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의지로서의 음악

문서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론 연구 (페이지 82-88)

Ⅴ. 쇼펜하우어의 예술개념과 숭고

2) 의지로서의 음악

쇼펜하우어는 예술 장르 각각에 대해 다루면서 장르적인 특수성이 어떻게 이념의 직 관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피력하는데, 이 가운데 특별히 음악은 쇼펜하우어가 그의 형

의 존재로 보는 데서 오는 동정, 연민의 마음과는 무관한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264) 카타르시스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세한 설명이나 정의를 하지 않아 어떤 원리에서 산출되 는 감정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카타르시스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감정의 정화’를 의미하는 윤리적인 견해와 ‘감정의 배설’을 의미한다는 의학적 견해로 나뉜다.(Aristoteles,수사학, 시학,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7, 361쪽 각주 참조.)

265) 박영선, 위의 논문, 134쪽.

266) Wicks, 위의 책, 162-163쪽.

이상학 체계 내에서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다르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물론 쇼 펜하우어의 의지 형이상학 내에서 예술은 의지의 가장 적합한 객관화, 즉 보편적 형상 이자 모범으로서 이념을 직관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인식 체험으로 간주 된다. 그러나 미적 대상에서 이념을 발견함으로써 의지세계에 매개적으로 관계하는 다 른 예술과 달리 음악은 의지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데,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음악은 이 념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 세계의 근원인 의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그 자체로 형이상 학인 예술이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다른 예술과 음악의 이러한 차이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음악은 다른 모든 예술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음악이 세계 속에 있는 존재의 어떠한 이념을 모사하거나 재현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 음악은 세계 자체와 마찬가지로, 즉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개별적 사물의 세계를 이루는 이념들이 그러하듯이 전체 의지 의 직접적인 객관화이자 모사이다. 그러므로 음악은 다른 예술들과 달리 이념의 모사가 아 니라 의지 자체의 모사(Abbild des Willens selbst)이며, 이념도 이 의지의 객관화에 불과하 다. 바로 그 때문에 음악이 주는 효과가 다른 예술들이 주는 효과보다 훨씬 강렬하고 감동 적이다.

267)

여기에서 우리는 왜 음악만이 의지의 직접적인 객관화인가에 대한 근거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음악을 구성하는 음의 진행과 감정을 자극하는 선율의 흐름이 의지 의 객관화 단계와 유비적인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음악 형식에서의 화성학과 음의 진행을 들어 음 자체와 의지의 유비를 말하는데, 가령 “화음에서 기초 저음은 세계에서 만물의 토대가 되고 만물의 발생과 발전의 기점이 되는 무기적 자연, 즉 가장 자연 그대로의 물질이다.”, “보다 높은 음은 내가 볼 때 식물계와 동물계를 대 변한다. 음계의 특정한 음정은 의지의 객관화의 특정한 단계, 즉 자연에서의 특정한 종 과 유사하다”, “하나의 전체를 나타내는 주성부에서, 나는 인간의 사려 깊은 삶과 노력 인 의지의 객관화의 가장 높은 단계를 다시 인식한다.”268)와 같이 음과 화성으로 이루 어진 선율이 어떻게 의지와 상응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언급은 그의 의 지 형이상학의 체계 내에서 음악이 의지의 직접적인 객관화로서 특수한 위치에 놓여

267)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20~423쪽.

268)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24~426쪽.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음악은 청각적 감각이라는 질료를 통해 표상되지만 이러한 청 각적 표상은 이념의 매개 없이 의지가 직접적으로 관계함으로써, 즉 의지는 음으로서 드러남으로서 감상자에게도 이념으로 조망되지 않고 동일한 의지로서의 신체에 직접적 으로 반응된다. 그러므로 음악을 통해 표현되는 의지, 즉 충동과 격정, 감정은 개체적이 고 개별화된 인격적 감정이 아닌 보편적 감정이며, 음악은 ‘보편적 언어’로서269) 의지를 직접적으로 표상한다.

둘째는 음악이 문자의 언어적 형식이나 돌이나 색료 등의 물질적 형식이 아닌 비물 질적, 비언어적인 형식, 즉 소리가 울리는 음의 감각에 의해 다른 예술보다 직접적이고 신체적으로 경험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창작자는 어떤 매체 즉 문자 또는 조각, 회화 등의 매개물을 통해 보편적 이념을 재현하고 감상자 또한 매체의 형식에 조응하여 재 현된 내용을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와 달리 음악은 언어적, 물질적 매체의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신체의 반응과 직결된 감정을 통해 체험된다. 즉 음악을 통해 감 상자는 의지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체험하는데, 우리 자신의 몸의 충동, 마음이 움직이 는 욕망이나 감정, 격정 등을 의지의 일시적 변형으로서 내면적이고 직접적으로 경험한 다. 여기에서 음악은 특수한 매체의 형식, 즉 표상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직접 적으로 전달해 준다.270) 따라서 음악은 “이런저런 개별적인 특정한 기쁨, 이런저런 비 애, 고통, 공포, 환희, 흥겨움, 마음의 평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 비애, 고통, 공포, 환희, 흥겨움, 마음의 평정 그 자체”271) 즉, 특수가 아닌 의지의 보편적 감정을 표현한다. 따라서 음악 감상의 체험을‘음의 표상에 의한 의지의 충동’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율은 의지의 가장 비밀스런 역사를 이야기하며, 의지의 모든 감동, 모든 노력, 모든 운동 을 그리고, 이성이 감정이라는 넓고 소극적인 개념으로 통합하여 더는 추상 작용으로 받아 들일 수 없는 모든 것을 그린다.

272)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음악은 더 이상 이성에 의해 추상되거나 사유된 예술이 아니며,

269) 홍사현, 「쇼펜하우어의 음악철학」, 철학연구 139호, 2016, 268쪽.

270) 홍사현, 위의 논문, 173쪽.

271)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29쪽.

272)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26쪽.

추상의 개념으로 담을 수 없는 의지의 충동을 음악의 선율은 담아낸다는 것이다. 이렇 듯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의지의 세계에 직접 관계된다는 면을 강조하면서 음악의 특별 한 위치를 강조한다. 음악에 대해 쇼펜하우어가 부여하는 이러한 특별한 의미는 “음악 이란 자신이 철학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정신의 무의식적인 형이상학 연습이다.”273) 라고 언급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인간은 음악을 통해 의지의 충동으로서 삶의 본질을 자각한다. 이러한 측면에 서 음악은 인간의 삶과 직결된 근본 언어이자 존재론적 언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이 스스로의 삶과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수행하는 실존 양식이기도 하다.274) 결국 쇼펜하 우어의 형이상학 체계 내에서 음악은 의지의 한 양상이자 의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개현이며, 따라서 쇼펜하우어에게 있어 음악의 행위는 삶의 본질로서 의지에 다가선다 는 의미이다. 그리고 음악에 몰입해 들어간다는 일상적인 표현은, 주관이 음악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음악에 의해 주관의 사유, 즉 이성적 분별과 개념의 장벽인 표상세계가 허물어지고 의지의 세계로서 음악만이 남는다는 말과도 같다. 쇼펜하우어는 이와 같은 음악의 형이상학적 체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음악은 이념을 고려하지 않는 까닭에 현상하는 세계와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 세계를 단적으로 무시하며 세계가 아예 없어진다 해도 어느 정도는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 른다.

275)

쇼펜하우어는 음악에 관한 논의에서 미와 숭고를 구분하여 다루지는 않았지만, 여기 에서는 쇼펜하우어가 음악의 형식과 의지의 유비를 다룬 부분을 참고하여 음악에서의 숭고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숭고는 삶의 고통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고양의 감정이다. 음악은 선율과 화성의 흐 름을 통해 이러한 삶의 투쟁과 고통을 드러내는데, 가령 “아다지오는 단조에서 가장 커 다란 고통을 표현하여, 아주 크게 마음을 뒤흔드는 비탄으로 된다.”, “가능한 선율이 무

273)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34쪽. ; 이 문장은 쇼펜하우어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라이프니츠 가 음악을 수학에 비유하며 언급한 “정신이 자기가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이 산술에서 행해 지는 무의식적 연습”이라는 말에 대해 이것이 ‘음악의 껍질만을’다룬다고 비판하고 음악의 본질적인 의 미를 밝히고자 한데서 비롯되었다.(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21쪽.)

274) 윤동주, 「쇼펜하우어의 음악 형이상학」, 철학탐구 49호, 2018, 37쪽.

275)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23쪽.

진장 많은 것은 자연에서 개체의 용모와 생애의 차이가 무진장한 것과 상응한다.”, “연 관이 완전히 끊어진 다른 음조로 넘어가는 것은 개체가 끝나는 죽음에 해당한다. 그러 나 이 개체에 나타났던 의지는 이전 개체의 의식과 아무 연관 없는 의식을 지닌 다른 개체에 나타나면서 여전히 살고 있다.”276)와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이러한 음의 전개 는 인간의 겪는 삶의 높고 낮은 격랑과 기쁨과 슬픔의 끊임없는 교차, 불안과 안도, 환 희와 추락의 삶의 보편적인 흐름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비극에서 삶의 고통을 대면하 는 순간과 비유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음악의 이러한 연관에 대해 플라톤은 음악을

진장 많은 것은 자연에서 개체의 용모와 생애의 차이가 무진장한 것과 상응한다.”, “연 관이 완전히 끊어진 다른 음조로 넘어가는 것은 개체가 끝나는 죽음에 해당한다. 그러 나 이 개체에 나타났던 의지는 이전 개체의 의식과 아무 연관 없는 의식을 지닌 다른 개체에 나타나면서 여전히 살고 있다.”276)와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이러한 음의 전개 는 인간의 겪는 삶의 높고 낮은 격랑과 기쁨과 슬픔의 끊임없는 교차, 불안과 안도, 환 희와 추락의 삶의 보편적인 흐름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비극에서 삶의 고통을 대면하 는 순간과 비유될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음악의 이러한 연관에 대해 플라톤은 음악을

문서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론 연구 (페이지 8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