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벡은 위험이 갖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8) 첫 째, 위험사회의 위험은 과학기술과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이례적이 고 예외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비의도적’으로 파생된 것이다. 일례로 위험사회의 대표적인 위험사례인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원자력을 이 해하고 이를 이용하려는 과학자들의 성공적인 연구와 이를 발전소의 형태로 가시화한 엔지니어들의 성취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위험이다.
벡은 위험사회의 위험과 산업화의 필연적 연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8) 위험(risk)의 특징에 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였다. 박희제 위험사회에서 세 계시민주의로: 울리히 벡의 (기술)위험 거버넌스 전망과 한국의 사회학」사회사 상과 문화제30집, 2014, 87-92쪽.
설명한다. 즉 “과거의 위해”들은 위생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부족했던 것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울리히 벡, 2006). 하지만 오늘날 의 위해들은 산업적 기술의 과잉생산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고, 따라서 현대의 위험과 위해는 겉보기에 유사한 중세시대의 위해들과 근본적 으로 차이가 있다(울리히 벡, 2006). 이것들은 근대화가 낳은 위험이 다. 이것들은 산업화가 낳은 대량생산물이며 산업화가 지구적으로 전 개되면서 체계적으로 강화된다”(울리히 벡, 2006: 55-56). 요컨대 위험 사회는 근대(산업사회)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 낳은 필연적 결과로 출현한다.
둘째, 위험은 일단 발생하면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감각과 인식 능력으로 그것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 가능하다. 벡은 “과거의 위해들은 코나 눈을 공격하기 때문에(예컨대 악취와 독가스 등)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반면 오늘날 문명이 낳 은 위험들은 분명히 인지되지 않으며 (식료품에 포함된 유독물질이나 핵 위협과 같이) 물리-화학적 공식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다”(울리히 벡, 2006: 55)고 말한다. 실제로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낙 진이 북유럽의 대기와 토양을 오염시킬 때 그것을 감지한 것은 사람 들의 감각기관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갖춘 과학자들과 측정도구였다.
또한 위험은 발생 확률이 매우 낮거나 계산 불가능한 속성을 가지 는데, 그 때문에 사람들은 위험에 대해 분열된 감각을 갖기 쉽다. 대 부분의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좀 더 ‘생태적’ 관점에서 현재의 생산방식과 소비행태에 변화를 주는 것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이것은 위험사회에서 위험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위험은 체계적이고 종종 되돌릴 수 없는 해를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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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뒤피10) 철학자이다. 원래 공학자였으나 르네 지라르
등의 연구를 접하고 폭력과 악의 문제에 관 심을 갖게 되면서 정치철학으로 관심의 중심 을 이동하였다. 롤즈 등 영미계 정치철학과 윤리학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스탠포드 대학 교수이고 프랑스방사선방호 원자력안전 연구소 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 ‘과거’에 대한 인식의 전환
어떤 중대한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예견’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단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파국에 가까운 결말을 가져올 수도 있 지만 사소한 사건에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파국을 회피하 는 것의 곤란함이 놓여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들은 ‘체르노빌 원전사 고’(1986)와 ‘동일본대지진’(2011)을 통해 ‘파국적’ 상황의 일면을 경 험했으며,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수 있는 생태계 파괴라는 우울한 미래 를 현실성 있게 생각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위험사회론의 표현을 빌리 자면 이미 오늘날의 현대사회는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다 양한 ‘위험=리스크’에 포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뒤피는 인류가 이 미 경험한 파국의 기억을 통해 다가오는 ‘더 큰 파국’을 회피하기 위 한 방법을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 뒤피가 제안한 것은 과거에 대한 우 리의 인식전환이다.
10) 이미지 출처: http://www.sup.org/nuclearmen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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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그는 어떤 명제의 진리 값은 그것이 어떤 시점에서 발화 되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어떤 대상이 시점t까지 성질P를 갖고 있다. 시점 이후 그 대상은 성질 P를 갖지 않게 되었다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 점 이후 <그 대상이 과거 P라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제 진실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상O가 시점 에서 성질 P를 갖고 있다>[는 보다 이전의 시점]라는 명제의 진리 값은 그 명제가 어느 순간에 발화되었는가라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大澤, 2012: 244).
여기서 뒤피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시점 이후 대상 O가 P라는 성질 을 상실한 이상, 보다도 앞선 시점인 에서도 O가 성질 P를 갖고 있 었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이다. 또한 발화시점에 의해 명제의 진리 값 이 변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시점 에서의 결정적인 전환에 의해 세계의 객관적인 상태가 변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질 P는 원 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어 버리는 셈이다. 요컨대 뒤피의 주 장의 핵심은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과거의 현실 그 자체의 의미도 변해버린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