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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 함양과 공감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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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츠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공감이 도덕성에 있어 필요 한가?’(Is empathy necessary for morality?)라는 근원적인 의문209)을 제 기한다. 그에 따르면, 공감은 불완전한 특성을 갖기 때문에 공감이 언제 나 도덕적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공감이 선한 결과가 아닌 악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프린츠는 공감이 당연히 도덕적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흄의 주장에 반대하며 다양한 반대사례들을 제시한다.210) 이를 통해 윤리적 판단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늘 언제나’ 공감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한다. 프린츠는 공감이 도덕적 영역에서 갖는 한 계를 설명하면서 공감과 도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감은 도덕적 판단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한다. 기존의 흄과 스미스를 포함한 감정철학의 전통에서는 도덕적 판단에 있어 공감을 중심에 두어 왔다. 때때로 공감은 도덕적 판단을 포함하는 핵심적인 감정의 반응이라고 여겨져 왔다. 이는 오류이다. 언급된 감정들은 도덕성의 주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었으나 이는 아주 미미한 수준의 결과를 가 져다준다. 공감이 특정한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 지만 그러한 목적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211) 209) 프린츠는 공감 그 자체가 도덕성에 있어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범주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다. 첫째, 공감이 도덕적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떠 한 의미를 가지는가? 둘째, 공감은 도덕성의 발달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셋 째, 공감은 도덕적 행위를 동기화시키는 데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그 는 공감이 위의 사항들과는 필연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말하며 공감 없이도 도덕 적 체계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10) 프린츠가 제시한 반대사례는 다음과 같다. 1.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다섯 명 을 위해 건강한 한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비록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다섯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장기 적출이 옳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2.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가정해보 자. 우리가 자원 분배에 동의하는 것은 가난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지 결 코 가난한 사람이 겪을 고통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다. 3. 자기 자신(the self)에 대해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도덕적 범죄의 피해자라고 할 때, 내 스스로의 고통 에 공감함 없이 그 상황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4. 비도덕적 행위 의 희생자가 없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피해를 입어 고통을 당하게 될 사람에 대 한 공감 없이도 우리는 탈세를 하거나 절도 행위에 대해 도덕적 옳지 않다고 판 단을 내린다. (J.Prinz(2009), 위의 글, p. 4.)

211) J.Prinz(2009), 위의 글, p. 5.

따라서, 프린츠는 공감이라는 도덕적 감정에 대한 면밀한 교정 과정이 선행될 때 도덕성에 있어 보다 나은 결과들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다.212) 공감이 도덕적 관점을 취할 때 비로소 공감이 도덕성으로 유도될 수 있 고, 도덕적 발달을 감안할 수 있으며 도덕적 동기를 촉진할 수도 있다.213)

호프만(M. Hoffman) 역시 공감은 도덕적 관심의 시초가 될 수 있지만 이것이 도덕적 관심 그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214) 호프만은 공감 을 정서적 동일시로 파악하며, 공감적 반응을 다른 사람의 상태와 동일 한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심리적 과정의 작용으로 보았다.215) 공감 의 주관적 정서의 경험은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인지의 중재에 의해 더욱 발달되고, 이에 공감적 고통은216) 부분적으로 동정적 고통으로 질적 변 환을 경험하게 된다.217) 호프만은 공감이 도덕적 관념이 되기 위해서는 공감적 고통의 질적 변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호프만에 따르면, 타인에 대한 공감적 고통은 희생자의 고통의 원인에 따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정서로 이어질 수도, 타인을 비난하거나 고통의 원인을 다른 데로 돌림으로써 고통을 회피하려는 정 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만일 희생자의 고통이나 불만족의 원인이 명확 하게 자연적 원인이거나 혹은 희생자의 통제를 넘어설 때 이는 동정적 고통으로 변환된다.218)219)

212) J.Prinz(2011), 앞의 글, p. 230.

213) J.Prinz(2011), 위의 글, p. 221.

214) Kristja'nsson, K. (2004), “Empathy, sympathy”, Justice and the child, Journal of Moral education, 33(3), p. 298. 신호재(2013), 앞의 글, p. 76에서 재인 용.

215) M. Hoffman, 앞의 책, p. 30.

216) 공감적 고통이란 공감과 개인적 고통 정서를 통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공감과 동정은 타자 지향적인 정서인 반면, 개인적 고통은 자기 지향적 정서라고 할 수 있다.

217) M. Hoffman, 앞의 책, p. 88.

218) 호프만은 가설을 통해 질적 변환에 대한 필요조건을 밝힌다. 그는 공감적 정서 의 각성과 자타의 분리된 느낌 그리고 이기적인 태도와의 갈등을 통해 질적 변환 인 동정적 고통의 정서를 경험한다. 자신에게 불편하고 높게 고통 받은 느낌과 같은 동정의 느낌이나 희생자를 위해 도우려고 하는 의식적인 경험은 동정적 고 통을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이종형, 「공감이론의 도덕교육적 함의에 관한 연구

적어도 아이들이 타인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서 느낌을 가지게 된다면, 그들의 공감적인 고통에 대한 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한 가지 가 능성은 누군가가 고통에 있어서 혹은 불편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발견하게 되면, 그들은 단순히 무시하거나 그리고 그 문제를 그들의 것이 아닌 것으 로 반응한다. 그러나 초기 인간 진화에 관한 논의와 공감적 고통은 도움과 관련된다는 연구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시하지 않고 공감적 고통에 반응 하거나 희생자를 도우려고 동기화된다. 즉, 희생자에 대한 사실적이고 추정 한 고통에 대한 정확한 느낌은 최소한 부분적으로 희생자를 위한 더 호혜 적인 관심으로 변한다. 그들 자신을 위로하는 동기는 대등하게 희생자를 도 우려는 동기로 변환된다.220)

공감적 고통에서 동정적 고통으로의 질적 변환이라고 했을 때, 여기서 동정적 고통은 분명히 도덕적 관념이다. 호프만이 주장한 동정의 개념은 친사회적 동기로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희생자의 고통의 느낌에 다 가가고자 하는 순수한 느낌이다.221) 동정은 희생자의 고통을 완화시키려 고 긍정적인 활동이 필요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속에 재현하게 함으로써 도덕적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서 사용된다. 공감 정서의 질적 변환222)은 결국 공감 그 자체가 도덕성 을 담보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준다.

국내 연구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신호재는 공감이 도 덕적 특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들어 compassion을 ‘공 감’과 구분하여 ‘도덕적 공감’으로 의역한다.223) 여기서 ‘도덕적 공감’은 타

–마틴 호프만을 중심으로」, 경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p. 62.) 219) M. Hoffman, 앞의 책, p. 95.

220) M. Hoffman, 위의 책, p. 87.

221) 이종형(2008), 앞의 글, p. 58.

222)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호프만이 공감 정서의 질적 변화에 대한 철학적 근거로서 셸러의 공감론을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는 점이다. 호프만은 그의 저서에서 “공감 적 고통에서 동정적 고통으로의 질적 변환은 막스 셸러가 주장한 대리적 정서의 뒤따라 느낌(fellow-feeling)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M. Hoffman. 앞의 책, p. 88.)

223) 신호재(2013), 위의 글, p. 24.

인이 느끼는 정서 전반이 아닌, ‘고통’의 인식에 중점을 두며 이를 줄이고 자 하는 ‘도움’의 의지와 관계된 개념이다. 예컨대, 한 사람이 길에서 돈 을 구걸하는 거지를 보며 불쌍하고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그냥 지나친다 면 이는 동정심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가던 길을 멈추고 그 거지를 도와준다면 이는 도덕적 공감을 느낀 것이다.224) 신호재에 따르면, ‘공감’

은 도덕적 판단에 있어서 선구자가 될 필요성이 없으며 따라서 공감이라 는 정서는 도덕적 판단에 있어서 근본적인 정의적 반응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225) 그는 물론 공감이 도덕성에 있어서 그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프린츠의 말대로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 이며, 호프만이 이해한 바대로 공감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인간적 관심의 불꽃이며 사회적 삶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감은 도덕성과 관련하여 상당한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 자체를 교육의 핵 심적 틀로 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고 보았다.226)

심성보 역시 공감 대신 ‘공감적 도덕성’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공감이 갖는 한계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공감은 규범적 원리라기보다는 심리 적 경험으로 한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 판단의 준거로 삼기 불충분하다. 공감이 도덕적 지위를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공감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공감적 사고를 할 때 공감적 도덕성으로 유도될 수 있으며, 도덕적 발달을 감안할 수도 있고, 그리고 도덕적 동기를 촉진할 수도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과 도덕성이 연계되는 성숙한 도덕성을 견지하 려면 공감이 도덕적 행동을 하는 데 있어, 도덕적 반응을 유발하는 특별 한 도덕적 원리와 방향과 연계되지 않으면 안 된다.227) 그가 제시하는 224) 신호재(2013), 앞의 글, p. 20 참조.

225) 이는 누스바움이 도덕적 공감을 정의함에 있어서 ‘공감’의 작용을 필수적이지 않은 요소로 규정한 것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물론 도덕적 공감 역시 도덕적 판 단 그 자체이자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공감은 그것이 가 지고 있는 이타성으로 인하여 ‘공감’과는 달리 도덕적 판단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 고 있다. (신호재(2013), 앞의 글, p. 81)

226) 신호재(2013), 앞의 글, p. 86

227) 심성보, 「공감적 도덕성의 요청과 홀리스틱 교육의 방향」, 한국홀리스틱교육 학회,『홀리스틱교육연구』, 제20권, 제1호, 2016, 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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