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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공간의 역동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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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에서 장소의 문제는 작가적 경험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장소의 선택과 재현의 문제는 작가의 시선과 더불어 당대 사회·문화공간의 시선 체계를 드러낸다.117) 즉, 장소이미지는 어떤 목적이나 개인에 의해 형성되는 것 이 아니며, 이는 사회 집단의 활동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판단 된다. 이는 지식인이 서울과 북경에 대해 개관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통해 포착 할 수 있다.

(1) 우월한 조건을 갖춘 정통 왕도

장소성 형성의 3 요소인 인간, 경험 양식, 물리적 환경이 각자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인간 활동은 객관적인 물리 환경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십상이다. 특히 과거의 자연환경은 항상 사람들에게 경외의 존재였기 때문에 자연환경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나 장소의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점은 왕도 의 입지 문제에서 더욱 잘 볼 수 있다.

수도라는 도시공간은 한 국가의 초창기에서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 군주관, 자 연관을 반영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좋은 곳으로 수도를 정하면 새 왕조의 정당 성을 확보하고 흔들리는 민심을 다시 안정시키는 데에 매우 유효했다. 또한 건 국 초기에는 권력자들이 수도에게 어떤 이미지를 일부러 부여하는 경우가 있었 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후대까지 이어지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 러므로 건국 초기에 나온 시가에서만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왕도

117)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편, 『장소성의 형성과 재현』, 혜안, 2010, 48면.

의 지리적인 정통성을 계속 예찬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쳔 지벽니 일월이 겨셔라/ 셩신이 광휘니 오이 되어셔라/ 쵸목 곤츙 겨날졔 인물이 번셩다/오악이 요발고 독이 광활/ 곤륜산 일지이 동로 드러올 졔/룡은 괴만리며 구뷔 몃 구뷘고/ 두산 긔 봉여 함경도 너머셔셔/ 강원도 다라셔 경긔로 도라들 졔/ 북극을 바쳣

 닷 부용을 가 닷/ 도봉의 머물너셔 층층이 오 긔셰/ 군션이 모야

 닷 아홀이 버러 닷/ 삼각산 일더셜 졔 쳔년을 경여인가/ 만년을 경영 인가 호거룡반 긔이다118)

-「한양가」

서울의 전체적인 지리 환경을 서술하고 있는 「한양가」의 시작 부분이다. 지구 에 관한 다큐멘터리처럼 하늘과 땅이 열리고 태양과 별이 생기며 오행(五行)의 원칙에 따라 만물이 나타나는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 다음으로 중국 대 부분 산의 원조인 곤륜산을 언급하면서 백두산(白頭山)도 그의 일지맥(一支脈)으 로서 조선의 땅에 와서 그의 기운을 받아 도봉산 등 산들이 형성하게 된다는 점 을 묘사한다. 이처럼 기세가 드높게 서울의 지리적 상황을 노래하는 것은 국가 를 천만년을 경영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기원을 잘 드러냈다. 특히 마지막으로 호거룡반(虎踞龍盤)이라는 풍수지리설에서 자주 나온 용어를 통해 서울은 지리 적인 조건이 뛰어난 곳이라는 것을 전달하면서 시적자아가 내부자로서의 자부심 을 드러낸 것을 엿볼 수 있다.

巍巍燕都,冀州之紘,分在尾箕,析木之精。…紫微韜約以含輝,太乙翕霅而 拱率。故望氣者踧躇輸悃,命蔔者屏營掩祝。119)

118) 천개지벽(天開地闢)하니 일월(日月)이 생겼어라/ 성신(星辰)이 광휘(光輝)하니 오행(五行) 이 되었어라/ 초목곤충(草木昆蟲) 생겨날 제 인물이 번성하다/ 오악(五嶽)이 용발(聳拔)하 고 사독(四瀆)이 광활한데/ 곤륜산(崑崙山) 일지맥(一支脈)이 동해(東海)로 들어올 제/ 행 룡(行龍)은 기만리(幾萬裏)며 구비는 몇 구빈고/ 백두산(白頭山) 기봉(起峰)하여 함경도 넘 어서서/ 강원도 내달아서 경기(京畿)로 돌아들 제/ 북극(北極)을 받쳤는 듯 부용(芙蓉)을 깎았는 듯/ 도봉(道峯)에 머물러서 층층(層層)이 오는 기세/ 군선(群仙)이 모였는 듯 아홀 (牙笏)이 벌였는 듯/ 삼각산(三角山) 일떠설 제 천년을 경영인가/ 만년을 경영(經營)인가 호거룡반(虎踞龍盤) 기이하다

119) 웅장한 연경이요, 기주(冀州)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숙(尾宿), 기숙(箕宿),미기

-盛時泰(성시태)가 쓴 「北京賦(북경부)」

이 작품은 명나라 문인 성시태(盛時泰)가 쓴 「북경부」인데 여기서도 역시 「한 양가」와 마찬가지로 작품이 시작하자마자 북경의 지리적인 뛰어남을 찬양하고 있다. 위의 내용은 명나라 제일 유능한 성조(成祖)가 세상을 떠나는 일에 대해 묘사한 것인데 명성조를 북경의 천도를 주도하는 황제로 나타내고 북경의 뛰어 난 기세를 서술하면서 성조의 현명과 천도의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 기서는 북경의 실제적인 지리 상황을 묘사하기보다는 천문적인 시각에서 출발하 여 북경을 수도로 정한 것이 정확한 결정이라고 믿고 있다는 시적자아의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과 북경의 지리적인 우월성에 대한 묘사는 위와 같은 전경(全景)식으로 묘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점경(點景)의 묘사를 통해 수도로서의 정통 성을 더욱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북악이 입수되고 죵남산 안산일다./ 쳥룡은 타락뫼요 호 길마라/ 강 원도 금강산은 외쳘룡 도여 잇고/ 도 구월산은 외호 도여 잇고/ 졔쥬 의 한나산은 외안이 도여 잇고/ 젹셩의 감악산은 후장이 되어 잇고/ 두미 월계 나린 물이 룡산  한강 되고/ 그 물줄기 나리 흘너 오두 합금

여/ 강화의 마리산이 도수구 도여셰라120)

- 「한양가」

이 부분에서는 '구체적인 지리 명칭+대응한 풍수적 역할'의 방식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서울의 지리적인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따

(尾箕)의 사이에 존재하고 있으니 한진(汉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자미성은 그의 빛을 감추고,태을성이 진감을 받아 공수하면서 공손해진다. 기운을 관찰하는 대사가 불안하여 운명을 보는 자도 황공하게 기도하고 있다.

120) 북악(北嶽)이 입수(入首) 되고 종남산(終南山) 안산일다/ 청룡(靑龍)은 타락(駝駱)뫼요 백 호(白虎)는 길마재라/ 강원도 금강산은 외청룡(外靑龍) 되어 있고/ 황해도 구월산은 외백 호(外白虎) 되어 있고/ 제주의 한라산은 외안(外案)이 되어 있고/ 적성(積城)의 감악산(紺 嶽山)은 후장(後墻)이 되어 있고/ 두미(鬥尾) 월계(月溪) 내린 물은 용산(龍山) 삼개 한강 되고/ 그 물줄기 내려흘러 오두(烏頭)재 합금(合襟)하여/ 강화(江華)의 마리산이 도수구(都 水口) 되었어라

라 서울의 북쪽에 있는 북악산은 주산(主山)이면서 현무(玄武)로 하여 남쪽의 남 산은 안산(案山)이면서 주작(朱雀)으로 하며, 낙산은 청룡(靑龍), 길마재(안현)는 백호(白虎)이다.121) 또한 서울은 이와 같은 내사산(內四山)이 있으면서도 강원도 의 금강산, 황해도의 구월산, 제주도의 한라산, 그리고 작성의 감악산의 외사산 (外四山)과 서울의 도수구(都水口)로 본 마리산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황해도처럼 익숙하지 않은 지역이 지금 북한에서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주의해 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서울은 북한산(北), 덕양산(西), 관악산(南), 용마산(東) 의 외사산(外四山), 내사산로 넓어졌고 과거의 서울에 비해 큰 변화가 있다는 점 도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풍수설을 이용하여 왕도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심정이 성시태의 「북경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西以華山爲虎,東以泰岱爲龍。南嶽南鎮,益遠益隆。五嶺作案於嶺表,江河 襟帶而朝宗。展明堂於奧海,拱朝拜於群峰。…122)

-盛時泰, 「北京賦」

'泰岱'는 태산(泰山)을 뜻하여 '南嶽'은 형산(衡山)을 말한다. 화산(華山)과 태 산(泰山)은 동서 양쪽에 호거륭반(虎踞龍盤)하는 식으로 걸터앉고 江河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북경은 임산배수의 명당지라는 특징을 쉽게 볼 수 있 다. 이처럼 서울과 북경은 좌청룡과 우백호 등의 풍수지리적 원리에 기초하여 확정되었음이 해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당지를 고수(固守)하는 것만은 수도 의 정통함을 입증하기에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므로 서울과 북경을 노래의 대상 으로 삼은 작품들에서 그들의 역사적인 정통성에 대한 설명도 찾을 수 있다.

하이 신 왕도 동의 읏듬이라/ 국호는 죠션이오 도읍은 한양일다

121) 그런데 보통 한양의 백호를 인왕산으로 간주하는데 여기서 길마재라고 하는 것과 좀 차 이가 있다.

122) 북경이라는 곳은 "용호"(용과 호랑이)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서쪽은 화산을 의거하여 호 랑이라고 하고, 동쪽은 태산을 의거하여 용이라고 한다. '남악흥산'을 남방으로 하고 거리 가 멀면 멀수록 명성이 더 높다. 오령의 문명은 령밖에 까지 전해지고 장강과 황하에서 옷 (정장)을 만들고 정장을 입고 북경에서 와서 입금을 만난다. 왕의 정권은 남해에서 시작해 서 각 지방의 우두머리들이 북경에서 입금을 찾아뵌다.

단군의 구쇽이오 긔의 유풍이라/ 의관도 화려고 문물도 거륵다123) - 「한양가」

위는 서울의 역사적인 유래를 서술하는 내용인데 '한양(서울)'을 하늘이 내린 왕도로 해동(海東)의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로 중요한 나라였다고 말 하고 있다. 여기서의 해동은 중국인이 '발해(渤海)의 동쪽나라'라는 뜻으로 불렀 는데 이를 한국 사람들도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많이 쓰였는데, 이는 해상으로 중국에 내왕하던 시대의 특징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102년(숙종 7년)에 처음으로 주조된 화폐의 명칭이 '해동통보'였으며, 조선시대 에 창작한 「용비어천가」에서도 '해동육룡이 날으셔'라는 구절이 있다. 서울을 수 도로 삼은 조선이라는 국가는 단군의 후손으로서 기자의 유풍을 받아들여 외관 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문물도 역시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때는 서울은 단순히 한 국가의 수도가 아니라 이미 위엄을 갖고 있는 나라의 상징물이 된다.

粵若稽古,帝軒都涿。高陽幽陵,宅繇北廓。堯之爲君,始於唐而建國,周封 其後,亦於薊而列爵。…遼則南京始建,而中都、大都遂代興於金、元。天將 俾於有德,於是文皇肇建爲行在。應大興之顯符,光黃唐於遐代。北平易名以 順天,旋坤軸以正乾蓋。此實天府之國,乃混一之大都會。124)

-黃佐, 「北京賦」

위의 내용은 황좌(黃佐)가 쓴 「북경부」의 시작하는 부분이다. '헌원(軒轅)'은

123) 하늘이 내신 왕도(王都) 해동(海東)의 으뜸이라/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요, 도읍(都 邑)은 한양(漢陽)일다/ 단군(檀君)의 구속(舊俗)이요, 기자(箕子)의 유풍(遺風)이라/ 의관도 화려하고 문물(文物)도 거룩하다

124) 역사를 검토할 때 "현원"는 "주록"을 수도로 하였다. '단엽'은 유영에 있고, 기타 거주지 는 북쪽으로 택하였다. 왕 '요'가 군주로 있을 때 '당'(당은 왕 '요'의 정권의 호칭이다.)에 서 건국을 시작하였다. 주무왕은 그의 후대를 봉후하고 '여지'에서 호의호식을 누리게 하 였다. …"요"시기에는 산동성 동평에서 남경을 건설하고, 중도(북경), 대도(북경)금나라와 원나라도 여기로부터 흥하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성품이 좋은 사람을 돕듯이 '주려'는 이 곳에 임시 정부를 설치하였다. "대흥"이라는 말을 따르기 위한 것이다. "황당"(황제, 당뇨, 지금말로는 '염황자손'이라고 한다.)을 부유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북평부'를 '순천부'로 개명한 것은 하늘의 뜻을 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곳은 천국의 나라라고 불리므로 천하를 통일하는 대도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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