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는 시간이나 사람들의 체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같은 장소 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특징도 계속 변화되고 있다. 서울과 북 경도 마찬가지다. 현대에 들어온 서울은 한국의 절대적인 경제 중심지로 지속적 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도시와 달리 현대화 수준이 높은 도 시로 세계무대에서 부상하게 되었다. 반면에 북경은 중국 내의 상하이나 광주 등 대도시보다 경제적인 우세가 잘 보이지 않지만 중국의 많은 대표적인 전통문 화가 보존되어 있기에 현대적인 서울과 비교될 때 역사문화가 두터운 고도(古都) 라는 이미지가 더 두드러진다.
서울의 현대화된 이미지는 앞에 살펴본 도시 공간의 역동적인 모습과 비교하 여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울의 역동적인 모습을 자연, 경제, 문화 등 여러 면에서 포착할 수 있다. 먼저 자연적인 면에서 경복궁 혈지를 중 심으로 북쪽은 백악산, 서쪽은 인왕산, 남쪽은 남산, 동쪽은 낙산이 둘러싸고 있 어 내사산(內四山)을 이루고 강원도의 금강산, 황해도의 구월산, 제주도의 한라 산, 그리고 작성의 감악산은 외사산(外四山)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동쪽에서 서
쪽으로 흐르는 한강은 외당수이며 산들과 조합하여 서울의 풍수적인 명당지라는 뛰어난 환경을 형성하게 한다. 이와 같은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서울의 자연 환경은 정치의 문명화, 경제의 발달, 문화의 흥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었 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남산이나 한강을 비롯한 자연공간은 조선시대에 나타 난 신비적이고 탈속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일반시민들이, 특히 연인들이 좋아 하는 자연 휴식처가 된다. 뿐만 아니라 남산은 남산타워의 건립으로 서울의 랜 드마크(landmark)가 되어 한국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한강도 역시 과거 지식 인의 즐거운 유흥 장소라는 역할이 사라지고 지금 한강 근처에 있는 여의도는 금융과 정치의 중심지이자, 한국 방송의 산실로서 언론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풍수지리설을 비롯한 지역적인 정체성을 강조할 수 있는 증거를 이용 하여 왕도의 위엄과 정통성을 강조하던 고대와 달리, 이러한 현상을 더 이상 발 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작품들에서 희망적인 서울의 이미지 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수도에 대한 애착이나 자부심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1980년대에 서울에서 전 세계적인 대회를 개최한 것을 계 기로 한국 국민들은 강해진 한국의 상징인 서울에 대한 자긍심을 표현했으며 이 러한 감정에서 서울과 한강을 예찬하는 작품도 많이 등장하였다.169)
또한 유교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의정부와 육조를 중심으로 건립된 조선의 중 앙정치제도는 사라졌지만, 조선시대 최고의 정치 권력기관이 배치되어 있었던 육조거리는 오늘날 종로구 세종로를 가리키며, 지금의 세종로에도 여러 정부기 관과 대기업, 신문사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를 보면 이곳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화하였지만 여전히 과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앞에 「한양가」에 그려진 당시 서울의 경제가 발달한 도시모습을 보면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사회 경제 발전에 따라 서울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위엄 한 왕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경제 활동에 의해 공간이 재편되며 물질적인 풍부 를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칠패(지금의 용산구 청파 동 일대), 남대문, 수각다리(지금 남대문로 3가), 큰광통교(지금 남대문로 1가), 종루, 이현(지금 종로 4가 인의동)과 같은 당시 주로 상품을 유통하는 상업 장소
169) 이러한 장소이미지는 이용의 「서울」 등 80년대 나온 대중가요에서 볼 수 있다.
들이 형성되었다. 조선의 번창했던 상업거리들은 남대문시장과 같이 오늘날까지도 활기가 가득한 전통시장으로 유지되기도 하지만, 이현을 비롯해 이미 사라진 상업 구역도 있다.
또한 「한양가」의 시정모습에 관한 묘사를 통해 각양각색 물화가 가득하고 전 국 각지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들어온 셀 수 없이 많은 신기한 상품들이 모여 있 는 수도의 상업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우리는 당시 서 울의 번창한 상업적인 분위기를 느끼는 동시에 이곳이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해 이미 욕망의 장소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 생활 용품부터 외국에서 수입한 사치품까지 돈만 있으면 여기에서 충분히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의 서울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한양가」의 유흥을 즐기는 문화 공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도 당시 서울의 역 동적인 도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묘사한 조양루, 노인정, 필 운대, 군자정 등 놀이터들은 이미 사라지고 당시의 유명한 유흥장소인 '종로'나 '육조거리'는 점점 강남, 이태원 등 현대적인 신흥 장소로 대체되었다. 다행히
「한양가」에서 많은 분량을 통해 묘사한 승전놀음은 호사스러운 별감이 주최하는 놀음판인 만큼 조선시대 상층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유흥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90년대 초 강남에 거주하는 오렌지족 젊은이의 모습까지 연상하 게 한다. 이처럼 현대에 들어와서 과거와 달리 새로운 유흥문화가 등장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계층의 차이나 빈부의 격차로 인해 나타난 유흥문화의 차이가 여전 히 조선시대와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한다.
북경 역시 팔백 년 넘은 역사를 품고 지금까지 계속 수도라는 역할을 수행하 고 있으며, 현대화 도시인 서울에 비해 중국 전통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 인 고도(古都)라는 평가가 더욱 적합하다. 특히 중국에서는 북경을 흔히 '노베이 징(老北京)'이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하면 고도라는 이미지는 더욱 뚜렷해진다.
북경은 중국의 5대 고도 중에 하나이지만 다른 고도들보다 상대적으로 수도로 서의 역사가 뒤늦게 시작하는 편이다. 또한 서울문화의 정체성이 주로 조선 건 립과 성리학의 사회 주도적인 역할의 확립에 따라 점점 형성되어 간 것과 비교 해 보면 북경의 문화적 정체성은 수도로 정해지기 전, 일찍 서주(西周) 때부터
당시 북경에서 형성된 연(燕)문화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북경문화는 일 반적인 수도문화에 비해 연 문화를 포함한 더욱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다. 또한 단일민족인 한국에 비해 중국은 다민족 국가인 만큼 북경에서 통차자의 역할을 했던 집권층도 여러 민족이라는 사실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북경문화 중 에 제일 중요한 점은 바로 문화 내용의 다양성과 문화 역사의 항구성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계속 전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중심지인 서울에 비해 북경은 정치나 문화적인 성격이 경제보다 강하게 보인다. 북경은 중국의 명실상부한 고도이며 북경에만 특유한 '베이피아오'(北漂)170)라는 문화현상을 통해 이를 입증할 수 있 다. 중국에서는 북경보다 경제가 훨씬 발전된 대도시인 상하이, 광저우 등이 있 고, 이러한 곳들도 역시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북경과 마찬가지로 전국 각 지역에서부터 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북경에서만 '베이피아오' 와 같은 문화현상을 형성하는 이유는 바로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북경이 가진 커다란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문화자본 때문이다.171)
북경의 두터운 전통 문화의 분위기는 도시건설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원나라 때부터 도시설계가 시작된 북경은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의 왕도계획172) 이 론에 기초하여 도시의 독특한 지리형태와 조화롭게 건설된 것으로 그의 정체성 (整體性)과 유기성(有機性)이 잘 살아있다. 특히 등급이 엄격하고 위계가 분명한
170) 베이피아오(北漂)란 베이징에서 생활하지만 베이징 거주증(户口, 후코우)이 없는 사람들 을 의미한다. 베이징의 ‘베이’와 표류하다는 뜻의 한자가 합쳐져서 베이징에서 떠도는 사 람들을 생동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171) 이처럼 한·중 양국에서 수도를 지향적인 의식을 홉스테드(Hofstede)의 문화적 거리에서 양국의 권력거리 지수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가 제기하는 권력거리란 한 나라의 제도 나 조직의 힘없는 구성원들이 권력의 불평등한 분포를 기대하고 수용하는 정도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권력거리가 큰 사회는 정당성보다는 힘이 앞서며, 기술, 부, 권력 지위가 함께 따라다니며, 권력을 가진 자가 특권을 누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유교 문화권인 동양 문화 의 권력 거리 점수가 서양 문화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나,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 하는 한·중 양국에는 중국의 점수가 한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높은 권력거 리로 인해 양국의 수도지향적인 의식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172) 중국의 도성건설원칙은 『주례』 考工記에 잘 표현되어 있다. 요약하면, 9리 사방의 정방 형의 공간에 중앙에 궁궐, 왼쪽에 태묘, 오른쪽에 사직[左廟右社], 앞에는 조정, 뒤에는 시 장을 두고[面朝後市], 성내 9개의 남북도로와 9개의 동서도로를 내 어[九經九緯], 격자형 도로망을 설계하며, 각 방위마다 3개의 성문을 두어 모두 12 개의 성문을 둔다[旁三門]는 것이다. 이러한 도성계획에서 공간의 중심은 궁궐이다. 이와 같은 도성공간은 엄격한 상하 질서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이념을 반영하며, 권력의 齊一的 지배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