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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교육사상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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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제주오현 교육사상의 사상적 연원과 귤림서원의 형성

1) 성리학 교육사상의 이해

성리학은 글자 그대로 ‘인간의 본성이 곧 이치’라는 ‘성즉리(性卽理)’의 학(學)으

로서,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진리의 표준으로 삼는 학문체계다. 즉, 성리학은 이 치를 존중하고, 그 이치를 밝히도록 하며, 이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체계화한 이 론이다. 이 중에서 ‘이치를 따르는 일’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일’을 포함한다.

본래 유학은 당초 교육실천을 담당했던 이들이 구축한 학문이었다. 특히 선진유 학(先秦儒學)이 더욱 그렇다. 선진유학을 고도로 이론화한 것이 성리학이며, 따라 서 성리학은 교육실천을 이론화한 교육이론인 셈이다(김정래, 2017: 15).

성리학의 맥락에서 교육이 따라야 할 준칙으로서의 리(理)는 다음과 같다(진래, 1992/ 안재호 역, 1997: 42-13). 첫째, ‘우주의 보편원리’ 또는 ‘자연의 이법(理法)’

을 말한다. 성리학에서는 이 세계의 이법을 ‘리(理)’라 하고, 이 세계를 구성하는 질료를 ‘기(氣)’라 한다. 성리학에서는 선진유학의 태극(太極)을 ‘리’로 규정하고, 음양(陰陽)을 ‘기’로 규정한 다음,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이기론(理氣論)으로 설명 했다. 둘째, 인간본성으로서의 ‘성(性)’을 가리킨다. 흔히 이를 ‘성리(性理)’라고 한 다. 이 의미는 ‘성즉리(性卽理)’를 강조하는 성리학의 핵심에 해당한다. 셋째, 윤 리와 도덕규범으로서 ‘윤리(倫理)’를 가리킨다. 넷째, 사물의 본질과 규율이 되는

‘리’로서 ‘물리(物理)’다. 다섯째, 이성이 작용하는 ‘리’로서 합리(合理), 판리(判理), 단리(彖理), 공리(公理), 추리(追理)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는 곧 이성의 작용인

‘용리(用理)’를 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리학의 교육사상에서 다루는 이치는 교육이 마땅히 따라야 할 준거를 가리키는 ‘교육원리로서의 이치’와 교육이 도달 해야 할 표준 또는 지향점이라는 ‘교육목적으로서의 이치’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김정래, 2017: 26-27).

교육이 마땅히 따라야 할 교육원리로서의 리를 설명하는 주된 개념이 이기론 이다. 이기론에 대해 개괄적이고 쉬운 이해를 위해서 몇 가지 개념적 접근을 하 는 방법이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연구자가 생각할 때 그 내용은 이기동정(理 氣動靜)의 문제와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 리선기후(理 先氣後), 리일분수(理一分殊)라고 판단된다. 여기서는 이 개념의 순서에 따라 성 리학의 이기론을 개괄하고자 한다.

우선 ‘이기동정’의 개념이다. 주자는 “천하에는 리 없는 기가 없으며, 또한 기 없는 리도 없다.”70)라고 하여 우주 만물의 모든 현상을 이기로 설명하였다. 그러

70) 『朱子語類』, 卷1, “天下未有無理之氣, 亦未有無氣之理.”

면서 그는 “천하의 사물은 반드시 각기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와 소당연지칙(所 當然之則)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이른바 리이다.”71)라고 하여 리가 모든 만물 생성의 근원이자 법칙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주자는 “태극은 리요, 동정은 기이다. 기가 유행하면 리도 유행한다.”72)고 하여, 리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기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고 보 았다. 따라서 움직일 수 있는 기에는 항상 리가 있다고 보았다.73) 이렇듯 주자는 기본적으로 “리와 기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서로 섞이지도 않는 다.”라는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관점을 지니고 있었 다. 법칙인 리와 질료인 기의 개념은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시·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하나[一物]’라는 점에서 ‘이기불상리’이며, 동시에 서로 혼동될 수 없는 ‘둘 [二物]’이라는 점에서 ‘이기불상잡’이다(김형찬, 2002: 51). 그런데 주자가 굳이 리 와 기의 ‘불상리’와 더불어 ‘불상잡’을 강조하는 이유는, 만물 생성변화의 근원이 며 중심축으로서의 리의 고유한 의미 영역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황금중, 2000: 70).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리선기후(理先氣後)의 논리가 전개된다.

주자는 “리와 기에는 본래 선후가 없다. 그러나 위로 미루어 보면 리가 앞서고 기가 뒤이다.”74)라고 하였다. 또한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리가 있고 나서 뒤에 기가 있게 되었는지, 아니면 뒤에 리가 있고 기가 먼저 있었는지를 모두 추론해 서 궁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기가 리에 의지해서 운행하는 듯하다. 기가 모이면 리 역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기는 응결되고 조작될 수 있으나 리는 감 정, 헤아림, 조작이 없다.”75)라고 하였다. 이 말은 리기선후의 문제는 실제상으로 미루어 궁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적어도 어느 하나가 선재한다고 단정하는 것 을 긍정하지 않는다. 주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리와 기 는 실제상에서는 선후를 말할 수 없다. 둘째,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올라가거나 그 소종래(所從來)를 추론하면 리가 기에 선재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의

71) 『大學或問』, 卷1, “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所當然之則, 所謂理也.”

72) 『朱子語類』, 卷94, 「太極圖」. “太極理也. 動靜氣也. 氣行則理亦行.”

73) 『朱子語類』, 卷1, 「理氣上」. “蓋氣則能凝結造作, 理却無情意, 無計度, 無造作. 只此氣凝聚處, 理 便在其中.”

74) 『朱子語類』, 卷1, 「曾祖道錄」. “理與氣本無先後之可言, 但推上去時, 却如理在先, 氣在後相似.”

75) 『朱子語類』, 卷1, 「沈僩錄」. “而今知得他合下是先有理, 後有氣邪後有理,先有氣邪, 皆不可得而 推究. 然以意度之,則疑此氣是依傍這理行. 及此氣之聚,則理亦在焉. 蓋氣則能凝結造作,理卻無 情意,無計度,無造作.”

할 점은 리가 시간적으로 기에 우선하며 리기의 선후는 일종의 논리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 추론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상을 개괄하여 ‘논리적 선재’라고 할 수 있다(진래, 1987/이종란 외 역, 2002: 58). 이 역시 주자가 리의 본원성(本原性)을 강조한 것이다.

주자는 성리(性理)의 측면에서 ‘리일분수’의 ‘리’가 운용되는 것임을 특별히 강 조한다. 주자는 “만물을 합하여 말하자면 하나의 태극이며, 만물은 모두 한가지 다. 그 근본에서 말단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하나의 리[一理]의 실체를 나눠 가지 며, 그것을 본체로 삼는다. 그러므로 만물 안에는 각기 하나의 태극이 있게 된 다.”76)라고 하였다. 천지만물을 총체적인 하나로 보고, 그 안에는 하나의 태극이 있고, 이 태극이 바로 우주의 본체이자 본성이며, 그 태극은 오직 하나[一]일 뿐 이라는 것이 주자의 사상이다. 그리고 각각의 사물을 살펴볼 때, 모든 사물은 우 주의 본체인 태극을 품부(稟賦) 받아서 자신의 성리(性理)로 삼는다. 모든 사물의 성리와 우주의 본체로서 태극은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사물의 성리는 비록 태극 에서 품부 받은 것일지라도 태극의 일부분만을 분유(分有)한 것이 아니다. 사물 안에 충만되어 있는 성리도 역시 그 사물 자체가 갖추고 있는 태극이다. 이러한 관계를 두고 “만물 전체도 하나의 태극이요, 각각의 사물도 하나의 태극이다[統 體一太極, 物物一太極].”라고 말한다. 하나의 사물은 하나의 태극을 지니는데, 이 것이 바로 ‘분수(分殊)’이다. 따라서 ‘성리’의 의미에서 볼 때, ‘리일분수’는 우주의 본체인 태극과 만물의 성(性) 간의 관계를 뜻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주만물의 본체는 하나의 태극일 따름이며, 각각의 사물도 그 본체인 태극과 완전히 동일한 태극을 포함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본성으로 삼는다(진래, 1992/ 안재호 역, 1997:

248-249).

다음은 성리학 심성론(心性論)의 영역에 대해 살펴보자. 심성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요 개념을 통해 이해하는 방법을 취하고자 한다. 심성론의 영역에 서의 주요 개념은 성즉리, 심시기(心是氣), 심통성정(心統性情), 심의 기능으로서 허령불매(虛靈不昧),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 그리고 인심도심 (人心道心) 등이 있다.

76) 『周敦頤集」, 「通書解」. “合萬物而言之, 爲一太極而一也. 自其本而至末, 則一理之實萬物分之以爲 體, 故萬物之中各有一太極.”

먼저 ‘성즉리’에 대한 이해이다. 주자는 “천지에는 리도 있고 기도 있다. 리는 형이상(形而上)의 도(道)로써 만물을 생성하는 근본이요, 기(氣)는 형이하(形而下) 의 기(器)로써 만물을 생성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인간과 만물은 모두 이 근본으 로서의 리를 품수 받아야만 성(性)을 갖추게 되며, 도구로서의 기를 품수 받아야 만 형태를 갖추어 탄생할 수 있다.”77)라고 하였다. 이기를 인간의 성(性)의 개념 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것이 곧 ‘성즉리’의 개념이다. 성리학에서 리는 순수지선 (純粹之善)하고 보편적인 존재로, 또 ‘형이상자’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훼멸 되지 않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성즉리’라는 명제는 ‘누구나 지닌 선한 본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훼멸 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재확인함으로써,

‘사람은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라는 유교의 지론을 뒷받침하였다(이상 익, 2007: 62).

주자가 “본성은 태극과 같고, 마음은 음양과 같다.”78)고 했듯이 주자학에서 기 본적으로 본성은 리에 속하고 마음은 기[氣의 精爽]79)에 속한다. 따라서 주자의 심성론은 이기론의 연장선 위에서 성립한다. 주자는 “심(心)은 성(性)에 견주면 약간 자취가 있고, 기(氣)에 견주면 또 저절로 허령(虛靈)하다.”80)라고 하였다. 이 는 형이상자인 본성(리)이 아무 작위(作爲)도 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형이하자 인 마음은 ‘지각, 감정, 의지’ 등의 작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성은 스 스로 발현될 수 없고,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발현될 수밖에 없다. 본성이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발현된 것은 ‘정(情, 감정)’이라 한다. 마음·본성·감정의 이러한 관 계를 해명한 것이 이른바 ‘심통성정론’이다(이상익, 2017: 64).

성리학에서 ‘기질’이란 ‘마음의 재질(材質)’을 뜻하는바, 기질이 청수하면 순선한 본성을 온전히 발현시키며, 기질이 탁박(濁駁)하면 순선한 본성을 왜곡하여 발현 시킨다. 그러므로 심통성정론은 ‘탁박한 기질을 청수한 기질로 변화시켜야 한다.’

라는 기질변화론(氣質變化論)으로 연결된다(이상익, 2017: 90-91).

주자는 인간의 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구분하여 생각하였다. 주자는

77) 『朱子大全』, 卷58, 「答黃道夫書」. “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 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是以人物之生, 必稟此理, 然後有性, 必稟此氣, 然後有形.”

78) 『朱子語類』, 卷5. “性猶太極也, 心猶陰陽也.”

79) 『朱子語類』, 卷5. “心者, 氣之精爽.”

80) 『朱子語類』, 卷5. “心比性, 則微有迹, 比氣, 則自然又靈.”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는 보편적 본성을 본연지성이라 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 의 본성’이 바로 인간의 본연지성이라고 했다. 반면, 기질지성이란 본연지성이 사 람에 따라 각자 조금씩 다르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주자는 사람마다 기질(氣 質)이 조금씩 달라서 본성이 조금씩 다르게 드러난다고 설명하고, 이를 기질지성 이라 했다. 따라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별개의 성이 아니라, 하나의 본성을 관점에 따라 둘로 구분해서 본 것일 뿐이다(김정래, 2017: 34).81) 유교는 전통적 으로 선을 기준으로 본연지성의 보존과 확장을 추구한다. 그리고 기질지성 중 악 한 측면을 없애고, 선한 측면을 회복하려는 것이 유교(성리학) 교육의 목적이다.

그것은 이른바 ‘존천리알인욕(存天理遏人慾)’, 혹은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慾)’

으로 표현된다. 선한 마음의 천리(天理)인 성(性)을 보존하고, 악한 마음으로 물 들려는 경향이 있는 인욕(人慾)을 없애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연지성의 선한 속성을 보존하고 선악(善惡), 선불선(善不善)이 혼재하는 기질지성 중 악한 속성 을 내보내는 작업이다(신창호, 2012: 96). 이것이 심통성정론과 인심도심론으로 연결되면서 성리학 심성론의 요체를 이루게 된다.

주자는 “인심은 형기(形氣)에서 생기고 도심은 성명(性命)에 근원한다.”82)고 했 다. ‘형기’란 인간의 육체를 말하는바, 인심이란 육체적 본능에서 유래하는 마음 으로서,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자 하고, 추우면 옷을 입고자 하며, 정욕이 일면 이성(異性)을 그리워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주자는 ‘형기의 사사로움’ 또는 ‘인욕 의 사사로움’이라 하여, 인심을 ‘사사로운 것’으로 규정했다. ‘사사로운 것’이란 ‘개 인에 속한다’는 뜻이니,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인 심이다. ‘성명’이란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뜻하는바, 도심이란 인의예지의 본성에 서 유래하는 마음으로,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 등이 이에 해당한 다. 주자는 ‘천리의 공정함’ 도는 ‘성명의 공정함’이라 하여, 도심을 ‘공정한 것’으 로 규정했다. 사람들이 ‘남들과 함께하기 위해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도심이다 (이상익, 2017: 83).

주자는 인심과 도심을 설명하면서 ‘천리’와 ‘인욕’을 함께 거론했다. 그리하여

81) 이처럼 주자는 기질지성을 ‘사람마다 기질에 따라 제각각인 본성[各一其性]’이라는 뜻으로 설명했 으나, 간혹 ‘인간의 육체적 본능[食色之性]’을 기질지성으로 설명하기도 했다(김정래, 2017: 34).

82) 『中庸章句』, 「中庸章句序」. “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則以其或生於形 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而所以爲知覺者不同.”

일견 ‘도심=천리, 인심=인욕’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천리인욕론’은 ‘인심도심론’

과는 궤를 달리하는 개념 체계다. 즉, 주자에 의하면, 인심 가운데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요구를 추구하는 것은 천리이지만, 기본적 욕구를 넘어서는 사치와 방탕 등의 욕망은 인욕이 된다(이상익, 2017: 84). 우리의 마음에는 분명 인심과 도심 이 함께 존재하므로, 우리는 결코 마음 자체를 진리의 표준으로 삼을 수 없는 것 이다. 따라서 인심과 도심 사이에서 중용을 실천하려면 유정유일(惟精惟一)의 공 부가 필요하며, 성리학에서는 유정유일의 방법으로 ‘지경(持敬)’을 강조한다(이상 익, 2017: 91).

이때 ‘지경’이 성리학에서 말하는 수양론이자 곧 공부론이다. 본래 성리학에서 는 수양론과 공부론이 다르지 않다.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천리의 보존을 통한 수양이 곧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본질적인 공부이다. 이때 대표적인 개념이 ‘함양 성찰(涵養省察)’, ‘존양성찰(存養省察)’ 또는 ‘존심양성(存心養性)’, ‘거경(居敬)’, ‘지 경’ 등으로 표현된다. 이는 모두 마음과 관련된 것으로 성리학에서는 마음공부를 우선하고 중시한다. 그렇다고 성리학에서 학문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 문 또한 중시하지만, 상대적으로 마음공부를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주자학에서 학문 탐구 또는 지식교육의 측면으로 볼 수 있는 개념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이 며, 마음공부와 지식공부 양자를 포괄하는 개념이 ‘거경궁리(居敬窮理)’이자, ‘존 덕성도문학(尊德性道問學)’이다.

주자학의 마음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경(敬)’이다. ‘경’은 사심(私心)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공부다. 사심에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사욕인 사심은 물론이고,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생기는 잡념이 포함된다. 그런 것들로 인 해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들어서 깨우는[提醒] 것이 ‘경’ 공부다(김낙진, 2017:

200). ‘경’ 공부는 마음의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마음이 아직 사물과 접하지 않은 미발(未發)의 상태일 때, 그 마음은 천리와 같은 순선한 것이다. 즉, ‘미발’

일 때 마음은 ‘허령불매’한 마음의 본체 내지는 감각 및 심지(心知)의 허명(虛明) 함이 그대로인 상태이며[靜而涵天理之本然], ‘경’은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보존하 기 위한 공부이다. 이러한 ‘미발시’의 ‘경’ 공부를 ‘함양’ 또는 ‘존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음이 이미 발동하여 처사접물(處事接物)·교인접물(交人接物) 할 때 불 순한 욕망의 침투를 살펴 그 싹을 과감히 잘라 버리는 것[動而決人欲於幾微]이

‘성찰’이며 이때의 공부 역시 ‘경’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부연하면, 함양이란 미발심을 함양하는 것이고, 성찰이란 심발(心發) 이후에 표출되는 바가 천리인지 인욕인지 판별하는 것이다. ‘천리의 보존과 인욕의 방지[存天理遏人慾]’에 있어 함양성찰은 이렇게 중요하다. 주자는 함양과 성찰 모두를 ‘경’으로 해야 한다고 보고 함양성찰 자체를 ‘경’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경’ 공부는 주자학에서는 미 발과 이발, 동(動)과 정(靜)을 일관하는 철상철하(徹上徹下)의 방법으로서, 일상생 활에서 한시도 떠나서는 안 되는 수양법이자 공부법이라 할 수 있다(손병욱, 2002: 328). 이러한 ‘경’의 구체적 공부방법으로 정제엄숙(整齊嚴肅), 주일무적(主 一無適), 기심수렴(其心收斂), 상성성법(常惺惺法)의 네 가지가 있으며, 이를 사조 법(四條法)이라고 한다(김낙진, 2017: 200).

다음은 성리학의 학문탐구 영역, 즉 지식공부의 영역에 대해 ‘격물치지’를 중심 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는 『대학(大學)』에 처음 보인 다. 여기서 격물과 치지는 도덕적 수양[誠意·正心·修身]과 이에 근거한 사회적 실 천[齊家·治國·平天下]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집안·나라·천하를 제대 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과 마음을 갈고닦는 인격 수양을 해야 하며, 인격 수양을 위해서는 먼저 ‘치지’해야만 하는데, ‘치지’는 ‘격물’에 있다는 것이다(김용 헌, 2002: 351).

주자는 『대학』을 학문 방법론의 차원에서 이해, 그 편제를 격물치지를 중심 으로 재구성하고 나아가 「격물치지전(格物致知傳)」(補亡章)을 보충하였다. 주자 학의 격물치지설은 정이(程頤)와 주자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정의는 ‘격’을 ‘이르 다[至]’ 또는 ‘궁구하다[窮]’로 보아 격물을 ‘사물을 탐구하여 그 리에 이르다[窮至 物理]’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주자 역시 정이의 해석에 따라 격물을 사물에 나아 가 사물의 리를 탐구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에는 인식 대상인 리가 사물 속에 내재한다는 원리가 전제되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외부 사물을 버리거나 막 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참된 인식을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할 대상이 된다. 외부 사물의 리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 결과로서 지식의 습득을 필수적으로 본다는 측면에서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객관주의적이고 주지주의적 인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 [物]과 그 사물을 처리하는 방식[事]에 대한 공부이며, 그 수단으로서 독서와 토

론[講學]을 통한 지식의 습득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김용헌, 2002).

이처럼 성리학의 공부론은 마음공부와 객관적 지식탐구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를 포괄하는 명제가 정이가 말한 “덕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경으로 해야 하고, 학문을 진보시키는 것은 치지에 있다[涵養須用敬, 進學在致 知].”라는 언급이다. 주자는 이를 더욱 강조하였다. 주자의 이러한 입장을 잘 보 여주는 것이 『중용』의 ‘존덕성도문학’ 장(章)이다. 아래 인용문은 『중용』의

‘존덕성도문학’과 관련된 주자의 주석이다.

존덕성은 마음을 보존하여 도체의 큰 부분을 지극히 하는 것이며, 도문학은 앎을 지 극히 하여 도체의 세세한 부분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두 가지는 덕을 닦고 도를 실현 하는 큰 단서다. 한 터럭의 사의로도 가려지지 않고 한 터럭의 사욕으로도 방해받지 않으며, 이미 아는 것에서 함영하고 이미 할 수 있는 것에서 돈독히 하는 것, 이것이 존심(存心)의 부류다. 리(理)를 분석함에 한 치의 오류가 없도록 하고 일을 처리함에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도록 하며, 리(理)와 리의(理義)의 면에서는 아직 모르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하고 절문(節文)의 면에서는 아직 삼가지 못하는 부분을 날마다 삼가는 것이 치지의 부류이다.83)

주자는 여기서 존덕성을 존심(마음을 보존하는 것) 및 도체의 큰 부분과 연관 시키고, 도문학을 치지(앎을 지극히 하는 것) 및 도체의 세밀한 부분과 연관시킨 다. 말하자면, 존덕성은 진리의 핵심과 큰 틀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공부로서 그 실천적 요체는 마음을 보존하는 것, 즉 본성의 빛을 고요하게 간직한 상태에서 이미 알고 할 수 있는 것을 음미하고 돈독히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도문학은 진리의 세밀하고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고 극진히 하는 공부로서 그 실천적 요체는 앎을 지극히 하는 것, 즉 진리의 분석에 오류가 없도록 하며 일처리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새롭게 알며 진리를 체화해 가는 것이다(황금중, 2017: 120). 이상에서 간략히 성리학의 교육사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성리 학, 특히 주자학이 조선에 유입되고 사림파에 의해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제주오

83) 『中庸章句』, 27章. “尊德性, 所以存心而極乎道體之大也. 道問學, 所以致知而盡乎道體之細也. 二 者, 修德凝道之大端也. 不以一毫私意自蔽, 不以一毫私欲自累, 涵泳乎其所已知, 敦篤乎其所已能, 此皆存心之屬也. 析理則不使有毫釐之差, 處事則不使有過不及之謬, 理義則日知其所未知, 節文則 日謹其所未謹, 此皆致知之屬也.”

현의 교육사상 역시 성리학 교육사상의 틀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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