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가르치며 배우며 즐겁지 아니한가
문화 비교론’은 세 원칙을 모두 만족시켜 주었던 수업이었다.
교수님을 처음 뵈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이 수업을 즐기며 들 을 수 있겠구나.’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모든 교육을 주입식, 암 기식으로 받아왔기 때문에(초, 중, 고 학창시절엔 특히 더 그랬다.)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수업 방식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학년 가을학기를 시작으로 나는 내가 가진 수동성과 타성 으로부터 벗어나 조금씩 ‘나’를 찾아가고 있다.
‘세계 문화 비교론’은 그저 딱딱한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었 다. 즐기고 느끼는 수업이었고, 내 머릿속에 가장 많은 것을 남겨 준 수업이었다. 수업의 방식은 간단했다. 교수님이 과제를 내 주시 면 자유로운 형식 안에서 주제에 대한 자료를 찾고, 자료를 바탕 으로 발표를 하는 익숙한 수업 방식. 그러나 발표의 주제를 스스 로 정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세계의 문학, 음악, 춤, 미술 등 예술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시간이 거듭될수록 나의 수업에 대한 열의 또한 높아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왜 그렇게 팍팍하게 살았 을까.’하는 회의감이 들어 씁쓸하기도 하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전에는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다시 보였다.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중 하나라고 만 생각했던 ‘나이키’나, 화장품 브랜드로 잘 알려진 ‘이자녹스’,
‘헤르시나’ 같은 것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전부 올림 푸스 신화에 나오는 신, 여신 또는 요정의 이름에서 모티브를 얻 어 지어진 이름이다. 나이키는 승리의 여신인 니케를, 이자녹스는 밤의 여신인 녹스를, 헤르시나는 샘을 지키는 요정 헤르시나를 생 각하며 각 제품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런 사소한 이름 하나 하나까지도 의미 없는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이 1cm쯤 넓어진 것 같아 쏠쏠한 재미가 느껴졌다.
또 치마를 펄럭이며 추는 캉캉이 사실 프랑스의 사교댄스로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유행했던 춤이었다는 것, 탱고가 한의 춤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었는데,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끈적끈적
188 가르치며 배우며 즐겁지 아니한가 하게 추던 그 춤사위가 사실은 한이 깃든 것이었다니. 새삼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떠오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춤 이외에 그림, 음악, 건축물 등 다양한 예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나눴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에는 세상에 대한 이해 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모든 것이 가깝게 느껴지는 요즘, 라파엘로나 뭉크의 그림을 보며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기특하고, 즐겁고, 세상을 더 아름답 게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취향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 수 업을 통해서였다. ‘오페라’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짜릿한 전 율을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교양 있는 척!‘하는 사람들이 듣는 지루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오페라’에 내가 빠져있다니 기 가 막힐 노릇이지만, 음악을 느끼고 그 안에서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오페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한 종합예술을 뜻하는데, 나는 ‘지아 코모 푸치니’라는 오페라 작곡가에 대해 조사했다. 그를 알게 된 후에 나는 정말 많은 오페라를 들었다. 음악의 힘이 어떤 것인지 세상 에 태어나 처음 느껴본 것 같다. 나는 한동안 그가 창조한 음악에 빠져 내 귀와 가슴과 뇌가 음악에 잠식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외투 등 정말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중 내가 지금까지도 즐겨듣고 사랑하는, 그리고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작품은 푸치니의 미완성 오페라인 투란도트이다. 할 머니의 아픈 경험으로 남자를 혐오하게 된 중국의 ‘투란도트’ 공주 와 공주가 낸 3개의 수수께끼를 유일하게 해결한 ‘칼라프’ 왕자의 흥미롭지만,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오페라! 음악이 그리고 그 음악에 담긴 이야기가 사람을 이렇게 매혹 시킬 수 있다니. 예술 의 힘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느꼈다.
예술은 삶과 함께 흘러간다. 그 사실을 나는 21살 가을에 깨달 았던 것이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준 이 수업을 들었다는 것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뿌듯 하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직접 보지 못하고,
직접 만져보지 못하고, 인터넷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서만 세계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만 이 예술은 아니지만, 배우고 느끼는 입장에서 봤을 때, 조금 더 좋 은 환경에서 예술을 직접 느끼며 수업에 참여 할 수 있다면 더 좋 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수업을 추천하고 싶고, 또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취업에만 급급해서 여유를 가질 틈이 없는 우리 대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매일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구르는 생활을 하는 우리들 에게 삶의 여유와 행복을 조금이라도 안겨 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같은 입장에 처해 살고 있으나, 오페라를 듣고 그림을 보 는 동안은 세상 밖에서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여유를 그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다.
아무런 기대 없이 취업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학교 안에서 오 랜만에 느껴본 휴식 같은, 그리고 유익한 그런 시간을 내게 주신 분들께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Chapter 10 Chapter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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