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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복지체제론의 시사점

1. 복지체제론의 한계

이론은 항상 잔여(Residus)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이론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핵심법칙을 이해했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 이론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사회과학은 항상 총체성(totality) 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더라도, 그것이 해결하지 못하는 잔여의 문제를 의식 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특수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복지체제론이 21세기 비서구권 국가의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순간, 가 장 큰 잔여는 비제도화된 복지의 문제이다. 비록 전 세계적으로 서구적 가치와 삶의 규범이 일상생활에서부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점진적인 속도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제도화된 영역을 우회하여 잔 존한다. 그것은 가족을 비롯한 비국가적 사회영역의 문화와 관습에 기초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복지체제를 복지제도와 공적 사회지출을 통해 파악하려는 시 도는 항상 비서구권 국가들의 복지체제를 폄하하는 문제점을 나타내게 된다.

왜 정치제도와 경제제도 등 각종 제도화영역에서 국가 간 차이가 나타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일한 소득수준을 가진 국가사이에도 경제제도와 정 치제도 그리고 복지제도에 있어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설사 동일한 제도적

10) 이는 최장집(2005),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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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더라도 각 제도를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며,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 또한 다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를 야기하는 원인은 무엇인 가. 이것이 복지체제론이 다른 이론을 통해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결국 복지체제론에 대한 연구는 논리적 타당성의 문제를 넘어 정책적 또는 정치적 함의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것은 복지체제론이 갖는 가치지향 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특정 국가의 복지제도 발전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크게 세 가지 관점 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복지체제론은 복지제도의 형성과정을 말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현 복지 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유용성을 갖지만, 그것이 현재와 같이 형성되게 된 원인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특히 이론의 추상화 과정에서 정치․경제․사 회적 측면의 원인 중 상당부분은 사상된다. 이 점에서 복지체제의 형성경로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이론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 치는 정치적 힘 관계와 관료제의 역할, 그리고 계층구조 등을 의미한다.

둘째, 복지체제론은 향후 대안적 복지모형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우선 순 위에 대해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기 힘들다. 그것은 가장 이상적인 복지모형 에 대해서는 말해주지만, 그것에 이르는 과정적 전략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 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보다 발전된 복지체제를 가진 국가들의 경로를 탐색함 으로써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처한 여건이 다르다는 점에서 시사점 이상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차선에 대한 선택 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 복지체제론은 사회보장제도와 관련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에 대해 많 은 시사점을 주기 힘들다. 복지체제의 문제는 상당 부분 복지제도의 조합 (Institutional Arrangement) 문제이며, 새로운 복지모형을 제시한다는 것은 사회보 장제도 전반에 걸쳐 매우 구체적인 개편방안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개별 사회 보장제도는 그것이 처한 상황에 맞는 구체화된 실천전략을 필요로 한다. 대상 선정과 급여 등 다양한 문제와 관련한 미시적 제도개편방안이 전제되어야 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제2장 복지모형에 대한 이론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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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지체제론에 대한 보완적 접근방식의 시사점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규정과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보험제도 및 사회부조제도의 지출규모와 운영방식을 중심에 두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진행된 복지체제 논의에서 <감춰진 복지지출> 문제가 중요한 논점을 형성하고 있다(Estevez-Abe, 2008; Hong Kyung-Zoon, 2008). 물론 지나친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하지만, 한국 복지국가의 현 단계와 미래를 가늠하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한 고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한국의 공적 사회지출 비중이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낮다는 점은 잘 알 려져 있다. 그 비중이 OECD 평균 지출의 1/3수준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기 때 문이다. 하지만 이 수치를 그대로 수용하는데 따른 문제점 또한 존재하고 있다.

첫째, 기업의 비법정복지지출(fringe benefits) 규모이다. 이는 공적 사회지출로 포착되지 않으나 근로자의 복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업복지 지출은 대부분의 자유주의 복지 체제 국가, 특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등에서 높게 나타난다. 둘째, 정부의 각종 비복지형 지원규모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농가에 대한 보조금이 다. 셋째, 연금제도의 미성숙을 들 수 있다. 만일 연금제도가 현재와 같이 확대 된다면, 향후 10년 내에 연금수급자가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공적 사회지출의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이는 한국의 복지지출 이 OECD 국가들에 비해 낮다는 주장이 현 시점에서는 기업의 비법정복지지출 과 각종 농가보조금으로 인해, 미래 시점에서는 연금급여의 본격화로 인해 상 쇄된다는 점에서 다소 근시안적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공적 사회지출로 설명하기 힘든 사각(死角)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것이 현재 사회지출 수준이 이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 은 미래 시점에 증가하게 될 복지지출이 현재 시점의 빈곤과 소득불평등 문제 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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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주목해야 할 점은 농가보조금이나 기업의 비법정복지가 우리사회의 노동시 장 이원화와 맞물려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노동의 이원화는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 단 간에 노동소득의 양극화 외에도 복지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이는 현재와 미래의 시점에서 보더라도 우리사회의 공적 복지지출이 현재 수준에 머물러서는 않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3. 한국 복지모형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

한국 복지체제는 급격한 전환기적 상황에 들어서 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확충되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으며, 복지수요의 급격한 증가 로 인해 복지제도의 구성방식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서 와일딩(Wilding)이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한국은 생산주의적 복지체제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복지체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 다. 물론 그것은 서구의 사회보장제도를 답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정해진 경로에 따라 발전하는 것만은 아니다. 서구 사회보장체계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 기존의 복지체제론은 한국 복지국가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한다. 우리사 회는 오랜 시간 잔여적 복지제도를 중심에 두고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여 왔 다. 하지만 그것이 갖는 한계는 세계화 과정에서 더욱 빠르게 증폭되고 있다.

이는 사회보험 중심제도가 갖는 재상품화 경향으로 인해 소득불평등과 빈곤 문 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의 재상품화 경향 은 향후 상당기간 탈상품화 전략에 의해 지속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둘째, 한국 복지체제의 미래는 복지비용에 대한 사회적 분담체계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그것은 일부 서구 복지국가가 보이고 있는 경제적 성과와 재분배 성과가 높은 사회지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찾아 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유연화의 사회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제2장 복지모형에 대한 이론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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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강력한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유연화를 통해 경제 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비용을 사회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한국 복지체제의 발전방향은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접 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노동운동과 좌파정치세력의 존재라는 전통 적 접근방식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좌파정치세력의 취약성을 논하 기 이전에 정당정치의 저발전, 그리고 임금노동자와 비임금노동자, 정규직노동 자와 비정규직노동자, 취업자와 실업자 간의 이해관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 는 새로운 합의체계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최근 우리사회에서 경

셋째, 한국 복지체제의 발전방향은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접 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노동운동과 좌파정치세력의 존재라는 전통 적 접근방식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좌파정치세력의 취약성을 논하 기 이전에 정당정치의 저발전, 그리고 임금노동자와 비임금노동자, 정규직노동 자와 비정규직노동자, 취업자와 실업자 간의 이해관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 는 새로운 합의체계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최근 우리사회에서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