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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는 외면당해도 열정은 결코 배신당하지 않는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47-156)

항공기 투하용 조명탄 개발 성공과 실용화 실패 과정

: 현실에는 외면당해도 열정은 결코 배신당하지 않는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이준웅

자는 1977년 1월 1일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소하여 2000년 퇴 직할 때까지 탄두/탄약부의 실장과 부장 직을 수행하면서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이 중에서 여기서 소개하는 항공기 투 하용 조명탄 개발은 필자가 고폭화약 실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대 초에 진행 됐던 일이다. 당시에는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산 업체들이 협력해서 소총, 박격포와 같은 미국의 기본화기들을 분해하여 도면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하는 소위 ‘역설계’를 통해 모방⋅개발하여 군에

배치해 오던 시기였다. 당시 대통령의 적극적인 후원과 관심 속에 일명 ‘번개사업’이라는 코드명으로 개발 됐던 무기체계들은 현재 우 리 자주국방의 초석이 되었다.

군사작전에는 다양한 조명탄들이 사용되는데, 그 중 하나가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Thiokol 사가 개발한 LUU-2 라는 항공기 투하용 조명탄이다. 1970년대는 ‘김신조’ 같은 무장공비가 수시로 출몰했는데, 주로 야간에 활동하는 이들을 생포하기 위해선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조명탄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이 조명탄은 야간에 헬리콥터 같은 항공기에서 투하하면 낙하산을 타고 약 5분 간 서서히 내려오면서 지상 500미터 반경을 대낮 같이(15 럭스) 밝혀주었다.

참고로 1럭스는 적도상에 뜬 보름달의 밝기이다. 당시 이런 조명탄으로 지상을 밝히며 무장공비 체포 작전을 벌이던 장면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바로 이 항공기 투하용 조명탄의 역설계를 시도했는데, 우선 조명탄의 구조를 분석했다. 이 조명탄은 낙하산, 조명탄을 점화시키는 소위 점화장치와 조명제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포탄이나 박격포탄 등을 이미 역설계로 개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명탄의 사출장치, 낙하산/전개장치, 점화장치, 조명제 등과 같은 주요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기술은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조명제를 안전한 방법으로 알루미늄 통 안에 충전하는 프로세스는 알지 못했다. 조명제가 제대로 충전되어야만 180만 촉광의 빛을 발하면서 5분 이상 연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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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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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처음으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고심 끝에 필자는 도서관에서 조명탄과 관련된 거의 모든 자료가 담긴 마이크로 피시(microfiche: 기술 자료를 촬영한 필름)와 판독기를 필자의 사무실에 설치했다. 그리고 문까지 걸어 잠그고 온 신경을 집중해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며칠이 흐른 어느 날 퇴근시간 무렵,

‘조명통 내부에 단열제로 부착하는 석면판은 가능한 좁은 넓이로 접착 시킨다.’라는 단순한 문장 한 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석면판 전체를 알루미늄 통 내부에 견고하게 접착시켜 조명제를 충전하였는데, 이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기술 자료의 내용과 우리 방법의 차이는 단열제인 석면판의 접착 면적이 다르다는 점뿐이었다. 단 하나의 차이가 어떻게 실험 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알루미늄 통 내부와 석면판을 접착시키지 않으면 석면과 알루미늄 통 사이에 공기층이 단열효과를 증진시키고, 그로 인해 알루미늄이 조기 연소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든 조명탄은 조명 제가 연소하면서 발생한 열이 알루미늄으로 직접 전달되어 알루미늄이 점화된다. 그래서 알루미늄은 조명제보다 빠르게 연소하여 4분이 지나면 모두 연소되어 없어지고, 남은 조명제만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간단한 사실을 몰랐다는 자책감도 들었으나, 아마 Tiokol도 시행착오 끝에 단열제 접착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팀은 새롭게 알아낸 방법대로 조명통 안을 석면으로 접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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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hiokol과 직접 접촉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항공기 투하용 조명탄 개발 성공과 실용화 실패 과정 151 마트에 내다 팔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세 번째인 관련 부서와의 소통과 설득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다. 필자는 국방과학연구소 입사 초기에 얻은 이러한 경험이 귀중한 교훈이 되어 이후 필자에게 주어진 국가적으로 중요한 무기체계 개발 업무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고 자부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후기: 근 40여 년 전 필자가 한참 젊고 패기가 넘치던 연구 개발 초년병 시절을 회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감사드린다. 이 글은 국방과학연구소 관련 부처의 구두 허락을 받아 집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1990

해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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