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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념에 따른 사회적 배제의 해석

제 3 절 사회적 배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

1. 정치적 이념에 따른 사회적 배제의 해석

사회적 배제를 정의하려는 다양한 시도에 대해 배제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 은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회적 배제는 각 사회과학 패러다임과 정치이 데올로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사회’는 어떻게 구 성되며, 사회(국가)는 개인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념의 차 이, 구체적 사회상으로부터 비롯되는 경험적 차이에 따라 사회적 배제에 대한 다양한 개념이 형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공화주의적 전통이 강한 프랑스적 맥락에서 배제는 연대의 부재, 파괴를 의미한다. 이는 이미 사회가 연대라는 이념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화주의에서 국가기구(state)는 시민에 대한 국가(nation)의 선의지와

의무의 체화물이며, 국민의 생존과 일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을 그 의무로 하 고 있다. 공화주의적 연대의식의 핵심은 사회적 유대(social bond)이다. 그리고 사회적 유대는 개인을 그의 동료들의 집단과 결합시키는 준계약적 상태를 만들 어낸다. 공화주의적 가치에 따르면 개인보다 공동체적 생활에 참여한 사람들이 더 많은 권리를 보유한다. 토지에 의존한 구체제의 봉건적 통합과 달리 근대의 사회적 통합의 근거가 되는 것은 국가이다. 국가는 각기 다른 구성원들의 이해 를 조화시키고 종합하기 위한 매개기구인 셈이다.

사회적 정의의 개념에 내포된 규범적 성격으로 인해 모든 사회에서 공통으로 수용될 수 있는 엄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큰 의미가 없다고 보 고, 대신 각 사회에서 사회적 배제는 어떻게 해석되고 이해되고 있는지를 구분 하려는 시도가 존재하였다.

실버(Silver 1994)는 사회적 배제를 이해하는 방식은 사회적 전통에 따라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하였다. 이 세 가지는 각각 연대(solidarity), 분화(specialization), 독점(monopoly)의 패러다임으로, 각 패러다임은 각기 다른 정치철학(공화주의,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사회적 배제의 원인을 각각 상이하게 규정하고 있다.

연대의 패러다임에서 사회적 배제는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라고 하는 개인과 사회간의 연계(bond)가 끊어질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인식에는 사회적 질서가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필요에 따라 발생하 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도덕적, 규범적이라는 사회학적 인식(루소, 뒤르켐)이 바탕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적 공감대 혹은 집단의식, 사회에 대한 소속 감 등의 감성이 개인과 사회를 연계한다고 본다. 국가는 배제된 집단의 통합을 도울 의무를 지닌다. 배제의 역(逆)은 통합(integration)이며 그것을 이루는 과정 이 편입(insertion)이다. 국가적 통합은 국민들의 정치적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로 간주된다. 따라서 제도적 틀에 의해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구성원들도 일단 사회의 일원인 한 사회의 관심 범위 안에 놓여야 한다. 이것이 프랑스에 서 사회적 배제 담론의 근저에 놓여있는 사고이다.

분화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는 사회적 차별화, 경제적 분업, 공간

적 분리 등 사회의 분화의 결과로 발생한다. 분절된 사회구조로 인해 사회 내 에는 서로 분리되고 경쟁하는 영역, 불가피하게 불균등한 영역이 발생하며 이 들이 상호 독립성을 지니고 교환을 발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영역간의 부적절 한 구분, 각 영역에 대한 부적절한 규칙의 적용, 영역 간 자유로운 이동의 장애 등으로 인해 배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집단의 경계가 사회적 교환에 대한 개 인의 자유로운 참여를 방해하면, 그것이 곧 사회적 배제이다. 결국 사회적 배제 는 차별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의 인식에 따르면, 시장에서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과 경쟁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제거되고 국가가 개인의 권 리를 적절히 보호해준다면 이러한 배제는 방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유주의 적 전통에서의 사회적 배제에 대한 이해를 대표하는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에 서의 사회적 배제는 빈곤 혹은 유급 노동(paid work)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와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으며, 정부의 정책도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실업자들을 노동시장 내로 편입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점 패러다임에 따르면 사회적 질서는 위계적 권력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권력관계는 사회 각 영역에서 집단적 독점을 형성시키게 되는 데 그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사회적 배제이다. 즉, 권력을 장악한 집단이 제도적, 문화적 구 분을 통해 경계를 만들어 다른 집단을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배제시키거나 불평등을 지속시킬 경우 사회적 구획(social closure)이 발생하게 된다. 그에 따 라 제한된 사람이 희소한 자원을 독점적으로 향유하게 되고, 그로부터 배제된 집단은 배제와 동시에 피지배자가 된다. 이와 같이 사회적 배제는 계급, 지위, 정치권력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이러한 사회적 폐쇄의 대표적 예가 노 동시장의 분리이다. 이러한 문제설정의 핵심은 집단들 사이의 구분이 불평등과 일치하거나 중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독점적 권력의 영역을 허물 거나 제한하는 사회민주적 시민권에 의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킴으로써 사 회적 배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레비타스(Levitas 1999)는 실버와 약간 다른 차원에서 사회적 배제의 이 해방식을 구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를 이해하는 방식은 세 가지 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재분배주의적 담론(redistributionist discourse)으로

서, 빈곤 및 그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적 배제를 이해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이 담론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는 빈곤의 결과로 발생한다. 따라서 빈곤을 감소 시키는 것이 사회적 배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방법이다. 조세, 각종 급여, 서 비스를 이용한 부의 재분배를 통한 탈빈곤을 주장하는 유럽의 전통적 좌파들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고 한다.

두 번째는 사회통합론적 담론(social integrationist discourse)으로, 레비타스에 따 르면 영국 노동당의 사회정책이념을 구성하는 이념이다. 이 담론에 의하면 사회 적으로 배제된 집단은 직업이 없는 사람, 혹은 그렇게 될 위험에 처해 있는 청 년층을 의미한다. 이 담론은 사회통합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노동을 통해 이루 어진다고 보면서, 실업자에 대한 급여보다는 유급노동(paid work)과 노동시장으로 의 진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용과 교육정책이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본다.

재분배주의적 담론의 경우 사회적 배제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빈곤이 나 저소득이라면, 사회통합적 담론의 경우에는 실업 또는 비경제활동인구이다.

세 번째는 도덕적 하위계층 담론(moral underclass discourse)이다. 이 담론은 배제된 집단의 개인의 태도,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적 배제를 이해하려 는 보수적 사고를 특징으로 한다. 이들은 사회적 배제가 사회질서에 미치는 영 향에 주목하며, 특히 잠재적 비행청소년, 미혼모, 실업자, 편부모 등의 계층에 주목한다. 사회참여와 성실한 활동에 대한 개인의 유인과 책임성을 제고시키는 정책을 사회적 배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레비타스는 실버와 달리 공화주의적 사고와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를 구분하지 않고 대신 도덕적 하위계층 담론이라고 하는 다소 극단적 자유주의적 사고방식 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로서의 기본적 체계를 갖춘 나라에서 전적 으로 도덕적 하위계층 담론에 근거하여 정책을 실시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구분은 국가별 정책 기조를 대상으로 한 구분이라기 보다 한 사회 내에서 배제된 집단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나타낸다고 보아 야 할 것이다. 실제로 레비타스는 사회적 배제 철폐를 위한 영국의 정책 속에 이 각각의 담론들이 혼재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