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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테마 : 관련주체들의 체계적인 업무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1) 요코하마(橫濱)의 원도심 및 항만

요코하마는 1859년에 개항한 일본 최고의 개항장이었다. 요코하마는 개항 후 150여년(2009년이 개항 150주년이다) 동안 ‘개항과 번영 ⇒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괴멸 ⇒ 전쟁 후유증과 미군 주둔 ⇒ 위성도시로의 쇠락 ⇒ 국제항만도시’로의 다양한 변천 과정을 거쳐 왔다.

도쿄의 위성도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은 1965년에 기획조정국을 만들고 1972년에 도시디자인과를 조직한 일과 1950년대 말부터 전략적으로 추진되어 온 ‘6대 프로젝트(도심부강화사업, 가나자와해안매 립사업, 도후쿠뉴타운건설사업, 고속도로망건설사업, 지하철도건설사업, 베이브

일본 최초의 토목문화재인 도크

상업전시문화시설로 재활용한 창고

<그림 4-4> 요코하마 원도심과 항만의 근대역사환경 릿지건설사업)’이 계기가 되었다.93)

이 중, 첫 번째 프로젝트인 ‘도심부강화사업’은 원도심과 항만에 남아있는 근 대역사환경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고, 기획조정국과 도시디자인과의 근대 역사환경에 대한 보전과 활용에 대한 노력이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개의 도크(제2도크(船渠第2號ドック)와 제1도크(船渠第1號ドック), 옛 화물 철길인 기샤미치(汽車道)와 제2호철교(港2號橋梁), 저장창고를 활용한 적벽돌공 원(赤レンガ倉庫パーク), 일본 최초의 철교인 요시다다리(吉田橋), 말이 달렸다 는 근대도리인 비샤미치(馬車道), 요코하마개항기념관(橫濱市開港記念會館), 록 메이칸(鹿鳴館), 가나가와현청(神奈川縣廳), 일본화재해상요코하마빌딩(舊川岐 銀行) 등의 근대건축물, 차이나타운(中華街)과 야마시티공원 앞에 정박하여 식음 시설로 재활용 중인 2차 대전 시 병원선이었던 히가와마루(永川丸) 등을 활용한 도시계획적 아이디어들은 집합형 근대역사환경을 통한 도시재생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요코하마의 원도심과 항구는 공공의 기획적 노력과, 산재하여 분포하 고 있던 근대역사환경에 대한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근대역사환경의 창의적인 활용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93) 이러한 일은 1968년부터 1982년까지 요코하마시의 기획조정실을 담당하며 6대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다무라 아키라’(田全 明)’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흑벽은행으로 불리던 구라카베글라스관

흑벽5호관

<그림 4-5> 나가하마 구시가지의 근대역사환경 (2) 나가하마(長浜) 구시가지

나가하마는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만들었다는 나가하마성 아래에 형 성된 동네(城下町)로 400년 전부터 무역업(비단)이 성행했던 무역도시였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3번째로 철도가 개설되고 은행, 소학교 등이 건설되는데, 1900년 에 건설된 은행(第百三十銀行長浜支店/벽체가 검어 흑벽은행이라 부름)이 나가 하마 구시가지의 핵심체가 된다.

이러한 경제적 번성기를 거쳤던 나가하마였지만, 1970년대 들어 도심인구가 줄어들면서 공동화현상이 심화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방정부는 기존 자원 들의 가치를 재활용하는 리모델링방식을 채택하였고, 1984년에 ‘박물관도시구 상’이라는 목표를 세워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갈 수 있었던 도심의 빈 땅에 히키 야마박물관(曳山博物館)을 건설한다94). 이 박물관이 바로 나가하마 구시가지 재 생의 핵심이 된 ‘흑벽지구’의 출발점이 된다.

이어 1988년에 8개의 지역기업과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쿠라카베주식회사(

(株)黑壁)’라는 제3섹터를 설립하고, 먼저 흑벽은행을 ‘쿠라가베글라스관(黑壁ブ ラス館)’으로 탈바꿈시키고, 또 다른 흑벽건물들을 찾아 주민 모두가 참여할 수

94) 이 박물관은 ‘히키야마마쯔리(長浜曳山祭/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일본의 3대 山車祭에 속 한다)’를 지키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데, 일본에서는 ‘지역밀착형 박물관’의 모델이 될 정도로 명성 을 얻고 있다.

<그림 4-6> 적용되고 있는 제도적 장치들

있는 바탕 만드는 일에 주력을 하였다. 이후 쿠라카베주식회사는 창립 10주년을 계기로 또 다른 주식회사((株)新長浜計劃)를 추가로 설립하는 등 발전을 한다.

이렇게 나가하마는 원도심의 가치 재발견을 통해 근대역사환경을 활용한 도심 재생의 추진과 제3섹터 형식의 쿠라카베주식회사의 결성과 활동이 성공의 요인 으로 평가된다.

(3) 쿠라시키(倉敷)의 미관지구

쿠라시키 미관지구(倉敷美觀地區)는 도시계획으로 지정된 법정지구이지만 일 본에서는 이를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다. 지역의 역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1960년부터 시작되어 일본 ‘역사경관 지키기’의 선구적 역할을 한 상징적인 곳이 기 때문이다. 미관지구의 지정은 원래 방적공장이 있는 운하주변의 경관보호를 목적으로 시작되어 1979년에 국가로부터 ‘중요전통적건조물군보존지구(重要傳 統的建造物群保存地區)’로 지정을 받았다.

방직공장의 일부를 들어내고 만든 호텔의 중정

<그림 4-7> 방적공장을 재활용한 아이비스퀘어 호텔

이곳이 17~18세기 에도시대 때 운하를 따라 형성된 물자집산지였고, 물자 유 통에 유리한 입지 때문에 메이지시대에는 일본 방적산업의 거점이 되고, 1888년 에는 현재 호텔(アイビ ースクエア)로 활용 중인 ‘쿠라시키방적공장’(倉敷紡績) 이 건립된다. 아이비스퀘어 호텔은 1974년부터 재활용 되었는데, 톱날모양의 지 붕을 가진 공장을 183실의 객실과 연회장, 결혼식장 등의 부대시설, 지역전통산 업을 전수하고 전시하는 아이비학관(アイビ學館), 방적산업의 흔적들을 모은 산 업기념관(紡績記念館) 등으로 리모델링한 사례이다.

자료 : 강동진 외, 2003, “산업유산의 재활용 유형별 특성 탐색,” 한국도시설계학회지 12(3): p.67.

40여 년 전부터 이러한 선구적인 노력의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 지역의 문화 와 경관이 고스란히 남게 된 것은 방적공장을 설립하고 경영하였던 ‘오오하라가 문(大原家/大原孫三郞(1880~1943)과 大原總一郞(1909~1968) 부자에 의해서였다 고 평가되고 있다. 이들의 지역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역 사랑이 시민들의 노력과 결합되면서 방적산업이 쇠퇴한 후에도 지역의 전통산업으로 그 맥락과 명성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미관지구의 지정(1965년)과 방적공장의 재활용, 그리고 지역기업의 선구적인 활동이 근대역사환경을 통한 도시재생의 성공요인 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일본 최초의 목재 역사 문화재인 모지코역

벽체 일부를 남겨 재활용중인 주차장

<그림 4-8> 모지항의 근대역사환경 (4) 키타큐슈(北九州)의 모지항

모지항은 1889년에 특별수출항으로 지정되어 20세기 중반까지 큐슈지방의 중 계무역항으로 활성화되었던 항구다. 중계무역을 통해 대륙으로의 기지 역할을 수행하며 무역항으로 부흥하게 되고, 특히 1914년에 큐슈의 최북단역인 모지항 역(門司港驛)이 조성되면서 경제적 번성은 더욱 확장되었다.

그러나 키타큐슈와 시모노세키를 직접 연결하는 간몬교가 개통하자, 두 지역 을 연계하던 연락선이 중단되었고, 이후 지역경제는 점차 퇴락을 시작한다. 일본 의 다른 여느 항구들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초반 모지항도 개발을 모토로 한 정비사업을 시작한다. 이로 인해 근대기의 화려했던 모지항의 역사를 대변하던 건축물들이 해체될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역 언론에서 이러한 개발계획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결 국 항만 매립은 중지되었고 도로계획도 변경되면서 모지항은 ‘역사와 자연’을 키 워드로 하는 재생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큐슈에서 제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르네상스식 목조(木造)구조인 ‘모지항역’을 1983년에 보존하기로 결정한 후 에 주민들은 ‘모지항보존회(門司港保存會)’를 결성하여 보존기금을 모금하기 시 작한다. 국가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인정하고 1988년에 목재 역사인 모지항역을 일본 최초로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본격적인 항구재생작업은 1988년부터 곳곳에 산재하여 있던 10여동의 근대건 축물들에 대한 이전과 복원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국가중요문화재이며 아인슈 타인 부부가 묶었다는 ‘옛 미쓰이구락부(旧三井俱樂部)’를 이전⋅복원하는 사업 은 모지항의 모습을 탈바꿈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며, 모지항 역사를 상징하는

‘리트로(レトロ/Retro)’라는 개념을 테마로 1996년 1차 정비사업이 완료된다.

이렇게 모지항의 재생은 모지항역의 보존 결정과 문화재 지정을 시작으로 지 역 언론의 근대역사환경에 대한 지역 언론의 여론 조성과 이에 상응한 지역시민 운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5) 오따루(小樽) 원도심 및 항구

북해도 개척시대에 오타루는 내륙도시인 삿포로의 외항 역할을 담당했다.

1907년에 철도(手宮線)가 개설되면서 오타루는 홋카이도의 관문도시로 발전한 다. 러일전쟁 후 호경기였던 1906년에 옛 일본유센오타루지점이, 1912년에는 홋 카이도은행본점(北海道銀行本店)이 건립되면서 오타루의 석조건물 역사는 본격 적으로 시작된다. 세계 1차 대전 후, 이로나이지역에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들어 섰고 한때 ‘홋카이도의 월스트리트’라는 애칭을 가질 정도로 번성했고, 홋카이도 의 해산물과 농산업물이 집중되는 물류거점 도시로 발전한다.

오타루의 근대역사환경 중의 핵심은 운하와 창고군이다. 오타루운하 주변에 미곡과 해산물을 보관하던 창고와 점포들이 늘어서 있고, 부족한 가용지 확보를 위해 북측 해안을 매립하고 해안과 매립지 사이에 각종 화물을 하역하고 수송하 기 위한 폭 40미터(수심 2.4미터, 길이 1,324미터)의 수로를 건설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따루운하(小樽運河)이다. 특히 1890년대에 조성된 약 60여동에 이르는 창 고들은 내부는 나무골조인데 외관은 돌을 쌓은 조적조(木骨石造平家)이며 운하 보다 먼저 생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타루의 근대역사환경 중의 핵심은 운하와 창고군이다. 오타루운하 주변에 미곡과 해산물을 보관하던 창고와 점포들이 늘어서 있고, 부족한 가용지 확보를 위해 북측 해안을 매립하고 해안과 매립지 사이에 각종 화물을 하역하고 수송하 기 위한 폭 40미터(수심 2.4미터, 길이 1,324미터)의 수로를 건설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따루운하(小樽運河)이다. 특히 1890년대에 조성된 약 60여동에 이르는 창 고들은 내부는 나무골조인데 외관은 돌을 쌓은 조적조(木骨石造平家)이며 운하 보다 먼저 생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