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협회가 네덜란드 주택의 공급에 있어 큰 역할을 맡게 된 것에는 크게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19세기 중후반의 급격한 도시화의 시기가 첫 번째 계기가 있던 시기이며, 세계대전 이후 전후복구를 위한 정부의 주택정책이 주택협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활동을 지원하게 된 것이 두 번째 계기이다.
최초의 주택협회들은 1850년경 설립된 건축조합(building society)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네덜란드는 1848년 수정헌법에 근거하여 3단계의 위계를 가진 지방정부 중심의 지방분권적 양원 내각제 국가의 기틀을 갖추었다. 이후 영국의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1864년에는 최초의 민간택 지개발주식회사가 등장하는 등 도시화 역시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지방분권적 정치체제 하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주택정책은 추진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19세기 후반부터 일부 도시 노동계급의 주택난이 심화되자, 주택의 공급을 통한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형성되었다.
첫째는 ‘박애주의적 흐름’으로, 자신의 사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양질의 노동력 을 확보하려는 자본가(bourgeoisie)들과 도시주거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종교인들이 직접 직원들이나 교인들을 위한 주택공급에 나서게 된 것이다.
46) 네덜란드 전체 가구의 34%가 ‘사회주택(Social Housing, Sociale Huurwoning)’에 살고 있 다. 240만 호에 이르는 절대물량은 프랑스와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치이나, 각각 6천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프랑스와 영국에 비해 네덜란드의 인구는 1700만에 약간 못 미 친다는 점, 네덜란드 다음으로 사회주택의 비중이 큰 국가의 사회주택의 비중은 20%안팎 인 점, 그리고 네덜란드의 경우 1990년대까지는 사회주택의 비율이 40%를 상회하였던 점 등을 감안한다면, 네덜란드의 ‘사회임대’ 주택부문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둘째로 노동운동 내 온건한 분파에 의해서 ‘사회주의적 흐름’의 주택협회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외에도 이념보다는 동일직업군 내의 자발적 결사체로서 소수 직능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건설조합도 소수 활동하였다. 이들은 모두 조합, 협동조합, 협회, 재단, 회사, 유한책임회사 등 다양한 조직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로 분양주택 보다는 임대주택을 제공하였다.47) 또한 다주택을 보유한 자산가 계층에 의한 민간임 대가 활성화되기 이전에, 주택구매의 여력이 없는 자기 회사의 노동자들에게 직접 기업주가 거처를 제공하려 노력한 것이, 민간임대시장의 형성 이전에 이러한 비영리조 직이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한편, 영국과 마찬가지로 공공분야에 의한 최초의 주택정책은 도시의 공중보건 위생문제에 대한 접근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도시내 과밀화된 주거지역과 비위생적 이고 열악한 기반시설로 인하여 전염병 등이 부유한 중산층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 1901년 주택법 제정의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이다. 이 법에 의거하여 ‘공공주택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면 조합, 재단, 회사 등 그 조직의 성격을 막론하고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사회주택공급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주택협회는 출범 초기부터 ‘도시내 극빈층’을 위한 ‘잔여복지’적 성격의 사업목표를 가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도시민들을 위한 ‘보편적 복지’ 개념에 충실했으며 빠른 양적 성장을 보였다. 1890년대에는 40여개에 불과했던 주택협회(및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들이 1913년에는 301개, 1922년에는 1341개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재정적 상태는 정부지원에도 불구하고 다소 불안정한 상황이었으며, 대개 보유한 주택의 수는 30-50 채 사이로 개별 주택협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Aedes, 2007).
1차대전에서 이미 건축자재의 부족, 건설비와 금리의 상승, 그리고 이상의 이유와 전쟁의 피해 등에 따른 민간자본의 고갈 등의 이유로 쇠퇴한 네덜란드의 민간건설업은 2차대전 이후 주택부문의 전후 복구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47) 이는 당시 네덜란드의 산업화 및 도시화의 맥락과 관련이 있다. 즉 새로운 공장지나 주택지 의 개발이나 산업의 발전에 있어 고용형태가 급변하면서, 이에 따른 주거 이동이 빈번했기 에, 주거이동성 및 소유로 대한 위험부담 등의 이유로 자가소유보다는 임대가 더 선호된 것이다(Ouwehand and Daalen,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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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조직에 의한 주택공급 방안 연구따라 1960년대의 주택난을 긴급히 해소하기 위한 ‘간소한 주택의 대량공급’ 과정에서 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주택의 완공 이후 보유 및 관리는 여전히 주택협회의 임무였기에, 주택협회 보유물량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재정운용 뿐만 아니라 주택의 형태, 배분 및 운영방식에 있어 주택협회의 정부의존성이 커지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도시의 공간적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기존 도심이 낙후되는 문제가 생기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시재생(Urban Renewal)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기존 주택단지의 철거와 재개발의 과정에서 주택협회의 역할이 점차 커지며, 1980년대에는 사회주택의 물량이 40%를 넘어서게 되었다(<그림 4-2> 참조).
자료 : 수치출처는 Elsinga & Wassenberg (2013)
CFV 및 Aedes연간 보고서(Aedes, 2007; Aedes, 2013; CFV, 2012)를 토대로 재작성
<그림 3-3> 네덜란드 주거점유 형태 변화
1990년대는 자율화의 시기로 1995년의 브루터링조치 이후에는 재정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주택협회들이 서로 통폐합을 하는 과정에서, 개별 협회의 보유물량은 늘고 전체 주택협회의 숫자는 감소하게 된다. 이후에는 국내정치 상황과 유럽연합의 지침
따른 정책적 고려, 200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위축에 대응하고 주택부문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조정하기 위한 ‘주거거버넌스’ 차원의 노력 이 이어지고 있다(Elsinga and Wassenberg, 2013).
특히 박애주의 계열이나 사회주의 계열 등 가치관이나 이념에 따른 다양한 주택협회 의 설립과 활동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치관이나 이념에 따라 ‘수직계열화’된 네덜란드라는 ‘기둥사회’(pillar society)의 성격이 그 배경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연과 외세의 위협 속에서 구성원들의 ‘합의’를 중시했던 ‘합의문화’와 기둥과 기둥들의 대표자들의 합의사항이 큰 갈등없이 사회전반의 운영에 있어 파급력을 미칠 수 있었던 조합주의(코포라티즘)적 복지체제가 이러한 주택협회들이 탄생 및 성장할 수 있는 정치 경제적 배경이다.
한편, 급속한 도시화과정에서의 초기 조건에 따라 형성된 ‘주택협회를 통한 주택공 급 체제’가 세계대전과 전후복구 과정에서 경로의존적으로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주택협회의 역할은 점점 더 커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