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미지를 엿볼 수 있으며 지금 이 시대와 멀지 않고 여전히 많은 유적과 사상 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의 사회적 모습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인 학 습자들은 한국 문화, 특히 전통문화를 학습할 때 좋은 재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한양가」는 가사 장르에 속하기 때문에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중국 시가 장르 를 고려해보아야 한다. 이경선의 「가사와 사부의 비교연구」는 가사와 사부가 모 두 낭송체의 문학임을 전제로 가사가 사부의 영향으로 발생하였다고 결론을 내 렸다.94) 또한 중국 문학사를 살펴보면 각 조대의 수도를 대상으로 창작한 경도 부(京都賦)들이 많다. 이러한 작품은 당시 수도의 지리적인 상황, 역사, 궁궐, 예 의와 풍속, 물산, 교통 등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조선과 가까운 시기에 처했 던 명조에도 대도시인 북경의 모습을 노래한 시가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명 중 기에 들어가 초기 수도를 찬송하는 데만 주목했던 작품과 달리, 도시적 삶의 모 습에 대한 묘사도 시가에서 큰 분량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장르적인 면에서 「한양가」와 「북경부」가 연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같은 상업경제가 발달한 왕도 중후기의 사회 풍경을 개관적 이고 상세하게 묘사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명나라 경도부(京都賦) 작품들이 충분 히 「한양가」와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로 된다고 생각한다.
의 개국 공신 정도전이 쓴 「신도가」를 통해 당시 이와 같은 시대적인 상황을 엿 볼 수 있다.
녜 楊양州 올히여
디위예 新신都도形형勝승이샷다
開國국聖셩王왕이 聖셩代를 니르어샷다 잣다온뎌 當당今금景 잣다온뎌
聖셩壽슈萬만年년샤 萬만民민의 鹹함樂락이샷다 아으 다롱디리
알漢한江강水슈여 뒤흔 三삼角각山산이여 德덕重듕신 江강山산즈으메 萬만歲셰를 누리쇼셔 -鄭道傳, 「新都歌」96)
서울(옛 이름 한양)97) 천도 초기부터 定都의 당위성을 역설한 악장 작품은 정 도전의 신도가 외에도 권근의 <霜臺別曲>, 卞季良의 <華田別曲> 등 新都詩歌98) 류 작품이 있다. 위의 작품은 鄭道傳(?~1398)의 「新都歌」인데 이 노래는 서울로 천도한 후 지은 작품으로 서울의 지리적 특징과 왕도로서의 성스러운 모습을 묘 사하고 있다.
작품의 전반 부분에서는 고려 때 道詵의 밀기99)를 통해 서울을 조선의 도읍으 된 전설은 「무악재」의 전설, 「왕십리」의 전설, 「진흥왕 순수비」 전설 등이 있으며 「八臂哪 吒城」 전설은 북경의 제일 대표적인 전설이다.
96) 옛날에는 양주 고을이었도다/ 이 자리에 새 도읍이 아름다운 경치를 갖추었구나/ 나라를 여신 거룩한 임금께서 태평성대를 이루셨도다/ 도성답구나, 지금의 경치, (관연) 도성답구 나/ 임금께서, 만수무강하시어, 온 백성도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구나/ 아으 다롬다리/ 앞 에는 한강물이며 뒤에는 삼각산이여/ 덕을 쌓으신 강산 사이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소서 -현대어 풀이
97) 서울의 옛 이름은 한양이라고 했는데 본고에서는 전체적인 통일성을 고려하여 모두 서울 로 통칭하기로 한다.
98) 新都詩歌는 漢陽 定都를 전후한 시기가 그로부터 멀지 않은 시기에 지어진 신도 찬양의 시가들을 통칭한다. 이 속에서는 한국말 노래들과 한시들이 두루 포괄되어 현재 남아 있는 작품 수는 미미하다.
조규익, 「鮮初 新都詩歌의 文學的 性格-작자계층의 목적의식과 풍수지리적 관점의 형상화 를 중심으로-」, 『문학 작품에 나타난 서울의 형상』, 한국고전문학회, 1994, 27면.
99) 고려 숙종 때의 金譯磾가 "양주에 木覓壤이 있으니 도읍으로 정할 만하다"는 도선의 밀기 를 인용하여 숙종에게 남경 즉 한양으로 천도하기를 청하니 왕이 천도의 역사를 5년만에
로 정한다는 것은 풍수상과 잘 맞고 있음을 읊고 있다. 또한 金壽長의 시조에서 도 역시 道詵의 밀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서울의 지리적인 우세를 찬양하고 있다.100) '新都形勝'은 신도의 풍수지리적 요건을 포괄적으로 묘사하며 국가를 세우는 왕이 성대를 일으켰다는 것을 찬송하고 있다. 또한 경치가 성답다(잣다온 뎌)는 도성인 서울에서 백성들이 유덕한 왕과 백 년을 함께 즐기리라고 했다. 후 반부에서는 신도의 풍수적 입지조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알 漢江 水여 뒤흔 三삼角이여"는 "新都形勝"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可居地' 로서의 서울은 '背山臨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시적 자아가 이 시가를 통해 德重한 강산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수도 서울이 만세를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심정을 전달하면서 성스럽고 위엄을 갖추고 있는 정통 적인 수도의 이미지를 서울에 부여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양사기는 그의 시가에서 명조 초기 위엄있는 북경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天開形勢莊都城,鳳翥龍蟠拱帝京。(천개형세장도성,봉저룡반공제경) 萬古山河鍾王氣,九霄日月煥文明。(만고산하종왕기,구소일월환문명) 祥光掩映浮金殿,瑞靄縈回繞翠旌。(상광엄영부금전,서애영회요취정) 聖主經營基業遠,千秋萬歲頌升平。(성주경영기업원,천추만세송승평)101) -楊士奇(양사기), 「隨駕幸南海子(수가행남해자)」
위는 양사기(楊士奇)가 창작한 「수가행남해자(隨駕幸南海子)」라는 시가이다.
제목에는 남해자(南海子)라고 한 지명시언이 있는데 이곳은 북경에 있는 하나의 완성하였다는 것이다. (『高麗史』권 127, 「妙清傳」 …乃興近臣內侍郎中金安謀曰 吾等若奉 主上 移禦西都爲上京 當爲中興功臣 非獨富貴一身 亦爲子孫無窮之福…)
조규익, 앞의 논문, 1994, 40면.
100) 道洗이 碑峰에 올라 國都를 定올씩 子坐午向으로 城闕을 일웟는듸 左青龍 右白虎와 南朱雀 北玄武는 貴格으로 벌어잇고 前帶河 漢江水는 興天地 根源이라 太廟는 可左고 社壇은 可右로다 三峰이 秀麗니 人傑이 豪俊고 臥牛山 有德니 民食이 豐足이라 聖 繼神承야 億萬年之無疆이샷다 하 주오신 을 받들어 萬萬歲를 누릿셔 -『시조문학 사전』651 金壽長
101)개천벽지의 형세가 도성을 차장하여, 봉황처럼 날려 교룡처럼 굽이치는 산들이 북경을 둘 러싸여 있다./ 만년의 산과 강들에서 왕조의 기를 모여 있어, 하늘에서 제일 높은 데에 있 는 태양과 달까지 문명의 빛을 발하고 있다./ 상서로운 빛이 궁전 내에 가득하여, 길한 구 름이 청록색 정기(旌旗) 주변에 감돌고 있다/ 현명한 군주가 있어, 조상의 기업을 오래오 래 유지할 수 있어, 앞에서 천만년 동안 이 태평성세를 찬송해야 하겠다. -한국어로 풀이
원림이며 이를 통해 이 작품은 작가가 황제에 따라 南海子에 갔을 때 짓은 것이 라고 볼 수 있다. 시적자아가 '천개형세(天開形勢)', '봉저룡반(鳳翥龍蟠)', '만고 산하(萬古山河)', '구소일월(九霄日月)', '상광(祥光)', '서애(瑞靄)' 등 기세가 성 대하고 길한 기운이 지극히 표현하는 시언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국가 산하 의 웅장함을 지극히 노래하며 황제의 공덕을 찬송하고 있다. 양사기와 같은 태 각체의 대표작가인 양영(楊榮)이 그의 부(賦)류 작품인 「황도대일통부(皇都大一 統賦)」에서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 여 북경의 동, 서, 남, 북의 험요한 지세를 자랑하는 내용을 통해 양사기가 작품 에서 노래한 만고하산이 어떤 모습인지 잘 볼 수 있다.102)
이상 볼 수 있듯이 과거에 한·중 양국의 새 왕조를 건립할 때 나타난 '신도명 당론(新都明堂論)'은 신도시가에 반영된 작자계층의 현실적 공간의식이었고, 임 금에 대한 송도나 왕조 영속의 당위성은 그들의 현실적 시간의식이었다.103) 또 한 이러한 유교적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도참설을 통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장 소이미지는 당시 사람들에게 많이 받아들여졌으며 후대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서울과 북경의 장소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