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가치 인식 기능 혹은 선에 대한 의지라는 지향적 조건이 전제되 어야 한다. 그러나 공감에는 타인이 체험한 가치에 대한 분별력이 전혀 없다. 공감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간에 원칙적으로 가치에 대해 무분 별(wertblind)하다.203) 예컨대, B가 상처받음을 A가 기뻐할 때 우리가 A 의 기뻐함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태도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럼 여기서, A와 함께 기뻐함은 공감이 아닌가? 결국, 사 실적 가치 관계에 합당한 기쁨에 대한 공감만이 도덕적으로 가치가 있 다. ‘사실적 가치 관계에 합당한’ 혹은 ‘그 자체로서 도덕적으로 가치 있 는’과 같은 전제가 없이는 공감 그 자체에서 도덕적 가치 요소를 찾을 수 없다. 결국, 도덕적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공감 그 자체가 아닌 공감 외의 요소가 된다. 공감 외의 요소 즉, 선악 판단의 기제인 사랑이 전제 된 공감만이 윤리학의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타자를 이해하고 이를 뒤따라 느끼는 일련의 공감 작용은 분명 윤리학적으로 가치를 갖는다. 타자와의 관계윤리를 형성할 수 있는 중요 한 기제로서 공감은 윤리학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공감이 윤 리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과 공감이 윤리학의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은 엄 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흄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행위가 쾌락 혹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인간은 기꺼이 도덕적 행위를 할 것이라고 보았 다. 그러나 여기서 공감의 상태는 단지 도덕적 행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혹은 출발점만을 제시할 뿐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덕적 행위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행동으로 실천 되지 않는 장면을 일상 속에서 쉽게 목격하거나 경험한다. 따라서 인간 의 공감 능력 자체가 도덕 판단의 보편성을 보증한다고 보기 어렵다.
셸러에 따르면, 공감은 그것이 도덕적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다시 말해 공감이 이끄는 지원 행위 때문에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감정 작용이다.
203) M. Scheler, 『공감의 본질과 형태들』, p. 19.
공감이 가지는 이러한 가치는 그 자체로 존립한다. 즉, 공감, 특히 동정심 이 이끄는 지원행위를 통해서 공감이 비로소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 여기서 내가 지지하는 가치 부여는 당연히 이른바 (아담 스미스, 쇼펜하 우어로 대표되는 기존) 공감 윤리학의 가치 부여와는 완전히 다르다. 공감 윤리학에 따르면 공감은 윤리적인 가치 일반을 산출한다. 또한 공감이 긍정 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윤리적인 가치들이 공감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가치를 부여받는다. 204)
여기서 셸러는 ‘공감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다.’라고 밝히며 이는 ‘공 감은 윤리적인 가치 일반을 산출한다.’와는 분명히 다른 말임을 강조한 다. 공감의 본래적 의미에 집중하라는 전자의 문장과는 달리 후자는 공 감을 통해 전적으로 모든 윤리적 가치가 부여된다는 즉, 도덕성의 근원 으로서 공감을 바라본다. 셸러는 후자와 같은 입장이 갖는 태도를 강력 하게 비판한다. 공감의 본래적 가치에 집중하기보다 도구적 가치로서 공 감이 갖는 윤리학적 결과에만 집중하게 된 결과, 공감이 갖는 긍정적인 가치까지 오도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리한 공감의 윤리적 가치의 산출은 공감 작용의 올바른 이해를 막게 된다.
앞서 본고의 Ⅱ장에서 기존의 경험 과학적 공감론 및 흄, 스미스, 쇼펜 하우어로 대표되는 윤리학적 공감 연구들이 갖는 한계점을 윤리학 영역 에 있어 공감 능력의 무분별한 확장임을 지적한 바 있다. 공감을 윤리적 으로 기초 지우려는 모든 논의는 경험적이건 형이상학적이건 윤리적인 관계를 지향한다는 믿음 혹은 이념을 전제로 한다.205) 그러나 공감이 윤 리적 관계를 지향한다는 믿음은 그 한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 서 공감의 윤리적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셸러의 공감 윤리학은 공감 담론에서 흔히 범할 수 있는 공감의 윤 리적 확장에 대해 명확한 한계를 제시함으로써 공감 윤리학의 철학적 토 대를 제공한다.
204) M. Scheler, 『공감의 본질과 형태들』, pp. 144-145.
205) 소병일(2014), 앞의 글, p.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