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1차 전국종합개발계획(1962년)
60년대는 중화학공업의 발전과 소위 ‘중후장대’산업, 즉, 제철․조선․석유화학 공업의 번영을 특징으로 하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의 시기였다. 소득배가정책이 채 택되고 고도성장기가 시작되던 시기에 입안된 것이다. 이는 콤비나트, 즉 기간산 업(기본적으로 석유화학, 제철, 알루미늄 등)의 전략적 집중을 지방으로 분산시킴 으로써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간에 나타난 부와 발전의 격차를 해소하려 하였다.
본래 15년으로 구성된 이 계획이 달성된 시점에 이르자 그 기반이었던 전제들이 사라져버렸다. 즉 제철․조선․석유화학공업은 더 이상 기술혁명의 총아가 아니 었으며, 이들과 하나의 운명체로 묶여버린 오오이따시의 경우 이미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특히 이들 산업에 대한 규제의 부재로 야기된 각종 질병과 환경 오염문제를 둘러 싼 소송은 오늘날까지도 법정에서 계속되고 있다. 개발부지로 지 정해두었다가 60년대에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던 곳은 상당수가 후에 다시 리조트 개발 후보지로 등장하였다.
새로운 산업도시와 산업지대로 선정된 지역의 운명을 조사해보면 공해와 관련 하여 엄청난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부담하였을 뿐, 지역(도시소재 기업과는 별도 로)에 대한 실제 경제적 혜택은 얼마 되지 않았다. 미야모또의 연구에 의하면 오오 사까만의 사까이 -키따이즈미 임해콤비나트의 경우 전력소비량 및 오염물질 발생 량은 오오사까부 산업 전체의 41%를 점하지만 부가가치 생산액은 7.8%, 고용은 1.7%, 법인세 납부액은 1.6%밖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유명한 재 계인사는 대부분의 과실이 토꾜오에 기반을 둔 본사로 유출되는 등 이러한 개발이 지극히 외부유도적이라는 사실을 목격하고는 미즈시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식민지 스타일의 개발”이라고 개탄하였다. 이시기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토오꾜오, 요꼬하마, 나고야, 쿄오또, 오오사까 등 동경도의 주요도시들이 특히 초 특급열차(신깐센) 같은 새로운 운송기술의 도입결과 하나의 거대한 단위(메갈로폴 리스)로 융합된 것인데, 신깐센은 1964년에는 6시간 50분 걸리던 토오꾜오와 오오
사까 간의 여행시간을 3시간 10분으로(1992년에는 2시간 30분으로) 단축하였다.
60년대 지역개발정책은 지역이나 농촌 또는 농업의 이익보다는 중앙, 공업, 도 시의 필요를 우선시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몇몇 제조업 기능이 점차 지방으로 재배치되기는 하였으나 계획, 통제, 연구조사, 정보 및 써비스가 주요 대도시, 특히 토오꾜오에 집중되는 과정은 엄청난 것이었다.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10여 년 간 자본축적과 팽창을 위해 가용자원을 집중한 결과 사회적 하부구조를 개선 하기보다는 경제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기반시설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자동 차 사회가 된다거나, 나아가 세계 최대의 자동차수출국으로 부상하겠다는 결정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매년 대략 2만여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1945-91년 간에 70만 명이 죽었으며 부상자는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다). 이 정도의 인명피해가 전쟁으로 발생하였다면 엄청난 사회적․정치 적 소동이 일어나겠지만 이들은 근대화라는 비인격적인 힘의 희생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40년간 도로에 대한 투자는 공공 사업비 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점하고 있었다. 1975년에서 93년에 이르는 기간동 안 거의 3조㎥의 콘크리트를 쏟아 부었다. 자가용이라고 하는 것은 기적적인 GNP 증가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고 성가시며 낭비가 심하고 엄청나게 파 괴적인 힘이었던 것이다.
(2) 제2차 전국종합개발계획(1969년)
제2차 전국종합개발계획은 일본열도를 개조하자는 타나까 카꾸에이 수상의 유 명한 계획에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이 계획은 20년 간에 걸쳐 450-550조 엔 에 달하는 총투자(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의 총투자는 140조 엔이다)를 통하여 일 본의 GNP를 5배로 증가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계획은 6억 킬로리터의 석유를 수입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전체 원유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는 아마도 60년대 소득배가정책을 본 떠 입안된 계획인 듯 하며, 매년 9%정도로 성장이 지속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규모 의 경제가 갖는 우위를 거의 편집증적으로 신봉하고 있었으나 지역사회의 이익에
대해서는 무시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이로 인해 유발된 투기(특히 땅투기)의 여파, 민중의 저항증가, 1973년 석유파동에 뒤이은 경 제전망의 악화 등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난관에 봉착하였다. 60년대와 70년대에 열 심히 추진되었던 거점개발방식을 통한 지역개발이라는 발상은 그 후(일본의 모델 을 따르려 시도하는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3) 제3차 전국종합개발계획(1977년)
제3차 전국종합개발계획부터는 복지와 환경에 대한 고려를 무시한다는 것이 더 욱 어려워졌다. 이는 관료 및 기업경영자들 사이에 개발에 대한 신앙이 약화되었 다기보다는 정책의 사회적․환경적 결과를 고려할 것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이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과거의 정책결정이 빚은 결과에 관한 주요 소송사건 들, 특히 미나마따병 등과 관련된 시민운동과 주민운동의 발전은 이러한 생각변화 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환경영향평가, 자연보존, 교육․복지․문화 써비스의 마련 등이 좀 더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도시로의 인구유입 억제 역시 적어도 이론 적으로는 그 필요성이 인식되었다.
‘중후장대’의 시대는 가고 그 반대인 ‘경박단소’라는 하이테크와 전자산업의 시 대가 열리게 된다. 과거의 소재처리의 거점(material-processing bases)을 대신해 테 크노폴리스라는 정보처리의 거점(information-processing bases)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벨리와 유사한 것을 일본에 만들려 했던 이 구상은 80년대 통상산업 정책 비전에서 처음 제시되는데, 이는 지방도시에 값싼 부동산, 노동력, 그리고 (집적회로IC공장)을 설립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처방 역시 토오꼬오에 대한 지방의 의존도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방의 중심에 무엇이 성립되 든 특히 경영과 기술에 관한 문제의 경우에는 수도인 토오꾜오에 있는 거대기업의 권위에 계속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사사끼의 표현대로 “뇌가 없는 테크노폴리스”가 등장하였다. 통산성마저도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법 은 지역자원의 개발과정에서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 다. 또한, 80년대에는 환경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자라났다.
(4) 제4차 전국종합개발계획: 1987년
제4차전국종합개발계획은 나까소네 야스히로 정권의 비전을 명확히 나타낸 것 이다. 이는 토오꾜오 지역에 대한 극심한 일극집중현상과 지방의 몰락의 결과 발 생한 불균형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전국적으로 균형적인 발전을 촉진하고, 정보화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나아가 일본의 국제화를 원할히 하기 위 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장기계획(1987∼2000년)은 토오꾜오와 지방간의 간 극을 더욱 확대하였으며 하이테크 정보기능을 더욱더 수도에 집중시켰다. 민간부 문의 활력에 의존한다는 명목으로 제4차 전국종합개발계획은 투기적인 토지가격 상승에 불씨를 당겼는데 지가상승은 토오꾜오와 다른 지역간의 격차를 극대화하 였고, 환경오염을 확산시켰으며 국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인텔리전트(지능)도시’라는 용어는 ‘인텔리전트 빌딩’간 정보소통을 가능케 하 는 첨단 테크놀로지(대개 광섬유케이블)에 의해 통신․정보 수단의 제공이 조정․
통합되는 장소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 도시계획의 초기단계에서부터 포함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다. 그런데 90년대 초 폭로된 종합건설회사 비리에서 드러났듯이, 지능의 수준은 사실상 지방행정의 부패정도와 밀접한 상관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전 바로 다음시기부터 제4차 전국종합개발계획에 이르기까지 지역계획은 국 가를 재조직하려는 야심차지만 비현실적인 행정관료들의 탁상공론적 프로젝트라 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계획의 처방들은 유토피아적 수식어로 표현되었으나, 이러한 치장으로도 토오꾜오에서 키따큐우슈우에 이르는 거대한 메갈로폴리스와 급격한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농촌․산촌․어촌 같은 촌락들간의 첨예한 양극화 문제에 대처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성장에 대한 이들의 편 집증적인 집착과 사회 및 환경에 대한 배려의 결여, 그리고 지역이나 지방의 자생 적인 개발을 희생시키면서 촉진해 온 대도시 토오꾜오(혹은 오오사까) 지배의 거 대산업집단들에 대한 지원이 너무나도 철저하고 완벽했기 때문에 이러한 개발계 획의 폐해를 시정하는 데는 계획목표를 달성하는데 걸린 시간과 거의 같은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메갈로폴리스의 주민들에게 있어 경제성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 엇인가? 그리고 경제성장은 국가전체의 장기적인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소요될 수도 있다. 메갈로폴리스의 주민들에게 있어 경제성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 엇인가? 그리고 경제성장은 국가전체의 장기적인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