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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를 중시한 치인(治人)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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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규암 송인수의 교육사상

2) 교화를 중시한 치인(治人) 교육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여러 사화(士禍)가 지나고, 또 곧이어 을미 사화와 정미사 화가 발생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사림들은 연이은 사화로 인해 사기가 꺾였으 며, 성균관의 개혁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절정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래서 주세붕 은 서원을 건립(1543년, 중종 38)하여 사림의 새로운 강학처(講學處)로 삼았다.

호해(湖海)에 존엄한 이로 우리의 후(侯)가 있으니 湖海維靈有我侯 일생 얼음과 움을 먹는 청빈함을 닦으셨으니 一生氷蘖苦淸修 임금님 은혜 거듭하여 포상이 이어졌고 主恩稠疊連褒賞 깊은 효심으로 여러 번 지방관을 자청했는데 孝意純深數乞州 시렁에는 이삼 천 권의 책이 꽂혀 있고 架揷二三千卷帙 나이는 여든여섯의 춘추 고령을 누리셨으니 年高八十六春秋

기영정에서의 아름다운 모임을 耆英亭上成佳會

옮겨 그린 채색 그림은 영원토록 변치 않으리 移入丹靑萬世留359)

송흠의 청빈함과 효심을 찬양하고 있다. 규암이 당시 풍속 교화를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규암집』에 남아있는 시들 중 다수는 송인 수가 전라도 관찰사 시절에 지은 것들이다. 늘 지역의 교화를 위해 애쓰던 규암 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은 규암이 동복동헌(同福東軒)에서 지은 시이다.

관찰사의 부절 한번 끌어당겨서 一按觀風節

두루 묻고 자문 한 지 벌써 반년 諮詢已半年

남녘 고을 교화함에 선정이 없어 化南無善政

앞의 어진 이들에게 부끄러우니 分陝愧前賢

허리에 찬 칼 기운이 남녘 하늘을 찌르지 못하여 佩劍空衝斗 상자 속의 거문고 줄을 끊어버린 지 오래되었고 匣琴久絶絃

비 온 후 기이하게 생긴 돌만이 雨餘奇石立

나와 함께 짝하여 신선 되었네 伴我作神仙360)

규암이 전라도 지방의 교화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규암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고을을 모두 순시하면서 이르는 곳마다 예의를 갖추 고 그 지역의 유학자를 만나보았다. 이는 지역의 교육적·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지방 향촌 세력을 통해 교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할 수 있 다. 이러한 규암의 모습에서 지역의 감화가 이루어졌고 풍속이 크게 변화였다고 기록하고 있다.361)

359) 『圭菴集』, 卷1, 「題知止堂宋公 欽 耆英亭」.

360) 『圭菴集』, 卷1, 「次同福東軒韻」.

361) 『圭菴集』, 卷4, 「年譜(45歲條)」. “巡宣所至, 禮接儒冠, 一方洽然從化, 南俗爲之丕變.”

규암은 도덕·윤리를 위한 풍속 교화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도덕적 내재율 에 의한 자연스러운 도덕성 함양을 중시하였으며, 이를 위해 모범적 인물에 대한 정려정책을 시행하였다. 규암은 백성들이 풍속이 바르게 교화되고, 화합이 이루 어지길 소망했다. 규암은 보성을 안찰(按察)할 때 지은 시에서 “지형이 이로우니 성곽이 무슨 소용이며, 백성들 화합에 해자(垓字)도 소용없구나[地利何須郭 人和 不必池].”362)라고 하여, 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백성들의 화합만 못하다는 『맹 자』의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였다.363)

규암은 남평신헌(南平新軒)에서 지은 시에서는 “호남에서 펼친 교화 이남(二 南)에 부끄럽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가리키는 이남은 『시경』 「국풍(國風)」

에 나오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모두 덕화(德化)를 펼 쳐 모든 지역이 교화되지 않음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인물들이었다. 규암이 이남을 지침으로 삼아 지역의 교화를 위해 정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364)

송인수는 위에서 언급한 정표(旌表)를 통한 풍속의 교화와 더불어 『소학』 보 급에 심혈을 기울였다. 기묘사림들의 『소학』 중시와 『소학』의 내용에 대해서 는 앞서 충암 김정의 교육사상(Ⅲ장 3절)에서 논의한 바 있다. 『소학』을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읽히도록 한 것은 규암의 스승 김안국에 의해서였다. 김안 국은 1517년(중종 12)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후 『소학』을 강독하고 권장 하였다. 후에는 항간의 아이들까지도 진작되어 온 도내가 『소학』을 읽었다고 할 정도였다.365) 송인수 역시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소학』을 매우 장려하 였다.

1568년(선조 1) 기대승은 주강(晝講)에서 선조에게 『소학』의 장려를 권하면 서 “소신은 시골에서 자라나 책 읽을 줄을 몰랐습니다. 중종 말년에 조정에서 한 일은 미처 모르겠으나, 그때 송인수가 관찰사가 되어 『소학』을 읽게 하였으므 로 그 책을 얻어 읽은 뒤에야 성현의 하는 일을 알았습니다.”366)라고 하였다. 송

362) 『圭菴集』, 卷1, 「敬次寶城東軒樗軒韻」.

363) 『孟子』, 「公孫丑下」.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364) 『역주규암선생문집』, 72쪽, 註참조.

365) 『中宗實錄』, 卷30, 중종 12년 11월 15일 丁亥. “慶尙道觀察使金安國勸小學, 閭巷之童, 靡不興 作, 一道且然, 在上行之不難矣.”

366) 『宣祖實錄』, 卷2, 선조 1년 1월 12일 壬戌. “小臣生長於鄕, 不知讀書, 而在中宗末年, 朝廷所 爲, 則臣未及知, 而其時宋麟壽爲觀察使, 使之讀小學, 故得其冊而讀之, 其後知聖賢所爲.”

인수가 전라도 관찰사 시절에 『소학』을 권장하여 자신도 『소학』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어서 기대승은 1569년(선조 2) 경연367)에서, “송인수는 평생 기묘인(己卯人) 을 흠모하였습니다. 계묘(癸卯, 1543)·갑진(甲辰, 1544) 연간에 전라감사가 되어서 는 『소학』을 권면하고 후생들을 인도하였으니, 당시에 『소학』을 읽게 된 것 은 모두 송인수의 공입니다.”368)라고 하였다.

당시 송인수가 『소학』 장려에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송인수라는 인물이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학』

중시와 『소학』 장려 역시 부각되거나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송인수는 김안 국의 제자로서 『소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으며, 조광조의 신원을 강력하게 요청한 사실과 평생 기묘사림을 흠모하였다는 기록을 볼 때 기묘사림 이후 주춤 했던 『소학』 이념을 충실히 계승한 학자라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서 김인후는 규암의 전라도 관찰사 시절을 가요(歌謠)로 남겼는데, 그중 학 문을 일으키고 풍속을 교화한 부분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학교와 인재는 성하게 일어나고 膠庠興濟濟

소아(小雅)의 음악이 성대하게 울리네 宵雅樂菁菁

예를 도와서 의식이 질서 잡히고 贊禮儀章秩

어진이 추천하는 것 거울처럼 밝네 推賢水鑑明

유림은 북두성처럼 떠받들고 儒林爭望斗

조정에서 나라 다스리기에 알맞도다 公器合調羹

남녘을 순시하며 위무하라는 按撫膺南國

북쪽 서울에서 임금님 뜻 받드네 承宣自北京

고을들은 바르게 다스려졌고 諸州歸攬轡

한결같이 사신의 깃발 우러러보네 一路仰干旌

(중략)

쇠퇴한 풍속 다시 떨치고 頽風看再振

367) 이 경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연이다. 기대승이 우리나라 도통 연원을 “[길재→정몽주

→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확정 지었던 경연이기 때문이다. 이 경연에서 윤근수와 기 대승은 송인수가 매우 훌륭한 인물임을 선조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68) 『宣祖實錄』, 卷3, 선조 2년 윤6월 7일 己酉. “又啓曰, 麟壽一生, 欽慕己卯之人. 癸卯甲辰年間, 爲全羅監司, 勸勉小學, 引接後生, 其時讀小學, 皆麟壽之功也.”

끊어진 학문 새로운 맹세로 이어지네 絶學屬新盟 고루한 몸 뜻 뜻만 크고 일은 거칠어 孤陋嗟狂簡 공연스레 거문고 당겨 줄을 튕겨본다네 空操點瑟鏗.369)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학교가 성대하게 흥하였고, 쇠퇴한 풍속이 다시 일 어났으며, 끊어졌던 학문이 새로운 도약을 맹세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처럼 규암의 전라도 관찰사 시절에 풍속 교화와 『소학』의 장려는 도학자 로서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1586년(선조 19) 중 봉(重峯) 조헌(趙憲)은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김안국·송인수는 양남(兩南)에 관찰사로 나가 은택과 교화를 베풀어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덕택을 입고 있습니 다.”370)라고 하였는데, 김안국과 송인수가 사제관계였음을 고려할 때 사제동행(師 弟同行)의 전형이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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