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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진정제로서의 예술

문서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론 연구 (페이지 72-79)

Ⅴ. 쇼펜하우어의 예술개념과 숭고

4) 의지의 진정제로서의 예술

쇼펜하우어에게 있어 삶은 곧 고통이다. 이러한 염세주의적 세계관에서 쇼펜하우어는 예술이 철학과 마찬가지로 삶의 가장 깊은 문제인 고통과 관계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 한 의미에서 미적 관조는 의지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의식의 상태를 열어주고 그로 인 해 삶의 투쟁 한가운데에서 겪는 주관의 고통을 객관으로 관조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고 통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는다. 이러한 고통의 진정으로서 예술이 가진 힘을 쇼펜하우 어는 ‘의지의 진정제(ein Quietiv alles Wollens)’237)라고 부르며 예술의 역할을 강조한

233)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311-312쪽.

234) 공병혜, 위의 논문, 340쪽.

235) Scheer, 위의 책, 207쪽.

236)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317쪽.

237) ‘의지의 진정제’라는 용어는 의지 부정의 소극적인 표현으로 형이상학적 원리로서는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4권에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궁극적인 삶의 방식으로서 금욕과 연민의 윤리를 제안하는데, 금욕의 윤리에 의한 의지 부정을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의지 부정으로서, 예술에 의한 의지 부정은 소극적이고 일시적인 의지 부정이라는 의미에서 의지의 진 정제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비극을 통한 의지의 진정을 말하면서, 이것에 이르게 되는 인식 의 원리를 설명한다.

개개인에게 (의지에 대한) 이 인식이 고뇌 자체를 통해 정화되고 승화되어, 이제 마야의 베 일인 현상에 의해 인식이 더 이상 기만되지 않고, 개체화의 원리인 현상의 형식이 인식에 의해 간파되고, 이 원리에 근거하는 이기심이 바로 그로써 사멸하게 되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렇게 되면 이젠 이때까지 그토록 강력했던 동기들은 힘을 잃고, 대신 세계의 본질에 대 한 완전한 인식이 의지의 진정으로 작용하여 체념을 초래하는데, 이는 삶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모든 의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238)

여기서 말하는 의지가 진정된 상태는 예술 속의 주관이 개체로서의 의욕을 포기하는 체념에 의해 달성되는 미적 관조의 상태이다. 즉 주관이 스스로를 의지로서 인식하는 자기 인식에 도달할 때, 개체의 무상함에 대한 자각과 함께 의욕은 포기되고 맹목적인 의지의 분출은 진정되며, 결국 자신의 고통을 체념하고 관조함으로서 진정에 이르게 된 다. 이렇게 개체로서의 의욕이 체념된 순수주관을 통해 바라본 삶에서는 “행복이나 불 행은 사라져 버리고”, “강력한 왕의 눈이든 고통에 시달리는 거지의 눈이든 매한가지가 된다.”239) 결국 삶의 이 모든 고통은 그것이 어느 누구의 무엇에 의한 것이든 모두 동 일한 의지의 발현이라는 삶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체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 념은 단지 삶 자체의 거부나 삶을 포기하는 좌절에서 비롯된 수동적인 패배의식과는 다른, 세계와 삶의 본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의미에서 능동적인 수용의 태도로 이해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극성에 대한 수용을 통해 개체의 의욕으로서의 의지는 체념되고 의지가 휴식하는 진정의 순간을 체험하게 된다.

예술은 이렇듯 형이상학적 사유를 동반함으로써 의욕하는 자기에서 벗어나 고도의 정 신적 고양의 계기를 맞는다. 결국 쇼펜하우어에게 예술이란 형이상학적 인식의 계기이 며, 고통으로부터의 진정된 순간이다. 이것은 예술가인 동시에 형이상학자로서 겪게 되 는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쇼펜하우어는 예술을 통한 의지의 진정의 의미 를 형이상학적‘구원(Erlösung)'이라는 단어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한다.

238)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16쪽.

239)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328쪽.

(예술은) 모든 의욕의 진정이 되었는데, 이것에서 기독교나 인도 철학의 가장 심오한 정신 인 완전한 체념, 모든 의욕의 포기, 뒤돌아 보기, 의지의 폐기, 이와 아울러 세계 전체의 본 질의 폐기, 즉 구원이 생겨났다.

240)

쇼펜하우어는 예술을 종교에 빗대어 표현할 정도로 삶에서 예술이 가진 역할의 의미 를 확장시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진정제로서의 예 술은 그 한계를 가지는데, 그것은 이러한 순수주관의 미적 관조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술을 통한 의지의 진정을 말할 때 ‘구 원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부각시킨다. 즉 개체를 벗어난 순수인식주관의 상태는 주관이 예술 속에 있을 때, 예술이 드러내는 이념을 관조할 때 순간적으로 개현하는 무아(無 我)의 체험으로써, 우리는 미적 관조를 떠나면 언제라도 충분근거율의 표상 세계로 돌 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지의 진정으로서 예술의 역할이란 순간에만 머무는 신기루 와도 같다는 의미에서 ‘순간의 구원’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의 예술개념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한계는 항상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다. 예술은 “고통으로부터 지친 삶을 일시적 으로 위로할 뿐, 예술이 주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일시인 것”241)이며, “영원한 행복 을 약속하지 못하며, 금욕의 과정을 통해 완전히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해탈의 경지 까지 이르게 하지도 못한다.”242) 쇼펜하우어는 예술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예술가)에게 그런 인식(미적 관조)은 (…) 그를 영원히 구제하지 않으며, 삶으로부터 한 순간만 구제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아직 삶으로부터 벗어난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삶에서 위로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43)

결국 “예술에 의한 영원한 구원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예술의 유희를 벗어나 해탈한 성자에게서 볼 수 있는 진지성으로 넘어가야 할 것을 제안”244) 하며, 이 러한 제안으로 금욕과 연민의 윤리학을 주창한다.245)

240)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381쪽.

241) 정낙림, 「고통과 예술 :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형이상학과 예술의 역할」, 철학연구 140호, 2016, 352쪽.

242) 공병혜, 「인간의 고통과 예술의 역할」, 인간연구 제29호, 2015, 128쪽.

243)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438쪽.

244) 박영선, 「숭고로서의 비극과 윤리 - 쇼펜하우어를 중심으로」, 대동철학 제50집, 2010, 150쪽.

245) 예술보다는 적극적인 의미의 의지 부정과 금욕을 통한 고통의 해방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또 한편으로, 의지의 진정으로서의 예술 개념에 내포된 고통의 체념에 대한 비판도

치론적 해석으로서, 예술을 이념 조망의 영역으로 다루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적 해 석과는 관점을 달리한다.

쇼펜하우어가 예술에 부여한 의지의 진정의 의미가 가진 이러한 한계와 비판에도 불 구하고, 예술은 충분근거율에 종속된 표상 세계와는 다른 인식의 계기가 되며 의지에 지배된 삶의 고통을 일시적이지만 위안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체험이 되어 줄 수 있다. 또한 예술작품을 통한 미적 경험의 반복은 자기보존의 목적을 위한 도구적 관계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사물의 본질, 즉 전체 세계를 향해 마음의 심정을 넓히는 삶의 습관249)을 쌓게 한다는 면에서 예술 이상의 철학함으 로서의 의미 또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2. 미와 숭고

쇼펜하우어에게 있어 미감이란 순수인식주관이 미적 관조에 이를 때의 감정이며, 이 념으로서 조망된 대상의 모습이 아름다움, 즉 ‘미(das Schöne)’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아름다움으로서 만족하는 체험에 이른다는 것은, 대상과 마주함에 있어 개 체로서의 대상이 아닌 대상의 보편적 형상으로서의 이념을 관조하는 순수인식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숭고의 체험 또한 이념의 관조에 다다르는 인식을 통해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 미의 감정과는 다른 정신적 작용을 거쳐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미와는 다 른 숭고의 정신적 작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아름다움의 경우는 순수한 인식 작용이 투쟁 없이 우위를 차지한다. (…) 반면 숭고함의 경 우에는 불리한 것으로 인식된 의지에 대한 동일한 객관의 관계들로부터 의식적이고도 억지 로 이탈함으로써, 즉 의지와 그것에 관계하는 인식으로부터 의식을 동반한 자유로운 고양을 통해 비로소 처음으로 순수한 인식 상태가 얻어진다. (…) 말하자면 관조된 객관의 의지 일 반에 대한 적대 관계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넘어선다는 점에서만 미감과 구별된다.

250)

249) 공병혜, 위의 논문, 128쪽.

250)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Ⅰ, 335-336쪽.

숭고는 대상의 이념을 어떠한 갈등 없이 관조하는 미적 체험과는 다르게 대상의 규 모와 위압에 맞서는 저항과 투쟁의 정신적 작용을 거치며 이를 극복하는데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즉 숭고는 앞서 쇼펜하우어가 언급한 대상과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이념의 관조가 저항에 부딪히는 상황에서 대상의 위압을 극복하고 이에 다다르는 주관의 정신 적 갈등이 동반되는 감정이다. 숭고의 체험이 갈등과 고통, 위협과 공포의 부정적 감정 을 동반하는 복합적인 미감이라는 것은 버크 이후 칸트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숭고를 미와 구분되는 미적 체험으로 특징짓는 본질적인 차이라는

그리고 이러한 점이 숭고를 미와 구분되는 미적 체험으로 특징짓는 본질적인 차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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