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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기의 탈테크놀로지 영상에 관한 고찰 –거울작업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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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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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투고일_2016.02.10. 심사기간_2016.03.01.-20. 게재확정일_2016.04.08. 박현기의 탈테크놀로지 영상에 관한 고찰 –거울작업을 중심으로A Study on Park Hyun-Ki’s Transcendental Technology Art -Focused on His Mirror Works민희정, 국민대학교 대학원 Min, Hi Jung_Graduate School of Kookmin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배경 및 목적 1.2. 연구방법 및 내용 2. 거울작업의 배경 3. 영상미디어로서의 거울 3.1. 거울의 투명성과 시지각의 이중구조 3.2. 거울영상의 인터스페이스 3.3. 일회적 영상 4. 비인공적 미디어와 탈테크놀로지 영상 5. 결론 참고문헌.

(2) 박현기의 탈테크놀로지 영상에 관한 고찰 –거울작업을 중심으로A Study on Park Hyun-Ki’s Transcendental Technology Art -Focused on His Mirror Works민희정, 국민대학교 대학원 Min, Hi Jung_Graduate School of Kookmin University. 요약 중심어 박현기 거울 영상 미디어아트 탈테크놀로지. 본고의 목적은 작가 박현기의 거울작업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의 탈테크놀로지 영상에 담긴 함의를 밝히고, 그의 이러한 영상작업이 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통해 등장하였음을 논증하는 것에 있다. 그의 작업들은 단순히 비디오아트로서 구분할 수 없는 지점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것은 그의 작업들이 서구에서 시작된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예술 적 시도들과는 차별화된 것으로서 ‘예술적 창작에 있어 자연과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테크놀로지가 추구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적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탈테크놀로지 영상은 그가 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탐색을 바탕으 로 이것과 우리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을 작품의 중심에 둔 작업방식이자 그의 미디어 철학과 미학적 지향을 드러내는 조 형논리이다. 이것은 그 형식에 있어 자연 혹은 비인공적 사물과 테크놀로지 미디어가 결합된 이중구조를 지니는 것이 특 징으로, 거울작업에는 그가 미디어의 본질에 대하여 통찰한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박현기는 거울이 대상을 매개하는 수 동적인 사물이 아닌 영상을 구현하는 능동적인 미디어로서 바라보고 설치작업을 통해 거울에 움직이는 영상을 구현하였 다. 그리고 거울의 영상을 비디오로 재매개 함으로써 거울과 우리의 관계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그는 우리가 재생되지 않는 거울의 영상과 일시적 관계를 맺으며 분절하여 기억했던 이미지들을 비디오를 통해 연결시킴으로써, 우리 가 거울의 영상과 상호작용하여 의식을 새롭게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는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의식을 구 축하는 방식에 대하여 고찰함으로써 미디어가 우리의 존재성을 깨닫게 하는 도구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박현기는 탈테크 놀로지 영상을 통해 물질에 대한 관념에 얽매인 우리 의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제안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focuses on the mirror works of Park Hyun-Ki as a media artist, in order to determine the. Keyword. background and meaning of these pieces in transcendental technology art, and to demonstrate that. Park hyun-ki Mirror Moving Image Media Art Transcendental Technology. his moving image work has emerged through insight into the nature of the media. There are many points in his works that cannot be classified as simple video art. This is because the works are differentiated from artistic effort based on a contemporary technology started in the West, and they contain the philosophical intention of the artist that the works have been pursuing technology with harmony between Nature and the world in these artistic creations. In these transcendental technology works, he put explor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edia and the audience into the motives of the work, and selected not only the way to gain insight into the media in general, but also injected the visual logic revealing his media philosophy and aesthetics. The formal characteristics of the works have a dual structure, a combination of natural or non-artificial objects, with the technological media. Especially in the mirror works, he revealed clear insight about the nature of the media. Through the installation work, he implemented a temporal moving image in the mirror, not considering it a passive thing mediating objects, but as an active medium realizing the moving image. In addition, he explored objectivel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irror and audience perception by remediating the moving image of the mirror with video. He enabled us to link the segmentally memorized images having a temporal relationship, with the moving image of the mirror that does not replay. As a result, he awoke to the fact that we are becoming newly conscious by interacting with the moving image of the mirror. He examined the way we build our awareness through the media, and tried to prove that the media is a tool for achieving our existence. In the transcendental technology art, he induced the transformation of our consciousness that has been tied to the substance and the idea, and proposed various new ways of communication..

(3) 1. 서론 1.1. 연구배경 및 목적 박현기는 한국에서 전기미디어가 일상화되기 시작하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영상작업을 시작했다. 그 는 산업사회의 새로운 미술형식으로 등장한 영상을 주목하고 비디오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업들은 비디오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비디오아트로서 구분할 수 없는 지점들이 다수 존재한 다. 그것은 서구미술에서 나타난 뉴 테크놀로지의 기능을 활용한 예술적 탐색이나 예술작품에 대한 기록의 목적, 그리고 뉴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주목 등과는 다른 관점으로부터 접근되었던 것 이기 때문이다. 첫 비디오작업을 발표한 이후 그는 비디오를 활용하고 TV 모니터를 전면에 등장시켰 지만, 그 영상은 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내는 화려한 영상이 아닌 정지된 이미지에 가깝거나 내용의 구 성과 변화가 극히 적은 영상이었다. 또한 그가 작품에 등장시킨 수면(水面), 유리, 금속, 거울과 같은 사물들은 테크놀로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대상들로, 이러한 재료선택은 독특한 작업방식과 작품의 형태로 이어졌다. 박현기의 작품세계는 그동안 1970년대 단색화로 표출된 한국적 모더니즘 또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정서에서 출발한 비디오작업으로 해석되면서 1960-70년대 서구 미술의 현장에서 탐색되었던 미니 멀리즘, 아르테포베라, 그리고 장소 특정적 미술로 연결되었다.1) 또한 작품의 형태는 ‘동양적 비디 오’라는 수식어와 함께 윤회사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조선시대 문인화에 비유되었다.2) 그 러나 이원곤은 박현기의 작가노트를 통해 그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가들의 해석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작업세계를 진행하였음을 밝히며, 그가 비평가들의 일부 견해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내 용을 근거로 그 동안의 해석적 접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3) 그는 박현기의 대표작 <비디오 돌 탑>을 재고하며, 박현기가 “영상, 그 허구의 리얼리티를 자연의 환경과 소재들을 병치시키는 방식을 통해 관객들을 실재와 가상, 자연과 인공의 경계영역으로 인도했다”고 보았다.4) 또한 본 연구자는 박현기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적 해석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오리엔탈리즘과 이분법적인 접근에 대하 여 문제를 제기하고, 그가 영상과 우리 시지각의 관계를 중심으로 미디어의 근원적 특성과 논리를 탐 색하여 탈테크놀로지 영상미학을 추구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탈테크놀로지는 인본 주의를 통해 급속히 발전한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초월하여 인간의 창작의지와 기술이 자연과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추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탈테크놀로지 영상은 자연 혹은 비인공적 사물 과 테크놀로지 미디어를 결합하여 이중구조를 지니는 형식으로 인간중심적 테크놀로지에 대한 대안 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연구자는 이러한 영상작업이 자연과 테크놀로지, 전통과 현대의 균형과 조화 를 강조하며 관람자와의 소통을 추구한 그의 미학적 지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5) 미디어아트 작품은 미술영역의 내부에서 미학적, 미술사적 맥락에서 연구되는 동시에 미디어 이론 을 통해 작품에 등장하는 미디어의 특성을 살피고 이것과 연결되는 예술형식, 구조, 공간, 그리고 감 상자와의 관계 등이 함께 고찰되어야 한다. 그것은 미디어아트가 예술작품을 작가 개인의 미학적 사 유나 감성을 드러내는 대상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작가와 관람자가 상호작용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본고는 박현기의 거울작업에서 이러한 측면을 고찰하여 선행연구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던 탈테크놀로지 영상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키고자 한다. 본고가 거울작업을 주목 한 이유는 그가 선택한 비인공적 재료들이 미디어로서 기능하는 지점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작업의 구조가 영상설치작업과 비디오작업으로 뚜렷이 나누어져 있어 기존의 테크놀로지 작업과 차별화된 탈테크놀로지 영상의 형식적 구조와 특성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본고는 그가 미디어와 우리 지각의 관계성, 더 나아가 이러한 관계적 체험이 우리의 의식과 연결되는 문제를 작품의 중심에 두었 1) 김홍희, 「박현기의 한국적 미니멀리즘 비디오: 사이트 특정성과 정신성」,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 서울: 눈빛출 판사, 2011을 참조. 2) ‘동양적 윤회사항’에 의거한 해석은 정준모, 「사유하는 텔레비전-다시 읽는 박현기」, 《박현기 유작전 - 현현 전》도록, 대구문화예 술회관, 2008, 같은 저자, 「옐로칩 미술가 순례 ⑩ 박현기」, 신동아 (2008년 11월호)를 참조. 박현기 작업의 명상적 측면을 문 인화에 비유한 해석은 오광수, 《박현기 개인전》도록, 서울: 박영덕 화랑, 1996을 참조. 3) 「박현기의 ‘비디오 돌탑’에 대한 재고: 작가의 유고를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 (Vol. 12 no. 1), 2011, p. 450. 4) 앞의 논문, p. 458. 5) 연구자의 논문, 「박현기 미디어 작업에 대한 소고: 1978년부터 1982년까지의 초기 작업을 중심으로」, 『미술이론과 현장』(제19 호), 2015, pp.71-79.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15.

(4) 으며 비인공적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미디어를 연결하여 미디어의 본질적 측면을 통찰하였음을 논증 하고자 한다. 1.2. 연구방법 및 내용 본고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 박현기의 탈테크놀로지 영상의 함의를 고찰한다. 첫째, 그가 영상작 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초기 작업의 진행과정을 중심으로 거울작업의 등장배경을 살펴본다. 둘째, 영상미디어로서 거울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본고가 주목한 거울작업의 형식적 측면을 분석하여 탈 테크놀로지 영상작업의 구조와 특성에 대하여 이해를 갖도록 한다. 이는 먼저, 거울과 테크놀로지 미 디어와의 공통된 특성 가운데 우리의 시지각의 구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디어의 투명성과 영상과 감상자의 관계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인터스페이스(interspace)를 고찰한다. 다 음으로 거울영상이 테크놀로지영상과는 구별되는 가장 큰 특성으로서 거울영상의 일회성을 주목하 여 상반된 두 미디어의 특성이 복합된 탈테크놀로지 영상의 독자성을 살펴본다. 셋째, 거울의 재료적 특성을 고찰하여 자연의 원리가 변형되지 않은 비인공적 미디어의 개념을 도출함으로써 박현기의 탈 테크놀로지 영상이 함축하는 미학적 배경과 의미들을 살펴본다.. 2. 거울작업의 배경 1978년 박현기는 대구에 있었던 K스튜디오에서 목조건물의 진동으로 흔들리던 수면의 영상을 주목 했다. 그는 손가락을 휘젓는 물리적 동작을 통해 변형되는 물성과 이러한 물리적 현상이 사라지면서 다시 되살아나는 수면의 영상에 영감을 받아 <무제(이하 첫 비디오작업)>(1978)을 제작하였다.6) 이 작업이 관련된 한 장의 사진(그림1)은 그가 당시 작업을 통해 주목했던 현상들에 대해 알려준다. 사진 에는 TV와 물을 담은 대야가 위, 아래로 나란히 놓여있는데 상단의 TV의 화면에는 비디오카메라로 촬 영한 전등의 영상이 보이고, 그 앞쪽 하단에 놓인 대야의 수면에는 TV가 비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두 사물, TV와 대야의 수면은 서로의 형상을 매개하여 영상으로 드러낸다. 즉 박현기는 자연물인 수면과 테크놀로지 미디어인 비디오가 공통적으로 대상을 매개하여 영상을 드러낸다는 점 을 주목하고 그 관계성을 고찰하기 위해 두 대상을 나란히 놓아 사진으로 기록했던 것이다.7) 그가 이 시기 어떠한 점을 주목했는가는 1981년 개인전 의 「작가의 말」에서 “(자신이) 선택한 재료물, 사물들이 직접적으로 작업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물들과 영상으로 투영된 사물, 즉 비디오 혹은 카메라 와 어떠한 관계성을 가지는가?”라고 서술했던 부분을 통 해 드러난다.8) 또한 그가 이 개인전에서 자신이 주목한 대상을 매개하여 영상을 드러내는 사물과 비디오의 관계 성에 대한 탐색을 작품으로 발표했다는 것은 이러한 관심 이 일시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것 을 말해준다. 즉 그는 1978년 <첫 비디오작업>을 제작할 무렵부터 적어도 1981년 거울작업 <도심을 지나 며>(1981)를 발표할 때까지 영상을 드러내는 사물과 비 디오의 공통점, 그리고 관람자와 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탐색을 작품의 중심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이는 이 시 기에 발표했던 다수의 설치작업들에서 그가 작품의 소재 로서 대상을 매개하여 영상을 드러내는 사물들을 공통적 <그림 1> <무제(첫 비디오작업)> 관련 사진, (1978), 국 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으로 선택했던 점, 이러한 사물에 영상을 구현했던 점, 그 리고 설치를 통해 구현한 영상과 비디오와 연결시킨 점에. 6) 박현기 작가노트,《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5, p. 84. 7) 연구자의 앞 논문, pp. 62-64. 8) 박현기, 「작가의 말」, 《맥향화랑 초대: 박현기 전》브로슈어, (대구: 맥향화랑), 1982. 116.

(5) 서 그의 일관된 탐색의 방향성이 확인된다.. <그림 3-1> <무제(투명 돌탑작업)>관련 드로잉(1978), <그림 3-2>, <그림 3-3> 같은 해 제작된 드로잉 작품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현기는 <첫 비디오작업>의 전작인 작품 <무제(이하 투명 돌탑작업)>(1978)(그림2)을 통해 처음 <그림 2> 박현기, <무제(첫. 으로 투명한 사물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투명 돌탑작업>은 돌들이 수직으로 쌓여 있는 형태로 불. 돌탑 작업)>, (1878). 투명한 돌들 가운데 투명한 재질의 유리 또는 합성수지로 만든 돌이 그 가운데 끼워있는 형태이다.. 《박현기 전》 (서울화랑,. 이 작업과 관련된 드로잉작업(그림3-1)에는 돌의 그림자 역시 투명하게 표현되어 있다.9)(그림. 1978) 출품작.. 3-2), (그림3-3) 더욱이 그가 작업노트에 “투명한 것은 바위도 공중에 띄운다”고 적었던 사실에서, 그가 투명한 사물이 빛과 관계하여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을 새롭게 전환시킨다고 보고 그 관 계성에 대해 고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0) <투명 돌탑작업>를 발표한 이듬해 그는 투명한 돌을 비 디오영상이 담긴 TV로 치환한 작품 <무제(이하 비디오돌탑)>(1979)을 발표 하였다.11) 이것은 그가 TV를 통해 드러나는 비디오영상에서 투명성을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편으로 투명함이 영상 처럼 관람자의 의식을 다른 시간과 공간의 세계로 이동시킨다고 보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점이다. 즉, 박현기는 사물의 투명성과 불투명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기에 사물이 드러내는 영상과 비디오라는 테크놀로지영상의 공통점과 관계성을 주목하고 이를 탐색하면서 영상이 본질적으로 투 명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리고 그 투명성이 우리의 의식을 전환하는데 어떠한 매질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는 ‘영상이 새로운 대상과 공간을 불러들여 우리의 의식에 새로운 변 화를 일어나게 한다’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얻기 위해 대상을 매개하여 영상을 드러내는 사물들을 선택하고 여기에 영상을 구현함으로써 우리의 의식이 전환되는 구조를 고찰해 나갔다. 따라서 그는 영상을 즉각적으로 불러옴으로써 투명한 특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거울을 주목하게 되었다.. 3. 영상미디어로서의 거울 인류가 대상을 투영하는 물질적 특성을 발견했던 것은 수면(水面)을 통해서였다.12) 그러나 수면은 대상의 형태를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상(像)을 얻기 힘 든 물성을 가지고 있었다. 빛과 파동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인류는 현존하는 대상을 정확히 드 러낼 수 있는 또 다른 미디어를 갈망하였으며 거울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울은 인간이 스스 로가 그 원리를 개발해 낸 발명품이 아니라 대상의 형상을 매개하는 물질의 발견을 통해 등장한 사물 이다. 고대유적에서 발굴된 거울의 초기형태는 광택 있는 돌이나 청동, 구리, 은과 같은 금속의 표면 을 매끄럽게 하여 만든 것이었다.13) 그것은 인간이 유리질을 지닌 돌이나 금속이 대상을 투영하는 9) 1978년 4월에 제작한 드로잉에(그림 3-1)는 <투명 돌탑작업>의 작업에 관한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같은 해 드로잉(그림3-2), (그림3-3)에는 유리판과 같은 투명한 사물을 돌과 함께 등장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시기 제작된 그의 드로잉에 는 돌과 투명한 유리판이 그려져 있고, 그가 ‘투명’이라고 써놓은 글씨 또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해 6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 린 《제4회 에꼴 드 서울 전》에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앞의 도록, pp. 78-81. 10) 박현기는 작가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돌이 둥실 떠 있는 풍경을 상상하곤 했다. 내 나이 50인데도 그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떠 있는 돌을 생각하면, 나는 어느새 높이 떠 돌 반대편의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투명한 것은 바위도 공중에 띄운다. 투명한 것은 내 맘도 띄운다” 이원곤, 『존재를 향한 이중시선과 구성주의: 비디오아티스트 박현기 , 한국예술문화 위원회 아르코미술관, 2014, p. 67, 재인용. 11) 앞의 책, p. 61. 12) Melchior-Bonnet, Sabine, Jewett, Katharine, The Mirror: A History, Routledge, 2002, p. 11.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17.

(6) 사물의 특성을 발견하고 이러한 특성을 확대하여 어떠한 형상과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로서 변환하 였음을 의미한다. 인류는 거울을 통해 수면에서 얻을 수 없었던 뚜렷하고 안정된 상을 확보하게 되었 다. 특히 수면은 자신의 위에 위치한 대상만을 영상으로 만들어 내지만 거울은 각도조절을 통해 다양 한 대상의 매개가 가능했다. 그러므로 거울은 카메라처럼 주체의 의지에 따라 영상의 내용이 변하는 미디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거울은 이동과 설치가 용이하기 때문에 수면에서 얻을 수 없었던 다양한 대상과 공간을 즉각 적으로 불러들인다. 이러한 거울의 즉시성(immediacy)은 이것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선을 집중시 킴으로써 관람자의 의식과 영상과 직접 상호작용하도록 만든다. 무엇보다도 거울은 인간의 시야의 범위를 벗어난 장소, 즉 움직임을 통해 확인해야 하는 시각적 공간, 이를 통해 달라지는 순간이라는 시간적 차원의 대상을 지금, 여기로 환원함으로써 인간의 지각을 확장한다. 이는 한편으로 거울이 영 상미디어로서 우리의 의식을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미디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거울은 감상자 가 속한 장소의 대상과 공간을 즉각 매개하기 때문에 그 영상은 수용자에게 강한 현전감을 전달한다. 또한 거울은 일반적으로 수직적인 형태로 설치됨으로써 우리의 시선과 마주하며 즉시성이 더욱 강화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가상의 이미지와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자신의 눈높이에 서 지각되는 영상을 자신이 직접 바라보는 시각세계로 인식하며 영상의 내용과 상호작용한다. 일상 에서 거울을 접하는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거울의 관람자는 자신이 매개됨과 동시에 이것이 거울이라 는 사물성을 쉽게 깨닫는다. 즉 관람자는 거울영상의 내용과 상호작용하는 동시에 거울의 존재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지각이 거울의 사물성이나 영상미디어로서의 투명한 특성에 익숙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거울은 우리의 시지각과 오랫동안 관계해 왔으며 우리의 의식에 깊 이 관여해 온 미디어이다. 3.1. 거울의 투명성과 시지각의 이중구조 작품 <무제(이하 물 반사작업)>(1979)(그림4)은 강 속에 대형거울을 수직으로 설치한 작업과 이를 사진과 비디오영상으로 재매개한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의 수면은 <첫 비디오 작업>에 등장하 는 수면과 같이 대상을 매개하여 영상을 구현하는 물성을 지닌다. 그러나 주지한 바와 같이 강의 수 면은 <첫 비디오작업>에서처럼 손을 휘저어 만들었던 물리적인 힘의 개입이 필요치 않은 대상이다. 박현기는 이러한 장소성이 가지는 비결정적 요소들이 개입되는 공간에서 수면과 또한 수면처럼 현존 의 상황을 즉각 매개하면서도 물성의 변화가 없는 거울이 함께 만나도록 하였다. 그는 우리의 시선과 수평적으로 위치한 수면과 일반적으로 수직으로 설치되는 거울이 만들어 내는 영상이 교차되는 지점 을 보여줌으로써 관람자가 양자의 영상과 상호작용하도록 하면서도 서로 다른 (사)물성을 인식하도 록 유도했다. 우리는 박현기의 거울작업에서 미국의 미디어이론가 제이 볼터(Jay Bolter)와 리처드 그루신 (Richard Grusin)이 1990년대 후반 발표한 그들의 저서 『재매개(Remediation)』에서 주장한 세 가 지 논리들이 모두 구현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이론가들은 미디어가 발전, 확장되어 온. <그림 4> 박현기, <무제(물 반사작업)>(1979), 비디오영상 스틸 컷, 《박현기 비데오 전》(한국화랑, 1979),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 센터 소장. 13)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거울로 알려진 거울은 기원전 6000년경 제작된 것으로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청동기시대 이후 다 양한 금속을 이용한 거울이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유리거울은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된 적이 있으나 본격적인 등장은 12세기에 이 르러서이다.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pp. 963-964. 118.

(7) 것에 대한 역사적 측면을 살피면서 다양한 현대의 미디어의 재매개적 특성을 탐색하였다.14) 그 가운 데 그들은 ‘투명한 비매개의 논리’를 설명하며 “투명한 인터페이스는 그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이며 이에 따라 이용자는 더 이상 미디어를 대하지 않고 그 대신 미디어의 내용과 즉각적인 관계를 맺는 다”고 하였다.15) 즉 미디어의 수용자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에 몰입하는 동안 책, TV, 컴퓨터와 같은 미디어의 사물성을 잠시 잊는다. 미디어는 투명한 상태가 되어 우리의 의식에서 사라지고, 수용 자는 미디어의 내용과 같은 공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하이퍼매개의 논리는 중첩, 상호침투, 병치, 지움, 다중화 등의 형식을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그 매체의 사물성을 상기시키거나 인식하도록 만드는 속성을 말한다.16) <물 반사작업>의 설치작업에서 거울의 화면은 흐르는 강의 형상을 매개하여 마치 비디오화면을 보는 것과 같은 체험을 제공한다. 감상자는 영상의 내용에 집중할 때 자신이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을 잠시 잊는다. 즉 거울의 존재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투명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면과 거 울은 동일한 시각적 공간에 놓임으로써 각각의 존재성을 드러낸다. 거울은 강의 형상을 불러들이며, 강은 거울과 같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거울의 형상을 불러들여 서로의 형태를 매개함으로써, 관람자 가 두 대상의 (사)물성을 환기하도록 만든다. 즉 작품에는 사물성과 투명성이 상호침투 함으로써 나 타나는 하이퍼매개의 논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거울이 영상을 구현하는 미디어이자 하나의 사물로서 그 존재성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시지각과의 관계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의 의식이 영상을 드러내는 거울의 존재를 투명하게 인식하고 영상 의 내용과 상호작용하는 순간, 거울은 미디어로서 기능한다. 반면 영상과의 상호작용을 멈추고 거울 의 존재성을 인식할 때 거울은 현존하는 사물이 된다. 즉 거울은 영상과 관계하는 우리 시지각의 구 조가 이중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상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 된 바 있다. 정신분석이론가인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이러한 구조를 인식하고 정신분석학과 연결하여 응시(Gaze)의 개념을 도출하였고, 미디어아트 작가이자 이론가인 로이 애스콧(Roy Ascott)은 미디어와 우리 시지각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하여 이중시선(Doble Gazing)과 이중의식(Doble Consciousness)의 개념을 내놓 았다.17)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볼터와 그루 신의 매개논리 또한 우리의 시지각의 이중구조에 대한 이해의 바탕이 있었기에 등장이 가능했다. 박현기의 영상설치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조형논 리 역시 미디어와 우리 시지각의 관계성을 고찰하 여 그 이중구조를 근본으로 삼는다. 초기작품 <비 디오 돌탑>은 돌을 수직으로 설치한 가운데 비디 오 영상을 담은 TV모니터가 끼워진 형태의 작품 이다. TV는 돌의 영상을 불러오는 미디어로서 우 리의 의식과 상호작용하여 투명한 특성을 드러낸 <그림 5> 박현기, <우울한 식탁>(1995), 《환류-한일현대미술 전》 (일본 나고야시립미술관, 1995)출품작.. 다. 그러나 영상이 사라지면 TV는 현존하는 사물 로서 돌들과 같이 불투명한 사물이 된다.18) TV에. 14) 그들은 실재적인 것을 투명하게 표상하는 비매개(immediacy) 논리와 다중의 미디어가 이것이 표상임을 환기시키는 ‘하이퍼매개 (Hypermediacy)의 논리, 그리고 미디어들이 또 다른 미디어로 매개되면서 새롭고 다양한 복합요소들의 나타내는 재매개의 논리 를 주장하였다. 15) J. Bolter, R. Grusin, Remediation, MIT Press, 2000, pp. 24-36. 16) 앞의 책, p. 44. 볼터와 그루신은 ‘하이퍼매개의 논리가 미디어의 수용자가 복수의 미디어와 관계할 때, 혹은 이질적인 공간이나 다양한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모순적인 논리공간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 논리는 시각공간을 매개된 것으로 간주할 것인지 아니면 매개 너머 에 있는 실제적 공간으로 간주할 것인지 양자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앞의 책, pp. 33-41. 17) 애스콧은 이중시선은 ‘하나의 주체가 같은 대상에 대한 두 개의 시선’을 말한다. 이중시선은 이중의식과 연결된 개념이다. 그는 이중의식을 “두 개의 분리된 경험 영역에 대한 동시적 접근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하나의 주체가 완 전히 구별된 두 개의 다른 경험분야에 동시에 접속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로이 애 스콧, 「이중시선, 예술, 그리고 초월의 기술」, 『테크노에틱 아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pp. 159-167. 이원곤, 「역자해설」, 같은 책, pp. 220-221.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19.

(8) 영상이 나타나는 동안에도 관람자는 영상과 돌이 함께 구조화된 조형물과 관계를 맺으며 현존과 가 상을 오가는 경험하게 된다. 또한 그의 후기 작업인 작품 <반영>시리즈(1997)나 <우울한 식탁>시리 즈(1995)(그림5)에서는 이러한 이중구조에 대한 문제가 작품 감상의 중심이 된다. <우울한 식탁의 경우> 커다란 접시를 연상시키는 오목한 원판에 놓인 하얀 석고 조각들은 빔 프로젝터에서 수직으로 투사하는 영상 때문에 그 형태를 감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형태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다보면 영상 의 내용은 우리 의식 속에 남지 않고 스쳐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처럼 그는 우리가 영상작품을 감상 하면서 나타나는 우리의 시지각의 구조가 두 층위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그리고 이러한 우 리의 시지각이 교차적으로 반응하거나 두 층위가 거의 동시에 접속되는 상황들을 구현함으로써 영상 의 새로운 체험들을 제공하였다. 3.2. 거울영상의 인터스페이스 <물 반사작업>은 우리 지각의 이중구조가 새로운 의식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지점 들을 보여준다. 주지한 바와 같이 <물 반사작업>의 거울 설치작업에서 수면과 거울은 그 사물성과 투 명성이 매우 빠르게 교차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작품 속에서 거울은 대상을 즉각 매개함으로써 장소 성이 개입되는 다양한 현상을 시시각각 드러낸다. 감상자는 두 대상의 사물성을 환기하여 현존의 상 황을 인식하면서도 수면과 거울에 빛과 물결이 개입하여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영상에 몰입하는 현 상, 즉 인터스페이스에 놓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터스페이스는 애스콧이 이중시선과 이중의식을 바탕으로 도출한 개념으로, 그는 “리얼리티가 재 처리되어 새로운 의식이 구체화되는 가상과 현실 사이의 공간”이라고 정의했다.19) 애스콧은 “모든 감각이 제어된 환경에 몰입함으로써 마음에 새로운 개념적이고 새로운 감각적 구조(new qualia)의 형성을 자극하거나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며 동시에 우리는 몰입하고 있는 시각적 경험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다시 현실의 영역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주장하였다.20) 즉 애스콧은 대상을 접 하는 우리의 지각이 그것과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만들며, 이는 현실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우리의 지각의 이중구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역시 작가이자 이론가인 이원곤은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 개념을 설명하였다. 애스콧의 저서를 번역했던 그는 인터스페이스를 “현실의 공간과 가상공간을 동시에 보고 의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았다. 그는 비디오설치 작품의 감상공 간에서 “영상은 설치조형물 및 주변 환경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며, 그 실재공간과 혼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영상이 설치물 및 공간과 상호침투하면서 가상과 현실이 분리되지도 합쳐지지 도 않는 경계선상에서 경험된다”고 하였다.21) 이원곤은 이러한 인터스페이스의 개념을 다양한 미디 어의 등장과 이러한 미디어와 지각하는 감상자 간의 거리의 문제를 주목하여 ‘인터리얼리티 (interreality)’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그가 말하는 인터리얼리티란 ‘미디어의 감상자가 가상과 현실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의 공간에서 우리의 지각을 통한 의식이 두 공간을 왕래하면서 가지게 되 는 다양한 경험의 세계’를 뜻한다.22) 즉 애스콧이 인터스페이스의 개념을 우리의 지각과 연결된 내 부 의식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개념을 도출한다면, 이원곤은 인터리얼리티의 개념을 의식의 전환 과 지각적 체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미디어와 우리 지각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것을 설명 하였다. 즉 두 이론가의 공통된 관점은 미디어를 접하는 우리의 지각이 어떠한 자율적 감각의 조절을 통해 현실과 미디어 속 가상에 동시에 접속한 상태를 체험하게 되며, 우리의 의식은 이러한 이중의 세계를 넘나들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볼터와 그루신의 논리가 현대적 미디어를 중심으 로 이것과 우리의 시지각과 관계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들을 분절하여 고찰했던 것이라면, 인터 스페이스와 인터리얼리티는 미디어와 우리의 관계적 상황을 주목하고, 우리의 의식이 어떠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가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특히 인터리얼리티의 개념은 미디어와 관람자가 관계하는 상황에서의 거리, 즉 공간의 문제를 주목 18) 연구자의 앞 논문, p. 65. 19) 로이 애스콧, 앞의 책, p. 205. 20) 앞의 책, p. 162. 21) 이원곤, 「비디오설치에서 인터스페이스」, 『기초조형학연구』(4권 2호), 2003, p. 336. 22) 앞의 논문, p. 340. 120.

(9) 함으로써 상호작용성이 미디어의 형식뿐 아니라 장소성이 지니는 다양한 비결정적 요소들과 시간이 라는 복합인자에 따라 다양한 함수 관계를 만든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디어아트 작품과 관람자의 상 호작용은 영상의 크기나 형식뿐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관람자와의 위치, 즉 미디어와의 거리와 각도 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관람자의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나 취향 등이 중요한 변수요인이다. 그리고 미디어가 설치된 장소에서 나타나는 비결정적 요소, 즉 빛, 외부의 소리, 이를 지각하는 공간 의 크기와 형태, 관람자의 인원, 시간적 상황 등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그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는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가 1969년, 「조각의 소고(Notes on Sculpture 4)」에서 주장한 내 용과 연결되는 지점을 갖는다.23) 모리스가 관람자의 시각의 장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사물의 변화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 장소성이 지니는 우연적이고 비결정적인 요소를 작품의 핵심으로 두었 다. 반면 다수의 뉴미디어아트는 이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것은 미디어의 내용과 관람자 의 완전한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박현기는 이러한 장소성이 가지는 비결정적 요소들을 작품에 개입시키지만 여기에 작품의 핵심을 두 지는 않았으며, 관람자가 자신이 구현한 영상에 몰입하도록 유도하지도 않았다. 그가 장소적 요소들 을 비디오와 연결하여 확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미디어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이중구조를 통 해 증명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는 <비디오 돌탑>과 같이 영상의 투명함과 사물의 불투명성이 교차되고 자연과 테크놀로지가 대비를 이루는 이중구조의 조형논리를 보여주거나 <물 반사작업>에 서와 같이 수면과 거울을 병치시켜 관람자가 영상과 상호작용함과 동시에 그 사물성을 환기함으로써 현실을 인식하는 인터리얼리티를 체험하도록 유도하였다. 이것은 그가 작업에서 미디어와 우리의 관 계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측면은 그가 설치작업을 비디오라는 시간성을 지닌 미디어로 재매개하는 방식을 취한 것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물 반사작업>의 비디오영상 은 설치작업을 작가가 선택한 특정한 각도와 위치에서 수면과 거울이 접해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촬 영되었다. 즉 그것은 작가가 인터리얼리티를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지점으로 보았던 위치에서 영 상을 촬영한 것이었다. 이 영상을 전시공간에서 마주한 관람자는 그의 작업이 이중적임을 인식함으 로써 또 다른 인터스페이스를 경험하게 된다. 모리스는 우연적이고 비결정적인 요소들이 예술작품의 변화를 이끌어 냄을 보여주면서 예술을 진리, 결정, 단정을 유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과정(process)’이라는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구축되지 않는 조각을 추구해 나갔다.24) 반면 박현기는 주지했던 바와 같이 물질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인식들이 우리의 의식을 구축한다고 보았다. 그는 설치작업을 통해 미디어의 역할을 하는 비인공적 대상과 우리의 이중적 관계를 비디오영상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묶어 이를 다시 관람자와 만나도록 하여 또 다른 관계성을 탐색하며 자신만의 미학을 구축해 나갔다. 3.3. 일회적 영상 박현기가 작품<물 반사작업>에 이어 거울을 등장시킨 작품은 1981년 발표된 <도심을 지나며>(그림 6)이다. 전작인 <물 반사작업>에서와 달리 그는 이 작품에서 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내는 스피드에 거 울을 노출시켰다. <첫 비디오 작업>에서 수면에 손가락을 통한 물리적 동작을 개입시킨 것처럼 거울 에 운송수단의 동력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먼저 그는 바위에 거울을 부착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그리 고 그는 이것을 트레일러 위에 설치해 대구도심을 횡단하면서 이 과정을 비디오영상으로 재매개하였 다. 달리는 트레일러 위의 거울에는 <물 반사작업>에서와 같이 움직이는 영상이 구현되었는데, 그 형 태는 우리가 TV화면에서 흔히 보았던 영상과 매우 닮아 있다.25) 즉 그는 ‘바위TV’를 만들어 거울의 영상이 비디오 영상처럼 허구라는 것을 깨닫도록 했다. 23) 모리스는 ‘예술은 지속되는 변화의 행위이자 무방향적, 불확정적, 비연속적인 행위이며 우연과 비결정성이 존재하는 과정의 전 영역’이라고 한 바 있다. 그는 예술을 진리, 결정, 단정을 유보하는 행위로 보고 이러한 개념을 자신 작품의 핵심으로 삼았다. Robert Morris, Notes on Sculpture 4: Beyond Objects), artforum, no.7, New York, 1969. reprinted in Art in Theory 1900-2000, Blackwell, 2003, pp. 882-883. 24) 앞의 글, pp. 884-885. 25) 박현기의 <도심을 지나며> 아이디어 스케치에서 거울을 부착한 바위는 마치 브라운관 TV의 형태를 보여준다. 연구자의 앞 논문, pp. 73-74를 참조.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21.

(10) <그림 6> 박현기, <도심을 지나며>(1981) 비디오 영상 스틸 컷, 《맥향화랑 초대: 박현기 전》출품작( 맥향화랑, 1981), 국립현대미술 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거울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함으로써 조작할 수 없는 진실을 드러내는 사물로서 인식되어 왔다. 즉 고 대의 거울은 그 대상이 가지는 본연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마법의 도구였다. 근대 이후 거울은 자아를 인식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대중화됨에 따라 이러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1960-70 년대에 이르러 서구 비디오아트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자아를 인식하는 공간으로 여겨왔던 거울 의 인터페이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조안 조나스(Joan Jonas)의 비디오 퍼포먼스가 있다. 조나스가 1969년 발표한 <거울작업I>(그림7)의 거울영상은 거울 을 바라보는 관람자와 반대편에 위치한 타자의 행위에 의해 변화된다. 조나스는 거울의 이미지들을 파편화시키거나 거울과 매개하는 대상을 분절하여 시선을 교란시키고 반사광을 이용하여 관람자의 시각적 몰입을 방해함으로써 거울의 영상이 자기애적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거울의 인터페이스가 허구의 공간임을 보여주었다.26) 두 작가의 작업은 거울의 영상 이 허구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한편으로 우리가 영상이라는 허구와 오랫동안 시지각적으로 관계해 왔 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림 7> Joan Jonas, <Mirror Piece I> (1969), Reconfigured: Guggenheim Museum, NY, 2010.. 박현기는 “우리가 잡았다고 생각하는 그 대상은 추상의 결집이지 대상 그 자체는 아니다”라고 하였 다. 그는 우리가 대상과 시지각적 관계를 맺는 것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 대상 자체와 의미를 분리 하는 것이며, 우리의 의식은 분리된 의미를 재구성한 결론을 인식한다고 보았다.27) 즉 그는 거울이 드러내는 영상, 즉 허구를 우리 스스로가 분절하고 조합하여 의식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의 의 식 속에 남게 된 이미지들은 반복된 행위를 통해 축적됨으로써 관념으로 자리하게 된다. 박현기와 조 나스의 거울작업은 거울의 영상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유도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 다. 그러나 감상자로 하여금 거울영상을 낯설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취한 두 작가의 방법론은 무척. 26) 주경란, 「조안 조나스의 거울 퍼포먼스 분석- 자크 라캉의 ‘대상a로서의 응시’를 중심으로」, 『현대미술학 논문집』(제19권 1호), 2015, pp. 302-303. 27) 박현기, 작가노트 (1984), 이원곤, 앞의 책(2014), p. 73, 재인용. 122.

(11) 다른 것이었다. 박현기는 우선 거울을 바위와 접합시켜 하나의 조형물의 형태로 변화시킴으로써 그 사물성을 낯설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울에 장소성이 지니는 요소들을 매개함으로써 자아체험의 공간 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즉 그의 거울작업의 형식적 핵심은 움직이는 거울영상이 타자의 의지를 통해 나타나거나 거울을 바라보는 관람자나 이것을 재매개하는 카메라가 움직임으로써 드러나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그는 인공의 영상미디어를 바라볼 때처럼 고정된 시각이 움직이는 영상을 보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것은 거울의 영상이 공간이 가지는 운동성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이 었다. 그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거울을 새로운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했다. 그가 제작한 조형물은 TV처럼 움직이는 영상화면을 보여주었다. 그 영상은 우리가 거울에 가까이 다가갈 때만 나타났던 영 상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둔 장소에서도 움직이는 영상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즉 그가 구현한 거 울의 영상은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가 아닌 매 순간 달라지는 시간성과 장소성을 통해 움직 이는 것이었다. 우리가 거울에 움직이는 영상이 구현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거울영상의 일 회적 특성 때문이다. 거울의 영상은 작품성을 단지 한번 밖에 드러낼 수 없는 퍼포먼스처럼 마주하는 대상과 공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되는 영상을 일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의 영상을 분절화된 이미지로 기억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상은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일회성을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복제성과 시간성을 지닌 미디어와 결합될 때 움직이는 영상을 구현하는 미디어로서 그 존재성이 드러난다. 이는 거울의 영상과 그것을 지각하는 우리의 관계를 하나로 묶어냄으로써 전 체적 상황에 대한 탐색이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박현기는 “카메라-아이(camera-eye)를 통해 드러난 사물은 변화의 가속작용을 맛보게 만든다”라 고 하였다.28) 즉 그는 비디오의 렌즈가 객관적 거리를 취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일회적 인 거울의 영상을 비디오와 연결하여 탈테크놀로지 영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우리의 의식 속에서 분 절되었던 이미지들을 연결했다. 비디오영상은 객관적인 거리를 취함과 동시에 반복적으로 볼 수 있 기 때문에, 우리가 지나쳐 버렸던 영상미디어로서 거울의 존재를 깨닫도록 하였다. 결국 그는 우리가 거울과 일시적으로 관계하는 상황을 매번 기억하지는 않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의식을 새롭게 전환하 고 있다는 것을 역설했다.. 4. 비인공적 미디어와 탈테크놀로지 영상 박현기가 선택한 유리, 금속, 거울 등은 광학적 사물로서만 해석되기 쉽다. 이는 현대인들이 다양한 테크놀로지 미디어에 집중하면서 과거의 미디어에 대해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 영상 을 구현하는 다양한 테크놀로지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미디어 자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디 어의 기술적 체계나 이것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현상에 몰입하면서 테크놀로지와 미디어를 통일시하 는 관점들 또한 등장하게 되었다. 비디오아트의 시작을 뉴미디어아트의 출발점으로 보거나 매스미디 어를 활용한 예술로 규정하는 시각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볼터와 그루신은 미디어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미디어의 매개논리를 고찰하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르네상스 이후 인류가 등장 시킨 기술적 체계나 현재적 미디어를 중심으로 탐색함으로써, 자신들이 고찰한 매개논리를 어떤 원 리이기보다는 특정시대에 나타난 특정한 집단의 관행, 즉 문화적 관습이라고 결론짓는다.29) 박현기 는 영상을 드러내는 사물과 비디오의 공통점에 대한 탐색을 시작으로 미디어의 재료적 특성으로부터 발현되는 매개의 근원적 원리를 고찰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테크놀로지 를 형성해 온 역사성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영상미디어와 관계된 다양한 테크놀로지 미디어가 투명한 재질과 관련되어있다는 점은 간과되어선 안 될 사항이다. 첨단 비디오카메라의 렌즈는 유리질의 재료로 만들어 진다. 필름 역시 플라스틱과 같은 성분의 반투명한 재질을 통해 제작된다. 레이저기기는 빛을 발산하는 원리와 거울이 결합되어 있으며, 디지털미디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는 규소, 즉 실리콘 성분으로 만들어 진다. 그런 데 규소는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부터 유리를 만들 때 사용되었다. 또한 디지털화된 영상은 이진법의 28) 박현기, 「작가의 말」, 앞의 브로슈어. 29) J. Bolter, R. Grusin, 앞의 책, p. 21.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23.

(12) 연산을 통해 이미지화되지만 전기를 통해 인공의 빛을 발산하고 결국 투명성을 지닌 재질의 화면을 통해 우리에게 영상을 제공한다. 영상미디어가 빛과 연계되어 영상을 구현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인식되어 있다. 이러한 빛과 연계 하여 영상을 구현하는 또 하나의 재료는 금속이다. 고대의 청동거울을 시작으로 현대의 거울, 초기 사진술에서 필름을 대신해 사용되었던 다양한 금속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금속성을 지닌 물질들이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CD(Compact Disc)의 기록면 또한 알루미늄으로 제작되며 이를 보호하는 외 피 층은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미디어의 재료와 연계된 투명성이나 반사성과 관련 된 즉시성에 관한 시각논리는 재료학, 물리학, 화공학, 의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과학적 실증자료와 인류사에 대한 고찰이 함께 수행되는 융ž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에 앞서 영상미 디어가 빛에 연관되며, 다양한 현대 테크놀로지미디어의 등장이 인류가 미디어를 탐색하고 발전시킨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그 예로서 볼터와 그루신이 주장하는 ‘투명한 비매개의 논리’는 투명한 재질과 관련되어 있다. 두 이론가는 자신들이 지각적 경험을 인식 적으로 변환하고 이를 다시 새로운 학술적 개념들에 적용하였다. 이처럼 인류는 투명한 재질의 사물 의 특성을 파악하고 언어와 개념으로 환원시켰으며 다양한 대상과 기술로 변환시켰다. 또한 금속과 빛의 반사에 관련한 광학이 다양한 테크놀로지 미디어의 재료이자 원리로 이용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매개의 근원적 특성들을 관찰하여 기술적으로 체계화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이다. 디터 메르쉬는 “20세기 미디어 기술론의 특징을 인지에서 정보교환으로, 광학에서 전자코드화로, 그 리고 미학에서 상호작용으로 이동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미디어의 전환이 의식의 선험성에서 언어 와 구조의 선험성으로 자리바꿈하였으며, 이것은 다시 정보의 손실이 정확한 데이터의 변환문제가 되었다”고 분석한다.30) 메르쉬의 통찰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으로부터 다 양한 원리와 특성을 배우고 이를 다양한 기술적 체계로 전환시켰다. 그러므로 테크놀로지가 발달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양한 사물의 미디어적 특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이미 이러한 사 물들을 광학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고 오랫동안 우리의 미적관념을 구현하는 재료로서 활용해 왔 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유리거울은 유리판에 얇은 금속 막을 접합한 것이다. 고대의 거울처럼 매끄러 운 유리질과 금속이 대상을 투영하는 특성을 발견하고 그 특성을 확대하여 만든 것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물질을 결합하여 그 특성을 강화시킨 새로운 사물이다. 여기에는 발견으로부터 그 특성을 깨 달은 인간이 새로운 발상과 의식의 전환을 통해 발명품을 등장시키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 한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의 거울은 분명 자연을 가공한 인공물이다. 그러나 인공으로 뒤덮인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거울은 테크놀로지와는 거리가 먼 사물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거울 은 수면, 유리, 금속과 같은 자연의 물질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며 현상적 발견으로부터의 얻어진 원리가 변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비인공에 가깝다. 또한 거울은 그 등장을 정확히 파악 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과거에 등장하여 우리의 지각체계를 변화시켜 왔다. 특히 현대인들은 유아기 때부터 거울을 접함으로써 영상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는 일에 매우 익숙하다. 우리는 거울의 영상 을 신체 일부의 감각으로서 의식하며, 무엇보다도 거울은 미디어의 원리나 사용기술을 습득하지 않 아도 그 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각에서 거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테크놀로지, 즉 기 술적 체계의 범위에서 벗어난 미디어라 할 수 있다. 특히 시간성을 환원하는 발달된 기술체계의 사회 에서 거울은 비디오 영상처럼 시공을 초월하는 대상을 매개할 수 없으며 저장되지 않은 일회적 영상 만을 구현한다. 따라서 거울은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 속에서 더 잘 전파되어 더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미디어, 즉 문자로부터 출발하여 체계화된 테크놀로지를 통해 등장한 미디어들’과 달리 시간과 공간에 대한 범위가 한정적인 미디어이다.31) 30) 디터 메르쉬, 문화학연구회 옮김, 『매체이론』,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9, p. 29. 31)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메시지들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더 잘 전파되고 더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한다. 신체가 없이도 메시 지는 지속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데 그 좋은 예가 문자이다. 문자는 체계적이고 코드화되며 복제할 수 있는 특징 때문에 완전한 미 디어를 지향한다. 개인은 글을 읽고 쓰면서 말을 재생할 수 있다. 그것은 음성을 녹음하고 재생하는 최초의 기술인 것이다” Pierre Levy, Collective Intelligence, Perseus Books Group, 1997,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편, 『문학비평용어사전(하)』, 한국국학자료 원, 2006, pp. 1007-1008. 재인용. 124.

(13) 그렇다면 박현기는 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미디어가 아닌 우리가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과 거의 미디어를 다시 꺼내 들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이 선택한 돌, 유리, 금속, 거울 등에 관하여 선택 의 의도를 설명하면서 재료의 특성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물의 미적특성이 나 고유한 개념을 추구하지 않으며 항상 변화하는 외계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라는 표현 으로 자신의 작업의 의도를 밝혔다.32) 주지한 바와 같이, 그는 자연과 비인공적 미디어가 만들어내 는 영상과 우리의 지각의 관계를 탐색하는 것을 핵심에 두었으며 영상미디어의 투명함이 우리의 의 식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는 미디어를 우리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대상 으로 바라보고 지각과 의식이 연결되는 문제, 지각의 이중구조, 이것과 연결된 미디어의 근원적 특성 들을 탐색하고 미디어의 전반을 통찰하기 위해 원본적인 미디어들을 등장시켰다. 그는 미디어의 전환기에 놓여 있었다. 전기ž전자 기술체계의 역사적 발전을 경험하지 못한 사회적 환 경에서 테크놀로지 사회로 급격히 전환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단절과 공백의 간 극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만 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그래피를 접했던 그는 오히려 “우 리의 영상, 우리 과거의 영상들, 그리고 그 발상의 구조적 사상 등 여러 면으로 과거 쪽에 심취해 갔 다”라고 적으며 자신의 탈테크놀로지적 작업의 배경을 밝힌 바 있다.33) 그것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나 서구의 발달된 테크놀로지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반동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 는 미디어를 테크놀로지에 몰입해 가기보다 우리 지각의 관계적 문제를 숙고하면서 미디어라는 자체 를 통찰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것은 박현기가 작가노트에서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이 미 디어의 역사적 변화를 통찰한 『구텐베르크 은하계(Gutenberg Galaxy)』(1962)를 언급하며 “나에게 매우 충격적인 맥루언의 글은 (나의) 발상을 도와준 동조자이다”라고 하였으며, “(이 글이) 자신의 작업을 이해시킬 수 있는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적고 있는 대목에서 확인 할 수 있다.34) 그러나 박현기가 맥루언의 시각을 모두 긍정한 것은 아니다. 맥루언이 인류가 문자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짐 으로서 잃어버렸던 구술성(orality)과 같은 감각이 전자시대에 다시 회복되는 것을 바라보며 전기전 자시대를 긍정적으로 예견했던 것과 달리, 박현기는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출발한 전자과학에 몰입하 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맥루언이 구텐베르크를 지적한 것은 이미 오늘날 세계에서의 속도를 예견한데 불과하다 하겠다. 오늘의 지구를 보라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감성은 통하고 있지 않은가? 전자과학 은 언어의 속도를 가속화시켰고 인간을 눈뜨게 해주고 있지만 한정된 지구의 넓이를 망각 하고 있으며 수학적 개념에 사로잡혀 인간은 자기가 친 덧에 걸리고 말 것 같은 긴장, 우리 가 이 긴장을 부정해 본다면 어떨까? 더욱 더 긴박한 긴장일까? 언어가 없었던, 전자과학 이 없었던 지각 안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르네상스가 모든 인류의 것이 아 니었듯이... (나는) 그런 상상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35) 박현기는 전자미디어의 발달을 기호의 연장이며 한정된 소통의 연속으로 보았다. 그는 과거의 미디 어이며 비인공적인 사물들을 꺼내 다양한 층위의 지각이 동원되는 영상을 구현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우리의 감각을 되찾고자 했다. 그는 자연과 테크놀로지를 관통하는 지각의 다리를 통해 물질과 관념 에 사로잡힌 우리의 의식의 전환을 유도했다. 그는 자연의 원리가 그대로 드러난 영상과 비디오를 연 결하여 탈테크놀로지 영상을 구현함으로써 약속, 규칙, 가설로부터 출발하는 이미지, 즉 테크놀로지 속 가상에만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소통의 방식을 제안하였다. 32) 박현기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매체에 대한 더 이상의 이념적(理念的) 개입이나 사실의 미화작용(美化作俑)이 배제 될 수만 있다면 이러한 문제는 참으로 실제적이고 순수하다 하겠다. 작태(作態)나 방법(方法)으로써의 이데아(IDEA)의 미술적 기능을 수행코자 함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재료의 특성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아님은 물론 특정 매체들을 콤바인(Combine)하 는 결과로서 상호작용하는 통일된 소상적(塑像的) 이미지(IMAGE)의 연출을 의도하는 것은 더욱 거리가 멀다” 박현기, 앞의 브로 슈어. 33) 박현기, 작가노트,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5, p. 84. 34) 박현기, 작가노트, 『1982년 박현기 드로잉북』,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박현기 컬렉션”, “박성우” 기증자료, 참조코드: MC2012.03/0Ⅱb/0006. 35) 앞의 자료.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25.

(14) 5. 결론 박현기의 작품 <물 반사작업>과 <도심을 지나며>는 수동적 사물로 여겨졌던 거울이 역동적인 미디 어라는 것을 일깨운 작업이다. 그는 장소성이 지니는 비결정적 요소들을 개입시키고 다양한 장치들 을 마련하여 거울에 영상을 구현했다. 그리고 이 일회적 영상을 비디오로 재매개 함으로써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매 순간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하였다. 그것은 대상과 물질로 환원되기 힘 든 관계적 개념을 관람자가 시지각적 체험을 통해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예술작품의 감상이 시각의 문제에서 지각의 문제로, 또 이것이 다시 소통의 문제로 변환되었음을 알 리는 것이었다. 모더니즘 미술에서 미적대상으로서의 거울이 작가에 의해 발견된 사물로서 본연의 사물성과 다른 상징과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라면, 미디어아트에서 영상이 구현되는 거울은 관람자의 시지각적 판단을 통해 사물 또는 미디어로서 기능하게 된다. 감상자는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 는 인터스페이스를 경험함으로써 작가의 미학적 세계와 소통하게 된다. 작품 <도심을 지나며>에서 바위에 거울을 부착해 만든 조형물, 즉 ‘바위TV’는 화랑 입구의 벽을 부수 고서야 전시장 안에 설치될 수 있었다. 끼워 넣기를 좋아했던 박현기는 돌 사이에 투명한 돌과 비디 오를 끼워 넣었고, 나무 사이에 돌을 끼웠다. 그리고 화랑이라는 인간이 만들어 낸 구축물에 ‘바위TV’ 라는 탈테크놀로지 미디어를 끼워 넣었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비결정적 요소들이나 도심 속에서 전개되는 운동성과 시간성을 통해 구현되는 영상에 이어 화이트 큐브라는 진공의 공간 속에 들어선 관람자가 만들어 내는 영상을 연출한 것이었다. 이처럼 그는 비인공적 영상과 비디오를 결합하여 완성한 탈테크놀로지 영상작업을 통해 미디어와 우리의 지각과 관계성을 고찰하고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미디어의 본질에 대하여 탐색하였다. ‘본다’는 시지각적 행위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어떠한 변환과정을 거쳐 또 다른 대상, 개념, 이미지 등으로 환원된다. 우리는 지각을 통해 대상으로부터 분리된 무엇을 인식하고 사유하며 그리고 이를 또 다른 형태로 재매개한다. 그러므로 시지각적 체험은 단순한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의 의식과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건축가이기도 했던 박현기는 구축하는 시선의 사이에 존재하는 미디어의 본질에 대하여 숙고하였다. 박현기는 미디어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 하지는 않았으나 작업의도를 담은 드로잉,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노트를 통해 일관된 탐색의 방향 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업방식과 작품의 구조를 통해 조형논리로서 자신의 미학적 지향에 대하여 알렸다. 살펴본 것처럼 그의 작업에는 1990년대 등장한 미디어이론에서 고찰했던 시 지각의 이중구조의 문제나 매개의 논리, 그리고 미디어와 관람자와의 관계성에 미치는 다양한 요소 들에 이르는 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해석들을 포괄한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 그가 앞선 시각과 뚜렷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미디어를 통찰하였다는 것이 확인된다. 탈테크놀로지 영상은 박현기가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며 미학적 지향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또한 그것은 그가 세계를 이해하고 타자와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는 전통과 현대, 자연과 테크놀로 지, 그리고 물질과 정신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공간을 상상하였다. 그는 테크놀로지의 새로움을 뛰 어 넘는 미디어의 본질에 대하여 물음을 구했고 그 답은 정신과 물질, 자연과 테크놀로지가 함께 조 화를 이룰 때만이 해답을 얻게 됨을 깨달았다. 그의 작업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이중구조는 이러한 깨 달음을 통해 구축된 논리이다. 그의 탈테크놀로지 영상작업들은 미디어를 테크놀로지의 산물로만 바 라보았던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의식을 확장, 발전시킨 근원과 동력에 대한 탐색의 논의를 제공한다. 영상과 미디어에 접근하는 그의 태도는 사물에 대한 숙고를 새로운 테크놀 로지 미디어로 변용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미디어라는 물질과 관계하며 의식을 구축하 는 방식에 대하여 고찰함으로써 미디어가 우리의 존재성을 깨닫게 하는 도구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탈테크놀로지 영상을 통해 우리의 지각과 의식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있는 미디 어의 발전을 모색하였다.. 126.

(15) 참고문헌 디터 메르쉬, 화학연구회 옮김, 『매체이론』, 연세대학교출판부, 2009. 로이 애스콧, 이원곤 역, 『테크노에틱 아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이원곤, 존재를 향한 이중시선과 구성주의: 비디오아티스트 박현기 , 서울: 한국예술문화위원회 아르코미술관, 2014.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문학비평용어사전(하)』, 한국국학자료원, 2006.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J. Bolter, R. Grusin, Remediation, MIT Press, 2000. Melchior-Bonnet, Sabine, Jewett, Katharine, The Mirror: A History , Routledge, 2002. Robert Morris, Notes on Sculpture 4: Beyond Objects, artforum, no.7, New York, 1969, reprinted in Art in Theory 1900-2000, Blackwell, 2003. 이원곤, 「영상의 미학예술학적 과제」, 『미학예술학연구』, 한국미학예술학회, 2002. -----,「비디오설치에서의 인터스페이스」, 기초조형학연구 , (4권 2호), 2003. 김홍희,「박현기의 한국적 미니멀리즘 비디오: 사이트 특정성과 정신성」, 경기도미술관 편,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 서울: 눈빛출판사, 2011. 민희정, 「박현기 미디어 작업에 대한 소고: 1978년부터 1982년까지의 초기 작업을 중심으로」, 『미술이론과 현장』 (제19호), 2015. 주경란, 「조안 조나스의 거울 퍼포먼스 분석- 자크 라캉의 ‘대상a로서의 응시’를 중심으로」, 현대미술학 논문집』 (제 19권 1호), 1996. 정준모,「옐로칩 미술가 순례 ⑩ 박현기」, 신동아 (2008년 11월호), 2008. -----,《박현기 유작전 - 현현 전》도록, 대구: 대구문화예술회관, 2008. -----, 「사유하는 텔레비전-다시 읽는 박현기」, 《박현기 유작전 - 현현 전》도록, 대구: 대구문화예술회관, 2008. 오광수, 《박현기 개인전》도록, 서울: 박영덕 화랑, 1996. 《맥향화랑 초대: 박현기전》브로슈어, 대구: 맥향화랑, 1981.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5. 박현기, 『1982년 박현기 드로잉북』,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박현기 컬렉션”, “박성우” 기증자료, 1982..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2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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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그림 &lt; 2 박현기 무제 첫 &gt; ,  &lt;( 돌탑  작업)&gt;,  (1878) 박현기  전 ( 서울화랑 , 《》  출품작1978)  .
그림 &lt; 6 박현기 도심을  지나며&gt; ,  &lt; &gt;(1981)  비디오  영상  스틸  컷 맥향화랑  초대 박현기  전 출품작 맥향화랑, 《: 》(  ,  1981),  국립현대미술 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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