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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과 한계

문서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론 연구 (페이지 101-108)

Ⅵ. 쇼펜하우어 예술개념의 특성과 한계

2) 영향과 한계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은 오늘날 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336)

331) 쇼펜하우어는 예술과 관련된 논의에서 ‘구원(Erlösung)’, ‘열반(Nirvana)’와 같은 표현을 직접 언급하 기도 한다. 이는 종교적인, 혹은 영적 신비주의의 차원의 의미라기보다는 체념의 태도에 따른 정신적 고양의 상태를 문학적으로, 비유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332) 박영선, 위의 논문, 147;151쪽.

333) 셰어의 이러한 견해는 칸트의 무관심성과 쇼펜하우어의 무욕성을 모두 실천철학에서의 ‘자유’ 개념을 가능케 하는 전제로 삼는다는 데서,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을 칸트 미학과 실천철학의 연장으로 파악하 는 관점이다.

334) Scheer, 위의 책, 211쪽.

335) Scheer, 위의 책, 198쪽.

336)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의해 볼 수 있겠으나, 근대 미학이 칸트에 의해 체계

지만 이전의 미학과는 다른 쇼펜하우어의 독특한 철학적 탐색의 의미와 이후 예술가들 에게 미친 영향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예술철학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특히 쇼펜하우 어의 예술철학으로 미학에서 예술의 지위가 격상되고, 예술과 숭고의 체험을 적극적으 로 연결한 측면에서 예술사에 미친 중요한 영향을 거론할 수 있다. 고대 이후로부터 예 술은 자연의 모방(mimesis)으로서, 재현과 생산의 기술(techne) 형태 중 하나로서, 삶에 서 부차적인 영역으로서만 그 의미가 한정되어 왔다.337) 따라서 학문에 비해, 혹은 정 치 또는 종교 활동에 비해 그 지위와 가치가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 다. 근대에 이르러 예술이 향유의 대상으로서, 귀족의 교양 활동을 위한 취미로서 높여 지고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이론화 작업 또한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 나, 여전히 합리적 이성에 비해 부차적인 인식으로서 쾌에 이르는 도구적인 경험에 머 무를 뿐이었다. 예술의 이러한 열등한 지위는 감각적 경험을 강조한 영국의 취미론으로 부터 미에 대한 지성주의적 분석을 시도한 독일 관념론 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특히 칸트에 이르러서는 인간에 의해 제작된 예술미마저도 미적 판단의 영역 에서 제외됨으로써 자연에 비해 열등한 예술이라는 인식을 초래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미학자 크로체(Croce)는 칸트의 미학이 미적 판단을 “진리와 구분되는 정신의 영역”이 자 “특수한 감각적 활동의 영역”으로서 진리의 하위에 두었으며, 특히 자연미가 아닌 예술미는 이러한 영역에서조차도 속하지 않는다고 보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칸트는 “예술을 개념에 수반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338) 즉 칸트는 예술의 지위 를 개념의 하위로 놓음으로써 미적 판단력의 대상 영역에서마저도 제외시키고 있다. 이 러한 점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은 자연과 이성, 진리의 영역으로부터 제외되었던 예술의 지위를 그의 형이상학적 체계 내에서 비약적으로 복권한다. 또 한편으로 함머마 이스터(Hammermeister)는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이 예술을 항상 보다 큰 전체, 즉 도

적으로 정초되고 쇼펜하우어는 주로 칸트의 계승자로서만 취급되어 온 탓을 들 수 있다. 특히 칸트 미 학과 동일한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칸트 미학에 의존한다는 오해가 고착되어 왔다. 하 지만 이러한 점은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이 칸트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예술철학 또한 이와 동일한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재고될 필요가 있다.

337) 예술을 ‘모방물’, ‘모방행위’로 보는 견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예술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이었으며, 19세기 이후 이러한 모방이라는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등장하였다. 즉 작가의 표현이나 감상자의 경험과 같은 예술의 또 다른 국면에 직접적인 주목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들이 나타나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Levinson, Jerrold, The Oxford Handbook of Aesthetics,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 미학의 모든 것, 김정현 외 옮김, 북코리아, 2018., 173쪽 참조)

338) Croce, 위의 책, 340쪽.

덕과 공동체적 가치, 학문적 개념 등과의 결합이라고 여긴 미학적 전통으로부터 이탈하

나아가서는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삶의 조건, 고통의 불가피성, 삶의 근원적 의미에 대

출발한다는 점에서 결국 다다를 수밖에 없는 학문적 딜레마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으며, 이후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예술체험과 관련된 논의에 있어서는, 이념을 조망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의 예술가로 천재를 전제하고 개체의 욕망을 벗어난 무욕성을 요청한다는 면에서 현대 예술이 지향 하는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배제하게 되는 한계가 지적 된다. 다시 말해 예술을 이념으로의 정신적 고양이 허용되는 천재만의 전유물로 취급하 고, 천재만이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감상자는 단지 수동적인 지위에서 천재의 예 술성을 수용할 뿐이라는 주장은, 예술의 생산과 감상이 대중화되고 창작자와 감상자의 구분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시대에는 수용하기 어려운 배타적 관점으로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350) 게다가 여기서의 천재는 현대적 의미의 천재, 즉 예술적 표현의 잠재능력 이 뛰어난 자를 지칭하기보다는 개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구도자351)를 의미한다고 했을 때, 자칫 예술과 종교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혹은 예술을 종교적 의미로 덮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예술을 극소수의 특별한 자에게만 국한시키 거나 자격을 강요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수의 대중이 예술가를 자처하고 일상적인 창작을 예술 행위로 간단하게 취급하는 경향에 대해, 진정 한 예술과 예술가의 의미에 대해서 재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의 또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예술 체험의 가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고통에 대한 체념과 연결짓는다는 점에 서 한계가 지적된다. 이는 예술철학뿐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철학 전체에 드리워진 염세 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문제제기와도 연관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쇼펜하우어가 예술을 삶의 고통으로부터의 위안이라는 관점에서 그 목적과 의미를 탐색했다는 점에서, 삶 속 에서의 예술의 역할을 논할 때 취할 수 있는 관점 중 하나로서 평가해 볼 수 있을 것 이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예술관에 대한 극복과 대안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모색 되어 왔다. 그리고 여전히 삶에서 예술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에 대한 탐색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350) 이러한 이유로‘천재’라는 표현은 오늘날의 미학 이론에서는 더 이상 논의되지 않는다. ‘예술가’ 개념 조차 퇴색하여 작가, 제작자, 생산자 등과 같은 개념들로 대체되고 있다. 오늘날 천재 개념에는 비합리 주의 및 사이비 낭만주의라는 오명이 결부되어 있다.(Scheer, 위의 책, 141쪽 참조)

351) 셰어(Scheer)는 쇼펜하우어의 천재 개념을 종교적 의미에서의 ‘구원자’로서, 또는 구원될 길을 앞장서 가는 근대의 ‘사도’와 같은 역할로 해석한다.(Scheer, 위의 책, 211쪽.)

Ⅶ. 결론

지금까지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과 숭고개념을 이전 미학과의 연관과 차이의 맥락 속 에서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고대의 개념적 기원과 근대에서 변화된 숭고개념 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특히 오늘날 숭고개념의 토대가 된 칸트 미학에서의 숭고론과 이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과 숭고개념을 칸트와의 차이점에 주 목하여 살펴보았다.

미학사에서 숭고개념은, 부각되었던 잠깐의 시기와 망각된 대부분의 시기를 반복하는 역사를 거처 왔다. 롱기누스에 의해 수사학적 가치로서 제기되었던 숭고개념은 그 이후 전혀 언급되지 않다가 근대에 이르러 버크와 칸트에 의해 미와는 구분된 보편적 감정 으로서 부각되었다. 버크는 숭고의 대상적 속성과 대응되는 심리적 특성을 종합하였으 며, 칸트는 어떤 대상에 대해 ‘숭고하다’는 판단이 가능하도록 이끄는 인식의 선험적 원 리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칸트의 미학을 통해 숭고는 미의 판단에는 없는 이성의 무제 약적 이념의 역할을 통해 단순한 미적 감정 이상의 인식론적 의미를 획득하며 지금의 숭고개념의 전거가 된다. 칸트에게 있어 숭고의 체험은 감성의 한계와 좌절을 넘어서는 이성의 우월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이성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이념 인 도덕성에로 이끈다는 점에서, 미와는 다른 이성의 자기초월적 가치를 끌어낸다. 하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와 통일의 형식을 추구하는 주관의 합목적적 판단에서 미 의 완전성을 찾고자 했던 칸트는 통일적 형식으로 포착하지 못하는 몰형식에서 비롯된 숭고를 부수적인 미의 하위 감정으로 귀속시켰으며, 또 한편으로 숭고 체험의 궁극적 의미를 도덕적 정신으로의 고양에 한정시킴으로써 미학적 논의의 중심에서 숭고를 배제 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로 인해 숭고는 미학의 주변 개념으로 밀려나 현재에까지

미학사에서 숭고개념은, 부각되었던 잠깐의 시기와 망각된 대부분의 시기를 반복하는 역사를 거처 왔다. 롱기누스에 의해 수사학적 가치로서 제기되었던 숭고개념은 그 이후 전혀 언급되지 않다가 근대에 이르러 버크와 칸트에 의해 미와는 구분된 보편적 감정 으로서 부각되었다. 버크는 숭고의 대상적 속성과 대응되는 심리적 특성을 종합하였으 며, 칸트는 어떤 대상에 대해 ‘숭고하다’는 판단이 가능하도록 이끄는 인식의 선험적 원 리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칸트의 미학을 통해 숭고는 미의 판단에는 없는 이성의 무제 약적 이념의 역할을 통해 단순한 미적 감정 이상의 인식론적 의미를 획득하며 지금의 숭고개념의 전거가 된다. 칸트에게 있어 숭고의 체험은 감성의 한계와 좌절을 넘어서는 이성의 우월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이성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이념 인 도덕성에로 이끈다는 점에서, 미와는 다른 이성의 자기초월적 가치를 끌어낸다. 하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와 통일의 형식을 추구하는 주관의 합목적적 판단에서 미 의 완전성을 찾고자 했던 칸트는 통일적 형식으로 포착하지 못하는 몰형식에서 비롯된 숭고를 부수적인 미의 하위 감정으로 귀속시켰으며, 또 한편으로 숭고 체험의 궁극적 의미를 도덕적 정신으로의 고양에 한정시킴으로써 미학적 논의의 중심에서 숭고를 배제 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로 인해 숭고는 미학의 주변 개념으로 밀려나 현재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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