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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절 사회적 배제 접근의 방법론적 특징과 그 분석적 의의

1. 동태적 성격

사회적 배제는 경제적 박탈이나 사회적 고립을 통해 사회로부터 한계화 (marginalization)된 개인이 겪는 상황이나 과정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 회적 응집의 붕괴, 새로운 양극화의 발생, 사회적 관계의 파편화 등과 같이 사 회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나 과정을 의미한다(Figueiredo and de Haan, 1998).

빈곤이 소득의 부족이나 자원의 결핍으로 초래된 상태를 의미한다면 사회적 배 제는 그러한 상태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1990년 초반 이래 빈곤 문제를 특정한 ‘상태’가 아닌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사회적 배제를 물질적 박탈이나 수입의 부족 을 넘어서는 것으로 간주하며, 이러한 물질적 불이익을 야기하는 과정이나 동 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사회적 배제를 결과 자체 보다는 기제 혹은 과정 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현재의 할 수 없는 무엇의 결과로 인해 미래 어느 시기 에 배제가 발생한다. 이와 같이 사회적 배제의 양상은 여러 시기에 걸쳐 나타 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버그만의 구분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빈곤 개념 그 자체 가 정태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빈곤에 관한 기존의 연구경향 가운데 정태적 분석이 다수를 차지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빈곤의 규모를 계측하려는 연구 가 이에 해당된다. 위의 표에서 빈곤과 빈곤화의 구분은 개념적 차이라기보다 동일한 현상에 접근하는 방법론의 차이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동태적 접근으로 인해 실제 정책적 적용에서는 어떠한 차이를 기 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시간적 선후관계를 적용했을 때 사회적 배제는 그것 을 초래하는 기회의 박탈 내지 제한과 그 결과로 발생하는 자원 및 권리의 제약으 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동태적 시각에서의 정책적 대안은 기회에 대한 균등한 접 근을 보장하기 위한 사전적 기회균등화정책(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적극적 차별시 정 정책, 아동빈곤 해소와 아동복지를 위한 투자 증대 등)과 불균등한 자원배분을 보상하기 위한 사후적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자의 정책에 주목 하여, 기회균등화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적극적 사전조치의 법위를 확대 하는 정책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한다는 데 사회적 배제 개념의 의의가 있다.

2. 다차원성

흔히 빈곤개념이 경제중심적인데 비해 사회적 배제는 다차원적, 복합적 개념 이라고 설명된다. 사회적 배제는 생계유지와 기본적 욕구충족을 위한 재화 및

서비스의 부족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로부터, 사회적 정의로부터, 시민권으로 부터의 부재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배제는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영역에 걸친 현상이다. 배제를 야기하는 요인은 복합적이고, 변동이 심 하며, 상호작용하며, 중층적이다(Silver 1995).

또한 사회적 배제는 다양한 차원에서 규정된다. 국가, 지역, 사회적 집단, 개 인, 세계 등 여러 공동체의 수준에서 사회적 배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렇기 때문에 사회적 배제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범정부적 개입을 요 구한다. 개입의 지점 또한 유럽연합처럼 개별 국민국가를 초월하는 지점부터 지역공동체 및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개념의 실천적 장점이다. 이를 위해 광범위한 인식틀이 필요하고, 따라서 배제에 대한 연구를 위해 여러 분과 학문의 협업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차원성이 단지 대상 영역의 양적 확대와 정책적 개입수준의 다양화 를 의미한다면, 이는 현실적으로 큰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사회적 배제라는 담 론이 제기되기 이전에도 빈곤대책 이외의 각종 사회정책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 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다양한 부문별 정책을 사회적 배제라는 하나의 틀로 묶었을 때 기존의 분산적 정책과 달리 어떤 차이점이 발 생하는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즉, 개념이 정책간의 유기적 연계를 확보하는 데 유용하여야 한다. 사회적 배제라는 관점을 통해 각종 사회현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영역들간의 상호관계와 중층적 구조에 대한 분석 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3. 관계 중심의 접근

사회적 배제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관계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관계적 측면에 주목한다는 의미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한 가지는 앳킨슨(Atkinson 1998) 의 지적대로 배제가 특정장소, 특정시기에서 주변의 타인과 비교하여 판단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상대성을 지닌 문제라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배제는 누군 가의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며, 따라서 배제에는 배제시킨 자와 배제당한

자가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배제의 문제설정에는 이러한 행위주체(agency)에 관한 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룸(Room 1995)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는 과거 빈곤 논쟁과 달리 분배적 이슈를 넘어 관계적 이슈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그는 앵글로 색슨의 빈곤 개념이 ‘분배 적’ 인 반면, 사회적 배제는 불충분한 사회 참여, 사회 통합의 부족, 권력의 부족 등과 같은 ‘관계적 relational’ 이슈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빈곤이 자원 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면 사회적 배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사회적 배제의 주체와 대상의 설정 및 그 전개 과정 이 궁극적으로는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규정되지만, 실제로는 행위자들 간의 관 계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배제 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 된다. 이런 점에서 행위 주체와 소유 대상간의 관계에 주목해서 자원의 결핍·부족 문제를 다루는 빈곤 개념과 구분된다.

배제에서 주체(대행자)를 확인하는 것은 정책 설계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빈자들의 경험과 환경 범주에 주목하는 빈곤론의 인식방법을 넘어, 다 른 사회기관들과 사회 전체의 개인들이 빈곤에 대해 반응한다는 점에 사회적 배제의 개념적 특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빈곤, 박탈과 달리 배제는 ‘타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 (the State)는 한 집단에 의해 다른 집단에 가해진 배제를 통 제하거나 다른 집단이 그들 공간에서 지내고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등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의 행위 또한 서비스나 기회 로부터의 배제를 일으키거나 그들 의지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통합시키는 일 등 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밖에도 기업, 군대, 지역 당국, 종교 단체, 지역 엘리트 등은 통합의 단위가 될 수도 배제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배제의 주체를 확인하는 일은 정책의 대상에 ‘배제된 집단’뿐만 아니라 ‘배제 하는 집단’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국가가 배제하는 집단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고 배제의 결과에 대해서만 시정하려고 한다면 관계중 심적 특성이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제의 주체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을 강조하게 되면 이는 사회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배제 접근의 기

본적 입장과 상충되게 된다. 따라서 관계중심성을 고려하는 정책은, 배제하는 집단을 염두에 두되 그들에게 직접적 보상의 책임을 부과하지 않는 수단을 필 요로 한다. 예컨대 각 행위자의 동기와 특성을 파악하여 배제의 유인을 약화시 키는 수단을 발견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