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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은 시야의 반대편에 있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56-162)

ReSEAT 전문연구위원 서종철

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연료전지 연구의 시작 단계 에 있었다. 미래기술들이 연구 초기단계에서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연료전지 분야도 그런 경우 의 하나로 큰 관심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연료전지의 미래 를 희망적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출연기관, 대학 및 벤 처기업 등에서 심도 있는 연구를 추진한 결과로 오늘날 우리나라도 상당한 수준 도달하였다. 연료전지는 잠수함에도 사용되고 발전용 으로도 사용되며 수소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상용화가 되는 등 비약 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해답은 시야의 반대 편에 있다 153 당시 우리가 담당한 과제는 연료전지 스텍의 성능해석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프로그램 개발은 이미 완성단계에 있었고, 미세관로 유동 해석과 이온의 이동속도와 반응 실험을 위해 연료전지 스택을 만들고 실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껏 그림이나 사진으로 봤을 뿐 실물로는 전혀 본 적 없는 연료전지를 처음부터 만들게 되었다. 인산과 이온 투과막 등은 화학실험실에서 얻은 것을 사용하고, 다공질 흑연판은 타 연구소에서 유사용도로 사용 중인 것을 빌려서 사용하기로 하였다. 연료 전지 전극판의 크기는 10×10cm였으며, 총 4층의 연료전지 스텍을 구성하였다.

실험에서 수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반응 이후 배출되는 가스에는 수증기와 함께 잔여 수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미숙하게 다룬다면 수소가 실험실 내부에 정체될 가능성까지 있었다. 특히 실험실 관리자로부터 실험실 내부에 있는 고가의 장비현황과 함께 수소의 위험성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당부 받았던 터라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실험 중 발생하는 배출가스를 실험실 외부로 배출하기 위해 내부에서부터 길고 가는 알루미늄 파이프를 설치했다. 그리고 연결부 등 파이프에서 수소가 누출되지 않도록 접착제와 접착테이프 등으로 완벽하게 마감 작업까지 끝냈다.

어느 날은 연료전지 연구에 먼저 착수하여 발전실험 중인 어느 실험실을 방문해 자문을 구했다. 마침 일주일 뒤 발전실험이 계획되어 있으니 참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해당 실험실에는 우리 실험실

보다 많은 측정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고, 우리는 수기로 기록하고 있는 데이터를 모두 자동 기록장치로 기록하고 있었다. 드디어 실험이 시작 되었다. 산소와 수소밸브가 차례로 열리고 모든 사람이 전류계만 응시 하고 있었다. 전류계의 수치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건 전기가 생산 되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모두들 박수치며 기뻐했다. 당일 진행된 실험은 5차 발전실험이었는데 매번 박수를 친 성공적인 실험이었다고 한다.

그 후 눈보라가 몰아치던 한 겨울, 우리 팀원은 실험실에 모였다.

주먹 크기의 실험장치 주변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데이터 측정장치는 큼직했지만 정작 본 실험장치는 작은 크기였다. 드디어 첫 번째 발전 실험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모두 눈을 반짝이며 전류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료전지 스텍이 예열을 시작하였고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산소와 수소밸브를 차례로 열고, 유량을 맞추기 위하여 밸브를 조절하고 있는 순간 모두 이구동성으로 ‘나온다, 된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0점에 머물러있는 전류계의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연료전지에서 발전이 일어난 것이었다. 우리에겐 대단한 일이었다. 전류계에서는 숫자는 계속 움직이며, 전류값의 변동을 알리고 있었다. 산소와 수소 밸브를 고정해 보아도 전류값 변동은 계속되었다. 20분간 진행된 발전 실험을 마치고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삼겹살파티를 열어 자축했다.

이튿날 우리는 다시 실험실에 모였다. 어제와 똑같은 실험을 반복하는 터라 모두들 능숙하게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연료전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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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현상은 유체가 흐르는 통로가 막혔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가스 파이프의 연결부를 풀고 점검을 했지만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난방도 안 되는 실험실에서 원인을 찾기 위한 밤샘 노력이 계속 되었지만, 끝내 막힌 통로는 찾을 수 없었다.

이튿날 실험실 외부에 설치된 배출가스 파이프를 둘러보았다. 파이프는 잔여 수소의 배출을 위해 실험실 건물보다 높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실험실 외벽에 있는 큰 배관을 피하기 위해 배출가스 파이프가 아래쪽으로 한번 구부려진 후에 위로 향하도록 설치된 것이다. 파이프를 해체해보니 뭔가 들어있는지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실험실로 들고 와 파이프를 잘라보니, 물이 얼어 붙어 파이프를 막고 있었다. 연료전지에서 반응물로 나오는 수증기가 외부의 차가운 파이프 내부를 흐르며 냉각되었고, 한 부분에 고이면서 얼어버린 것이다. 실험실 외부에 설치된 파이프에서 수증기가 응축되어 흘러내릴 것이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파이프 내부에서 응축된 물이 배출될 수 있는 장치를 추가하고 파이프를 다시 설치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실험이 다시 시작되었다. 영하의 날씨에 외부에서 장시간의 작업으로 모두 지쳐있었으나, 전류계의 수치가 다시 움직이자 지친 기색은 사라지고 다들 긴장하기 시작했다. 30분이 지나자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앉아서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었다. 막내는 오랜만에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한 시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제법 안정된 전류값에 모두들 안도하는 눈빛이었다. 실험 시작 후 2시간이 경과했을 무렵, 전류계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전류계의

해답은 시야의 반대 편에 있다 157 숫자가 거의 0으로 떨어진 것!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새로 설치한 파이프에 또 문제가 생겼단 말인가? 모두 우왕좌왕 하고 있는데, 누군가 산소통 압력계를 툭툭 치고 있었다. 아이고. 불행 중 다행으로 산소통의 산소가 바닥난 것이었다. 우리는 산소통을 교체하고 무사히 실험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연구가 직업인 사람들은 중요한 실험을 할 때는 평소보다 더 집중 하고 때로는 과민한 경우가 종종 있다. 실험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별 문제가 없지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오로지 그 문제에 집중하게 되고, 다른 방향까지 생각하는 융통성은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 실험에서도 처음에 파이프를 외부로 연결하면서 ‘수증기가 차가운 파이프에서 응결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는 했었다. 하지만 이후 실험실 내부에만 머물며 실험을 진행했던 터라, 바깥 사정은 까맣게 잊은 것이다.

실험에만 몰두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 것이다. 남의 장기판을 보고 있으면 묘수가 잘 보이는 것처럼 가끔은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 계기가 되었다.

KTX-1 개발사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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