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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법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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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충암 김정의 교육사상

2) 교육방법과 내용

념(動念) 하시어 성학(聖學)에 힘써 정진하십시오.”176)고 하여 중종의 공부를 독 려하고 있다.

이처럼 충암은 천인합일의 교육목적을 제시하고 그 완성을 위해 인의 실현을 추구한다. 하늘을 대신하는 임금은 인의 완성체로서 역할과 임무를 부여받는다.

공부를 통해 임금의 인이 지극히 실현될 때 천지만물의 번성과 같은 인간 세상 의 번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 … 경(敬)은 위로 천리(天理)와 아래로 인사(人事)에 관통하는 공부이니, 처음 배우 는 일[初學]로부터 ‘중(中)과 화(和)를 이루어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생장하는 것’[中 和位育]과 ‘독실하고 공손함으로써 천하가 태평해지는’[篤恭而天下平] 일에 이르기까지 다 경 한 글자에서 나왔습니다. 경 자의 뜻은 모두 자기가 홀로 있을 때 삼가는[謹獨]

데 있습니다. 비록 은미(隱微)하고 혼자 있을 때라도 흐트러진 마음[放心]을 거두어들 여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조금도 사사로움과 거짓이 없게 해야 합니다. 치지(致 知)·성의(誠意)·정심(正心)은 다 경에서 나오므로,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전일하면 온갖 이치가 밝게 갖추어지며, 움직이는 곳에만 나타날 뿐 아니라 조용한 속에서도 스스로 경건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寂然不動] 중에도 마른 나무나 불 꺼진 재[枯木死灰]와 같지 않고 마음에 주재가 있어서, 보고 듣지 않더라도 보고 듣는 이치는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177)

충암은 경을 수양론의 관점을 넘어서는 포괄적인 가치개념으로 설정하고, 중층 구조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충암은 “‘경하여 머문다[敬止]’라는 경은 대강(大 綱)이고 ‘경에 머문다[止於敬]’라는 경은 소목(小目)입니다. 대개 음식이나 은미 (隱微)한 속에서도 부끄러운 일이 하나도 없으면 바깥에 나타나는 것이 광명정대 해지며, 조정에서의 일도 모두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을 독실히 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라고 한 것이고, 하루 동안 마음에 경을 다하면 천하가 곧 태 평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의 이치는 진실로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178)라고 하였다. 즉, 인의 사덕과 같은 층위의 경을 설정하고 그 경을

‘대강’의 경으로, 수양론의 측면에서의 경을 ‘소목’의 경으로 구분하여 경의 층위 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층위 설정이 있기 때문에 경이 인·경·효·

자·신을 포함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충암은 “만물을 생육하는 이가 잠 시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곧 경이고, 본심을 간직하여 정치를 행하고 정일 (精一)이 쉬지 않게 하는 것이 곧 경입니다. 경이 아니면 본심을 간직하여 인하

177) 『中宗實錄』, 卷34, 중종 13년 9월 15일 壬子. “金淨曰, 此敬字, 包仁, 敬, 孝, 慈, 信五者之義 矣. … 敬乃徹上徹下功夫, 自初學, 至中和, 位育, 篤恭而天下平之事, 皆由敬之一字, 敬字之義, 都 在謹獨. 雖隱微幽獨之中, 收斂放心, 常存敬畏, 而勿使少有私僞也. 致知誠正, 皆由乎敬, 心專不放, 則萬理明備. 不獨見於動處, 而靜中自有敬意也. 方其寂然不動之中, 非如枯木死灰, 而心有所主, 雖 不見聞, 而見聞之理, 皆具矣.”

178) 『中宗實錄』, 卷34, 중종 13년 9월 15일 壬子. “敬止之敬, 大綱也. 止於敬之敬, 小目也. 蓋於飮 食隱微之中, 無一事之或愧, 則見於外者, 光明正大, 而朝廷之上, 莫不皆然矣. 故曰篤恭而天下平, 非謂, 一日之內, 致敬於心, 而天下卽平也. 其所以然之之理, 固不可以言語形容之也.”

게 될 수 없으며, 인과 경은 본디 다른 것이 아니므로 인하면 반드시 경하고 경 하면 반드시 인하니 하늘과 사람이 접할 즈음에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179)라고 하였다. 유학적 인격 완성의 핵심인 인이 경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다. 이는 경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180)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설명에서의 경은 수양론의 과점에서의 경을 말하는 것으로, 홀로 있 을 때 삼가는 것[謹獨]이 경의 핵심적인 의미이고, 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 心) 등 『대학』의 각 조목 공부가 다 경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특히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미발의 경우에도, 경의 수양을 통해 마음의 주재를 이룰 수 있으 며, 그럴 때 마음은 마른 나무나 불 꺼진 재[枯木死灰]처럼 죽은 것이 아닌, 보고 듣는 이치를 갖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은 마음의 미발을 어떻게 이해하 고 어떻게 수양할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토론해 온 주자학의 중요한 주제에 대 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곧 마음의 주재라는 측면에서 경의 의미를 파 악하는 것이다(정원재, 2004: 46).

지금까지 살펴본 생리(生理)와 인(仁)의 내용은 충암 교육사상의 준거요, 공부 의 방향성이다. 즉 본연지성으로의 회복과 우주만물의 본성인 인의 실현을 목표 로 한 것이다. 그러나 충암은 그러한 공부의 목표와 방향성만 설정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방법론적 실천성이 필요하며, 그래서 ‘경’을 중층구조로 설정하여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충암의 이러한 인식은 그가 교육사상가요, 공부론의 이론가라는 점을 확인 시켜준다. 다시 말해, 우리가 흔히 성리학을 본체론, 심성론, 수양론으로 구분하 여 살펴보고, 성과 경은 수양론의 측면으로 한정하여 본체론과 심성론의 목적을 이루는 방법론적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충암은 ‘경’을 공부론의 거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바라보면서 도덕적 인간의 완성은 결국 공부를 통해 나아가 야 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 것이다.

(2) 주경함양(主敬涵養)의 공부론

179) 『中宗實錄』, 卷29, 중종 12년 8월 12일 乙卯. “生生之理, 無少間斷者, 此, 敬也, 存心出治, 精 一不息者, 亦此敬也. 非敬, 莫能存心, 以爲仁, 仁與敬, 固非異事, 爲仁必敬, 爲敬必仁, 天人相與 之際, 甚可畏也.”

180) ‘경의 극단적 강조’라는 표현은 정원재(2004)에서 차용하였다.

충암 연보의 기록에서 충암은 제자들에게 “존양성찰”을 강조했다고 표현했는 데, 충암이 실제로 중요시 생각한 것은 주경함양의 공부방법이었다. 즉 이발시의 성찰보다는 미발시의 함양(존양)을 강조하였다. 주경함양에 관한 사상은 주희가

‘지경(持敬)’과 “함양은 반드시 경으로 해야 한다[涵養須用敬]”라는 정이의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주희의 ‘주경함양설’에는 광의와 협의의 두 의미가 있다. 협의 의 주경함양은 전적으로 미발 공부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으로 ‘궁리치지(窮理致 知)’와 상대되는 것이다. 광의의 주경함양은 미발과 이발을 관통하는 것으로 동정 (動靜)과 내외(內外)의 과정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다(진래, 1992/ 안재호 역, 1997: 259).

충암 역시 경이 미발과 이발의 공부를 모두 관통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이유 에서 연구자는 충암의 ‘경’ 공부는 수양론의 범위를 넘어서는 공부론의 본체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충암은 “마음이 감촉해도 움직이고 감촉하지 않아도 움직이는 것은 마 음의 출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움직여도 경을 지키는 것은 오히려 할 수 있지만, 적연히 조용하게 있을 때는 마음이 정착하는 바가 없어서 경을 지키 는 공부가 어려우므로 선유(先儒)들도 흔히 흐트러지고 그른 마음이 끼어든 것입 니다.”181)라고 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경을 지키는 공부가 더욱 어렵다고 보았다.

미발일 때의 주경이란 사려와 감정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도 수렴하고 삼 가 조심하며 경각하는, 일종의 지각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최대한도로 생각과 정서를 평정시키는 일을 의미한다(진래, 1992/ 안재호 역, 1997: 260). 주 자는 이러한 경의 공부방법으로 정제엄숙(整齊嚴肅), 주일무적(主一無適), 기심수 렴(其心收斂), 상성성법(常惺惺法)의 네 가지가 제시했는데, 이를 사조법(四條法) 이라고 한다. 앞에서 충암은 경의 방법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①홀로 있을 때 삼 가 조심하는 근독(謹獨), ② 흐트러진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수렴(收斂), ③ 마음 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전일(專一), ④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경외(敬畏) 등이다. 그런데 충암은 사조법보다 정좌에 의한 주정(主靜)의 공부방법을 더 선

181) 『中宗實錄』, 卷34, 중종 13년 9월 15일 壬子. “金淨曰, 心感則動, 而不感亦動者, 心之所以出入 無常也. 動而持敬, 猶可爲也, 寂然靜時, 心無所著, 持敬之功, 於是爲難, 故先儒亦多岐誤入矣.“

호한 것으로 보인다.

추파(楸坡) 송기수(宋麒壽)는 충암 선생 행장(行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 다. “(선생은) 일찍이 속리산 도솔암으로 들어갔다. 경전에 침잠(沈潛)하고, 정좌 (危坐)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거경주정(居敬主靜)의 학문을 행하고, 묵묵히 마음의 선과 악, 공과 사의 구별을 살펴보았다. 말을 하고 일을 행할 때는 반드 시 성현을 표준으로 하였다.”182) 또한 『충암집』 부록, 「제가기술」에서도 유근 (柳根)의 『서경집(西坰集)』을 인용해 같은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는 “올 연(兀然)히 정좌해서 진흙으로 만든 인형[泥塑人]과 같았고, 고요함을 주로하고, 경을 유지하였다. 반드시 무슨 일을 하여도 이처럼 하였다.”183)고 한다.

충암은 공부의 본체로서의 경을 매우 중시하였고 경의 수양방법으로 주경함양 의 공부법 그중에서도 주정(主靜)에 의한 정좌의 공부방법을 실천했음을 알 수 있다.

(3) 독서에 의한 궁리(窮理) 공부

성리학의 공부론은 일반적으로 ‘거경궁리(居敬窮理)’라 할 수 있다. 경으로 대표 되는 마음의 수양과 지식의 영역을 뜻하는 궁리가 두 축을 형성하여 성리학의 공부론이 운용된다.

『대학』에서는 일찍이 격물‧치지‧성의‧정심 등의 팔조목(八條目)을 제시하였 으며, 도학자들은 이 『대학』을 특별히 중시하였다. 정이는 “격(格)이란 궁구한 다는 말과 같다. 물(物)이란 이치(理)와 같다. 격물이란 그 이치를 궁구한다는 말 과 같을 따름이다.”184)라고 하여 ‘격물’의 의미를 ‘궁리’로 해석하였다. 다시 말하 자면 『대학』에서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공부란 바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진래, 1992/ 안재호 역, 1997: 173).

정이는 사물에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고 따라서 궁리의 방법과 경로는 다양하 다고 보았다(진래, 1992/ 안재호 역, 1997: 174).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 다.

182) 『秋坡先生集』, 卷2, 「沖菴金公行狀」, “嘗入俗離山兜率庵, 沈潛經傳, 危坐窮晝夜, 爲居敬主靜之 學, 默察此心於善惡公私之分. 立言行事, 必以聖賢爲準”

183) 『冲庵集』, 「諸家記述」. “兀然危坐, 若泥塑人, 主靜持敬, 必有事焉自如此(出西坰集).”

184) 『二程集』, 「遺書」, 권25, 316쪽. “格猶窮也, 物猶理也, 猶曰窮其理而已也.”

하나의 사물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으니, 반드시 그 이치를 궁구하여 잘 알아내야 한 다. 궁리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독서를 통해 의리를 분명히 말하거나 고금의 인 물을 논하면서 그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방법, 또는 사물과 접촉하여 그 마땅한 바를 결정하는 방법도 있다. 이 모두가 궁리이다.185)

이처럼 정이는 궁리의 방법으로 독서, 고금의 인물에 대한 시비분별, 사물과 접 촉하여 격물하는 방법 등을 제시하였다.

충암은 당시 뛰어난 도학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중종은 “내가 관안(官案) 을 보니 홍문관의 관원에 부족이 많은데, 지금은 바야흐로 이학(理學)을 토론하 는 때이니 경연관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전일 정사(政事) 때에 조광 조·김정을 승지·대간에 주의하였으나 내가 낙점(落點)하지 않았다. 다른 경연관도 오히려 돌아가며 진강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김정·조광조)은 이학에 더욱 힘쓰 니 다른 벼슬을 제수해서는 안 된다.”186)고 하였다. 당시 조광조와 함께 김정이 이학자로서 조정에서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전교이다. 충암은 14세에 별시 초 시의 장원, 22살에 증광시 갑과 장원, 23살 때 문신정시에 장원하는 등 그야말로 구도장원(九度壯元)에 버금가는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지학 은 배움으로 삼기에 부족합니다.”라고 하여 성현들의 글에 밤낮으로 침잠하였 다.187)

충암은 중종에게 학문하는 목적은 그 이치를 철저히 궁리하기 위함이라고 강 변하였다.

김정이 아뢰기를, “근일 부지런히 경연에 나오시니, 지극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다만 제왕(帝王)의 학문은 장구(章句)나 따지는 유생과는 다릅니다. 구두(口讀)를 익힐 뿐만 아니라, 모름지기 대의를 알아서 시정에 나타내야 합니다. 청컨대 대신들과 함께 깊은

185) 『二程集』, 「遺書」 卷18, 188쪽. “凡一物上有一理, 須是窮致其理, 窮理亦多端. 或讀書講明義理, 或論古今人物, 別其是非, 或應接事物而處其當, 皆窮理也.”

186) 『中宗實錄』, 卷30, 중종 12년 11월 27일 己亥. “仍傳曰, 予觀官案, 弘文館官員多缺, 而今方討 論理學之時, 經筵官不宜闕也. 是以前日之政, 以趙光祖, 金凈, 擬於承旨, 臺諫, 予不落點也. 他經 筵官, 猶可輪回進講, 此人等, 金凈, 趙光祖. 尤着力於理學, 不可授他職也.“

187) 『冲庵集』, 「年譜」. “至會試, 辭以年幼不赴. 且曰, 科擧之文, 不足學也. 遂沈潛聖賢書, 夜以繼 日.”

의미를 확실히 따져, 예전의 좋은 정치를 보면 그렇게 할 것을 마음먹고, 예전의 어지 러움을 보면 그것을 경계로 삼으셔야 합니다.“188)하였다.

학문하는 목적은 대의를 알기 위함이고, 깊은 의미를 확실히 따져서 정치를 베 푸는 데에 드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리(보편적 이치)는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 리가 자연의 객관 적인 리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 그 리에 관한 탐구가 자연에 대한 직접 적인 관찰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주자학에서 궁리 공부를 통 해 인식해야 하는 리는 몰가치적인 자연법칙이 아니라, 의리, 시비, 마땅함과 같 은 유가적 가치였다(김용헌, 2002: 357-358).

충암은 “글을 읽을 때는 모름지기 의심을 하여야 합니다. 옛사람이 ‘지금 사람 은 의심할 줄 모른다.’ 하였는데, 글 뜻을 보면 과연 어려운 것 같지는 않으나 만 일 크게 의심을 하면 크게 진취하고 작게 의심을 하면 작게 진취합니다. 배우는 자가 정밀하게 연구하기 때문에 문구에 의심이 생기고 문구에 의심이 생기다가 끝내는 의심이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학문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학문에는 얕고 깊음이 있습니다. 공자 같은 성인으로도 ‘마침내 『주역(周易)』을 배우면 큰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 하였으니, 그것은 의리(義理)가 무궁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능하다고 하는 사람은 진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189)고 하였다. 단순 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담겨있는 의리 와 이치를 궁구하여 끝내 의심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충암은 한유(韓愈)의 글을 즐겨 읽었다. 충암은 항상 말하기를 “나는 한유의 글 에 빠져있으나,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다.190) 주희 역시 독서의 실제에서 여러 책을 한꺼번에 두루 읽기보다는 한 책을 철저하게 본 다음에 다 른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황금중, 2000: 203). 주희가 생각할

188) 『中宗實錄』 卷10, 중종 5년 1월 14일 辛未. “金淨曰, 近日勤御經筵, 至爲美事. 但帝王之學, 與 章句儒生異也, 不但熟其口讀而已, 須知大意, 見於施爲可也. 請與大臣商確奧義, 見古之治, 則欲與 同道, 見古之亂, 則引以爲戒可也.”

189) 『中宗實錄』 卷31, 중종 13년 1월 6일 丙午. “參贊官金淨曰, 讀書須有疑心也. 古云, 今人殆不 能疑. 果觀文義, 則非似難知也. 若大疑則大進, 小疑則小進. 學者精以尋繹, 故疑生節, 節生疑, 以 至於終無可疑者, 學之成也. 學問所造有淺深焉. 以孔子之聖, 猶曰, 卒以學易, 可以無大過者, 義理 無窮故也. 所謂我能之者, 乃眞不知者也.“

190) 『冲庵集』, 「諸家記述」. “讀昌黎文.不踰數十遍, 常曰, 吾於韓文三昧, 不須多數讀也. 平生文章, 實源於此(門人金顧所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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