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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임대차 성격 변화와 경자유전 원칙의 지속가능성

한국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농촌부문 역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대표적인 구조적 변화는 전체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 하게 감소하여 산업규모 면에서는 더 이상 주력 경제기반이 될 수 없다는 것, 농업 생산방식이 노동집약적인 것에서 자본집약적인 것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 경종작물의 쇠퇴와 식량작물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 농업인구의 빠른 감 소에 따라 지역공동체로서 농촌의 해체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 등을 꼽 을 수 있다(이태호 2005).

이 모든 변화가 구조적인 측면에서 현실적인 농지관리의 기본 원칙으로서 경자 유전 원칙과 소작금지 원칙의 유지에 영향을 미친다. 이 두 원칙은 본래의 역사적 의미가 어느 정도 퇴색한 현재 상황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기도 한다. 경자 유전 원칙은 농지에 대한 투기자본의 유입을 막고, 소작제 금지 규정은 농지임대 차에서 임대료 상승을 제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경작자와 농지소유자 사이 관계로서 농지 소작제(metayage, share-cropping)는 농지 소유자가 토지 이용권을 일정 조건하에 농업생산자에게 맡겨 토지이용에 대

한 대가로서 지대(소작료)를 받는 제도를 말한다(이태호·사동천 2017). 그러나 이 러한 단순한 소유관계에 기초한 정의는 농지임대차 관계의 역사적 변화를 구분하 지 못한다. 농지를 비롯한 토지임대차 관계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광범위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지임대차의 현대적 특성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소작 제도의 역사적 형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농지임대차를 통한 지대 지불 형태라고 하더라도 경제외적(직접적) 강제(extra-economic coercion)를 통한 착취와 시장관계에 기초한 착취를 구분해야 한다.

이러한 농지임대차 형태를 봉건적 소작제도와 자본주의적 임대차 농업제도로 구분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봉건지대의 발전 형태로서 생산물지대의 변형인 화 폐지대가 더욱 발전하면서 농지 소유는 자유로운 농민적 소유로 전환되든지, 아 니면 자본주의적 차지농이 지불하는 자본주의 지대형태로 바뀐다고 말하였다. 경 작자와 토지소유자 사이 관계도 신분적 예속관계에서 실정법상 확고한 규정에 기 초한 계약상의 관계로 전환된다. 이것이 봉건적 소작제도와 자본주의적 농지임대 차 제도의 본질적 차이이다. 마르크스는 소작제도를 원시적 지대형태에서 자본주 의적 지대형태로 이행하는 과정의 이행형태(transitory form)로서 파악하였다. 이 러한 소작제도에서 소작인은 완전한 자본주의적 경영에 필요한 자본을 충분히 가 지고 있지 않다. 토지소유자는 토지와 더불어 경영자본의 일부를 제공하고, 생산 물은 소작인과 토지소유자 사이에 일정한 비율로 분할된다. 지주의 분배 몫은 소 작인의 잉여노동 전체를 흡수할 수도 있고, 소작인에게 잉여노동의 일부를 남길 수도 있다(Marx 1990: 981, 987).

전통적인 소작제도의 특징으로 지주의 경제외적 강제에 기초한 착취, 단순 지 가상승 이익보다는 경작소득 추구, 과도한 소작료 징수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볼 때,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소작제도는 소멸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신분제에 기초한 전통적인 봉건적 소작제는 1894년 갑오경장을 지나면서 소멸되었다가 일제 강점 기에 다시 부활했으나 1944년 농지개혁법을 통해 완전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봉건적 소작제는 갑오경장을 계기로 신분제가 붕괴되면서 반(半)봉건적 소작제도로 바뀌었다. 반봉건적 소작제는 지주에게 예속된 신분형태에 기반한 것

은 아니다. 1970년대 급속한 산업발달로 이농현상이 급증하였고, 1980년대에는 농업 인력의 부족현상까지 나타나면서 반봉건적 소작제도도 자연적 소멸의 길을 걸은 것으로 본다(이태호·사동천 2017).

따라서 현행 헌법의 소작제도 금지원칙은 실질적인 경제적 토대에 기반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명목적인 선언적 의미이며, 실질적인 경제범주로서 영향력을 갖 는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 이제 전통적 소작제도는 역사적 잔재로서 자본주의 경 제체제에서 중심 경제범주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토지이용 및 소유관계 의 관점에서 농지관리 제도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소작제 금지라는 역사 적 트라우마에 집착하면서 자본주의적 농지임대차가 일반적인 상황임에도 이를 전통적 소작제 관점에서 비정상적·불법적 상황으로 간주하게 되면서 체계적인 법 제적 거버넌스 밖의 광범위한 예외적 상황이라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채광석 2019; 채광석·김홍상·윤성은 2016).

이와 같은 농지소유 관련 변화와 더불어 한국 농업·농촌이 직면한 대표적 현실 이 인구학적 변화이다. 한국사회의 인구감소에 따른 전체적인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 추세와 더불어 농업 분야에 특수한 인구학적 변수가 기존의 전통적인 농지관 리체계에 기초한 영농의 지속가능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개 념의 경자유전 원칙을 유지한 자경농지 소유자의 고령화, 농업노동력 부족, 영농 후계자의 부족 등으로 전통적인 경자유전 원칙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은 현실이 다. 2018년 현재 70세 이상이 51.2%의 농지를, 60세 이상이 전체 농지의 77.5%를 소유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고령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는 20년 내에 매 매되거나 상속·증여될 가능성이 높다<표 3-6>. 그리고 이 경우 농지를 상속받은 자녀 가운데 비자경자의 농지소유에 대한 사유재산권과 상속권 침해 문제, 현행 민법상 균분상속 정신을 고려할 때 순수한 형태의 경자유전 원칙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채광석 2019; 윤석환 2019).

표 3-6 농가 경영주 연령별 농지소유 및 이용면적 분포(2018)

단위: 호, %, ha

연령대 농지소유면적 농지이용면적

면적 백분율 면적 백분율

40세 미만 2,213 0.2 3,596 0.3

40~49세 36,961 3.7 63,998 4.5

50~59세 147,005 14.8 280,267 19.5

60~69세 359,297 36.2 556,689 38.8

70세 이상 447,886 45.1 530,025 36.9

합계 993,362 100.0 1,434,575 100.0

자료: 통계청. 농가경제조사 원자료 분석; 채광석 외(2019).

순수한 경자유전 원칙에 근거한 전통적인 자작농주의는 농지소유자가 농업 경 영자가 되어야 하는 조건과 자녀 중 부모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반드시 농업을 직 업으로 선택하는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비로소 지속가능한 이념이다. 직계혈 통에 의한 농업경영 승계방식은 지속가능성이 없다. 또 후계자를 확보하지 못한 농가가 90%를 넘는 현실에서 ‘소유자 = 경영자’에 입각한 경자유전의 원칙을 유 지하기란 이미 불가능하고, 유지할 수도 없다(윤석환 2019).

표 3-7 경영주 연령별 영농승계자 분포(2005)

단위: 호, %, ha

구분 영농승계자 농가수 비율

40세 미만 - 42,392

-40~49세 3,275 185,849 1.8

50~59세 10,988 302,852 3.6

60~69세 19,111 430,473 4.4

70세 이상 11,789 311,342 3.8

합계/평균 45,163 1,272,908 3.5

주: 2010년 이후 관련 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2005년 자료가 가장 최근 자료이다.

자료: 통계청(2005). 농업총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