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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슈퍼박테리아의 두려움에서 해방되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96-103)

우연한 계기로 슈퍼박테리아의 두려움에서 해방되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윤성철

때 세균 폴리에스터가 난분해성 플라스틱 대체소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미생물 폴리에스터 연구에 광풍이 불었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관심은 시들해져, 국내외적으로 일부 학자들만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필자도 포 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PHA 연구를 계속해온 학자들 중의 하나이다.

진주의 한 대학 미생물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난 30년간 주로 세균의 세포내 폴리에스터(PHA) 합성과 분해 및 응용에 관 해서 몰입 연구해오던 중에 곁가지로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매우 중요한 성과를 나타냈던 일화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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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는 대부분 작용 타깃이 세균의 세포벽 형성 저해나 DNA 생성 방해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항생제들은 각각 효능에서도 차이를 나타 내지만 만성 감염자의 경우 한 종류의 항생제를 장기간 처방하면 항 생제에 대한 내성 균주들이 발생된다. 이러한 항생제 내성 균주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서 임상적으로는 여러 항생제의 혼합을 통한 복합적 처방이 이용되고 있으나, 내성 균주의 발현을 유도하지 않는 새로운 효소성 타깃을 바탕으로 신약의 개발이 절실한 실정이다.

분리균주는 병원성 문제가 있어 대학원생들에게 감염의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이 세균을 가지고 PHA 생산과 관련된 연구를 계속 진행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특히 대학원생들의 연구실 생활과 관련해 보건안전을 포함 여러 가지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지도 하며 감시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대학원생이 연구실험을 하다가 알코올램프가 엎어지면서 화상을 입는가하면,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은 유리 기구를 씻던 중 깨트리면서 파편에 손가락 인대가 끊어지는 안전사고도 있었다. 고압가스를 분석 장치에 연결해 사용하기 때문에 학생들 안전이 걱정되어 한밤중에도 연구실에 나와 체크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학생들이 안전교육을 받아도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불상사 때문에 연구실 관리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혹시 모를 감염의 위험 때문에 녹농균 분리균주를 이용한 PHA 생산연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당 균주를 이용한 연구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 연구를 망설이던 차에 한 대학원생이 분리균주를 배양하면 배양액 중에 뭔지 모를 점액 물질이 많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 물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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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우리가 찾아낸 2-브로모헥산산 선도물질이 람노리피드 합성을 차단하면서 세균의 군집단체행동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균은 한 마리씩 숙주의 방어막을 뚫지 못한다. 세균끼리는 어떤 화학물질로 서로 소통을 한다. 즉, 여러 마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협동으로 람노리피드를 분비하면서 그 속에 싸여 협동적으로 침투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따라서 람노리피드의 합성을 차단하는 것은 세균의 숙주침투를 위한 람노리피드라는 당지질 성분의 갑옷을 못 입게 막는 것이기 때문에 세균이 침투를 할 수 없다. 결국은 세균이 침투 기회를 못 찾아 숙주 밖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계에 처음 보고한 이런 새로운 개념의 항생작용이 녹농균 슈퍼박테리아의 두려움으로 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세균을 이용한 새로운 소재 개발을 수행하는 나의 연구실에서 많은 미생물, 특히 세균들을 분리하여 유용한 소재 생산 연구를 진행했다.

PHA 합성 패턴이 특이한 분리녹농균 세균을 소재 생산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 나의 전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훌륭한 결과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PHA 바이오폴리머 생합성 경로를 추적 하느라 10여 년간 여러 저해제 화합물들의 스크리닝을 진행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던 분리녹농균 병원성문제와 스크리닝한 저해제 2-브로모알칸산에 대한 연구를 연결시켜 이러한 성과를 얻게 된 것이다.

한때는 녹농균 연구를 포기할 생각을 했지만, 한 대학원생이 가져온 데이터로 인해 오히려 녹농균 병원성인자를 제거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책을 얻게 된 것이다. 우연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행운이 뒤따랐다고

우연한 계기로 슈퍼박테리아의 두려움에서 해방되다 97 생각된다. 물론 녹농균의 병원성인자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타 지역 의과대학의 교수님의 도움도 많은 보탬이 되었다. 이는 학제간 공동연구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지난 연구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관련 효소 단백질의 저해 활성을 직접 측정하기 위해, 해당 유전자를 대장균에 집어넣어 발현시킨 단백질을 활성화시키는 연구를 시도했을 때다. 그러나 한 명의 동료 교수와 박사과정에 있는 3명이 힘을 합쳐 6년이나 몰두했는데도 대장균 발현 단백질을 활성화 시키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그래서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다. 성공했더라면 매우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유전자의 변이체 등을 이용해 연구를 마무리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지난 30여년의 연구인생을 보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 연구주제 중에는 10년 이상 진행해 오고 있는 타 분야의 주제도 여럿 있고, 지금도 마무리 원고 집필을 하고 있다. 그동안 힘은 많이 들었지만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성과로 기쁨을 누리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삶이 아닐까?

이 R&D 연구의 의의와 가치를 다시 정리한다면, 세균의 생장자체를 저해하는 기존의 항생제와는 다른 새로운 정략적 개념의 항생제 개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병원성 세균과의 싸움에서 인간보다 훨씬 오래 진화해온 세균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치열한 전면전보다는, 우리를 위협하는 병원성 인자의 군집행동만을 제한적으로 공략하는 지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병원성세균의 내성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구의 성과는 기존의 세균생장억제 항생물질과는 전혀 다른 세균의 병원성만을 특이적으로 억제하는 신개념의 항생물질을 발견했다는 것 이다. 관련 결과는 2013년 PLOS ONE에 발표되었고, 국내에 특허등록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건, 경상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높은 등급을 받고 해외특허출원도 예정되어 있었는데, 행정실수로 인해 무산된 일이다.

원래 대학원시절 나의 전공은 생물리화학이지만, 진주의 대학에 온 후 미생물 분야로 전공을 바꾸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잘 알고 지냈던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서 전공을 바꿨다고 말씀드렸더니 무척 놀라워하셨다. 하지만 화학을 전공하면서 생긴 분석적 관점으로 미생물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는 지도 모른다. 옛 시절에는 전공 이수학점의 수가 많아 대학교육에 복수전공의 트랙도 없었다. 내가 대학원 졸업 후 포스트닥 과정부터 과감하게 선택한 외도의 길이 초기에는 비록 힘들기도 했지만, 전공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비교적 괜찮은 연구 인생을 살아올 수 있었다고 회상해본다. 지금은 학문의 진화속도도 무척 빠르고 예측이 어렵다. 따라서 젊은 대학생들은 미래에 대비해 자기 전공의 폭을 넓게 잡고, 학부에서 최대한 다양한 기초과목을 공부할 것을 권장한다.

유연한 전략으로 급변하는 시장에 대비하자 99

유연한 전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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