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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절 빈곤문제의 새로운 양상과 사회적 배제 접근의 필요성

1. 경제위기 이후 빈곤문제의 새로운 양상

1997년 말에 발생한 경제위기로 인해 우리나라의 빈곤층과 실업률은 급증하 였다. 1996년 2.0%이던 실업률은 1998년 7.0%로 증가주1)하였고, 1996년 3.08%

에 불과하던 빈곤율 또한 2000년 7.97%로 증가하였다.주2) 이후 경기가 회복되 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서 실업률은 낮아졌으나 빈곤율과 소득분배는 경제위 기 이전에 비해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감소하지 않는 이유와 빈곤의 양상 변화에 대 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존재한다. 이병희‧정재호(2002)는 경제위기 이후 빈곤 에 노출되는 가구의 수가 광범위하며, 이들 대부분이 반복빈곤을 경험하고 있 음을 확인하고 있고, 구인회(2004)는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성인의 소득격차 확 대와 노인인구 등 빈곤취약가구의 증대라는 인구학적 변화로 인해 빈곤이 감소 하지 않음을 보이고 있다.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빈곤의 현황과 원인을 분석한 대부분의 연구들에서 공 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바는,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에 의해 빈곤이 새로운 모 습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실업률이 급증한 것은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에 의한 대규모 실직사태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동시에 진행 된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급증했으며 이들과 정 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 또한 매우 크다. 고용불안과 저소득은 많은 경제주체 들에게 빈곤층으로 추락할 항상적 위험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아울러 노동력

주1) 통계청, 주요경제지표, 각 연도.

주2) 통계청, 가구소비실태조사

공급구조와 산업구조 변화의 불일치로 인한 청년실업 문제는 노동시장의 최초 진입조차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편 지난 세기 후반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세계화의 물결은 개별 국가 내에 서의 소득격차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상품과 자본의 이동량이 늘어나고, 기업의 경쟁 범위가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노동력의 이동 도 국경을 넘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루어지면서 거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무 제한의 경쟁에 노출되게 되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의 퇴출과 산업의 쇠퇴에 따 른 구조조정으로 실업의 위험성은 항상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산업화에 따라 가족간 유대의 약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나, 최근에 이르러 경제적 충격에 의한 가족의 해체 혹은 붕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급격한 소득감소나 갑작스런 지출요인 발생시 가족간의 물질적 지원 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던 기존의 관습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사회안전망이 충 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런 질병에 의한 지출증가, 이혼, 별거, 사별 등에 의한 가족관계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가계소득감소가 곧바로 빈곤으로 연결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라 이른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으로 불리는 집단의 출현이 주목받고 있다(홍경준 2003, 이태진 외 2004). 근로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용불안이나 저소득으로 인해 빈곤층에 속하게 되는 이 계 층의 존재는, 빈곤이 더 이상 근로의욕의 부재나 실업 등의 요인에 의해서만 초 래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반복빈곤의 존재와 더불어 이 근로빈 곤의 존재로 인해 외환위기 이후 빈곤의 질적 특성이 변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이른바 신빈곤 논의를 불러일으켰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4, 김영란 2005). 특히 2001년 이후 가계신용이 팽창한 결과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면서 빈곤화되는 다양 한 경로들이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신빈곤 논의는 더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2. 사회적 배제 접근의 필요성

우리 사회의 빈곤이 ‘신빈곤’이라고 하는 새로운 용어로 표현되어야 할 정도

로 본질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가 하는 것은 검증해보아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빈곤의 원인과 대책 또한 다양해 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빈곤층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에 주목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000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고, 사 회보험제도의 적용범위가 확대되면서 모든 국민의 기본적 생계 보장과 사회적 위험 예방을 위한 제도적 틀이 갖추어졌으나, 동시에 여전히 사각지대가 광범 위하게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빈곤층이 겪는 어려움이 물질적 자원의 부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 새롭게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빈곤문 제에 접근하는 시각 혹은 방법에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되어 온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개념, 혹은 이 개념을 중심으로 한 접근방법에 주목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사회적 배제의 이론적 내용과 우리나라에서의 분석적, 정책적 적용가능 성에 대해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초연구이다. 뒤에 상세히 설명하겠 지만, 이 개념의 등장과 확산에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경 험이 배경이 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경기침체를 경험했던 나라들에서 경기회복 이후에도 실업률과 빈곤율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장기실 업과 청년실업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빈곤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접근 을 요구했었다. 장기실업의 발생은 서구 복지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던 특정 대 상 집단(target group) 위주의 보상수단이 갖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또한 취약계 층을 규정하는 새로운 요소들(성, 연령, 교육수준, 사회적 관계망, 정보에 대한 접근가능성 등)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신빈곤이라는 용어 이외에도 사회적 자격박탈(social disqualification), 사회적 분리(social separation), 사회적 절연(social affiliation) 등 다양한 개념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Martin 1996). 1970년대에 프랑스에서 최초로 제시된 사회적 배제라는 개념은 이러한 일련의 논의를 통해 유럽연합의 사회정책의 기조를 이루는 개념으로 공 식적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 권위가 한국사회에 대한 이 개념의 분석적 유용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뒤에 설명되듯이 유럽 국가들 사이에도 이 개념에 대한

이해방식은 서로 다르고, 실제로 이들 국가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도 개 념이 지닌 장점을 그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에 주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다차원 적이고 동태적인 인식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복잡화를 반영하는 것이지 만, 빈곤의 원인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으며 빈곤의 효과 또한 다양한 영역에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부모의 빈곤이 자녀에게 그대로 대물림 되는 경향도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한 사회영역 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 더 긴 시계(time horizon)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사회적 배제 개념은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취약집단에 대해 주목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배제 개념이 반드시 빈곤문제만을 이해 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애초에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로 지칭되었던 집단은 사회보험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변화된 계층, 즉, 장애인, 노숙자, 약물중 독자, 이민자 등이었다. 물질적 결핍 여부와 무관하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 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사람들을 사회 내로 ‘편입(insertion)' 또는 ' 통합(inclusion)'시켜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배제 접근이 지향하는 바였다. 즉, 빈곤이나 실업 등 전통적 사회문제의 틀 속에 들어오지 않는 집단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 책임은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이러 한 인식의 개방성과 사회적 책임성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정책의 중요 한 가치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3. 사회적 배제 지표개발의 필요성과 의의

개념의 정책적 적용을 위해서는 개념이 지시하는 현상과 문제에 대해 공감이 확산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가능성은 그 조작적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개념이 지시하는 현상에 대한 측정가능성과 비교가능성이 전 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가능성들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 지표화이다. 사회 적 배제를 표현하고 측정하는 적정 지표들을 개발하는 일이야 말로 사회적 배 제를 담론의 차원을 넘어 현실적 도구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이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과 분석적 유용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이미 유럽연합에서는 사회적 배제를 측정하는 공통의 지표체계를 개발하여, 각 나라들로 하여금 사회 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참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정책적 성과의 계량화라는 목적 이외에 회원국들의 사회보장 수 준을 비교하고 수렴하도록 하겠다는 현실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공통의 지표체계를 우리나라에 적용할 경우 외국과의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배제에 대한 인식이 각 나라의 사회적, 역사적 전통에 따라 다 를 것이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배제를 파악하기 위한 독자적 지표

그러나 사회적 배제에 대한 인식이 각 나라의 사회적, 역사적 전통에 따라 다 를 것이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배제를 파악하기 위한 독자적 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