 스승으 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김종직은 문장을 매우 중시하였고, 뛰어난 문장가였다. 충암은 신영희를 통해 김종직의 문장을 익힐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직 → 신영 희 → 김정]으로 이어지는 뛰어난 문장의 성과도 우연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처럼 충암은 15세기 사림파의 학통을 분명하게 잇고 있다. 충암의 학통이 분 명하게 밝혀져야만 그의 교육사상과 중종 대 조광조와 함께한 경세론(經世論)의 입장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즉, 당시 사림파 대다수가 『소학』과 『근사 록』을 중요시했다고 하나, [김종직 → 신영희·김굉필 → 김정]의 학문적 정통성 이 명확히 규정될 때 『소학』 중시의 학문적 배경은 더욱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론은 곧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며 인간을 이해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실천 행위의 준거이자 교육사상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충암의 이기(理氣)에 대한 언급은 조강(朝講)에서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진 강할 때 그 단초(端初)가 보인다.
천지의 큰 덕(德)을 생(生)이라 하는데, 천지가 천지인 까닭은 생생지리(生生之理)에 있을 뿐입니다. 생생지리는 고금에 걸쳐서 쉬지 않으나,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仁)이니 사람의 인이 혹 잠시라도 끊기면 인도(仁道)가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일념의 기미에 다 생리(生理)가 있으므로 생리가 혹 끊어지면 천지의 이도 끊어지니, 천지가 사람에게 붙여 준 것이 어찌 중하지 않겠습니까?156)
위의 인용문에서 충암은 만물이 생육하는 것이 리(理) 때문이며, 그 리는 천지 의 큰 덕(德), 즉 생(生)의 주재자임을 말하고 있다. 이 생리(生理)가 인간에게 인 (仁)으로 부여됨을 설명하고 있다. 리가 만물의 주재자라는 것은 이기의 관점에 서 보면 리가 기를 주재함을 의미한다. 위의 경연에서 충암은 곧 사람의 생리인 인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경(敬)을 언급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에게 부여된 본연 의 리, 즉 인을 온전히 보존하는 공부법이다.
이러한 충암의 입장은 이른바 송명대의 신유학(新儒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 다. 공맹 이래로 인은 인애(仁愛)의 관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공맹의 유학은 인간의 심성과 삶,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사람이 가져야 할 사고와 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중점이 주어졌고, 인의 관념은 효제(孝弟)를 인을 하는 근본 이라고 보는 효제의 인이었다. 그러나 송대에 ‘생생’의 관념이 대두되고 이를 인 과 관련지어 인의 관념이 ‘생생의 인’으로 크게 변화하였다. 신유학에서 인은 ‘인
156) 『中宗實錄』, 卷29, 중종 12년 8월 12일 乙卯. “金淨曰, 天地之大德曰生, 天地之所以爲天地, 只 是生生之理, 而生生之理, 自古不息, 而在人則仁. 人之爲仁, 或有一息之間斷, 則仁道幾乎餒矣; 一 念之微, 皆有生理, 生理或絶, 則天地之理亦絶. 天地之付與乎人, 其不重乎. 生生之理, 無少間斷者, 此, 敬也; 存心出治, 精一不息者, 亦此敬也. 非敬, 莫能存心, 以爲仁, 仁與敬, 固非異事, 爲仁必 敬, 爲敬必仁, 天人相與之際, 甚可畏也. 應天之實, 莫大於敬, 敬莫大於謹獨, 謹獨而無一毫邪念, 無一毫間斷, 則其終也, 可至於至誠無息之域矣. 大凡知詩, 只聯文字, 玩皮膚而已, 人皆可能, 義理 精微處, 自有千萬層, 苟不容到極處, 不可謂知詩. 雖有知詩者, 不可說盡蘊奧, 須親躬索然後, 義理 精微, 功夫淺深, 庶可知矣, 而終至於不知手之舞, 足之蹈, 而使人感發興起, 自不能已, 所謂興於詩 者, 是也. 又曰, 畏天之實, 卽吾之少無失宜者, 是也. 自古多以畏天, 啓迪人君, 似乎迂闊, 置之於 迂闊之地, 故無正學, 久矣, 願勿以爲迂闊也.”
간관계’에서 ‘천지 만물과 한 몸[天地萬物一體]’, ‘만물과 같은 몸[與物同體]’이라는 사상까지 확충되었다(문종하, 2018: 339). 신유학의 ‘생생의 인’에 대한 개념은 정 호에게서 출발한다. 정명도(程明道)는 “천지의 큰 덕을 생(生)이라 하였고, 천지 가 인온(絪縕)하고 만물이 화순(化醇) 하니, 태어난 그대로가 성(性)”157)이라 하 였다. 따라서 “학자는 모름지기 먼저 인(仁)을 알아야 하고, 인자(仁者)는 혼연히 만물과 한 몸이 되는 것이며, 의예지신(義禮知信)이 모두 인이라 하였다.”158) 즉 정명도는 ‘성즉리’의 관점을 바탕으로 하되, 인을 최고의 본성이며 리로 파악한 것이다. 나아가 인의 의미에 대해 ‘혼연하게 만물과 몸을 같이 하는 것’, 즉 타인 (과 만물)과 대립함이 없이 타인을 자기와 한 몸으로 여기며 서로 베풀면서 생생 (生生)하게 하는 원리이며 본성으로 규정한 것이다(황금중, 2000: 43).
상교(上敎)가 지당하십니다. 음양(陰陽)의 리(理)가 순하지 않은 까닭에 재변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천지 사이에서 인사가 합당하여, 천변이 이르지 않고 풍우(風雨)가 제 때 맞으면 절로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159)
이 인용문은 재변이 발생하는 이유를 기[陰陽]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 데 그 기 자체가 불선(不善)한 것이 아니라 그 기의 리가 순하지 않기 때문이라 고 설명하고 있다. 즉, 위의 인용문에서도 리가 기의 주재자임을 내포하고 있다.
다음은 기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는 충암의 이기론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다.
대저 기라는 것은 한결같으면서 섞인 것이 없다. 형체라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서 로 다른 만물이다. 섞이지 않은 것은 다른 기를 섞을 수가 없고, 서로 다른 것은 다른 형체로 같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형체와 기가 한번 이루어지면, 이루어진 것은 다시 허물어진다. 존재가 무로 돌아가는 것은 도의 법도이다. 무너진 것을 보완하고 잡스러 운 것으로 (그 본래 모습에서) 떠나가게 하는 것은 도의 법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말하
157) 『二程遺書』, 第11. “天地之大德曰生, 天地絪縕, 萬物化醇, 生之謂性.”
158) 『二程遺書』, 第2上, “學者須先識仁. 仁者, 渾然與物動體, 義禮知信皆仁也. 識得此理, 以誠敬存 之而已.”
159) 『中宗實錄』, 卷29, 중종 12년 8월 12일 乙卯. “金淨曰, 上敎至當, 陰陽之理不順, 所以致災變 也. 天地之間, 人事合宜, 天變不至, 風雨以時, 則自無如此之事, 今上下盡心計劃, 而自廢朝之後, 紀綱陵夷, 風俗日偸, 民生之困窮, 未有甚於今時, 須自上軫念.”
기를, 본성이 길면 짧게 할 수 없고, 본성이 짧으면 이을 수가 없다. 학은 오리에 이을 수가 없고, 소를 말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본래) 결여된 것은 그것을 온전하게 할 수 없고, 무거운 것은 그것을 가볍게 할 수 없고, 추악한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할 수 없고, 작은 것은 그것을 크게 할 수 없다. 형체와 기운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사람 의 일에서도 그러하다. 장수할 것은 본래 장수하고, 요절할 것은 본래 요절하며, 천한 것은 본래 천하고, 귀한 것은 본래 귀하며, 가난한 것은 부유하게 할 수 없고, 곤궁한 것은 통달하게 할 수 없고, 홀인 것은 짝이 되게 할 수 없고, 통하는 것은 막히게 할 수 없다. 저절로 그러하여 그러지 않은 것이 없다. 또한 참 주재자가 위에서 조화를 부 림이니 본디 더하거나 덜거나 변화를 시킬 수가 없다. 그 형체와 기운, 본성과 생명은 오로지 그 이루어진 것에 따른다.160)
기가 형질이 되면서 각 사물은 나름의 본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각각 품수 받은 기의 성질에 따라 형성되는 본성은 바뀔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허남진, 2004: 79). 위의 인용문에서 충암은 기에 의해서 형성되는 본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얼핏 보면 기의 불변성(不變性)을 언급하면서, 기의 절대성(絶對 性)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반부에 “저절로 그러하여 그러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표현과 “참 주재자가 위에서 조화를 부린다.”라는 표현을 볼 때 여기서 기는 리의 주재를 받는 기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용문에서 언급한 본성은 형질(形質)을 의미하는 것이며, 기질지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충 암은 ‘참 주재자’인 리가 부여한 절대선(絶對善)이 기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형성 되며, 이것은 형기(形氣) 또는 형질의 개념으로서 타고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기론과 본성의 관점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어 설명한 주자의 관점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충암의 도학시(道學詩) 몇 편에서도 이기 심성론을 알 수 있는 시들이 보인다. 다음의 시는 「고재상의 형산화병에 제하여 [題高相荊山畫屛]」라는 13수의 시 중 5수로 ‘호랑이와 원숭이[虎蜼]’라는 시이다.
160) 『冲庵集』. 卷4., 「女媧氏鍊石補天辨」. “夫氣也者, 一而無雜, 形也者. 吹萬有殊, 無雜者不可雜以 他氣, 有殊者不可類以他形, 故形氣一成, 成而有毀, 有反於無, 道之常也. 毀而可補, 離之以雜, 非 道之常也. 故曰性長非所短, 性短非所續, 鶴不可續鳧, 牛不可補馬, 故缺者不可使之全, 重者不可使 之輕, 惡者不可使之美, 小者不可使之大, 不惟形氣爲然, 於人事也亦然, 壽者自壽, 夭者自夭, 賤者 自賤, 貴者自貴, 貧不可使富, 窮不可使達, 奇不可使偶, 通不可使塞, 莫不自然而然, 且有眞宰鑪錘 於上, 而自不能添損移變, 其形氣性命, 一聽其所成.”
짐승에게 효가 있는 것은/ 양지(良知)에 근본하는 것./ 만약 치우치고 막힘이 없다면 / 어찌 순임금과 다르겠는가?/ 한 번 하늘의 이치를 빌리면/ 흘러 흘러 없어지지 않는 구나/ 이 하늘에서 타고난 것 온전히 해야 하나니/ 어찌 힘쓰지 않으리오?161)
아래는 주자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관해 설명한 부분이다.
사람이 태어난 것은 리(理)와 기(氣)가 합해졌기 때문이다. 하늘의 리(理)는 진실로 광대하여 끝이 없지만, 기(氣)가 없다면 리(理)가 있더라도 머무를 곳이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陰陽의) 두 기(氣)가 교감하여 엉키고 맺혀서 모인 뒤에야 리(理)가 머무를 곳 이 있게 된다. 대체로 사람이 말하고 움직이며 생각하고 도모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기 (氣)인데, (그때) 리(理)는 거기에 존재한다. … 그러나 두 기(氣)와 오행(五行)이 교감 하여 여러 가지로 변화하기 때문에 사람과 만물이 생길 때 정밀하거나(精) 엉성한(粗) 차이가 있게 된다. 하나의 기(氣)로써 말하면 사람과 만물은 모두 기(氣)를 받아서 태 어난다. 정조(精粗)의 차이로써 말한다면 사람은 정통(正通)한 기(氣)를 얻고, 물(物)은 편색(偏塞)한 기(氣)를 얻는다. 오직 사람만이 올바른 기(氣)를 얻었기 때문에 리(理)가 통하여 막히지 않는다. 물(物)은 치우친 기(氣)를 얻었기 때문에 리(理)가 막혀서 지혜 가 없다. … 만물 가운데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도 단지 일부분만 통할 수 있는데 불 과하다. 가령 까마귀가 효도할 줄 알고 수달이 제사 지낼 줄 알고, 개는 단지 지키고 막을 수 있고 소는 단지 밭을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사람이 품부 받은 것으로 말하면 또한 혼명청탁(昏明淸濁)의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태어 나면서 지혜로운 사람의 자질은 기(氣)가 청명하고 순수하여 조금도 어둡거나 흐리지 않다.162)
위의 ‘호랑이와 원숭이[虎蜼]’라는 시는 주자의 설명을 충암이 그대로 시로 옮 겨 놓은 듯하다. 음양과 오행의 기가 교차하면서 사람과 만물이 이루어지게 되는 데, 이때 기의 정밀성과 농도 차이[精粗]에 따라서 사람과 만물은 나뉘게 된다.
161) 『冲庵集』, 卷2, 「題高相荊山畫屛, 虎蜼」. “獸之有孝, 本乎良知, 苟無偏塞, 舜何異斯. 一段天 理, 流行不泯, 全斯稟受, 曷不僶諸.”
162) 『朱子語類』. “人之所以生, 理與氣合而已. 天理固浩浩不窮, 然非是氣, 則雖有是理而無所湊泊.
故必二氣交感, 凝結生聚, 然後是理有所附著. 凡人之能言語動作, 思慮營爲, 皆氣也, 而理存焉. … 然而二氣五行, 交感萬變, 故人物之生, 有精粗之不同. 自一氣而言之, 則人物皆受是氣而生. 自精粗 而言, 則人得其氣之正且通者, 物得其氣之偏且塞者. 惟人得其正, 故是理通而無所塞. 物得其偏, 故 是理塞而無所知. … 物之間有知者, 不過只通得一路. 如烏之知孝, 獺之知祭, 犬但能守禦, 牛但能 耕而已. 人則無不知, 無不能. 人所以與物異者, 所爭者此耳. 然就人之所稟而言, 又有昏明淸濁之 異. 故上知生知之資, 是氣淸明純粹, 而無一毫昏濁.”
주자는 사람과 대비해서 만물의 기를 표현할 때 거의 ‘치우치고 막혀있다[偏塞]’
는 표현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지각을 지닌 동물이라 할지라도 까마귀는 효에, 개는 지키는데, 소는 밭을 가는 것으로 한정하는 등, 리(理)에 부분적으로만 열려 있거나 아니면 대부분 막혀있다는 것이다. 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통(正通)한 기를 얻어서 모든 리에 열려 있고 리를 자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바탕을 지닌다 (황금중, 2000: 85-86). 이러한 주자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충암은 짐승에게도 효 가 있다고 언급한다. 그 효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양지(良知)163)이며, 그 것은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본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짐승은 기에 의해 치우치고 막혀있기[偏塞] 때문에 인간과 다르고, 특히 성인(聖人)인 순임금과 다른 것이다.
만물과 달리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 힘써야 함을 이야기하 고 있다. 다음의 시에서도 충암의 이기심성론이 엿보인다. 「정운경이 떠남에 부 쳐[贈鄭雲卿行]」라는 시이다.
맑은 기운과 흐린 기운이 형체로 나뉘어 사람의 일곱 구멍이 터졌고/ 단숨에 두드려 천지를 이루었네./ 만물이 서로 어울리면서 서로 부대끼면서/ 문득 계절이 바뀐 것이 끝이 없구나./ 밝은 태양이 비추면 낮이고 어둑해지면 밤이니/ 사람으로 치면 영민하고 굳센 것과 우둔하고 나약한 것이라네./ 세상의 운세에도 대낮과 한밤이 있나니/ 형통함 과 막힘이 서로 섞이는 것이라오./ 천지가 막히니 현인들이 숨다가/ 얼마 후 만물은 모 두 성인이 일어남을 보도다.164)
기의 분화로 인해 사람의 형체가 나뉘어 생겨나고, 낮과 밤과 같은 양음(陽陰) 의 기운은 영민함과 굳셈으로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즉, 기에 의 해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일치된 것으로 보는 것으로써 천인합일의 사 상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의 시는 「열기에 괴로워하며[苦熟行]」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도 기질지성 을 규정지을 때 사용하는 청탁편정(淸濁偏正)의 내용이 보인다.
163) 『孟子』, 「盡心上」. “孟子曰, 人之所不學而能者, 其良能也. 所不慮而知者, 其良知也.”
164) 『冲庵集』, 卷1, 「贈鄭雲卿行」. “淸濁分形七竅鑿, 一氣鼓鑄成橐龠. 迭來牙往相戰薄, 儵忽翕闢無 垠堮. 陽明爲晝晦爲夜, 在人英剛與愚弱. 世運亦有大晝夜, 亨嘉屯否參交錯. 天地閉兮賢人隱, 萬物 咸覩聖人作.
굽혔다가 펴지고 갔다가 오는 것이 도(道)의 법칙이니/ 천고에 운행함에 그 법칙은 그치지 않는다./ 해는 양의 덕이요 달은 음의 영(靈)이니/ 해와 달이 기를 나누어[分氣]
어둠과 밝음을 맡는구나./ 서쪽으로 지고 동쪽으로 차는데 연속하여 없어졌다 떠오르며 / 추위와 더위도 시간에 따라 서로 밀고 바뀌는구나./ … / 미치지 못하면 모자라고, 지 나치면 넘쳐나나니/ 가득차거나 이지러지는 것은 모두 바른 것이 아니라네./ 마치 사람 의 기맥이 막히면 병이 되는 것과 같아서/ 한번 법도를 잃으면 사물은 구속을 받는다 네.165)
이 시 역시 기에 의한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일치 시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미치지 못하면 모자라고, 지나치면 넘쳐나며[不及則乏 過斯嬴], 가득 차거나 이지러지는 것은 모두 바른 것이 아니다[偏盛獨虧俱匪貞].”
라는 표현은 인간의 본성이 기질에 의해서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됨을 말하고 있 다.
이처럼 인간은 본연지성이라는 보편적 인격과 기질지성이라는 특수한 성격, 양 측면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본연지성이라는 이념적 본성과 기 질지성이라는 현실적 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한형조, 1996/ 신창호, 2012:
78-79 재인용).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연에서의 언급과 충암의 시에 나타난 그의 이기론 적 관점은 주리론적(主理論的)166)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당시 중종대 기묘사림의 대체적인 관점이기도 하다. 강봉수(2001)에 의하면, 조광조 역 시 리의 주재성을 강조하였다. 조광조는 세계를 주재하고 만물을 낳는 시원(始 原)이 곧 리라 하였다. 세상은 이기의 묘합(妙合)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세상을 만드는 원인은 리에 있으며, 주재하는 리는 세상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세상 만 물이면 무엇이든지 따라야 할 보편법칙이라고 하였다. 리라는 최고의 법칙이 있 기 때문에 사계절의 순환과 교체 및 우주의 변화가 질서정연해진다. 나아가 리는
165) 『冲庵集』 卷2. 「苦熱行」. “屈伸往復道之經, 終古運周機不停. 日以陽德月陰靈, 二曜分氣司晦明.
西沈東滿迭化昇, 寒暑依辰互推更. … 不及則乏過斯嬴, 偏盛獨虧俱匪貞. 如人氣脈壅成癭, 一失其 度物乃攖.”
166) 그동안 한국철학사 도식에서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 대해서 반성적 검토가 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리·주기의 개념 틀을 확실하게 대체할 만한 조선 유학사 서술의 패러다임은 모색 단계에 있어 보인다(이선열, 2015: 참고). 따라서 본 연구에 서는 일반적인 서술방식은 주리·주기의 표현을 따르고자 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본 연구의 대상 밖이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