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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절 사회적 배제의 개념

1. 사회적 배제에 대한 다양한 정의

사전적 의미에서 배제란 어떤 대상으로의 진입을 막거나 그 대상과의 교류를 막는 일이다. 사회 경제적 활동에서 그 대상은 소득이나 자산, 주거, 교육, 기 술, 고용 등 구체적인 범주가 될 수도 있고 시민권, 법이 보호하는 평등, 인간 적 대우 등 추상적 범주일 수도 있으며(박능후 1999) 특정 제도나 사회체계, 국 가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터너(Truner 1986)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란 사회 내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사 회, 경제, 정치활동 및 그 참여과정에서 사회의 희소자원에 접근할 수 없거나 그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주3) 이와 유사하게 피어슨 (Pierson 2002)은 사회적 배제란 개인, 가족, 집단, 이웃으로부터 사회에 대한 사 회‧경제‧정치적 참여에 필요한 자원을 박탈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이 과정은 주로 빈곤과 저소득에서 비롯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 낮은 교육 수준, 척박한 생활환경 등에서도 비롯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생의 상당한 기간을 사회의 다수가 향유하는 제도, 서비 스, 사회적 네트워크, 개발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사회적 배제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프랑스에서 초기에는 사회적 배제가 비 스마르크적 사회보험체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집단, 즉, 사회적 보호망 밖에 위치하는 집단(행정적으로 배제된 집단)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 나 점차 그 범위가 넓어져 장애인, 고용보험 미가입 노동자, 일탈청소년, 소외

주3) Turner(1986), 심창학 외(2004)에서 재인용.

된 개인, 실업(특히 장기실업)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고, 후에는 기본적 권리에 대한 인식의 결여, 또는 그 권리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법적 제도에 대한 접근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Hills et al. 2002). 사 회적 배제를 이렇게 좁은 의미로 이해하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영국에 서는 사회적 배제가 좁은 의미로 빈곤 혹은 유급노동(paid work)을 제공하지 못 하는 상태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주4)

한편 유럽연합의 공식적 문헌에서 사회적 배제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사회적 배제란 인간이 현대사회의 정상적인 교환, 관행, 권리로부터 배제되 는 결과를 초래하는 복합적이고 변화하는 요인들을 말한다. 빈곤은 가장 명백 한 요인의 하나이긴 하지만, 사회적 배제는 또한 주거, 교육, 건강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 등의 권리가 부적절하게 주어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사회적 기본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나고, 이중구조 사회가 나타날 위험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주5)

이러한 정의에서 특징적인 점은 사회적 배제를 빈곤개념과 비교하여 이해하 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배제는 빈곤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고, 동시에 빈 곤은 사회적 배제의 가장 명백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빈곤 개념에 비교하여 그 것의 확장된 개념으로 사회적 배제를 이해하는 것이 유럽연합 차원의 논의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사회적 배제가 갖는 복합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은 영국 사회적배제기획단 (social exclusion unit)의 정의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란

‘실업, 저숙련, 저소득, 열악한 주거, 나쁜 건강상태, 범죄율이 높은 환경, 가족 의 붕괴 등의 문제가 결합되어 고통받는 개인이나 지역에게 나타나는 문제’이 다.주6) 이러한 인식에 따를 경우 사회적 배제를 초래하는 원인은 개인의 특성

주4) 사회적 배제와 유사한 개념으로 미국에서는 하층계급(underclass) 개념이 제시되었다. 이 범 주에는 인종적 소수자, 게토화된 지역의 거주민, 수급자, 주류사회에서 탈락한자, 주류사회 에 대한 위협이 되는 자 등이 포함된다.

주5) EU(1993). 윤진호(2004)에서 재인용.

주6) Social Exclusion Unit(1997). Saunders(2003)에서 재인용.

이 아니라 여러 가지 환경적 요소의 결합이다. 또한 사회적 배제는 문제의 원 인(저숙련)과 결과(저소득, 높은 범죄율) 뿐만 아니라 일련의 과정(가족의 붕괴) 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사회적 배제의 본질이 개인과 사회의 단절이라고 할 때 자발적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즉, 자발적 배제도 사회적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 제의식에서 사회적 배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되기도 한다.

“한 개인은 a) 지리적으로 한 사회에 거주하지만, b)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정상적인 시민으로서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에서, c) 참여를 원 하는 경우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주7)

사회적 배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에 의해 발생하여야 하며(따라 서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사회적 관계를 차단한 경우는 제외된다), 동시 에 참여를 원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개념이다(따라서 자신의 선호에 의해 사회 로부터 고립된 경우 사회적 배제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집단을 사회 내로 포섭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으로 간주된다. 배제된 개인이 사 회로 포섭되는 경로는 참여이다. 그런데, 그 참여의 내용과 범위를 결정하는 객 관적 기준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시민으로서의 활동’은 결 국 사회적 인식과 규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정의에서는 그러 한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회적 배제란 빈곤과는 달리 일정한 기본적 권리를 부인당하는 것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즉,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 예컨대 사 회보장권, 경제적 복지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지고 살아갈 권리 등을 누리 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사회적 배제라는 개념으로 총괄될 수 있다”주8)

주7) Burchardt et al.(1999) 주8) 윤진호(2004)

2. 사회적 배제의 정의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문제점

이상의 정의들에서 몇 가지 인식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첫째, 사회적 배제 개념이 포괄하는 범위가 빈곤 개념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사회적 배제 는 소득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물질적 빈곤 이외에 다양한 영역에서의 자원과 기회의 박탈을 의미한다. 둘째, 사회적 배제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개인 의 통제가능성 여부라는 기준이 제시된다. 어떤 결과를 초래한 원인에 대해, 그 것이 개인의 통제 하에 놓여 있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질문하는 것은 자유주 의적인 문제설정이다. 개인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을 존중하고 그에 따른 결과 를 인정하는 자유주의적 사고체계에서 개인의 통제가능성은 책임성의 영역을 설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셋째, 배제는 ‘사회적’ 현상이며 배제의 대립 개념인 통합(inclusion)의 궁극적 단위도 사회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통합을 위 한 노력의 궁극적 책임도 사회에 있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이 점은 위에 서 언급한 두 번째 특징과 다소 상충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사회적 배제라는 문제설정은 자유주의적 사고와 공화주의적 사고의 혼합물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경향 가운데 어떤 것이 중시되는 가에 따라 뒤에서 보듯이 나라마다 상이한 이해방식이 대두된다.

그런데, 이러한 공통점보다 더 두드러지는 문제점은 정의 자체가 다소 추상 적인 용어로 구성되어 있어 분명한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즉, 정의가 대단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모호함을 초래하는 첫 번째 원인은 대상영역의 확 대이다. 개인의 소비에 필요한 자원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 경제적 참여에 필요한 자원의 결핍과 이 영역에서의 권리박탈까지 범위가 확대됨으로써 사회 적 배제의 범주 안에 포함되는 현상이 다양해지고 그에 따라 해석상의 모호함 이 초래될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사회적 배제 기획단의 정의를 보면 사 회적 배제가 어떠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이 겪는 문제라는 식으로 설명되고 있 을 뿐 그 문제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혼란의 요소는 사회적 배제가 결과적 상태를 지칭하는 것인지 그 상태에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분명히 구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개념 자체가 규범에 의한 규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규범의 내용에 대한 공통된 인식 없이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점이 다. 사회적 배제를 ‘참여에 필요한 자원을 박탈하는 과정(Pierson 2002)'이라 할 때, 참여의 내용에 따라 그에 필요한 자원의 내용과 크기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윤진호 외 2004)’가 사회적 배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할 때, 그 권리의 내용과 범위에 대해서는 사회 마다, 혹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사회보장권, 경제적 복지권, 사회적 참여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지고 살아갈 권리” 등의 규정은 그 내용이 여전 히 추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각각의 요소가 모든 나라에서 하나의 ‘권리’로 인식되고 동시에 사회가 그것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결국 사회적 배제 개념은 사회가 개인의 어떤 어려움까지를 보 호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상이하게 해석되는 개념이다.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사회적 배제와 관련된 이론적 논의는 크게 두 가지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사회적 배제와 관련된 이론적 논의는 크게 두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