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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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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러에 따르면 우리의 정서적 생활은 감지작용, 선호․경시, 사랑과 미 움 등과 같은 순수한 작용과 법칙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감성의 지각 작용이나 오성의 인식작용과는 다른 것으로, 비이성적이지만 단순히 감각 에 귀속시킬 수 없는 선천적이며 실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정 서적 생활을 통해 가치를 직관할 수 있다. 가치란 인간의 정서적 삶에 나 란히 세워진 체계이므로 인간의 심신조직과 독립한 독자적인 근원성과 합법칙성을 가진 순수한 정서작용에 의해 선천적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순수한 정서작용은 가치에 직접적이고 근원적으로 관계하는 지향적 작용 으로서 이성적 사유와 함께 정신 속에 공존한다. 이러한 정서현상은 오직 그것의 본질에 있어서만 제시될 수 있는 것으로 경험 과학으로는 결코 해소될 수 없다.67)

이처럼 셸러는 철학사적 전통에서 보여온 감정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비판하고 선천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윤리학의 원천으로서 감정의 지위를 밝히는 것에 집중한다. 때문에 셸러의 윤리학은 정서적 직관주의 (emotionaler intuitivismus) 혹은 실질적 선천주의(materialer apriorismus) 라고 불린다.

이성적 사고가 절대로 획득할 수 없는 대상 경험이다. 이는 일종의 직관 능력으로서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지각을 초월하여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런 종류의 경험은 우리에게 진정한 객관적 대상들을, 그리고 이들 간 의 영원한 질서를 제공한다. 즉,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종 류의 경험의 질서와 법칙은 논리학과 수학의 질서와 법칙같이 특정하고 정확하고 인식 가능하다. 즉, 가치, 가치 평가, 그리고 이것들 위에 세워져 있는 선취 작용들 간에는 명증적인 연관이나 충돌이 있다.69)

사물을 단계적 절차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이성과 반대로 감정 은 아무런 중간적 단계나 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사물 을 파악하는 기능이다. 즉, 감정은 매개가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직관적이 고 명증적인 인식이다.70)

셸러에 따르면 윤리적 통찰은 단순히 경험으로부터 획득하는 것이 아 니라 윤리적 명제에 대한 직관적 명증성을 요구한다. ‘직접적인 직관의 내실에 의해 그 자체로 주어지는 그러한 의미 통일 또는 명제’를 통해 우리는 가치의 본질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을 현상학적 경험 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선천적 내실은 제시될 수 있을 뿐, 증명하거나 연 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를 파악하는 감정 역시 본질직관71)에 의 해 선천적으로 주어진다.

69) M. Scheler, 『가치윤리학』, p. 261.

70) M. Scheler, 『가치윤리학』, pp. 68-75 참조.

71) 셸러는 본질직관을 충동과 욕망을 버리고 지금 여기의 현실과 속세를 떠나 영원 한 본질 세계로 들어가는 초월적이고 금욕적인 작용이라고 보았다. 이는 관찰이 나 귀납, 추리, 인과적 설명과 같은 류의 경험과 독립적이며 그에 앞서서 선천적 으로 본질을 부여하는 또 다른 의미의 경험을 뜻한다. 본질직관은 직관의 내용 즉, 현상을 그 자체로 제시하며 상징이나 기호를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현상학적 직관이며, 동시에 현상학적 경험이다. 주어지지 않는 것이 사 념되기도 하고, 직관적 내용을 넘어서서 초월하기도 하는 비현상학적 경험과는 반대로 현상학적 경험에서는 사념된 것과 주어진 것이 합치되며 이 합치 과정에 서 직관의 내용인 현상이 나타난다. 직관의 일종인 감정은 선천적 본질인 가치에 대한 본질 직관이다. (조정옥, 『감정과 에로스의 철학-막스 셸러의 철학』(서울:

철학과 현실사, 1999), p. 68.)

다음으로, 감정에는 능동적이며 지향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흔히 감정 은 외부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수동적 상태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감정에는 능동적 작용으로서 지향적 감정이 존재한다. 무엇을 느끼는 단 순한 상태적 감정(Gefühl)과 달리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느끼는 지향적 감정(Fühlen)은 이성을 대신하는 도덕의 새로운 토대가 된다. 전자는 느 껴진 것으로, 추후적 사고나 연관 맺기, 연상들을 통해 대상과 간접적으 로 연결될 수 있지만 본래적인 대상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에 반해, 후자는 감지 작용으로 이를 통해 어떤 대상이 나에게 주어지 고 나타나는 자아의 움직임이다.72)73) 셸러는 고통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 이 설명한다.

확실히 우리는 감성적 감정 상태, 예컨대 감각적 고통이나 감성적 쾌의 상태 즉, 음식, 향기, 부드러운 접촉 등의 쾌적함에 대응하는 상태를 파악하 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태 즉, 이러한 상태적 감정으로서는 아직 그 감정 을 감지하는 작용의 방식이나 양태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어떤 고 통을 받는다.”, “그것을 참고 견딘다.”, 그것을 “받아들인다.”, 때로는 그것을

“즐기기까지 한다.”고 할 때는 각기 상이한 실태가 성립하는 것이다.74)

예컨대, 마라톤에 참여하는 선수가 느끼는 호흡 곤란의 고통은 하나의 상태적 감정이다. 이 상태적 감정에 대해 선수는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해.”, “고통을 받아들이자.”, “이 고통을 즐기자.” 등 의도적으로 지향적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지향적 감정을 통해 고통의 상태가 변하는 것은

72) 조정옥, 위의 책, p. 39.

73) 이성은 표상, 사고 등을 통해서 자아와 관련하지만, 감정은 보다 일차적으로 감 지(fϋhlen)를 통해서 자아와 관련한다. 우리는 이성 작용을 자아로부터 멀리할 수 있지만 감정 작용은 자아로부터 멀리할 수는 없다. 감정은 근원적으로 자아에 부 착되어 있기 때문에 임의적으로 자아로부터 멀찍이 떼어 놓을 수 없다. 다시 말 해, 감정은 그의 내면적 성향에 따라 자동적으로 언제나 자아로 되돌아온다. 그렇 기 때문에 감정 그 자체는 원칙적으로 마음대로 지배하거나 조종할 수 없다. (금 교영(2001), 앞의 책, p. 149.)

74) M. Scheler, 『가치윤리학』, p. 261.

아니지만, 고통을 받아들이는 범위가 자유로이 변할 수 있다. 이처럼 상 태적 감정은 주어진 것으로서 존재하는 사물, 행위 등에 의해 일으켜진 것인 반면, 지향적 감정은 직접적이며 즉시 대상과 관련된 목적이 규정 된 운동이다.75) 이러한 지향적 감정은 가치를 직관하며 나아가, 더 높은 가치를 선호하고 더 낮은 가치를 경시하는 가치 선호 배척 작용을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감성적이고 의도적인 삶의 높은 단계를 구성할 수 있 다.76)

세 번째, 감정은 이성에 앞선다. 셸러는 감정이 이성보다 우월한 것이 며, 감정이 선천적 진리와 윤리적 선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셸러에 따르 면 감정은 이성적 사고에 선행하므로 인식론적으로 이성보다 우월하다.

감정 작용이 가치를 본질직관한 후에 이성적 사고가 개념화 작용을 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접할 때 먼저 그 대상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되고 그 느낌을 통해 가치를 파악하고 나서야 이성적으로 대상을 분석하거나 설 명하게 된다.77) 예컨대,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 는 그 사람의 시각적 특징을 파악하기 전에 이미 그 사람에 대한 전체적 인 느낌이 마음속에 포착되어 대응 태세를 취하게 된다. 이처럼 이성은 지향적 감정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으로 아무런 지향성 없이 갑자기 작용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게서 가치를 느낀 다음,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한다.

이성에 대한 감정의 우위는 윤리학적으로도 해명될 수 있다. 셸러에 따 르면 선이란 보다 높은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지나 행위 속에 들어 있는 가치이다. 그러므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치를 파악하는 감정이 필수 적이다. 대상의 가치를 발굴해내고 보다 높은 가치를 실현하는 운동인 사 랑은 감정 작용으로서 선을 실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78) 감정 작용을 75) 정대성, 「셸러의 칸트 윤리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

위논문, 2014, p. 33.

76) M. Scheler, 『가치윤리학』, p. 87.

77) 이인재, 「셸러의 감정 윤리학」, 『서양 근현대 윤리학』(고양: 인간사랑, 2003), p. 87.

78) M. Scheler, 『가치윤리학』, p. 88.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가치의 올바른 위계질서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 위의 전제조건이 된다. 셸러는 도덕법칙이란 선 또는 악이라고 일차적으 로 감정을 통해 느껴지고 선천적으로 직관된 것을 이차적으로 사고를 통 해 서술하는 것에 불과하다.79) 따라서 감정에 의한 진정한 도덕 인식만이 의지와 행위를 진정한 의미의 선으로 인도할 수 있다.80)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셸러에 와서 감정은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된다.

합리주의적 전통과 같이 셸러는 인간 정신이 이성과 감정이라는 상반된 두 개의 측면을 갖는다는 점과 정신은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 는 합리적 이성, 그리고 이성적으로 파악 불가능한 비논리적, 비합리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셸러의 윤리학이 기존과 차별화되는 점은 이성에 의한 것만이 객관적이고 타당한 것이 아니라 감정 의 눈과 논리로 파악한 것 역시 객관적으로 타당성을 갖는다고 본 점이다.

또한 감정은 상호 간의 영원한 질서와 관계를 맺고 있는 진정한 객관적 대상, 바로 ‘가치’들을 파악한다.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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