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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숭고

문서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론 연구 (페이지 26-29)

Ⅲ. 칸트의 미와 숭고개념

3) 미와 숭고

칸트는 미적 판단의 두 형식으로 미와 숭고를 구분한다. 즉 어떤 대상 x와 관련하여

‘x가 아름답다’는 진술에 대한 판단과 ‘x가 숭고하다’는 진술에 대한 판단이다.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미적 판단력 분석’의 하위에‘미의 분석’과 ‘숭고의 분석’을 구분하여 논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분은 앞서 살펴보았던 버크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숭 고의 분석에서 버크에 대한 비판적 논증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은 잘 드 러난다. 하지만 칸트는 미와 숭고를 구분함에 있어 버크의 경험적, 심리적 차원과는 다 른 선험적 원리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즉 칸트에게 미와 숭고는 버크의 분석 영역인 대상의 경험적 속성이 아닌, 대상에 대한 주관 내의 반성적 판단의 영역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미와 숭고가 구분될 수 있는 지점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는 대상의 표상 형식 측면이며, 둘째는 표상 형식과 관련하여 인식 능력들이 관계하는 측면, 그리고 그로인해 발생되는 쾌의 성질의 차이가 그것이다.

첫째, 미는 표상의 형식에 있어서 항상‘한정성(Begrenztheit)’을 전제로 하는 있는데 반해 숭고는‘무한정성(Unbegrenztheit)’또는 몰형식성(Formlosigkeit)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미적인 것은 대상의 형식에 관련이 있고, 대상의 형식은 한정에서 성립”하는데 반 해, 숭고한 것은 “몰형식의 대상에서”63)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몰형식의 대상에서 비롯되는 쾌가 숭고의 감정이다. 이 때 쾌의 감정이 발생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미의 경우에는 대상의 표상에 대한 합목적적인 형식의 판단을 통해 쾌의 감

61) 취미판단의 나머지 계기(양, 관계, 양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도록 한다. 본 논문은 쇼펜하우어의 예 술철학을 숭고에 관점에서 다루고 칸트 미학과 비교하여 논의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쇼펜하우어의 미적 개념과 관련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칸트의 미와 숭고개념을 다루고자 한다.

62) Wenzel, Christian Helmut, An Introduction to Kant's Aesthetics, Blackwell Publishing Limited, 2005. ; 칸트 미학, 박배형 옮김, 그린비, 2012, 60쪽.

63) KU, B75.

정이 직접적으로 발생되는 반면, 숭고의 경우에는 몰형식의 반목적성으로 인해 불쾌의 감정을 동반하여 이성의 사유 안에서 합목적성이 비로소 달성되어 쾌에 이르는 간접적 인 방식을 경유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의 미적인 것을 위해서는 우리 밖에서 하나의 근거를 찾아야 하지만 숭고한 것을 위해서는 한낱 우리 안에서, 그리고 자연의 표상에 숭고성을 집어넣는 사유방식 안에서 하나의 근거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64) 요컨대, 대상의 표상 형식에 있어서 미와 숭고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미적 대상이 한정할 수 있는 표상 형식인가 그렇지 못한가의 차이이며, 한정된 표상의 조화로운 형식에서 느껴 지는 감정이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포섭되지 않는 표상의 몰형식에 대해 느끼는 불쾌 를 거친 간접적인 쾌의 감정이 숭고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차이는 대상의 표상이 인식 능력들과 관계하는 방식에 있다. 주관은 대상을 표상하고 의식함에 있어서 상상력이 오성, 또는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 쾌, 불쾌의 감정 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미와 숭고를 판단하는 차이가 드러난다. 미의 경우에는 한 정적이고 표상의 형식에 대한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 조화로운 합목적적 통일 의 의식으로 불러일으켜지는 쾌이다. 여기에서 대상의 표상을 한정적 형식으로 제한하 여 개념에 의해 통일을 부여하는 능력은 오성이다. 하지만 숭고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 이 표상의 형식이 무한정성, 몰형식성을 띄게 되는데 이러한 형식은 상상력과 오성에 의한 개념적 포섭이 좌절하게 됨에 따라 불쾌의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 포섭되지 않는 몰형식적 표상으로 의해 상상력과 오성은 한계를 맞게 되고 이로 인해 이성의 관여는 불가피하다. 좌절된 상상력은 진지함(Ernst) 속에서 이성과 관계하고 여기에서 무제약자 (das Unbedingte)의 이념을 상정할 수 있는 이성에 의해 불쾌는 비로소 쾌로 전환된다.

다시 말해 무한정성을 미감으로 파악할 수 없는 상상력과 오성의 한계는 이성의 관여, 무제약자의 이념을 통해 합목적적 형식의 미적 판단이 가능해지며, 여기에서 이성의 이 념을 매개로 하여 상상력과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불러일으켜지는 쾌가 바로 숭고다.

미적인 것을 판정할 때에 미적 판단력은 자유롭게 유희하는 상상력을 오성과 관련시켜 오 성의 개념들 일반과 부합하도록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어떤 사물을 숭고하다고 판정할 때는 똑같은 능력(상상력)은 이성과 관련하여 그 이념들과 주관적으로 합치하도록 한다. 다 시 말해, 일정한 이념들이 감정에 영향을 미쳐 일으키게 되는 그런 마음의 정조에 맞고 그

64) KU, B79.

와 화합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의 정조를 만들어내도록 한다.

65)

미와 숭고의 세 번째 차이로, 상상력이 오성과의 조화를 통해 얻는 미적인 쾌와 이성 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 숭고의 쾌는 질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숭고에서 비롯되는 쾌는 미의 긍정적인 쾌(positive Lust)가 아니라, 부정적인 쾌(negative Lust) 의 성격으로 나타나게 된다. 숭고에서의 쾌는 오성의 개념 규정을 통한 상상력과의 합 목적적이고 긍정적인 조화가 아닌, 표상의 형식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비 롯되는 상상력의 좌절, 이성과의 상쟁(Widerstreit)의 부정의 의식을 거친다는 점에서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쾌이다.66) 또한 미와 숭고가 다다르는 쾌의 감정 또한 다른 성질 로 느껴지는데, 미에 있어서는 상상력과 오성간의 조화와 통일에 따른 정적인 관조 (ruhige Kontemplation)의 상태로 나타나는데 반해, 숭고는 상상력의 좌절과 이성과의 상쟁에 의한 동요의 감정을 낳는다.67) 이러한 동요의 감정은 대상을 총체적으로 표상할 수 없음으로 인한 부정의 감정이면서 동시에 표상할 수 없음에 따른 대상에 대한 존경 과 경탄의 감정 또한 마음속에서 불러일으켜지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칸트는 그러한 감 정의 동요와 경탄의 부정적 쾌의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미적인 감정)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촉진하는 감정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매력이나 유 희하는 상상력과 합일할 수 있지만, 저것(숭고의 감정)은 단지 간접적으로만 생기는 쾌이 다. 곧, 이 쾌는 생명력들이 일순간 저지되어 있다가 곧장 뒤이어 한층 더 강화되어 범람하 는 감정에 의해 산출되는 것으로, (…)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긍정적인 쾌가 아니라, 오 히려 경탄 내지는 존경을 함유하며, 다시 말해 부정적 쾌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68)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부정적 쾌에 의해 불러일으켜지는 존경과 경탄은 대상 에 대한 것이지만, 대상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감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주관 내에

65) KU, B95.

66) 무한한 것을 상상력이 파악할 수 없는 불쾌가 이성의 관여를 통해 쾌로 전환되지만,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이성은 상상력에 규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박지용, 위의 논문, 39쪽.) 앞서 살펴보 았듯이, 미적 판단은 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적 판단이며 따라서 오성의 보편적 범주 내에 포괄되어 규정되지 않으며 다만 상상력과의 합목적적 형식의 조화에 의해 보편이 발견되는 판단이다. 미적 판단 은 주어진 표상과 관련한 주관의 인식 능력들과의 관계의 문제이지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문제 가 아니다.

67) KU, B98.

68) KU, B76.

서의 상상력과 이성간의 상쟁과 조화 속에서 일깨워지는 쾌의 감정으로, 주관에 의해 환기되는 이념과 관련된다. 즉 “숭고한 것은 어떤 감성적 형식에도 함유되어 있을 수 없고, 오직 이성의 이념들과만 관련”되는 감정이다.69) 따라서 대상의 무한정적이고 몰 형식적인 표상 형식이 “(미적) 판단력에 대해서 반목적적이고, 우리의 현시능력에는 부 적합하며, 상상력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폭력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숭고한 것으로 판단”70)되는 것이다. 만약 무한정적이고 위협적인 대상에 대해 이성에 의한 이념이 일깨워지지 못한 채 상상력이 좌절에 그친다면 두려움과 공 포의 불쾌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대상은 숭고하다고 판단될 수 없다. 결국, 몰 형식적인 대상에 대한 동요와 존경은 대상이 가진 크기와 힘의 무한한 거대함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닌, 그것을 넘어서는 이념의 선험성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무한한 것의 표상은 그러한 선험적 이념에 대해 합목적적이며 이에 따라 우리는 그로부터 쾌 를 느끼게 된다.71)

미와 숭고의 차이에 대해 살펴본 바를 정리하자면, 칸트는 미와 숭고를 표상의 형식 과 인식 능력간의 관계, 그리고 쾌와 불쾌의 발생 방식에 의해 미와 숭고를 구분하고 있다. 즉 미와 숭고는 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적 판단으로서, 미의 감정은 한정적인 형식의 대상에 대한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와 조화에서 기인하는 쾌인데 반해, 무한정적이고 몰형식적인 대상에 대한 상상력의 좌절에서 비롯되는 불쾌가 이성의 이념 에 의해 합목적적 쾌에 다다르는 부정의 쾌가 숭고의 감정이다. 이러한 미와 숭고의 차

미와 숭고의 차이에 대해 살펴본 바를 정리하자면, 칸트는 미와 숭고를 표상의 형식 과 인식 능력간의 관계, 그리고 쾌와 불쾌의 발생 방식에 의해 미와 숭고를 구분하고 있다. 즉 미와 숭고는 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적 판단으로서, 미의 감정은 한정적인 형식의 대상에 대한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와 조화에서 기인하는 쾌인데 반해, 무한정적이고 몰형식적인 대상에 대한 상상력의 좌절에서 비롯되는 불쾌가 이성의 이념 에 의해 합목적적 쾌에 다다르는 부정의 쾌가 숭고의 감정이다. 이러한 미와 숭고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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