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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서의 숭고

문서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론 연구 (페이지 79-82)

Ⅴ. 쇼펜하우어의 예술개념과 숭고

1) 비극에서의 숭고

쇼펜하우어는 개별 장르예술에 대한 논의에서 의지의 지배에 놓인 삶의 투쟁과 고통 의 모사라는 실존적 의미를 부각하는데, 특히 비극은 쇼펜하우어가 고통을 초극하는 숭 고의 감정과 관련하여 이러한 삶의 이념을 드러내기에 적합하고 중요한 예술 장르로서 다루었다. 쇼펜하우어에게 비극(Trauerspiel)은 시문학의 최고로 칭송될 만큼 의미 있는 예술로 취급되는데,254) 그 이유는 비극이 우리로 하여금 삶이 의지에 종속되어 있으며 삶에서의 투쟁을 의지가 객관화된 개체간의 다툼, 즉 의지 스스로의 자기 파괴라는 것 을 깨닫게 함으로써 고통으로서의 삶의 본질을 직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쇼펜하 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고통과 비애, 악의의 승리, 우연의 경멸적인 지배, 정의롭고 죄 없는 사람들의 절망 적 파국이 우리 눈앞에 전개된다. (…) 의지의 객관성의 최고 단계인 여기(인류의 삶)에서 의지의 자기 자신과의 충돌이 가장 완벽하게 전개되고 끔찍하게 나타난다. (…) 그 의지의 현상이 자기 자신과 싸워 자신을 갈기갈기 찢는 것은 동일한 의지이다.

255)

여기서 비극의 심오함은 우리와 같은 개체들의 고통을 대면하게 하고 삶에서 일어나 는 비극적인 사건들의 개연성을 보여줌으로써, 단지 개별자의 고통이 아닌 삶의 고통에 대한 보편적인 묘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또 한편으로는 고통을 비껴가는 삶의 묘사로서의 희극과 비교함으로써 비극의 진실성이 강조된다. 쇼펜하우어는 삶의 비극적 인 고통이 희극에 의해서는 희석될 수 없다고 말하는데, 희극이 비극적인 세계관에 대 해 반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대안으로서 또는 비극적 세계관을 교화할 수 있는 수단 으로서의 역할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희극이 의지로서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오히려 삶의 본 모습을 위장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절망을 안기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희극은 피상적으론 마치 세계가 조화로운 듯

254)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15쪽.

255)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15-416쪽.

한 인상을 불러일으키지만 의지에 얽힌 고통의 심연을 단순히 은폐할 뿐이다.256) 따라 서 비극만이 인간이 겪는 고통의 본래 모습과 고통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담아 낼 수 있으며, 이를 감상자에게 전달하고 깨닫게 한다.257)

쇼펜하우어는 비극에서 초래되는 인간의 불행이 어떤 모습이어야 의지의 자기 파괴로 서 삶의 고통을 더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에 따르면 비극에서 묘사할 수 있는 불행의 동기는 세 가지인데, 첫째 어느 인물의 이 례적인 악의로부터 초래된 불행, 둘째 우연과 오류에 의해 비롯되는 맹목적인 운명으로 서의 불행,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자의 단순한 입장의 반목을 통해 초래되는 불행이 그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 가지 불행의 형태 중 마지막 것이 가장 비극에 적합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불행을 하나의 예외로서 또는 우연으로서가 아닌 “인간의 행위와 성격으로 인해 쉽게 저절로, 거의 본질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여 주고,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끔찍할 정도로 가까이서 우리가 불행을 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 다.”258) 즉 비극에서 드러난 불행이 개체들 간의 의욕이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투쟁으로 부터 기인하는 데서 삶의 고통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비극 의 개연성에 동참하게 하여 삶의 무상함을 자각하게 한다. 다시 말해 의지의 자기 파괴 가 보다 잘 드러난 불행이어야 하며, 그것이 세 번째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야기되는 갈 등에 의한 불행이다. 요컨대,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개체화된 발현에서 삶에서의 고통의 본질적인 뿌리를 보았고, 이를 가장 심오하게 재현할 수 있는 표현 형식으로 비극을 발 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극에서 숭고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우선 비극은 개체를 고통에 처하게 하는 적대적인 상황이 주어진다는 면에서,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투쟁의 과정 에서 체념 또는 자기 부정에 이르게 된다는 면에서 숭고의 이념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다. 비극에서의 영웅적 생애는 바로 고통의 대면과 극복과정에서 종국 에 자기 체념에 이르러 고통으로서의 삶을 관조하고 의지 부정에 도달하는 삶을 가리 키며, 이를 숭고한 삶, 숭고한 인간인 영웅이라 칭할 수 있다.259) 이들은 모두 그들

256) 박영선, 위의 논문, 130쪽.

257) 쇼펜하우어가 희극을 예술로서 부정한 것은 아니다. 비극과 희극이 모두 인간실존에 상응하는 드라마 이며, 둘의 종합이 현실의 총체성을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다.(박영선, 위의 논문, 131 쪽.) 다만, 비극이 개체화된 의지의 투쟁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삶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온전한 장 르이며 희극은 그렇지 못하다는 면에서 예술로서의 가치가 낮은 문학으로 평가한다.

258)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18-419쪽.

앞에 놓인 삶의 고통 앞에서 체념으로 귀결되는 삶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체념은 의지

261) Aristoteles, Peri poietikes, 1449b.

262) Aristoteles, Peri poietikes, 1453a.

263) 연민과 공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카타르시스와 함께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세 가지 개

고통이 개체로서의 인물 각자의 입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이라는 삶의 본질 에 대한 인식과도 같으며, 바로 이러한 자각에 비극의 역할이 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 스는 비극이 가져온 효과로 고통으로부터의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katharsis)264) 를 말하는데, 이는 의지의 진정제로써 예술의 역할을 강조하는 쇼펜하우어의 견해와 유 사한 맥락을 지닌다. 카타르시스 체험은 실존의 극한적 한계 앞에서 터져 나오는 연민 과 공포 그리고 이를 통해 고통에서 희열로, 현실의 부정성에서 초월적 긍정에로 나아 가는, 인간본질에 대한 이중적 체험의 표현265)이라는 점에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비극 의 숭고 체험, 즉 삶의 고통 앞에서 자기 체념과 자기 부정을 통과함으로써 의욕으로부 터 벗어나 삶의 관조에 이르게 되는 흐름과 다르지 않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 에서 희열,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감정적 변화를 의미하는 반면, 쇼펜하우어는 단지 부 정에서 긍정으로의 감정 변화가 아닌, 이 모든 것이 의지의 발현과 자기 파괴에 불과하 다는 인간과 삶의 근원에 대한 자각과 체념에 이른다는 점에서 비극을 통해 얻는 궁극 적인 지평이 구분된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비극이 그의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가장 적극적 으로 보여준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개인들은 그들의 성격과 이해관계들에 의해 불가피 하게 충돌하고 예측 가능한 갈등에 봉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적 삶의 비극 은 감상자들에게 스스로의 삶의 본 모습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거울 속에 붙잡아 둠 으로써 삶으로부터, 의지로부터 벗어나는 탈 세속을 자극한다.266) 그리고 이러한 탈 세 속의 자극이 바로 의지 부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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