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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문서에서 기업결합규제의 진화 (페이지 89-101)

기업의 투자 및 생산활동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자금조달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과 은행, 나아가 산업자 본과 금융자본의 관계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 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106) 그러나 양자간의 관계는 경제발전단계 와 자본시장의 성격에 따라 각국에서 다른 유형으로 전개되어 왔 다. 예컨대 산업화 초기단계부터 자본시장이 비교적 발달하였던 영국과 미국에서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지배할 유인이 상대적 으로 적었다. 반면에 자본축적이 낮았던 독일과 일본에서는 은행 이 산업자본의 형성에 핵심적 기능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은행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경쟁 논리에 의한 ‘신고전파적neoclassical’ 자본시장, 독일과 일본에서는

105) OECD(1988)

106) 이 문제에 대한 대표적인 경제사적 연구는 Gerschenkron(196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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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기업간의 ‘관계적relational’ 자본시장의 형태를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각국의 기업지배구조에도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107) 반면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산업자본의 은행참여에 대하여는 각국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이러 한 역사적 경험은 은행과 산업자본간의 관계에 선험적‧논리적으로 최선의 형태가 있기보다는 각국의 역사적 성장경로와 제약조건에 의하여 설정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래 오랫동안 경제개발 계획체제하에서 정부가 은행의 업무와 인사 등 경영 전반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여 왔기 때 문에 은행의 자율성이 저해된 한편 기업과 은행의 관계도 간접적 으로 정치‧행정의 권력을 통하거나 직접적으로 당사자간의 비정상 적 거래를 통하여 형성‧유지되는 경향이 강하였다.108)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은 이러한 특성에 연유하며 1997년말의 환란과 최근의 금융불안은 그것이 표출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 로 우리나라는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고 기업과 금융의 관계를 설정 함에 있어 단순히 특정한 외국의 제도를 모방하거나 부분적인 개 선책을 강구하여서는 안된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자본시장이 미숙한 경제에서는 은행의 자 금공급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후발자본주의국가 로서의 독일과 일본에서는 각각 겸업은행과 주거래은행의 제도가 정착되었고 이들은 부분적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109) 이것은 위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자본

107) 주요한 자본주의국가의 은행과 기업간 관계에 대한 연구는 매거할 수 없을 정도로 허다하다. 일례로 최근 Dietl(1999)은 이러한 역사적 진화의 논리를 자본시장의 비효율성에 대한 기업조직의 반응이라는 시각에서 상세히 논의 하고 있다.

108) 남상우(1994) 참조

109) Benston(1994)은 겸업은행의 유익한 성과에 대한 역사적‧실증적 분석을 개

시장의 경쟁기능을 대신하여 은행이 기업과의 지속적 관계를 통하 여 자금을 배분하고 축적된 정보를 통하여 기업의 경영을 효과적 으로 감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군과 시중은행간에는 일종의 주거래은행관계를 볼 수 있으 나 그것은 자생적‧자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하 여 외적으로 유도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거래은행의 기능과 위상 도 독일‧일본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의 주거래은행은 대규모기업군에 대한 여신관리제도에 의하여 그 기능이 부여되었 는데 이 제도가 추구하는 기업재무구조의 개선‧경제력집중 및 편 중여신의 완화‧업종전문화에 의한 산업경쟁력의 제고 등의 목표와 실적에 비추어 볼 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기업과의 개별적 관계도 부실대출의 누적 내지 ‘대마불사’의 도덕적 해이 속 에서 협력보다는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어 왔다. 주거래은행을 가 졌던 기업들은 다른 기업에 비하여 차입금리의 저렴화 및 금리변 동의 완화혜택을 받은 것에 불과하나 이것도 주거래관계보다는 차 입기업의 대규모성에 기인한 것이다.110)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금 융산업의 구조와 금융규제가 좀더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방향으로 진전하면서 기업과 은행간의 관계가 다시 설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관하고 있으며, Aoki 등(1996)은 일본의 주거래은행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 다.

110) 남상우(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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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111)

우리나라의 「은행법」은 1950년 제정된 이래 여러 번에 걸친 개 정을 거치면서 정부의 직접적 규제하에 있는 미숙한 금융산업을 대상으로 업무영역‧소유구조‧출자 및 대출한도 등에 대하여 광범 하게 규제하여 왔다. 은행법과 동법 시행령의 주요 규정 가운데 본절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112) 먼저 제15조는 ‘동일인’에 의한 금융기관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의 소유한도를 종전보다 강 화하여 원칙적으로 일반은행은 4%, 지방은행의 경우에는 이보다 높은 15%로 제한하였다.113) 이 규정은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여 은행이 특정한 동일인을 위한 실질적인 사금고로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함과 아울러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의 소유집중을 억제하 려는 목적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은행이 일 반시중은행보다 늦게 설립되었고 설립당시의 지방은행육성의 취지 를 인정하더라도 현재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소유상한에 큰 차이 를 두어야 할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또한 제35조제1항에서는 금융기관의 ‘동일차주’에 대한 여신한도 를 원칙적으로 당해 금융기관의 자기자본의 25%,114) 동조제3항에

111) 아래에서 법조문의 내용을 소개함에 있어 일부 수량적 기준은 모법이 아니 라 그 시행령에서 규정되어 있는 것이지만 논의의 전개에 지장이 없으므로 이를 일일이 적시하지 않는다.

112) 은행법의 일부 규정은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하여 다른 조건을 설정하고 있 으나 아래에서는 편의상 내국인에 대한 것만을 다루기로 한다.

113) 여기서 “동일인”은 주주 1인과 은행법 시행령 제3조에서 정하는 그의 특수 관계자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특수관계자의 범위에는 1992년 5월의 동 시행령개정을 통하여 대규모기업집단의 계열주주가 지배하는 회사 및 그 회사의 임원이 포함되어 공정거래법 제3조(기업집단의 범위)에서 규정하 는 동일인과 같게 됨으로써 종전의 법규상의 허점을 보완하였다.

114) ‘동일차주’는 동일한 개인‧법인 및 그와 신용위험을 공유하는 자로서, 여기 서 ‘신용위험을 공유하는 자’는 공정거래법상의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를

서는 동일한 개인이나 법인 각각에 대한 여신한도를 자기자본의 20%로 각각 제한하였다. 동시에 동조제4항에서는 거액여신의 총 합계액을 당해 금융기관의 자기자본의 5배 이내로 제한하였다.115) 이 규정은 제15조와 같은 맥락에서 특정한 동일인에 의한 여신집 중의 억제와 함께 은행 자체의 안전성을 보호하기 위한 위험분산 의 효과를 목표로 한 것이다. 제15조와 제35조는 각각 은행의 소 유와 은행의 여신을 규제하지만 목적이나 효과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

한편 제37조에 의하면 금융기관은 원칙적으로 다른 회사의 의결 권이 있는 발행주식(출자지분 포함)의 15% 이상을 소유할 수 없 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자회사에 대한 출자의 총합계액이 당해 금 융기관의 자기자본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 등에 한하여 금융감독위원회가 정하는 업종에 속하는 회사 또는 구조조정촉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동 위원회가 승인하면 이 상한을 초과할 수 있다.116) 이 조항의 목적은 은행이 산업부문기업의 대 주주로서 기업경영을 통제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보다는 은행의

말한다.

115) 거액신용공여란 동일한 개인이나 법인 또는 동일차주 각각에 대한 금융기관 의 신용공여가 당해 금융기관의 자기자본의 10%를 초과하는 것을 지칭한 다.

116) 은행법 제37조제1항제1호에 의하면 금융기관의 ‘자회사’는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의 15% 이상을 초과하는 주식을 당해 금융기관에 소유당한 회사이다.

한편 공정거래법 제8조의2의2항의 규정에 의하면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발행 주식의 50% 이상(1999년 4월 1일 현재 상장법인의 경우에는 30%)을 소유 하여야 한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상의 자회사주식소유상한이 금융지주회사에 도 적용되는 한 양법에서 규정한 자회사의 정의에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공정거래법 제8조의2의4항에서는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업‧보험업종 이외의 국내회사의 주식의 보유를 금지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은행법 제37조에서는 금융기관의 타회사 출자에 대하여 업종은 제한하지 않는 반면 출자의 한도 를 설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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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자산을 다변화하여 위험을 분산하고 안전성을 유지하려는 것 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은행은 은행법 제28조에 의거하여 전통적인 협의의 은 행업무 외에 신탁업무‧신용카드업무 등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함과 아울러 제31조에 의하여 단기적인 상업금융업무 외에 장기금융업 무를 겸영할 수 있다. 동시에 동법제38조제1항에서는 금융기관의 주식 등에 대한 투자의 한도를 자기자본의 6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 조항들은 은행의 업무영역을 종전보다 다소 확대하지만 아직 투자은행 내지 본격적인 겸업은행으로서의 기능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좌승희(1994)는 은행업과 증권업의 겸영 이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므로 은행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한다. 현재 겸영의 확대가 세계적 추세인 점도 감안할 때 이러한 연구결과는 우리나라의 은행의 업무영역에 대한 제한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끝으로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와 관련하여 이사회의 독립성을 통 하여 경영건전성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은행법 제22조는 금융기 관에게 3인 이상의 ‘사외이사’를 두도록 하고 사외이사의 수를 전 체 이사수의 50% 이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자격 에는 일정한 요건이 부과되지만, 동조제3항에서 주주대표와 이사 회가 각각 전체 사외이사수의 70%와 30%에 해당하는 후보를 추 천하도록 하고 있다. 앞절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우리나라의 여건으 로 보아 사외이사제도는 극히 형식적으로 구성‧운영될 뿐만 아니 라, 동조제5항에서는 주주대표가 추천하는 후보에 본인을 포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제22조에 의하여 구성되는 이사회는 실질 적으로(동일인 1인이건 수인의 연합이건) 지배주주에 의하여 통제 될 수 있으므로 경영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동조의 본 래의 취지를 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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