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규암 송인수의 교육사상
1) 수기치인의 교육목적론
미한다. 반면에 인욕은 인심(人心)으로서 선악(善惡)과 선불선(善不善)이 혼재된 기질지성을 말한다. 천리가 아닌 사사로운 개별적 인욕으로 치우치려 할 때 인간 은 공부와 수양을 통해서 천리를 확충하고 인욕을 막아야 하며, 이것이 성리학에 서 강조하는 ‘존천리거인욕’의 교육목적이다. 이 글을 통해 송인수는 심성론의 영 역에서 분명하게 도심과 인심을 구분하면서도 사사로운 인욕에 빠진 인심을 도 심으로 회복해야 하며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모두 교육과 관련된 사항이다. 그중 강학(講學)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자.
경연(經筵)에 친히 납시어 장구(章句)를 해석하고 치도(治道)를 말하고는 때가 다하 여 파하는 것은 학문을 강론하는 말단입니다. 사유(師儒)를 가까이하여, 강론하면 반드 시 극진한 데까지 다하고 확실히 알면 반드시 자신에게 돌이키어, 아는 것이 흡족한 데에 이르지 않으면 그치지 않으며, 홀로 있을 때 본심을 지켜 기르고, 기미가 움직이 는 처음에 살펴서, 못처럼 깊고 샘처럼 솟는 것이 때때로 나와 정치에 베풀어지게 하 는 것이 학문을 강론하는 근본입니다.312)
진정한 학문의 본말(本末)을 언급하면서, 인종에게 공부의 요체에 관해 설명하 고 있다. 규암은 학문을 튼실히 한 후에 그 의리를 정밀히 밝혀 그것이 밖으로 펼쳐 나가 정치 행위의 원리가 될 때 학문의 본질적 의미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 어서 송인수는 다음과 같이 학문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학문보다 요긴한 것이 없습니다. 사물을 연구하여 지식을 극진히 하고 뜻을 성실히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은 증씨(曾氏)의 글에 이미 그 단서가 있고, 경(敬)을 지키고 자기 사욕을 이기는 방도와 글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는 공부는 경전(經傳)에 갖추어 있어, 성현(聖賢)의 가르침이 거의 남김이 없습니다. 진실 로 깊이 생각하고 힘껏 실천하여 잘 길러지기를 바라서,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을 때 지극히 허한 데에서 주재하는 청명(淸明)하고 순일(純一)한 것이 조금도 간단없게 하 고, 느껴서 드디어 통달한 뒤에 지극히 묘한 데에서 나타나는 조리(條理)와 절문(節文) 이 터럭만큼도 어그러지지 않을 수 있다면, 만기(萬機)가 올 때 일에 따라 이치를 따르 는 것이 빈 거울처럼 비추어서 곱고 추한 것이 구별되고 평평한 저울처럼 달아서 가볍 고 무거운 것이 판별되므로, 응대하는 것이 많은 것을 싫어하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다 바른 데로 돌아가서, 치평(治平)의 도리가 성대하여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313)
312) 『仁宗實錄』, 卷2, 인종 1년 4월 13일 乙巳. “若親御經筵, 解釋章句, 雜以治道之說, 時盡而罷 者, 講學之末也. 密邇師儒之臣, 講論必窮其極, 體認必反諸己, 知之不止於浹洽, 則不止也, 存養於 獨居之時, 省察於幾動之初, 淵泉時出, 施於爲政, 講學之本也.”
313) 『仁宗實錄』, 卷2, 인종 1년 4월 13일 乙巳. “治心之法, 莫要於學問. 格物而致其知, 誠意而正其 心, 曾氏之書旣發其端, 而持敬克己之方, 讀書窮理之功, 備在經傳, 聖賢之訓, 殆無餘蘊. 苟能潛思 力踐, 以求善養, 使寂然不動之時, 淸明湛一之主於至虛者, 無小間斷, 感而遂通之後, 條理節文之發 於至妙者, 不忒毫髮, 則萬幾之來, 隨事循理. 如鑑之空, 照之而姸(虽)〔蚩〕 別; 如衡之平, 稱之而輕 重. 判應之不厭其多, 處之皆歸於正, 治平之道, 沛然而有餘裕矣.”
규암은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학문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규암은 『대학』
을 포함한 경전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을 언급하고, 지경(持 敬)과 극기(克己)의 모든 이치가 경전에 있으니, 공부를 통해 그것을 힘껏 길러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적연부동(寂然不動)할 때 허명(虛明)한 마음이 청명담일 (淸明湛一)하여 끊어짐이 없으며, 감이수통(感而遂通)할 때 그 영묘(靈妙)한 마음 이 조리(條理)에 어긋남이 없게 되는 상태가 될 때 그것이 치평의 도리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규암은 평소 『대학』을 매우 중요한 지침서로 여겼던 듯하다. 앞서 평생 『대 학』을 연구한 이항이 규암을 찾아가 토론한 것에서도 추론할 수 있는데, 규암은 남명(南冥) 조식(曹植)에게 『대학』을 선물하였다. 남명이 과거 공부에 염증을 느끼자, 규암은 이를 보고 기뻐서 『대학』을 선물한다. 남명이 말하기를, “위기 지학(爲己之學)을 하는 데 있어 잘 반성하는 방법은 모두 이 책에 있다. 나의 벗 이 이것으로 이를 힘쓰게 하니, 타인과 더불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뜻이다.”314)라 고 하였다. 남명은 이에 「서규암소증대학책의하(書圭菴所贈大學冊衣下)」라는 글을 남긴다.315) 규암이 『대학』을 선물한 이유가 위기지학 하여 타인과 더불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뜻이라고 밝히고 있다.
규암은 1532년(중종 27) 석강(夕講)에서 중종에게 『대학』의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학문은 단순히 문사(文詞)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실천하여 마음에 체득한 뒤 에야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과 내가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또 학문을 힘씀은 덕을 밝히는 것이니 덕을 밝힌 뒤에야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 다.316)
314) 『圭菴集』, 「諸家記述』. “南冥厭科擧之學, 眉叟見而喜之, 以心經與之. 南冥曰, 爲己善反之具, 都在是書, 吾友以是勖之, 與人爲善之意” 『규암집』, 「제가기술」에 『심경』이라고 된 것은 오기이다.
『남명집』을 보면 남명이 『대학』을 주고, 바로 아래 이준경이 『심경』을 준 것에 대해서도 기록이 있는데, 이 둘을 혼동하여 작성한 것이다. 『규암집』 초간본 「제가기술」에는 이러한 내용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중간본에는 삭제되었다.
315) 『南冥集』, 卷2, 「書圭菴所贈大學冊衣下. 圭菴,宋麟壽號.」.
316) 『中宗實錄』, 卷72, 중종 27년 1월 30일 己卯. “ 然所謂學者, 非文辭之謂也, 躬行心得, 然後乃 可謂學也. 不然, 學與我爲二物矣. 且務學, 所以明德也. 明德然後可以新民.”
진정한 의미의 학문은 실천을 바탕으로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학문을 통 해 명덕을 밝히고, 그것이 지어지선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대학』의 삼강령을 충실히 언급하고 있다. 규암에게 있어서 공부와 수 신은 곧 치인과 신민을 위한 실천적 도학 교육사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