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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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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정의 지위

서양 철학에 있어 인간의 이성과 감정 사이에는 주인과 노예라는 이분 법적 논리가 지배적이었다.58)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이분법적 전통에 따르면, 이성은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지만 감정은 불분 명하고 혼란스러운 파악작용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는 이성에 의해 감정이 통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근세의 합리주의자들 역시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며 감정은 인간의 심리적, 생리 적 조직에 의해 경험적으로 생겨나고 현실적인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상 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정서주의적 윤리학은 필연적으로 상대 주의에 빠지게 되며, 오직 합리주의의 선천적 방법에 의해서만 윤리학의 절대적인 정초를 확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 우세했다.59)

그러나 셸러는 ‘이성’과 ‘감정’을 구분하는 이분법에 대해 근본적인 물 음을 제기한다. 이성을 감정과 대립시켜 사용한 결과 정신의 논리적 측면 에만 주목하고 정신의 비논리적, 선천적 측면에는 주목하지 못했다는 것 이다. 그 결과, 감정의 영역을 윤리학적 탐구로부터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셸러는 비판한다.

58) R. C. Solomon, “The philosophy of emotions”, Handbook of emotions (Newyork : The Guilford Press, 1990), p. 30, 이인재, 「셸러의 가치윤리학에 나 타난 가치감정에 관한 연구」, 한국윤리교육학회, 『윤리교육연구』, 제1호, 2001, p. 2에서 재인용.

59) 이을상, 『가치와 인격』 (서울: 서광사, 1996), p. 49.

이성과 감정의 구분이 …(생략)… 윤리학에 초래한 결과는, 윤리학이 그 역사에서 절대적이고 선천적이며 이성적인 윤리학으로서 형성되든가, 또는 상대적이며 정서적인 윤리학으로 형성되든가 그 둘 중의 하나였다 는 것이다. 그리하여 절대적이고 또한 정서적(감정적)인 윤리학이 존재할 수 있는지, 나아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는 전혀 묻지 않았다.60)

셸러는 이성과 감정이라는 양자택일적 이분법으로 인해 절대적이며 동 시에 정서적 윤리학의 존재여부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 적한다. 이 때문에, 감정을 오로지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 상태적 감정 으로 제한하고 감정의 고유한 작용과 그 작용의 법칙들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셸러는 파스칼의 ‘마음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Le coeura ses raisons.)’61)라는 이념을 자신의 감정철학의 단서로 삼는다.62) 파스칼은 정신의 정서적인 부분과 의욕이 이성의 논리적 영역과는 독립 적인 선천적 내실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마음은 “순수 논리학과 같이 절대적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지성적 법칙에로 환원될 수 없는 느끼는 것, 사랑하는 것, 미워하는 것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법칙성”63)으로 표현된다.

셸러는 파스칼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60) M. Scheler, 이을상, 금교영 옮김,『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 리학』(서울: 서광사, 1998), p. 260. 이후로는 『가치윤리학』이라고 한다.

61) 파스칼은 ‘심정의 질서(ordre du coeur)’, ‘심정의 논리(logique du coeur)’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심정은 인간의 이성적 측면이 아니라 정의적 측면에 관계한 다. 정의적 측면에는 느끼는 것, 의욕하는 것, 사랑하는 것 등이 있는데, 심정은 이런 모든 기능을 이행한다. 이런 기능 중 느끼고 사랑하는 것은 감정의 작용이 기 때문에, 감정이 심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심정이 질서를 갖추고 있다, 심정에 논리가 있다는 것은 감정이 질서를 갖추고 있다, 감정에 논 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스칼이 여러 단계의 감정들을 통찰하고, 그 가정들 이 위계질서를 갖추고 있음을 알고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심 정에 관한 그의 이해로 미루어볼 때, 그는 감정에도 작용의 고유한 논리 즉, 법칙 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 법칙성은 순수 논리학의 법칙처럼 절대적이지만, 결코 지성의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정의적인 법칙성이다. (금교영, 『인격주의 윤리학』(울산: 울산대학교출판부, 2001), p. 148.)

62) M. Scheler, 『가치윤리학』, p. 261.

63) 장 메종뇌브, 김용민 옮김, 『감정』 (서울: 한길사, 1999). p. 14.

체험의 유형에는 그 ‘대상들’에 이성으로 전혀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있다.

귀와 청각이 색에 대해 맹목이듯이, 이성은 그들에 대해 맹목이다. 그것은 우 리를 진정으로 객관적인 대상들로, 그리고 대상들 사이의 영원한 질서로, 이 를테면 가치들과 그 사이의 서열 질서로, 이끄는 체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 험에 함의된 그 질서와 법칙은 논리와 수학의 질서나 법칙만큼 정확하고 분 명하다. 즉, 가치와 가치 태도 사이에서, 그리고 선호 행위의 사이에서 분명 한 상호 연결이 있다. 후자는 전자의 배경 위에 건립되며, 이러한 기초 위에 서 도덕적 결정과 법칙의 진정한 정초가 가능하며 동시에 필요하다.64)

파스칼은 이성에 대한 감정의 우위를 주장하며 이 같은 경험은 우리에 게 진정한 객관적 대상들을 그리고 이들 간의 영원한 질서를 제공한다고 보았다. 셸러는 이 같은 파스칼의 견해를 계승하여 인간의 정신은 이성과 감정의 대립에 의해 한 쪽으로 귀속되어야 한다는 오래된 선입견으로부 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65) 셸러는 ‘정서적인 것의 선천주의’를 주장 하며 선천주의와 이성을 통합시켜 온 잘못에서 벗어나 양자가 별개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여기서 단호하게 요구해야만 하는 것은 정서적인 것의 선천주의이 고, 또한 지금까지 선천주의와 합리주의 사이에 놓여 있던 잘못된 일체성의 분리이다. “합리적 윤리학”과 구별되는 “정서적 윤리학”은 도덕적 평가를 반 드시 관찰과 귀납으로부터 획득하려고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경험론”이 아니다. 감지 작용, 선취와 후취, 사랑과 미움 같은 정신적 작용은 그 자체의 선천적 내실을 가지고 있고, 이 내실은 순수 사고 법칙과 마찬가지로 귀납적 경험으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사고를 다루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작용과 그 실질, 실질의 정초와 실질 연관의 본질 직관이 존재하 며, 또한 현상학적 확정의 “명증성”과 가장 엄격한 정밀성이 존재한다.66)

64) M. Scheler, 『가치윤리학』, p. 260.

65) M. Scheler, 『가치윤리학』, p. 83.

66) M. Scheler, 『가치윤리학』, p. 84.

셸러에 따르면 우리의 정서적 생활은 감지작용, 선호․경시, 사랑과 미 움 등과 같은 순수한 작용과 법칙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감성의 지각 작용이나 오성의 인식작용과는 다른 것으로, 비이성적이지만 단순히 감각 에 귀속시킬 수 없는 선천적이며 실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정 서적 생활을 통해 가치를 직관할 수 있다. 가치란 인간의 정서적 삶에 나 란히 세워진 체계이므로 인간의 심신조직과 독립한 독자적인 근원성과 합법칙성을 가진 순수한 정서작용에 의해 선천적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순수한 정서작용은 가치에 직접적이고 근원적으로 관계하는 지향적 작용 으로서 이성적 사유와 함께 정신 속에 공존한다. 이러한 정서현상은 오직 그것의 본질에 있어서만 제시될 수 있는 것으로 경험 과학으로는 결코 해소될 수 없다.67)

이처럼 셸러는 철학사적 전통에서 보여온 감정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비판하고 선천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윤리학의 원천으로서 감정의 지위를 밝히는 것에 집중한다. 때문에 셸러의 윤리학은 정서적 직관주의 (emotionaler intuitivismus) 혹은 실질적 선천주의(materialer apriorismus) 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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