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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쇼펜하우어의 이념

문서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론 연구 (페이지 57-63)

Ⅳ.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이념

3)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이념

쇼펜하우어는 이념을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일하게 간주한 반면, 칸트가 말하는 이념

182)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229쪽.

183)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230-231쪽.

과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쇼펜하우어는 이념을 “스콜라 철학이 독단적으로 말하는 이 성의 추상적 산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데, (…) 칸트는 그러한 이념을 지 칭함에 있어 플라톤이 이미 소유했고 지극히 합목적적으로 사용한 단어를 부당하고 부 적절하게 잘못 사용한 것이다.”184)라며 칸트를 비판한다.

칸트가 이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물론, 플라톤의 이데아를 염두한 것이며 이에 관해서는 칸트 스스로도 언급한 바 있다. 칸트는 순수 오성이 산출한 개념을 아리스토 텔레스의 범주 개념에서 빌어 왔듯이185) “순수 이성의 개념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 어 그것들을 선험적 이념들이라고”186)부른다고 언급하면서 이 용어의 출처를 플라톤의 이데아로 밝힌다. 그리고 플라톤의 이데아가 “감관들로부터는 빌려올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루었던 오성의 개념들조차도 훨씬 뛰어넘어가는, 그러니까 경험 중에는 결코 그것에 상응하는 것을 만나지 않는 그런 어떤 것을 의미”187)한다는 면에서 자신의 이념과의 개념적 연관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칸트와 플라 톤의 이념은 인간의 감각이 수용한 경험을 넘어선다는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플라톤의 이데아가 주관 밖에 존재하는 보편자임에 반해 칸트의 이념은 인간의 주관 안에서, 즉 이성에 의해 얻어지는 보편적 개념으로 상정된다는 면에서 다르다. 그렇지만 칸트는 그 러한 주관의 선험적 보편으로서의 이성 이념에 대해서도 플라톤의 이데아로부터 근거하 고자 한다. 이와 관련한 칸트의 언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표현을 썼는데, (…)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이념들은 최고 이성으로부 터 유출하여, 그로부터 인간의 이성에 분유되었다. 그러나 인간 이성은 이제 더 이상 그 원 초적인 상태에 있지 않아, 지금은 매우 모호해진 옛 이념들을 상기를 통해 되불러내야만 한다.

188)

184)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231쪽.

185) 칸트는 일반적 표상의 종합으로서 순수 오성의 개념들을 ‘범주(Kategorie)’라 칭하며, “이 개념을 아 리스토텔레스를 좇아 범주들이라고 부르고자 한다.”(KrV. B106.)고 언급한다. 하지만 칸트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범주가 “아무런 원리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개념들을 부딪치는 대로 긁어모아 (…) 몇몇 순수 감성의 양태들을 비롯하여 경험적 개념”(KrV, B107.)이 들어있는 결함을 가진다고 비판 한다. 즉 칸트는 경험에 속하지 않은 순수오성의 개념들의 목록이라는, 범주에 부여한 엄밀한 의미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개념을 비판하면서, 용어가 포함하는 의미와 원리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186) KrV, B368.

187) KrV, B370.

188) KrV, B370.

여기에서 칸트는 플라톤이 언급한 이데아와 이성간의 관계, 즉 최고 이성189)으로부터

달리 칸트는 주관이 인식하는 선험적 원리에서 보편성을 찾고자 하였으며 이성의 이념 은 그러한 요청에 부응하는 개념이다. 즉 경험을 초월하고자 하는 사유의 출발점은 같 지만 주관을 경계로 하여 전혀 다른 종착점을 가진다는 면에서 두 개념은 구분된다.

이와 관련하여 브로드(Broad)는 이념이라는 용어가 칸트의 선험철학 체계 내에서 가 지는 전문적인 의미를 이해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에 의하면 이념이란 오성이 통합하 는 개념의 무한한 계열을 종결된 것 또는 완결된 것으로 이성이 생각하고자 하는 노력 의 결과로서, 이성에 의해 요청된 최종적 항이나 완결된 전체의 개념을 의미한다.193) 또한 카울바흐(Kaulbach)는, 칸트의 이념이 자연을 현실화시킨 최고의 보편자로서 신을 중심으로 하는 이전의 초월철학(Transzendentalphilosophie)194)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 는데 원리가 되는 개념으로서, 개별자를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인 개념을 주관 안에서 찾은, 경험적 표상이 섞여 있지 않은 개념이라고 설명한다.195) 또한 서정욱은 칸트가 플라톤의 이데아를 자신의 철학에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념인 이념으로 바꾸어 설명하려 한 점을 지적한다. 즉 칸트에게 이념은 이성의 추리를 통해 경험에서 이끌어 낸 무제약자의 개념이고 그에 비해 플라톤의 이데아는 경험 중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데아를 인식 능력 안에서 설명하려 한다는 것이다.196) 결국 이데 아는 경험으로부터 연역하지 않은, 그리고 이성에 의해 추론된 개념이 아니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이처럼 칸트의 이념과 플라톤의 이데아는 용어를 공유하지만 그 형이상학적 의미는 차이를 갖는다. 쇼펜하우어 또한 이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칸트의 이념에 대해서는 비판 적 논지를 드러낸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칸트의 이념은 “추론을 오성의 범주에 적용 함으로 생겨나는 (…) 이성에 의해 행해진 작업”197) 의 결과이다. 그에 반해 플라톤의 이데아는 주관의 인식 너머의 진리의 세계로서 영혼이 이미 보았지만 잊어버리고 있던

193) Broad, Charlie Dunbar, Kant : An Introdu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8, ; 칸트 철학 의 분석적 이해, 하영석·이남우 옮김, 서광사, 1992, 305쪽.

194) 여기서 초월철학의 원어는 ‘Transzendentalphilosophie’로서 칸트의 선험철학의 원어와 같다. 그러나 칸트의 Transzendental-philosophie는 신을 최고의 보편자로 한 중세의 초월철학이라는 용어에 이성의 선험적 원리를 중심으로 한 철학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다시 사용하고자 한 의도를 가진다. 이 러한 맥락에 따라 여기에서의 Transzendentalphilosophie는 ‘선험철학’이 아닌, 본래의 신 중심의 의미 로 사용되었던 용어로서 ‘초월철학’으로 표기하도록 한다.

195) Kaulbach, Friedrich, Immanuel Kant, Berlin: Walter de Gruyter & Co., 1696. ; 칸트 비판철학 의 형성과정과 체계, 백종현 옮김, 서광사, 1992., 119-120쪽 참조.

196) 서정욱, 「칸트에 있어서 이성과 이념의 관계」, 동서철학연구 제55호, 2012, 99쪽.

197)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부록 - 칸트 철학 비판, 671쪽.

불변의 진리를 다시 직관적으로 상기하는 형상이다.198)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칸트의

요컨대 칸트의 이념과 쇼펜하우어의 이념 간에는 이성에 의한 추상적 사고와 이를 벗어난 직관이라는 분명한 인식론적 대립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플라톤의 이 데아와 칸트의 이념 또한 동일한 차이를 내포한다.201) 아울러 쇼펜하우어가 영원한 형 상으로서의 이념을 파악하는 인식으로서 제안된 미적 직관은, 이념에 다다르는 쇼펜하 우어의 예술철학이 성립되는 출발점이 된다.

분열한 것임에 반해 개념이란 이성의 추상에 의해 다수성이 다시 단일성으로 복원된 것이다. 여기서 단 일성은 사후의 단일성(unitas post rem)이라 불릴 수 있고, 앞의 이념에서의 단일성은 사전의 단일성 (unitas ante rem)이라 불릴 수 있다. 따라서 개념은 일상과 학문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이념은 예술 의 원천이 된다.(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383-385쪽.)

201) 직관 대 추상이라는 쇼펜하우어와 칸트 이념의 이러한 인식론적 차이는 플라톤과 칸트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이데아(이념)에 관한 쇼펜하우어와 플라톤의 인식론적 유사성은, 앞 서 살펴본 두 개념간의 존재론적 차이, 또는 쇼펜하우어 이념의 매개 원리의 모호함과는 상관없이 존속 된다. 즉 그러한 차이와 혼선에도 불구하고, 직관 대 추상이라는 인식론적 구도 하에서 쇼펜하우어와 플라톤은 칸트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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