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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전략으로 급변하는 시장에 대비하자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03-112)

유연한 전략으로 급변하는 시장에 대비하자

ReSEAT 전문연구위원 장윤한

차전지 사업은 물리 화학적 융합이 필요로 하는 전기화학기 술의 대표적인 제품이다. 이차전지 사업은 이공계 대부분 의 기술을 융합해야 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에서 문 제가 발생하더라도 제품화 될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니켈수소 이차전지의 양극은 니켈 산화물인 옥시 수산화 니켈(NiOOH), 음극 에는 수소흡장합금을 사용하는 전지이다. 이전의 니켈카드뮴 전지 에 쓰이는 음극의 중금속물질인 카드뮴을 수소흡장합금으로 바꾼 무공해 개념의 전지로 1990년 출시 당시 매우 주목을 받았다.

이전에는 니켈카드뮴 이차전지가 휴대용 전자기기용의 이차전지로는 유일한 전지였다. 그래서 휴대폰이나 노트북, 캠코더, 워크맨을 비롯해 전동 칫솔이나 전기면도기 등 휴대용 전자기기의 신제품이 나오면 우리 엔지니어들의 관심이 집중 됐다. 일본 출장을 가면 의무적으로 아키 하바라 전자상가에 가서 확인한 뒤 그 결과를 보고해야 했다. 그 당시의 이차전지는 충전을 하면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니켈카드뮴의 소형 이차전지가 주류였다. 건전지와 구동전압의 비슷하여 니켈카드뮴 전지가 단독으로 사용되거나 건전지와 니켈카드뮴 겸용 등의 형태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렇게 이차전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으나, 사실 니켈카드뮴 전지의 음극활물질에 함유된 카드뮴은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유해 물질이었다. 또한 적은 용량 등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대체 무공해 전지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마침내 1990년, 무공해 니켈수소 전지가 개발돼 상품화에 성공했다.

이 전지에 사용된 수소흡장합금은 필립스계 AB5와 미국의 벤처회사인 오버닉계 AB2로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AB2방식은 미국의 오버닉 이라는 회사가 특허권을 갖고 있어서 전 세계의 전지업체들이 기술 제휴를 하였으며, 이 기술을 도입했던 업체들 모두가 상품화에 실패하 였다. 반면, 필립스계라고 불리는 AB5는 상품화에 성공해 일본 도시 바는 노트북이나 휴대폰용으로 양산규모를 확대시켰다.

1993년, 회사의 경영진으로부터 이차전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관계사의 상황을 3개월 간 면밀히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보고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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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니 관심과 지원도 미미한 상태로 거의 방치된 수준이었다. 게다가 사업부 위치도 사업본부와는 많이 떨어져 별도로 독립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관리상에도 취약점들이 보였다.

그래서 문제요인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사업부장은 물론 전체 구성원의 면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연구⋅분석에 필요한 설비, 제조 라인도 정밀 분석하고, 일본 업계나 기술자들과 접촉하며 파악한 것들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분석해 정리하였다.

그리고 우리 관계사와 마찬가지로 미국 AB2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던 히타치막셀 등의 연구개발 책임자와 경영진도 만나 의견교환도 진행했다. 니켈수소 전지를 상품화 시키는데 성공한 도시바, 마쓰시타 등 기업도 접촉했는데, 역시 필립스계인 AB5 방식을 선택한 회사들은 모두 상품화를 성공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다가 상품화가 어려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기술의 문제였다. AB5는 단결정이고, AB2는 다결정이기 때문에 AB5의 음극활물질은 다루기가 쉽다. 하지만 AB2계는 제조 과정에서 품질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품질 산포가 너무 컸던 것. 즉, 전지 내부의 반응이 불안정하여 내압이 높아지면서 전해액 누액 문제나 자기 방전되는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로부터 3개월 후, 회사의 경영진에게 종합분석 결과를 보고하였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미국 벤처기업인 오버닉에 큰 비용을 지불하면서 도입한 AB2에 대한 연구개발 및 사업추진은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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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나 실험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업체들을 상대로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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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전지의 사업 책임자도 부장급 한명으로 줄이는 등 인력을 최소한 으로 남겼다. 대부분의 인력은 리튬이온전지와 폴리머전지 개발에 투입돼 집중적으로 체제정비를 갖춰나갔다.

그런 와중에, 미국의 오버닉이 일본의 전지업체들에 대해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의 일이다. 민생용 소형 니켈수소전지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리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일본의 전지업체들도 많은 특허를 출원한 상태였다. 하지만 각각의 특허 받은 기술들의 기반이 되는 특허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 1970년 당시, 필립스가 발명한 단결정(Single phase)의 수소저장 합금을 사용했으므로 전혀 다른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대치하였다. 하지만 이 소송은 미국 법원에서 시작되었고, 일본 업체들은 소송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대신 특허 침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화해의 길을 선택하며 상당한 액수의 로열티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우리 회사는 2000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리튬이온전지의 양산에 착수하면서, 니켈수소전지의 양산은 일본 업체들보다 먼저 중단하였다.

리튬이온전지는 안전성 문제로 논란이 있었지만, 리튬이온전지와 폴리머 전지 사업으로 모든 인력과 자원을 집중시킨다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결국 니켈수소 이차전지 사업은 포기해야 했다. 당시 일본 전지 업계 에서도 니켈수소전지는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리튬이온전지는 안전성 문제가 있어 소형전지 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 등에 쓰이는 대형전지는 너무 위험하다는 주장도 많았다. 그래서 일본의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에 니켈수소전지를 채용하였다. 하지만 한번 충전으로 주행

유연한 전략으로 급변하는 시장에 대비하자 107 가능한 거리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전지의 에너지 밀도 문제로 결국 대부분의 회사들이 리튬이온전지 사업화를 추진하였다.

시간이 흐르며 기술도 발전하여, 안전성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그리하여 리튬이온전지는 현존하는 이차전지 중 가장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은 전지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전자제품에 채용되던 리튬이온전지는 자동차나 여러 산업분야로 급속히 확대되어 채용되며 유일한 이차전지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니켈수소 전지사업 에서 실패하였지만 일본 업체들에 비해 조기에 철수하였기 때문에 투자 손실도 비교적 적었다.

이차전지 사업의 최일선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니켈수소 전지사업을 통해 불확실한 기술 전쟁에서 선택과 집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한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술 경쟁에 뒤처지지 않아야 사업을 끝까지 성공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연구개발은 편중된 전략이 아닌 유연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시장 변화나 기술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전지 개발이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회사 또는 모든 기술자들이 이 사실을 참고해주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재차 강조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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