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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북경의 지역문화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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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소를 더 깊이 있게 알아보기 이전에 이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서울과 북경의 장소이미지 특징을 분석하기에 앞서 먼저 지역문화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두 곳의 역사를 비롯한 지역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 하다고 생각된다.

1) 서울 지역문화 특징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서울이 85) 스키마는 인간 지식과 능력의 전체적 양상을 기초로 하는 무의식적 정신 구조라는 과정 이며 질적으로 새로운 구조를 만들도록 조직되어 온 추상적인 일반 지식을 포함한다. 스키 마가 적용되지 않으면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 학습,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김판수 외, 『구성주의와 교과교육』, 학지사, 2000, 93면.)

라는 도시는 한국인에게 단지 수도로서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된 곳이 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서울이 몇 백 년이 지나도 계속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지가 되는 이유는 '수도'이기 때문만 아니라 긴 세월에 걸쳐 그 장소 안에 형성되는 삶의 내용 때문이다.

서울의 지역적 특징은 자연과 역사로 나누어 설명해야 한다. 자연적으로 보면 서울은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사방으로 통한 도로가 발달했다. 그리고 내 부적인 환경을 보면 남북 쪽으로 북한산, 남산, 관악산을 잇는 지축(地軸)이 있 으며 동서는 한강이 흐르고 있다. 또한 『택리지(擇裏志)』에서는 서울을 '나라 안 의 네 곳으로 압축할 수 있을 만큼 산지수명한 곳으로 길에 밥을 떨어뜨린다 해 도 주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토핵이 정결하고 단단한 곳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탁월한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에서도 역시 늘 중요한 역 할을 했다. 역사 속의 서울은 한반도에 성립되는 중앙집권체제 아래에서 통치의 거점이 설정되고 조직되는 지역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86) 즉, 서울은 삼 국시대부터 서로 쟁취하고자 했던 요충지였고 모든 면에서 중심이 되었기 시작 하여 고려조에는 양주(楊洲)라 했고, 충렬왕이 한양부(漢陽府)라 바꾸었으며, 조 선왕조 대조 3년(1934)에 도읍으로 결정하고 한성부라 이름을 고쳤다.87) 이러한 역사적 전개는 서울이 가지고 있는 중심부적 위치, 그리고 권력 기두들을 담아 낼 수 있는 자연지세적 조건이 함께 맞물려 상승적으로 이루어졌다. 왕도이자 수도로서 서울의 지역성은 바로 이러한 시공간적 전개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2) 북경 지역문화 특징

북경성(北京城)은 북쪽으로 연산산맥 가운데서 소뿔처럼 양쪽으로 뻗어 나온 지형 아래 북경소평원(北京小平原)을 형성하는 곳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광활 한 화북대평원에 면하고 동쪽으로 광대한 발해만에 면하고 서쪽으로는 크게 높 이 솟은 태행산맥에 면하고 있다.88) 역사적으로 보면 수도로서의 북경은 그의 86) 조명래, 「지역으로서의 서울」, 『황해문화』 32, 새얼문화재단, 2001, 213면.

87) 이혜순, 「한시에 나타난 서울의 형상」, 『문학 작품에 나타난 서울의 형상』, 한국고전문학 회, 1994.

88) 이학동, 「북경성·자금성(紫禁城)의 형성원리: 역사·지리·경제·정치의 통사적 관점에서 고 찰」, 『주거환경』 2, 한국주거환경학회, 2011, 268면.

전체적인 역사에서 뒤늦게 시작하는 편이다. 처음으로 북경을 수도로 정한 것은 여진(女眞)족의 금(金, 1115)나라였지만 북경을 크게 번영시키지 못한다. 북경을 본격적으로 수도로 삼은 시기는 대제국인 몽고족의 원(元)나라(1206-1367) 때였 다. 원나라 뒤를 한족의 명(1368-1662)나라가 있는데,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 1368-1398재위)은 남경을 도읍으로 하였으나 3대째 성조(成祖)가 영락(永樂) 원 년(1403)에 다시 도읍을 북경으로 옮겼으며 뒤에 만주족이 건립된 청나라도 북 경을 도읍으로 삼았다.89)

북경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의 지역문화적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먼저 북경 의 역사가 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경은 일찍이 중국 상(商)나라에서 도성을 건설했다. 그리고 정치적 중심이라는 기능도 긴 시간 내에 계속해 왔다.

여러 민족정권들이 북경에서 통치를 해 왔으며, 많은 민족들이 북경에서 살았다.

이러한 역사 상황은 북경의 독특한 포용성과 다원성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곳은 상층 권력자부터 사대부들이, 권력가들이, 일반 백성들까지 같이 거주하는 장소로서 궁궐문화, 사대부문화, 사정문화 등 여러 문화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서울과 북경의 전체적인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수도로서 대단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북 경의 역사를 살펴볼 때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중국의 주체 민족인 한족이 아닌 이민족들이 건립한 나라의 수도로 발전해 왔기에 북경 문화는 여러 민족의 문화 들을 융합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것도 중국 전통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다민족 문화의 한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서울은 단일 민족인 한국의 수도이며, 예로부터 백제·고구려·신라 삼국이 쟁탈전을 벌이던 중요한 곳일 뿐만 아니라 지금의 한국문화에 커다란 영 향을 준 조선시대의 수도로서 서울문화는 한국 문화를 학습할 때 중요한 통로의 하나로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89) 김학주, 『장안과 북경-중국의 정치·문화와 문학·사상의 앞뒷면-』,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9, 61~6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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