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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과 대통령비서실

문서에서 농업사 산고(散稿) II (페이지 190-196)

최근 보도를 통해 대통령 비서실의 행태를 접하면서 조선시대의 승정 원(承政院)을 생각하게 되었다. 승정원과 대통령 비서실은 최고 통치권 자를 보좌한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되기 때문이다.

고려 충열왕 이래 세종15년까지 대언(代言)이라 불렀던 승정원의 승 지(承旨)들은 그 품계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되어 있다. 조선시 대의 공무원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이전(吏典)조에 명시된 품계다. 우두머리인 도승지(都承旨)를 포함 6승지가 모두 같은 품계로 옥관자(玉貫子)를 꾀었지만 당상관(堂上官)으로는 말석의 품계다.

5.1. 승정원과 대통령비서실

5.2. 목양장(牧羊場)이었던 경무대(청와대) 5.3. 이런 경제수석도 있었다

5.4. 대선공약과 국가의 장래 5.5. 망백(望百)의 비망록 5.6. 농업사 연재를 마치며

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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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승지들의 이 품계는 오늘날 대통령비서실의 구성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더욱 낮은 품계로 여겨진다. 총리와 부총리격인 의정부 삼정 승이 정1품이고 장관격인 6조(曹)의 판서(判書)들이 정2품이며, 차관격인 6조의 참판(參判)들이 종2품인데다 차관보급인 참의(參議)가 정3품이기 때문이다. 왕의 수라(水刺)나 청소, 그리고 문지기 등 하찮은 일을 담당하 고 있는 내시부(內侍府)의 상선(尙膳)도 종2품인데 왕의 지근거리에서 왕 의 국정을 보좌하는 승지들의 품계가 겨우 정3품임은 무슨 까닭일까?

승지들의 품계가 높으면 장관격인 판서들 위에 군림(君臨)하기 쉽기 때문이다. 벼슬이 높으면 속된 말로 갑(甲)질하는 게 벼슬의 속성이다.

승지들이 왕을 등에 업고 갑질이나 군림을 못하게 예방하는 장치가 바로 승지들의 품계를 육조의 참의급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文)정권이 들어서자 승지격인 대통령비서실 비서들의 직급 을 거꾸로 상향조정 하였다. 정부조직법 제14조1항은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을 둔다.” 하였고, 2항에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라 하여 실장만이 장관과 동 급으로 하고 그 밑에 정무, 경제, 민정 등의 수석(首席)들을 두어 분야별 로 대통령을 보좌해 왔다.

수석으로도 해당부처 장관들은 대통령을 의식, 수석들한테 은연중 부 담을 느끼는 판에 문(文)정권은 대통령령(令)을 고쳐 “대통령 비서실에 정책실을 두고 실장 1명을 둔다.”를 신설하여 정책실장이 장관이나 비서 실장과 급이 같도록 격상시킨 것이다. 종래대로도 행정 각 부처는 대통 령비서실의 압력을 느끼는 판에 한 계단 높은 정책실장의 신설은 비서실 의 군림이나 갑질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다. 승지들의 품계를 하향 고정한 것과 정 반대의 작태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던가? 2018. 12. 10일자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경질 되었는데 실은 2개월여 전에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가 전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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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 발표된 것을 후임 경제부총리 국회 청문회 관계로 시일이 걸려 경 제부총리만 뒤늦게 경질 발령 된 것이다. 경질의 발단은 국회 예결위 의 원질의에 “우리 경제가 위기인가?” 하고 물은데 대하여 김동연 경제부총 리가 “우리 경제가 위기라는데는 동의할 수 없지만 경제에 관한 의사결 정의 위기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하였다(동아 ’18. 11. 13.).

말끝을 흐렸지만 묻지 않은 의사 결정까지 답한 것을 보면 경제정책 의 사령탑인 경제부총리의 권한이 침해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답변 이었다. 참아왔던 감정이 질의를 계기로 분출된 것이다. 이 말이 보도되 자 경제부총리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동시에 전격적으로 해임되었 는데 그 해임은 정책실장을 신설할 때부터 이미 예약된 결과였다. 대통 령을 등에 업은 정책실장이 경제부총리 위에 군림한 대표적 본보기다.

좋게 말해 불협화고 사실대로 말할 때 갑질이나 군림의 결과였다.

둘째로, 승정원과 대통령 비서실은 기능은 같으면서도 구성원의 선임 은 전혀 다르다. 먼저 승지들의 선임을 밝혀보면 이조(吏曹)에서 삼비망 (三備望)이라 하는 삼배수 추천서를 왕께 올려 왕이 낙점(落點)하는 자가 승지로 임용되었다. 이 삼비망에 오른 후보는 일선 경험이 풍부해 민정에 밝을 수 밖에 없는 인사들이다. 오늘날 공무원법 인사총칙에 해당하는 경 국대전 이전(吏典)의 서두를 보면 “수령(현감)을 거치지 않은 자는 4품 이 상의 품계에 오를 수 없다(非經守令者 不得陞四品階)”라 규정되어 있어 승 지들은 승지의 물망에 오르기 전 말단 수령 때부터 민정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수령의 임기가 최소한 1,800일(만5년)이기 때문이 다. 따라서 조선조정의 4품 이상 관료들은 인사제도상 민정에 밝으면서 승지로 선임되기 전 왕과는 친숙할 기회가 전혀 없는 인사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통령비서실의 실장이나 수석들은 대부분 이념지향 적 운동권 출신으로 문(文)정권 창출에 협력한 공신들이면서 임명 이전 부터 대통령의 측근이면서 고위직이 묵시적으로 예약된 인사들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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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결함은 승지들과 달리 대부분 민정에 밝은 인사들이 아니란 공통점 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논의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그 하나는 비서들이 대통령과 친숙할 경우 그만큼 군림이나 갑질의 정도가 더욱 강화될 가능 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령 군림하지 않았어도 받아들이는 행정 각 부처 는 그렇게 받아들이기 쉽다는 뜻이다.

예컨대, 5.16 군사혁명 후 혁명주체세력들의 위세가 그러하였고, Y.S 정권때 속칭 좌동영(左東英) 우형우(右炯佑)라 하던 이들의 군림이 그러 하였다. 현 정권의 예를 들면 2018년말 대통령 외유중 비서실장이 사무 실을 비워둔 채 색안경 끼고 유해발굴 현장인지 38선에 나타난 화면이 보도 되었다. 그것도 국방이나 통일장관과 같이 나타난 화면이 눈에 설 었다. 그 화면을 보며 정권창출에 크게 기여하지 않은 실장이었다면 대 통령 부재중 사무실을 비워둘 수 있었으며 군림이 아니라면 대통령이나 총리만이 가능한 장관들 대동이 가능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화면이 방영된 후 손학규 바른미래당 총재는 “자 기정치하려면 나와서 하라”는 야유성 권고가 있었음을 국민들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 둘은 이념적 운동권이나 교수 출신들의 비서들은 자칫 민정에 밝 은 승지들과 달리 경력상 민정이나 경제현실에 밝을 수 있는 기회가 없 거나 있어도 적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문정권의 간판정책인 소득주도성 장은 그 결과가 불확실한데다 시행 2년이 지났어도 설비투자나 건설투 자가 목표치를 밑돌아 사상최대의 6천억 달러를 수출하고도 연간 3% 성 장의 목표치는 꿈으로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경제현실을 모르고 세 운 정책이기 때문이다.

또,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자영업자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데 청와대 정책실이 경제실정에 좀 더 밝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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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좀 더 부드럽게 정책을 연착륙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원자력발전 도 그렇다. 미세먼지를 증폭시키는 화력발전을 계속하면서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을 억제함도 현실을 모르는 정책입안이다. 내각의 경제부처에는 수십 년간 경제정책에 경험 많은 관료들이 많이 있다. 그들 은 어려운 시험을 거쳐 수십 년간 경험을 쌓은 능력 있는 엘리트 관료들 이다. 정책을 세우거나 시행방법을 사전에 그들과 협의하거나 공론화 과 정을 거쳤더라면 새로운 정책시행에서 오는 충격은 다소간 완화할 수 있 었을 것이다. 경제현실도 모르면서 묻지도 않는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런 비서들이 설익은 정책을 강행하자니 군림의 정도만 높아진다. 그 통 에 공무원들은 다칠까싶어 복지부동하니 나라발전만 더디게 된다.

일자리도 그렇다. 일거리가 있어야 일자리가 생기는 것인데 일자리만 강조할 뿐 일거리를 만드는 기업보다는 친노동정책에만 힘쓰는 것 같다.

앞뒤가 뒤바뀐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정책이다. 그러니 2018년도 32만 명의 취업자를 증가시키겠다는 목표는 3분의 1도 못되는 겨우 10만여 명에 그쳤고, 그나마 이 수치는 몇 십조 원의 나라 돈을 써 단기 고용한 숫자가 포함된 수치가 아니었던가?

셋째로, 승정원의 인원구성은 이조(吏曹)의 업무를 왕께 진달하거나 왕의 하명을 이조에 전하는 도승지(都承旨), 호조(戶曹)의 업무를 담당한 좌(左)승지 예조(禮曹)담당의 우(右)승지, 병(兵曹) 담당의 좌부(副)승지, 형조(刑曹) 담당의 우부승지, 공조(工曹)담당의 동부(同副)승지 등 정3품 의 6명의 승지와 정7품의 주서(注書) 2명 등 모두 8명으로 매우 단촐한 기구다.

그런데, 대통령비서실의 인원구성은 경호실을 제외하더라도 비서실 장, 정책실장, 안보실장 등 3명의 장관급 실장에다 10명의 차관급 수석 과 2명의 보좌관 등 장·차관급만 15명이 넘고 모두 443명의 인원이 연 간 9백억 원을 쓰고 있어 내각의 몇 개 부처 못지않은 방대한 인원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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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가 추정된다. 아무리 조선시대보다 정책이 다기화 되고 할 일이 늘었 다 하더라도 비서실장 밑에 시민사회수석과 정책실장 밑에 사회수석의 업무가 무엇이 다른지 국민 99.9%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실적이 없 는 일자리 수석이나 하나마나한 인사수석 등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다.

신설기구라서 더욱 눈이 설다.

문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병역기피,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범죄자 등 일곱 가지 중 하나라도 범한 자는 공직 기용을 하지 않겠다 하였는데 고위인사 발표 때마다 한두 가지 안 걸린 인사가 없으니 인사수석이 한일이 무엇인가 묻고 싶다.

대통령비서실이 비대하면 내각이 위축되고 비서실 인원이 필요 이상 으로 많으면 행정각부처가 할 일을 비서실로 가져가거나 하지 않아도 될 민간사찰까지 하다가 그것이 들통나서 국회까지 비화되어 정쟁의 불씨 가 되고 있지 않은가? 8명의 승정원 인력으로도 5백년의 왕업을 이어온 게 조선왕조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넷째로, 조선시대 승정원의 승지들은 결코 정치표면에 나타난 사실이 없다. 조선왕조실록은 단일목적으로 편찬된 책으로는 세계제일일 만큼 그 분량이 방대한 기록이다. 그 방대한 기록 중 승지들이 국정에 이러쿵 저러쿵한 기록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승지들의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5백년간 문과 합격자는 모두 1만 5천 명 정도다. 그중에 정3품의 승지에 오른 사람이 라면 모두 문과 합격에 다년간의 관료생활로 민정에 밝은 엘리트 중의 엘 리트 들이다. 그래도 승지들은 왕의 그늘에 숨어서 일하고 일한 결과는 왕이나 판서들을 통해서 대외적으로 표출시키는 게 승지들의 임무였다.

그럼에도 문대통령의 비서들 중에는 대통령이나 총리, 그리고 법무장 관 등 헌법기관만이 할 수 있는 헌법개정이나 국회 법사위에 대해 이왈 저왈 등의 언급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것도 법학교수 출신이라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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