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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에 투영된 서울과 북경의 장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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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비교하고자 한다. 악장은 궁중 전용가로 선조의 위업과 공덕을 찬양하여 각 종 제사와 연향에 음악의 반주로 노래 부르는 것을 말한다.90) 조선의 악장만큼 한 시대의 집단이념이나 세계관을 주로 담은 장르도 드물다. 악장은 하늘이 정 한 도읍지, 하늘이 정한 지형, 하늘의 명령과 도움 등 도덕적 당위나 집단적 소 망, 인간이 지향하고 천착해야 할 존재의 원리를 지향하기 때문에 자아(自我)를 세계화하는 교술(敎述)의 성격이 우세하다.91) 그러므로 조선 초기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창작한 「신도가」를 통해 서울의 장소이미지를 형성하는 당시의 집단적 인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악장의 특징을 고려하면 중국 명나라 때 성행했던 '대각체(台閣)'라는 한시 장 르가 이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대각은 당시의 내각(内阁)과 한림원(翰 林院)를 가리키는데 관각(館閣)이라고도 했다. 대각체(臺閣體)는 관각에 높은 관 직을 갖고 있는 양사기(杨士奇), 양영(杨荣), 양부(杨溥)의 삼양(三楊)을 대표로 창작하여 특정한 풍격을 가지고 있는 시가 갈래이다.92) 대각체에 속한 작품들은 역시 악장과 유사하게 상층 관료들이 창작하는 작품으로 왕초 건립의 초기에 많 이 나타나며 황은(皇恩)과 태평성대를 찬송하는 목적을 위주로 창작하였다. 이러 한 작품들을 통해 당시 사회의 주도계층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상 종합적으로 보면 악장과 대각체 시가를 살펴보면 작자층은 모두 조선과 명조의 상층 관료들이며 내용적인 면에서는 건국 초기 통치자의 위업과 덕화를 찬양하는 것이고, 기능적인 면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국 초기 불안정한 상황 에 민심을 안정시키고 태평성세의 국면을 만들기 위해 창작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편 서울과 북경의 장소이미지인 '왕도에 대한 이중적인 정서'을 서술할 때는 한국의 시조와 중국 명조의 한시를 비교할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왕조 초기에 수도를 대상으로 창작한 시가는 새 왕도의 정통성과 위엄함을 강조하기 위해 성 90) 鹹和鎭, 『朝鮮音樂通論』, 朝鮮文化叢書, 1947, 167면.

91) 이헌홍 외, 『한국고전문학 강의』, 박이정, 2012, 110면.

92) "台閣主要指當時的內閣與翰林院, 又稱爲館閣, 台閣體則指以當時館閣名臣楊士奇, 楊榮, 楊溥爲代表的一種文學創作風格." (袁行霈, 『中國文學史』, 高等教育出版社, 2010. 朱桂芳,

「以楊士奇及其詩文爲標本審視台閣體」, 重慶師範大學 碩士學位論文, 2011, 5면에서 재인 용.)

스럽고 덕화가 가득한 수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한다고 하면 왕조 의 안정기에 접어든 후 지식층이 수도에 대해 갖는 관점은 주로 개인적인 체험 을 통해 형성된다. 이때의 작품은 초기 정치적인 용도로 쓴 작품과 달리 개인적 인 시각에 입각하여 서울과 북경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더 많은 다양한 정서를 포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형성된 장소이미지는 더욱 풍부하 다. 뿐만 아니라 렐프(Relph)를 비롯한 여러 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장소이미지 를 설명할 때 개인적인 장소이미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 는 한·중 양국의 시가 장르 중 개인적인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는 한국의 시조 와 중국의 한시를 선정하기로 하였다.

시조는 조선 시대의 사대부들이 자신의 정서적 감흥을 표현하는 서정 갈래다.

경물로부터 촉발된 화자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장소와 화자 자신의 내밀 한 교류를 통해 개인적인 장소성이 형성되는 걸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중국 명 대의 한시는 당시(唐詩)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작자 개인의 시각을 통한 서정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이와 같은 큰 시대적 배경 하에 개인적인 정신세계를 주목하는 데에 시조와 한시가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서울과 북경의 도시적 공간으로서 역동적인 사회 모습을 설명할 때 한국 가사 작품인 「한양가」와 중국 부(賦)류에 속한 「北京賦」 몇 편을 선정 하였다. 「한양가」는 1844년 한산거사가 창작한 장편(총764행)의 풍속가사로서 19세기 한양의 풍경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서울의 전체 적인 지리 상황에 대한 묘사를 시작하여, 궁궐과 관아의 모습, 시전(市廛)의 풍 경, 승전(承傳)놀음을 비롯한 유흥의 공간, 능행의 장면, 과거장 풍경 등을 일일 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93) 「한양가」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동적인 장

93) 물론 이 작품에서 나온 낙관적인 분위기가 19세기 조선 정치사회의 혼란한 역사 상황과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한양가」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풍속가사로서 신분제가 해체되고 상업화가 진행되는 조선후기의 시대상을 충실하게 반영한다는 현실적인 의의와 가치가 이 미 많은 연구에서 검토되었다. 「한양가」의 현실적인 의의와 가치에 대한 논의들은 다음과 같다. (서종문, 「<한양가>와 <한양오백년가>」, 『한국고전시가작품론』 2, 집문당, 1995./

이병기, 「한양가에 나타난 서울의 모습」, 『향토서울』, 서울시사편찬위원회, 1967./ 이우성,

「18세기 서울의 도시적 양상」, 『한국의 역사상』, 창작과 비평사, 1982/ 정기철, 「한양가

소이미지를 엿볼 수 있으며 지금 이 시대와 멀지 않고 여전히 많은 유적과 사상 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의 사회적 모습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인 학 습자들은 한국 문화, 특히 전통문화를 학습할 때 좋은 재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한양가」는 가사 장르에 속하기 때문에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중국 시가 장르 를 고려해보아야 한다. 이경선의 「가사와 사부의 비교연구」는 가사와 사부가 모 두 낭송체의 문학임을 전제로 가사가 사부의 영향으로 발생하였다고 결론을 내 렸다.94) 또한 중국 문학사를 살펴보면 각 조대의 수도를 대상으로 창작한 경도 부(京都賦)들이 많다. 이러한 작품은 당시 수도의 지리적인 상황, 역사, 궁궐, 예 의와 풍속, 물산, 교통 등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조선과 가까운 시기에 처했 던 명조에도 대도시인 북경의 모습을 노래한 시가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명 중 기에 들어가 초기 수도를 찬송하는 데만 주목했던 작품과 달리, 도시적 삶의 모 습에 대한 묘사도 시가에서 큰 분량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장르적인 면에서 「한양가」와 「북경부」가 연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같은 상업경제가 발달한 왕도 중후기의 사회 풍경을 개관적 이고 상세하게 묘사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명나라 경도부(京都賦) 작품들이 충분 히 「한양가」와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로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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