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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갈등 사례인 ‘독립문 이전 및 현상변경’은 서울 성산대로의 고가도로 건설(1976)의 일환으로 추진된 독립문 이전계획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서울시 문 화재위원회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고가도로의 설계안을 변경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으나, 공사 진행 과정 중에 결국 서울시의 의도대로 「지정문화재현상변경신 청」이 승인됨으로써(1979.2) 독립문은 1980년에 결국 현 위치로 이전하게 된다.

이 사례는 근대역사환경의 보전을 위한 노력이 실패하는 최초의 사례로 남아 있 다(동아일보, 1977.3.16; 한국일보, 1979.3.1; 오세탁, 1983: 11~13 등).

‘화신백화점 철거’의 경우, 한국인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한 보전 가치가 충 분한 최초의 백화점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개발 논리에 밀려 철거된 사례이다. 철 거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각계에서의 보전을 위한 노력과 화신백화점의 고유 이 미지(입면 형태, 종로와의 관계 설정, 지역 맥락의 연계 등)를 신축 건물에 연계 하기 위한 방법들이 강구되었으나 현재 완전 철거 형식의 재개발이 시행 중이다.

1990년대 ‘가회동한옥보존지구 해제’와 관련된 갈등(2000년 이전 상황)은 1983 년에 서울시가 제4종미관지구(10개 동, 한옥 1,568동)로 가회동 일대를 지정하면 서 시작되었다. 지역주민들은 초기에는 국가에 대한 보상 심리와 지역적인 자긍 심으로 이를 수용하였으나,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보상이 미비하자 점차 서울 시와의 갈등이 악화되다가 1991년 5월 전면 해제된 사례이다. 해제 후 1990년대 후반까지는 일반주거지역으로 개발이 시작되면서 집단으로 존재하던 개량 한옥 들, 독특한 가로 패턴과 가로 경관 등으로 인해 표출되던 고유한 지역정체성이 점차 파괴되었지만, 2000년 이후 한옥에 대한 가치 재인식과 사회 전반적인 의식 변화로 가회동 한옥지구는 새로운 역사주거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국립박물관의 철거’는 철거, 이전, 보존 등 많은 논란을 거쳐 1996년 8월 15일 에 완전 철거된 사례이다. 이 사례는 근대기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 결과물로 이해하기보다는 단순한 정치 논리에 밀려 소멸되었고, 전문가들의 더 욱 전향적인 보전 노력이 필요했었던 사례이기도 하다.

‘구 대한증권 거래소 철거’는 2005년 6월 등록문화재 등록 예고에도 불구하고 소유자의 재산권 침해우려로 같은 해 10월에 완전 철거 된 사례이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되고 2005년 7월 28일 건폐율․용적률 특례조항까지 신설되었지만, 홍보 미흡과 특례조항에 대한 서울시 조례가 제정되지 않는 등으로 인해 일어난 갈등으로 실질적인 인센티브 수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스카라 극장 철거’의 경우, 근대 극장건축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모더니즘 건축 의 하나로 보존적 가치를 인정하여 2005년 11월 문화재 등록예고를 하였으나, 제 도의 홍보 미비로 재산권 침해를 우려한 소유자에 의해 철거된 사례이다.

‘서울시청 본관 해체’의 경우, 1926년 건립되어 서울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문 화재로 2003년 등록문화재 52호로 지정된 서울시청 청사는 서울시가 구조 안전 성의 문제 및 시민들의 활용 등의 이유로 ‘현상 변경안’ 문제에 놓이게 된다. 그 에 따라 문화재청의 ‘사적 가지정 수용불가 방침’과 4차례에 걸친 원형보존 권고 안 의결․통보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철거 후 재축조하는 최종 현상 변경안을 문화재위원회에 통보한 후 2008년 8월 26일 시청 본관 중앙홀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철거를 강행한 사례이다.

‘동대문 운동장 철거’는 서울시의 건설자본 이익을 위해 시민들과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7년 12월부터 철거에 들어간 사례이다. 이는 근대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기억들이 남아있고, 노점상들과 영세상민의 생계를 이어가던 공간인 동 대문 운동장을 적절한 논의나 합의 없이 철거한 사례이다. 현재는 국제공모전을 거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칭)’이 들어설 계획이다.

‘부산 유치원 철거’는 지자체의 국내 최초의 유치원 보전 및 초량왜관전시관으 로 활용계획에도 불구하고, 소유주와 매입 협상 중에 제 3자에게 매각되어 철거 된 사례이다. 현재는 사찰 건설을 위한 가건물이 들어서 있다

‘영도다리 철거’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약속장소로 이용되는 등 애환이 서린 곳이 철거된 사례이다. 북항 개발과 함께 ‘부산롯데월드’ 건설에 따른 교통 량 수용 및 시민안전 등을 이유로 부산시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과의 논쟁 끝에 기존 다리의 자재를 일부 활용한다는 조건하에 철거가 결정되었다.

2) 보전 성공 및 진행 중 사례

근대역사환경의 보전 노력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는 것은 1990년대 초 대구제일교회 철거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계기가 된다. ‘대구제일교회 철거’와 관련된 갈등은 교회 신축 자금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소유주 측의 매각 결정에 의해 야기된다. 그러나 이미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1988)되어 있어 이를 취소하 기 위한 소유주 측이 낸 「문화재지정고시행정처분취소청구소송」이 원고 패소 판 결이 내려지면서 보전이 된 사례이다. 원래는 선교관으로 재활용할 것으로 알려 졌으나, 최근 조사한 바로는 약 2년 전의 본당 내부 화재 이후 방치되고 있어 근 대역사환경으로서의 가치가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

또한 ‘서울 봉은사 역사환경권 확보’와 관련된 갈등은 대형 건물의 신축으로 인해 봉은사 측이 (주)신성을 상대로 한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이 승인되면서 시작 된다. 이 승인에 불복한 (주)신성이 봉은사를 상대로 낸 공사중지가처분이의신청 (1995.9.17)에서 재판부는 자연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문화재 등 역사적 환경도 헌 법에 보장된 환경권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봉은사의 역 사적 가치와 불교 도량으로서의 환경 파괴를 우려하여 원래 19층의 건물을 15층 으로 제한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 동안 자연환경의 보호와 관련된 권리로만 해 석되어 온 환경권이 문화⋅역사적 자원까지 해석 범위가 확대된 우리나라 최초 의 판결로 남게 된다(동아일보, 1996.918). 이로 인해 무분별한 도시재개발을 통 해 소멸되어 온 비문화재급 근대역사환경이 보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또한 1934년에 건설된 ‘구명동국립극장’은 1957년부터 장충동 국립극장이 세 워진 1974년까지 국립극장으로 활용되던 곳이지만 1974년 이후 소유권이 민간에 매각된 후 현재에는 대한투금의 본사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1995년에 철거 후 대한투금의 본사를 신축한다는 발표 후 문화계의 반발에 밀려 현재에는 철거 계 획이 보류되어 보전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구 선생이 암살 직전까지 머물렀던

‘경교장’은 현재 강북성심병원으로 사용 중이며, 1996년 철거 후 병원 신축을 추 진하였으나 서울시의 존치 결정으로 인한 재산권 제한에 따른 병원 측의 반발이

매우 심하게 발생했던 사례이다.

보전이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는 사례로는 ‘인사동거리’를 들 수 있다. ‘인사동거리’와 관련된 갈등은 1980년대 도렴지구 재개발계획 등과 관련하게 꾸준히 지속되다가, 88올림픽을 계기로 보전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 게 되지만, 1990년대 들어 도심부라는 지역적인 입지조건으로 인해 도시재개발 과의 갈등이 또 다시 재연된다. 서울 근대기의 모습과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상업 가로이며, 삼일운동의 태동지(탑골공원, 태화관, 승동교회 등 입지) 로서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한 각종 민간단체(인사전통문화보존회 등)의 노력으 로 1997년 4월부터 매주 일요일에 ‘인사동문화장터’라는 이름으로 보행전용도로 의 기능이 확보되었다. 이후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에서 민간건축지침 및 기존 도시계획의 조정․공공환경정비 구상 등의 합의점을 도출하게 되고, 농협 근대 건축물 보전, 인사동 문화학교 운영, 골목 가꾸기 재시도 등 지역적 역량을 발휘 한다.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주민과 행정․

전문가의 갈등이 의사소통으로 합의점을 찾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구 서울역사 재활용’은 서울역사 신축으로 인해 2003년 구 역사의 폐쇄와 함 께 그 활용방안에 관한 갈등사례이다. 원래 옛 서울역은 철도청 소유였으나 한국 철도공사로 민영화되면서 국유인 문화재청 소유로 넘어오게 되었고, 문화재청은 구 서울역사 보존 하에 ‘문화공간 재탄생’을 예정하고 있다. 현재 공연․전시 기 획 워크숍 장소로 쓰이며, 적절한 활용방안을 강구 중 이다.

1923년 건립된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대 표적 금융시설로 한국은행, 한일은행, 유흥시설 등 여러 차례 용도변경이 진행되 어 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 374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현재 군산시의 역사자원을 활용한 원 도심 활성화사 업의 일부로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매입이 진행 중에 있다. 매입방법은 우리나 라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개발권 이양제도(TDR : Transfer Development Right)로 타 사유지와 교환(대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사례이다.

‘전주한옥마을’은 1910년대부터 산업화사회로의 진행과정에서 발생한 전국

유일의 도시 내 한옥군으로 16개종의 지정문화재 집적지역이다. 그러나 1977년 한옥보존지구 지정으로 인한 주민들의 생활상 불편 및 개발제한 등으로 갈등기

유일의 도시 내 한옥군으로 16개종의 지정문화재 집적지역이다. 그러나 1977년 한옥보존지구 지정으로 인한 주민들의 생활상 불편 및 개발제한 등으로 갈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