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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결합 심결의 특징

문서에서 기업결합규제의 진화 (페이지 168-174)

공정거래법에서는 기업결합의 경쟁제한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시장구조를 1차적인 요건으로서 가장 중시하고 있다. 즉 기업결합 으로 인하여 시장구조가 앞의 제3장에서 설명한 요건에 해당되면, 그 기업결합은 일단 “일정한 거래분야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시장구조요건에 해당하는 기업결합 의 경우에는 새로운 기업의 진입 및 해외경쟁의 도입 등에 의해 시장구조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경쟁상태가 지속될 것이라 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에 대한 심결에서도 이러한 시장구 조 중시의 원칙이 견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검토한 SK텔레콤‧인천제철‧현대자동차‧질레트의 기업결 합심사에서 이러한 원칙은 일관되게 지켜졌다. 이 사건들을 포함 하여 1996년 이후 경쟁제한성이 인정된 12건의 기업결합사건은 모 두 시장구조요건에 의한 경쟁제한성이 추정되었으며, 이 가운데 여타요건, 즉 진입의 용이성, 해외경쟁, 유사품 및 인접품의 존재 등에 의해 기각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특히 SK텔레콤‧인천제 철‧질레트의 심결에서는 관련시장의 현재 및 기업결합 후의 단순 한 시장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HHI 지수를 이용하여 기업결합으 로 인한 시장구조 변화효과까지 검토하였다. 그리고 SK텔레콤 사 건 및 인천제철 사건에서는 기업결합 이후에도 국내에 유력한 경 쟁자가 상당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배제 될 수 없고, 그로 인한 독점력의 행사, 즉 가격인상의 가능성이 있 다는 이유로 경쟁제한성을 인정하였다. 특히 SK텔레콤 사건에 있

어서는 시정조치로서 향후 시장점유율을 50% 이하로 유지하도록 제한을 부과하였다는 점에서 경쟁제한성의 판단기준으로서 시장구 조가 갖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

(2) 엄격한 예외인정

공정거래법에서는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에 해당하더라도 ① 회 생불능기업과의 결합과 ② 효율성 향상을 위한 결합의 요건에 해 당한다면 이를 허용할 수 있다.220) 이러한 예외인정에 있어서는 현행 「기업결합심사지침」의 제정(1999년 4월)을 전환점으로 뚜렷 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이전에는 예외인정이 상대적으로 느슨 하였던 것에 비하여, 새로운 지침의 시행 이후에는 이를 매우 엄 격히 운영하고 있다.

먼저 파탄기업 항변에 대하여 검토하면, SK텔레콤 및 인천제철 에서 보듯이 ① 피결합기업이 적자가 누적되는 상태에 있고, ② 기 업결합이 없을 경우 당해 생산시설이 시장에서 퇴출되며, ③ 경쟁 제한효과가 적은 다른 기업결합이 불가능한 경우라는 세 가지 요 건을 차례로 충족하여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요건 중 어느 하나 라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파탄기업 항변은 성립될 수 없다. SK텔 레콤의 경우에는 피결합회사인 신세기통신이 비록 적자상태에 있 으나 상기 ② 및 ③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고 인천제철 사건의 경우에는 ①과 ②의 요건은 충족하나 ③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 였기 때문에 파탄기업 항변이 인정되지 않았다. 즉 인천제철 사건 의 경우 인수가격이 청산가치보다 훨씬 높고, 또 비록 피심인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인수가격을 제시하였다고 하나 동부제강이

220) 이미 지적하였듯이 1999년 2월의 법개정 이전에는 여기에 추가하여 국제경 쟁력 향상을 위한 결합도 예외로 인정되었다.

178 세계화‧정보화 시대의 경쟁정책

인수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점을 들어 ‘덜 경쟁적인 기업결합’이 불 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며, 그러므로 동 기업결합은 예외인정요건 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이에 비하여 현행 기업결합심사지침이 제정되기 전에 이루어진 현대자동차 사건에서는 현재의 기준으로서는 파탄기업 항변이 성 립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파탄기업 항변이 받아들여졌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심각한 부실상태에 빠져 독자적인 회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지만, 국내외의 여러 자동차회사가 기아를 인수할 의사를 표명하였고 입찰에도 참여하였다. 따라서 이 기업결합보다 덜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효율성 항변의 적용에 있어서도 엄격한 입장은 여전히 견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 사건에서는 별다른 분석 없이 효 율성 항변을 받아들였지만, SK텔레콤 사건 및 인천제철 사건에서 는 효율성 향상을 상당히 엄격히 해석하고, 효율성 향상과 경쟁제 한성을 비교형량하여 효율성 항변을 기각하였다. 공정거래위원회 가 인정한 효율성 향상 평가액 및 그 기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 판의 여지가 있지만, SK텔레콤 사건에서는 피심인이 주장한 기업 결합 이후 10년간 총17조 479억원의 효율성 증대효과에 대하여 2 조 7,776억원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효율성 향상효과가 경쟁제한성을 상쇄할 만큼 크지 못하기 때문에 효율성 항변을 기각하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동전화시장에 서 5사 경쟁체제가 4사 경쟁체제보다 최소한 2조 7,000억원 이상 의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이동전화시장에서 경쟁체 제가 가져오는 사회적 편익이 얼마가 되는지 계량화하지는 않았지 만, 매우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리고 인천제철 사건에서도 피심인이 주장한 1조 1,067억원의 효율

성 증대효과 가운데 위원회는 2,607억원만 인정하였으며, 이러한 효율성 증대효과는 경쟁제한으로 인한 폐해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한 가지 SK텔레콤 사건 및 인천제철 사건의 효율성과 경쟁 제한성의 비교형량추정을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경쟁제한성의 비용의 입증책임이다. 위원회의 결정에는 이들 기업결합으로 인한 경쟁제한성에 따른 부정적 효과가 향후 10년간에 걸쳐 각각 약 2 조 8,000억원과 약 2,600억원을 초과하는 ‘현저한’ 수준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다. 이것은 경쟁제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낮다는 점을 피심인이 적극적으로 증명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 다. 시장구조로 보아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의 추정요건에 해당하면, 일단 당해결합은 경쟁제한의 가능성이 큰 것으로 간주되며 반증의 책임은 피심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만약 피심인이 그것을 구체적 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한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제한의 가능성만 으로도 그 사회적 비용이 현저히 크다고 간주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 불완전한 시정조치

기업결합 심결례의 주요한 특징으로서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앞에서 예시한 4건의 기업결합 가운데 위원회는 현대자동차만이 적법한 것으로 인정하였고,221) SK텔레콤 등 나머 지 3건은 모두 위법으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법률에 위반된 3건의

221) 그러나 화물자동차 부문의 결합은 위법적인 것이라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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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결합사건에 대해서는 장차 경쟁제한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하 여 가격제한 등에 관한 시정조치를 부과하였다.

공정거래법 제16조제8호는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에 대한 시정조 치로서 ‘기타 법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부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에 근거하여 가격제한 등의 독점 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형식논리상으로는 일견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을 제한하는 규정을 무력화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며, 공정거래법의 집행력을 저하시키는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거래법 제16조는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에 대하여 ① 당해행 위의 금지, ② 주식의 전부‧일부의 처분, ③ 임원의 사임, ④ 영업의 일부양도, ⑤ 채무보증의 취소, ⑥ 법위반사실의 공표, ⑦ 경쟁제한 의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영업방식 또는 영업범위의 제한, ⑧ 기 타 필요한 조치 등의 시정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① - ⑤는 기업결합제한의 위반행위에 대한 원상회복 조 치이며, ⑥은 위법행위에 대한 홍보, ⑦ - ⑧은 위법행위 자체는 인 정하되 그로 인한 폐해를 배제하려는 보완조치의 성격을 갖는다.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에 대한 가장 유효한 규제수단은 기업결합 그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원상회복을 위한 시 정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시정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상기 ⑦ - ⑧의 부대조건 내지 보완조치가 부과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앞에서 검토한 4 건의 기업결합 심결에서는 결합자체를 금지하는 시정조치는 한 건 도 없었고 독점력 남용을 위한 조건부과라는 경미한 조치에 그치 고 있다. 이러한 안이한 시정조치는 공정거래법의 기업결합제한조 항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시정조치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지적하여야 할 것은 경쟁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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