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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선악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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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윤리적으로 가치를 갖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감이 보편윤 리학적 근거로서 선악 판단의 능력을 지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하나의 작용이 선악 가치를 갖는다는 것과 그것이 선악을 판별할 수 있다는 것 은 별개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셸러 윤리학에 있어 선악 판단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셸러에 따르면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 인식은 가치의 연관성과 위계성 에 대한 인식이다.194) 선은 더 높은 가치로의 지향이며 악은 더 낮은 가 치로의 지향이다. 윤리적 선악은 한 상황에서 가치 감정에 주어진 선택 가능한 여러 가치들 가운데 보다 높은 가치를 선택하거나 보다 낮은 가 치를 선택함에 따라 주어진다. 예컨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났

193) 셸러의 기준 (1)과 (2)만 비교해보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감각적 공감과 단지 감정 전염에 불과한 생적 공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높은 윤리적 가치를 갖는가 는 가늠할 수 없다. 기준 (2)과 (4)를 비교해도 마찬가지로 모순이 드러난다. 만 일 A가 고흐 그림을 아름답다고 느낀 데 대해 B가 그에 반대되는 반응을 보였을 때와, A의 절망에 대해 B가 동정할 때(인격의 상태에 관계된 공감이며, 공감이 지향하는 사태의 가치에 부합되는 경우) 어느 공감이 윤리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갖는지 결정지을 수 없다. (조정옥(1999), 앞의 책, p. 105.)

194) M. Scheler, 『가치윤리학』, p. 109.

을 때, 그를 돕는 행위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외면하는 것은 낮은 가치 를 지닌다고 느낀다면 그를 돕는 것은 선이고 외면하는 것은 악이다.195) 따라서, 선악 판단의 필수 조건은 대상들의 가치와 그 가치들의 높낮이의 인식이다. 그러나 공감은 이 선악작용에 개입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공감은 가치에 대해 무분별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를 사랑한다면 잔인하게도 그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기뻐할 때, 그 가 그런 것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씁쓸해질 것이다. 반면에 단순한 공감에는 타인이 체험한 가치에 대한 분별력이 전혀 없다. 사랑과 미 움의 작용은 본질적으로 가치와 무가치를 염두에 둔다. 그러나 공감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간에 원칙적으로 가치에 대해 무분별하다.196)

타인의 기쁨이나 고통이 가지는 가치 사태와는 독립적으로, 공감 자체 가 가치 담지자일 수는 있다. 그러나 가치 자체가 공감에서 도출될 수는 없다. 가치에 대해 무지한 공감은 그 자체로 가치 인식 능력이 없기 때문 에 선악 판단을 할 수 없다. 셸러는 공감이 윤리학적 선악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선악 판단 능력이 없는 공감에 의 존하여 나의 행위를 결정한다면 행위의 선은 보장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랑을 토대로 한 진정한 공감은 선악 판단 능력을 갖는가?

그렇다. 공감 작용에 사랑이라는 별도의 가치 직관의 힘이 더해진다면 그 것은 선악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선의 가장 근원적 인 담지자이기 때문이다.197)

사랑은 선의 가장 근원적인 담지자이다. 보다 낮은 가치에서 보다 높은 가 치로 향하는 운동에서 선 가치가 가장 근원적으로 현상한다. … 사랑작용의

195) 유희진, 앞의 글, pp. 37-38.

196) M. Scheler, 『공감의 본질과 형태들』, p. 18.

197) M. Scheler, 『공감의 본질과 형태들』, p. 165.

실행 안에서 사랑하는 자 안에서 가장 근원적인 의미의 선 가치가 현상하고 빛을 낸다. 198)

따라서 셸러가 말한 사랑을 토대로 한 진정한 공감은 공감 일반과 달 리 보편 윤리학의 근거로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공 감 때문이 아니라 그 기초 토대인 사랑에 근거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다. 따라서 쇼펜하우어 등 기존 공감 윤리학에서 제시한 윤리적인 가치 일반으로서의 공감과 셸러가 말하는 공감에 대한 윤리학적 가치 부여는 완전히 다르다.199)

기존의 공감 윤리학(Sympathieethik)은 행동을 관찰하는 자의 태도에 서 도덕적 가치를 도출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도출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전제하고 출발하는 오류를 범한다. A의 슬픔에 대해 B 가 이를 뒤따라 느끼고 A를 돕고자 하는 의지를 느꼈다고 했을 때, 기 존 공감 윤리학에서는 돕고자 하는 윤리적 판단이 공감 때문이라고 전제 하지만 이는 사실 그것 안에 전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A의 슬픔에 대해 B가 뒤따라 느꼈지만 이를 바탕으로 기쁨의 감정을 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공감은 확실히 도덕적으로 무가치하 다.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공감은 공감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이 윤리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다른 요인이 있 는 것이다. 셸러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근원적으로 오직 ‘선’과 ‘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즉, 모든 개별적 작용 에 선행하여 독립적으로 ‘선’과 ‘악’을 담지 하는 것은 ‘인격(Person)’이고 인 격 그 자체의 존재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담지자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즉, 선과 악은 인격가치(Personwerte)이다.200)201)

198) M. Scheler, 『공감의 본질과 형태들』, pp. 165-166.

199) M. Scheler, 『공감의 본질과 형태들』, p. 145.

200) M. Scheler, 『가치윤리학』, p. 64.

201) 셸러의 인격가치는 인격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속하는 모든 가치들을 말한다.

셸러는 인격의 성질들은 인격의 선량함에 의존하여 변화되는 한에서 덕이라 불

셸러에 따르면 인격에 대한 사랑만이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다른 가 치들은 인격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지만 선․악의 가치는 인격과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 인격의 작용이 높은 가치를 실현할 때 만 선의 가치가 드러난다. 결국, 공감은 인격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이 보편 윤리학으로서의 가치 토대를 갖는다.

정리하자면, 공감은 선악 판단의 근원이 될 수 없다. 선악 판단의 근원 에는 가치에 대한 지향이 있어야 하는데 공감은 가치에 무분별하기 때문 이다. 따라서 공감은 타자와 타자의 느낌 속에서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할 수도 있지만 더 낮은 가치를 지향할 수도 있다. 여기서 공감을 윤리적으 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공감이 보다 낮은 가 치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보다 높은 가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잡이 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공감이 도덕적 행동과 필연적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사랑은 윤리학적 토대로 작용한다.

려지고 인격의 사악함에 의존하여 변하되는 한에서 악덕이라 불려진다고 말한다.

의지작용과 행위도 그 속에서 활동하는 인견이 함께 파악되는 한에서만 선 또는 악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인격가치는 윤리적인 의미에서 볼 때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셸러는 모든 가치는 궁극적으로 인격가치에 종속된다고 명시한다. (M.

Scheler, 『가치윤리학』, p. 12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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