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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면 문제는 영원히 안 풀린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67-76)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면 문제는 영원히 안 풀린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김형원

성섬유 및 플라스틱 용기의 원료인 디엠티 제조공정은 우리 나라 최초 자체 연구개발로 공정을 최적화한 중요 석유화학공 정의 하나이다. 독성물질을 취급하는 매우 까다로운 공정이므로 자체 개발된 우리 제조공정은 높은 경제성과 기술경쟁력까지 갖춘 우수 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 이란의 이스파한공단에 위한 한 화학회사 는 우리나라의 디엠티 제조기술을 이전 받아 공장을 확장하고자 2000년대 초 우리나라 회사와 디엠티 제조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 하였다. 당시 국내 석유화학 제품은 주로 일본, 유럽, 미국 등으로 부터 높은 기술료를 지불하고 기술을 들여와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 는 실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화학플랜트의 제조기술을 해외에 수출

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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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의 역할은 물론 기기들의 특징과 기능을 열심히 익혔다. 아는 만큼 큰 힘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름의 대비를 한 것이다. 또한 반응 조건과 품질보증, 품질검사의 중요 포인트도 확인하였고 현장건설 일정표도 얻어 미리 정리해두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출국 비행기에 올랐다. 수도 테헤란을 거쳐 2일에 걸쳐 이스파한에 도착하는 동안 기내에서도 필자는 현장에 도착 즉시 수행할 업무추진방향과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현장에는 분명히 잘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계획대로 잘된 것을 제외하고는 보통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내가 나름대로 정리한 문제는 이렇다. 건설일정계획에 따라 아직 수행이 안 된 부분과 문제가 되어 수정이나 재시공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장 도착 즉시 이 두 가지 문제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현장 책임자로 부임하여 인사차 사장실을 찾은 자리에서 사업주 책임자들을 소개 받고 나오자 사업주 프로젝트 담당자는 나에게 이런 소식을 전했다. 사업주 임원회의 결과, 한국 기술이전 팀의 능력이 자기들 기술팀보다 더 나은 점이 없는 것 같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몇 주간 더 지켜보고 별 차이가 없으면, 기술이전 팀 전원을 철수 시키고 자체기술로 공사 및 시운전을 수행할 것이라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였다.

현장책임자로 파견된 필자는 매일 아침 공사현장을 돌며 건설일정 차트를 들고 시설물을 낱낱이 뒤지며 공사상 문제점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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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확인한 문제들 중에서 사업주의 책임으로 중 수행되지 않은 항목은 별도 목록을 만들었다. 불이행 목록표는 회의토의자료에 첨부해 사업주와 문제점을 공유함은 물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응해 나갔다. 회의 말미에서는 만일 이러한 지원요청 사항이 해결되지 않으면 공사는 계속 지연될 수밖에 없으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사업주측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계약서상 사업주의 책임으로 불이행 된 부분에 대해 발생한 추가 파견비용 및 지연 손해배상금 요청하는 내용을 사업주측 회장에게 서면 보고하겠다고 했다. 이 또한 회의록에 기록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사업의 총 책임을 맡은 사업주 사장은 매우 긴장한 모습을 보였고, 직접 현장의 건설 하도급업자들을 진두 지휘하기 시작했다. 일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나갔다.

특히 사장은 필자의 책임 있는 소신과 업무추진방향과 방법에 믿음을 갖게 되어 필자의 부탁과 요구에는 적극 호응하여 필자도 업무수행에 자신을 얻게 되었다. 문서화된 회의록이 업무추진 및 해결에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이란 파견 전 이란에 경험이 많은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란 사람은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한번 믿으면 신의와 신뢰가 두텁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며 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필자가 사전준비한 해박한 업무지식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은 물론, 품질보증이나 품질검사 등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모든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지시하는 모습에 모두 놀라워했다. 특히 그들이 잘 모르는 전문분야인 ASME표준1)에 따른 용접사자격인증서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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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팀의 추가예산은 이상사업주 비용으로 사업주 측에 청구하기로 하였다. 기계적 준공확인서를 회사에 인계한 필자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회사가 제공하는 달콤하고 꿈간은 2주간의 황금연휴를 받아 북유럽으로 날아가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이번 필자의 이란 현장업무에서 얻은 값진 교훈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면 문제는 영원히 안 풀린다’는 것이다. 플랜트의 특징은 매우 복잡한 고가의 대형 기기설비시스템으로 설치와 시공이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만큼 위험요소가 높아 자칫 수억 달러에 이르는 큰 손실로 이어지기 쉽다. 1980-90년대 중동을 위시한 해외 플랜트사업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건설회사가 패망 또는 합병된 것은 모두 이 플랜트 시공의 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안다면 누구나 그 문제점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어려운 플랜트 기술이전을 위한 해외 현장업무에서 느낀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무작정 열심히 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플랜트의 공정과 기기 및 설비의 역할과 특징의 이해는 물론이고, 국제규격에 따른 현장 품질검사 등 전문적인 기술의 이해를 통해 실행상의 문제점 확인과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프로정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또한 현장에서 감독자들이 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계약서상의 조항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다. 사업주와 계약자 간의 책임 범위와 한계를 이해하고 실행에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면 문제는 영원히 안 풀린다 71 옮길 수 있도록 결과를 문서화 하는 일은 이 사업에서 성공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소통의 결과물은 항상 회의록으로 문서화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사업주에게 항상 진솔한 자세로 대하고, 자신 있게 상대 측의 의무와 지원 사항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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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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