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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개발 성공의 핵심은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35-42)

ReSEAT 전문연구위원 한승호

로 모든 국민이 고통 받던 그때, 나는 한 대기업에 다니는 30대의 혈기왕성한 주임연구원이었다. 출근 후 업무 개시 전, 사전 예고 없이 갑작스러운 회의가 소집됐다. 불 길한 예감이 들었다. 구조조정의 광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던 터라 혹시 우리 팀에도 구조조정의 한파가 엄습한 것이 아닐까하는 불 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회의실에 먼저 도착한 팀장님의 어두운 안 색을 보자 점점 두려움이 커졌다. 나를 비롯해 회의실에 모인 선 후배와 동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다들 굳은 얼굴 을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잡담하는 사람이 없어 무 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깨고, 팀장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회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점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곧 이어진 한마디에 우리는 귀를 의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조조정이 아닌 새로운 특명이 내려졌다. 3개월 내에 수입부품들을 반값 이하로 제작해 국산화하라는 지시였다. 다른 시기 같았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불만이 쏟아 졌겠지만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기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구조조정 대신 내려진 미션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가지가 넘는 수입부품을 3개월 내에 개발해 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입부품의 반값 이하로!

수십 종의 부품 중 나에게 맡겨진 개발 임무는 중장비의 중요부품인 에어브리더를 국산화 하는 일이었다.

시간도 촉박하고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지시가 내려올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다. 90년대 말 발생한 IMF는 기업에 있어서 전대미분의 엄청난 시련이자 절벽위에 선 것과 같은 생과사의 기로였다. 급격한 환율변동은 수많은 회사들을 파산시키고 있었다.

원화 대비 달러와 엔화 환율이 갑자기 2배나 뛰자 제품 제조원가의 주요부분인 수입부품의 가격을 급격하게 상승시켰기 때문이었다. 부품을 수입해 조립 생산하던 우리 회사와 같은 많은 회사들의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수입하던 부품을 값싸게 개발해 국산화 하는 방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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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쁨은 며칠을 가지 못했다. 개발 성공에 수고했다고 나를 격려해 주시던 팀장님이 한마디에 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가격을 수입부품 대비 반절 이하로 줄였건만, 이번에는 25% 이하로 더 줄이라는 것이다. 어렵다면 개발을 포기하라는 말이 이어졌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비용을 25%이하로 줄이라니. 흥분한 나는 이성을 잃고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팀장님은 나의 반응을 이미 예상한 듯 차분하게 듣다가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예전에도 개발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다른 국내 업체가 국산화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한 사례가 있 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산 개발품이 시장에 출시 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일본기업은 가격을 개발가격과 동등한 가격으로 낮춘 저가 공세를 펼쳤다. 결과는 국내 업체의 참담한 실패였고,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 일본기업은 가격을 원래대로 올리고, 국내시장을 독점해 국내 경쟁사의 시장진입을 차단해왔다는 것이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사전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 였다. 하지만 팀장님도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기업이 가격을 낮출 없는 마지노선은 수입가 대비 25%정도일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했다. 자신 없으면 포기해도 된다는 팀장님의 마지막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 고심의 나날을 보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포기할 순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다시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협력업체였다. 사장님은 현재 상황과 계획을 들은 후 절대 불가능하다고 못 박으셨다. 회의 탁자에 수첩을

기술개발 성공의 핵심은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35 던지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내 사무실로 다시 돌아온 사장님은 비장한 표정으로, 가격을 낮추는 방법 부터 찾아보자고 했다.

다시 고난의 날들이 시작됐다. 원가절감 방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나에게 현장의 고참 기술자들은 또 다시 큰 힘이 되어주었다.

고참 기술자 중 한분에게 자칭타칭 원가절감의 고수를 소개받은 것.

그 분을 만난 건 메마른 땅의 단비와 같았다. 소개 받은 분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허름한 창고 같은 공장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로 백발의 사장님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 45년 간 기능 경력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에 있는 분에게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내심 낙담하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발걸음을 했으니 일단 설계도면을 내밀었다. 한참을 도면을 들여다보던 사장님은 대뜸 한마디를 건넸다.

“설계를 왜 이따위로 했수? 이러니 원가절감이 어렵지!”

나의 자존심을 깔아뭉갠 후, 도면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했다. 나름 9년이라는 나의 설계 경력이 부끄러울 정도로 내가 설계한 에어브리더 도면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지적하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분의 지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세부 부품의 가격 절감은 기초부터 검토하면 해결책이 쉽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성 및 세밀한 공차가 요구되지 않은 부품은 가격이 저렴한 재료로 작업공정을 단순화 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지적을 듣다보니 그동안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은 특히 개발 및 설계 부문의 종사자들은 제품의 품질과 성능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과잉설계를 하는 우를 종종 범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원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 동일한 품질과 성능을 갖추면서도 표준화 된 부품을 사용하고, 부품의 수를 최소화 하는 설계가 제품의 원가절감과 직결된다는 지적이다. 제품의 기획부터 제품의 출하에 이르는 전 공정을 염두하고 어떻게 하면 원가를 절감시킬 수 있는가를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으로 동시에 보아야한다는 지적은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단지 엔지니어는 좋은 기술만 개발하여 좋은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닌, 좋은 제품을 보다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사업가적인 시각도 필요하다는 점을 그때 깊이 깨닫게 되었다.

다시 시작된 2차 개발은 재설계에 가까웠다. 불요불급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구성부품을 단순화 시키는데 집중했다. 이어서 현장 조립과정까지 개선해나갔다. 그 결과, 수입부품의 20%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에어브리더 국산화에 성공했다. 나의 개발은 회사의 원가 절감에 큰 기여를 하여 성공사례로 보고되기도 하였다.

개발 성공 후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편협한 편견을 바로 잡은 것이다. 그 당시 고학력의 연구원들이 흔히 갖고 있는 편견 중 하나는 고학력 및 학위에 대한 우월의식이었다. 그런 우월의식은 오랜 경험과 연륜을 가진 현장 기술자들의 소중한 경험을 경시하는 잘못을 범하곤 했다. 이번에 수입부품 국산화를 진행하면서 만난 현장의 고참 기술자

기술개발 성공의 핵심은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37 들이 가진 노하우와 경험은 책이나 도면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교과서 그 자체라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이후 기술개발 및 설계를 할 때는 반드시 생산부터 물류에 이르기까지 전체 공정에 걸쳐 있는 현장에 직접 나가 기술자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청취하고 수렴하였다. 그야말로 기술개발 성공의 핵심은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무를 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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