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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배경

영화 ‘기생충’ 흥행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지하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습 기, 환기, 악취 등 지하주거의 열악한 내부상태를 고발하는 특집기사가 쏟아졌다(경향신 문 2020; 아시아경제 2020; 한겨레 2020). 지하주거의 현황을 분석하고 정책대안을 제 시하는 정책연구도 이어졌다(박인숙 2020; 최은영, 구형모 2020). 그리고 국토교통부 는 2020년 주요업무 추진계획 중 하나로 지하주거 실태조사와 지원강화를 제시했다(국 토교통부 2020a). 지원강화의 일환으로 2020년 7월 29일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 처리지침」 제3조 개정을 통해 지하주거 거주가구가 주거지원사업의 입주대상자로 추가 되었다.

대도시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제도적으로 형성된 지하주거는 무허가정착지 의 대체재 역할을 하면서 도시빈민이 거주하는 비적정주거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기존의 무허가정착지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빈민주거로 비닐 하우스, 지하주거와 쪽방이 등장했다(남원석 2004). 지하주거는 주택의 기본적 요건 을 모두 갖추고 있고 공식 주택시장에서 거래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비적정주거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이와 같은 특성은 정부의 제도적 개입에서 비롯되었다. 정부는 대도시 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단독주택의 다가구화를 추진했는데, 수직적 다가구화 측면 에서 지하주거의 형성이 정부에 의해 허용되고 촉진되었다. 도시재개발에 따라 무허가 정착지 거주자들이 인근 주택의 지하층으로 향하면서 지하주거가 무허가정착지의 가장 유력한 대체재로 평가받았다(조은, 조옥라 1992; 신림종합사회복지관 2002).

지금까지 주거복지정책에서 지하주거 자체를 명시적인 정책대상으로 삼지는 않았 다. 기생충으로 지하주거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19년 이전에 지원대상으로 지하주 거를 직접 언급한 경우는 2010년 서울형 주택바우처가 유일하다. 그리고 2020년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의 지원대상으로 지하주거가 포함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도시근 로자 월평균 소득 50% 이하라는 소득수준을 충족시킨 경우에만 주거지원이 가능하고, 지하주거 거주가구 중에서 절반 정도는 이 소득수준을 넘어선다.1) 따라서 지하주거 자체가 아니라 소득빈곤과 결합한 지하주거가 지원대상이다.

하지만 지하주거를 주거복지정책의 사각지대로 규정하고 주거지원의 양적 확대를 주 장하기에 앞서, 지하주거가 주거복지정책 지원대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체계적 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득수준을 완화해서 더 많은 지하주거 거주가구에게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주거급여를 지급할 수 있지만, 이는 재원 한계를 고려할 때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최저소득층을 향한 사회적 자원 배분을 감소시킬 수 있다. 더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지하주거에 거주한다는 사실만으 로 소득수준이 낮지 않은데도 주거지원을 받는 것은 사회적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1) 2020년 7월 29일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 제3조 개정으로 입주대상에 지하층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림 2-4>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50% 이하는 소득분위에서 3분위의 전반부에 해당하고,

지하주거는 열악한 내부상태를 갖춘 비적정주거이지만, 상대적으로 양호한 주거환 경과 공식 주택시장에서 선택적 행위를 특징으로 갖는다. 이와 같은 지하주거의 양면 성은 최저소득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수준에 기초한다.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주택시장에서 일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소득수준을 갖췄다. 이런 측면에서 지하주거 거주가구는 주거지원이 가장 시급한 시장소외계층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시장소외 계층 바로 위에 있는 집단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지하주거는 ‘소득빈곤과 결합하지 않은 선택적 비적정주거’라는 특성을 갖는다.

지하주거에 대한 정책대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 선택성이 어떤 주거문제를 초래 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열악한 주거환경뿐만 아니라 누가 왜 그런 열악한 주거환경 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분석의 초점을 지하주거의 열악한 내부상태를 넘어 지하주거 거주가구의 주거선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이 와 같은 주거선택이 어떤 주거문제를 초래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주거선택과 이에 따른 주거문제를 이해할 때, 우리는 이를 기초로 지하주거 거주가구에게 어떤 주거지 원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논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주거복지정책에서 열악한 주거상태를 갖춘 비적정주거에 대한 관 심을 촉발할 수 있다. 지금까지 주거상태는 생애주기(청년 등) 또는 가구특성(장애인 등)에 비해 주거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소득빈곤 과 결합하지 않은 열악한 주거상태는 지금까지 주거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해당한다.

지하주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계기로 이 사각지대를 어떻게 해소할지를 논의할 필요 가 있다.

주거복지정책의 지원대상을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기준은 엄격한 소득수준이다.

누가 가장 열악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소득빈곤만큼 확고하고 명확한 기준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소득빈곤만으로 주거지원 대상을 선정하면 잔여적 성격을 벗어나기 힘 들다. 따라서 특정한 조건을 갖춘 주거취약계층에게 소득수준을 확대했는데, 그 조건 으로 지금까지는 주로 생애주기 또는 가구특성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생애주기와 가구 특성보다, 현재 주거상태는 소득수준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거복지정책에서 생애주기와 가구특성의 강조는 비적정주거에 대한 적극적 정책대 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비적정주거는 현재 주거상태가 적절하고 안정한 주거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주거복지정책에서는 주거상태가 열악 하다는 사실만으로는 지원대상이 되기 어렵다. 쪽방, 비닐하우스 등과 같은 비적정주 거의 거주가구는 소득수준이 매우 낮으므로, 현재 주거복지정책으로 적절한 정책대응 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하주거는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서 잔여적 주거복지 정책만으로는 포용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주거복지정책의 지하주거 포용에 대한 정책적 고민은 단순히 지하주거를 넘 어 비적정주거에 대한 주거복지정책의 대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지하주거는 소득빈곤 과 결합하지 않은 선택적 비적정주거로서 주거복지정책의 마땅한 지원대상인 비적정주 거가 왜 주거복지정책의 사각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지하주 거 거주가구가 최저소득층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수준에도 불구하고 왜 비적정주거 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지하주거가 어떤 의미에서 주거복지정책의 지원대상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2) 연구목적

본 연구는 지하주거 거주가구가 열악한 지하주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공간적 특성을 분석한다. 사회·공간적 특성은 사회적 계층과 공간적 함의 그리고 이 둘의 결합 을 가리킨다. 누가 어떤 공간을 왜 선택하는지가 핵심질문이다. 첫째, 사회적 계층의 관점에서 지하주거에서 누가 어떻게 거주하는지를 살펴본다. 둘째, 공간적 함의의 측 면에서 지하주거 밀집지역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조사한다. 셋째, 지하주거 거주가구 의 주거선택을 분석해서 사회적 계층과 공간적 함의의 결합 방식을 밝힌다. 지하주거 거주가구가 지하주거 이외 다른 주거여건을 선택할 수 있는지, 달리 말해 지하주거 거 주가구가 지하주거를 벗어날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넷째, 지하주거의 주거문제에 맞 춰 주거지원 강화방안을 제시한다. 주거복지정책으로 소득빈곤과 결합하지 않은 선택 적 비적정주거를 어떻게 포용할지를 구체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