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할인율 문제를 생태론적 관점에서 검토하기 위해 물리학자 이자 과학철학자인 장회익의 온생명 개념을 검토해 보자. 장회익은 1987년의 논문 “The Units of Life: Global and Individual”에서 처음 으로 온생명(global life)이라는 개념을 소개했으나, 최근에 출판된 생 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장회익, 2014)15)에서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 리하고 심화시켜 생명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다.
장회익의 논의는 생명에 대한 정의로부터 출발한다. ‘생명’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의식적인 학습을 통하지 않고 얻게 되는 개념으로, 누 구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14) 이미지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6081412
15) 이하의 내용은 이 책에서 우리의 논의와 관련된 부분, 특히 2장과 3장을 정리 한 것이다. 이 부분의 초기 아이디어는 삶과 온생명의 6장과 7장(장회익, 1998:
167-218)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된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 개념은 과학적으로 살 펴보면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생명의 단위를 이야기할 때 대상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놓고 말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예로 들어 보면, 우 리의 상식으로는 그 나무가 살아 있고 그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이지만, 과학적으로 볼 때 그 나무는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세포들 도 살아 있다. 그렇다면 이 나무에서 생명의 단위는 한 그루 전체인 가, 아니면 개개 세포인가? 이 문제는 이미 200여 년 전에 찰스 다윈 의 조부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이 제기한 바 있다. 그는 동물의 어미와 새끼를 언제 분리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 를 제기하였다. 많은 경우 이 둘은 출생 이후 분리된 것으로 보지만, 현대에는 태 안에 들어 있는 새끼를 이미 독립된 개체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래즈머스 다윈은 이미 태어난 새끼조차도 새로운 개체로 보 기 어렵다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한다. 태 안에 들어 있던 동물은 어미 의 한 부분이거나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어미 체계의 일부 기질을 지 니고 있으며, 따라서 어미의 가지(branch) 중 하나이거나 돌출부분 (elongation)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다윈의 주장이다.
다음으로는 무엇을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꺾인 나뭇가지가 살아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것 을 땅에 심었을 때 정상적인 나무로 자랄 수 있는지의 여부로 판단하 게 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어느 땅에 심었느냐에 의해 결정되므로,
‘살아 있음’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개체 자체뿐 아니라 개체가 놓이는 환경 역시도 고려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생명의 정수’라 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어 그것의 존재 여부로 생명의 존재와 개체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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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하는 것이지만, 아직 그런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까 지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생명체의 ‘살아 있음’이라는 성격은 특 정 물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물질들이 모여 구성하는 동적 체계 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은 어떤 것인가이며, 둘째는 생명이라는 특징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동적 체계는 무엇 인가이다.
이 중 첫째 질문의 답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로는 탄소, 수소, 산소 등의 원소와 그것으로 구성된 다양한 종류 의 단백질, 그리고 DNA 등의 유전정보 전달 물질 등이 있음을 20세 기 분자생물학이 밝혀내었다. 그리고 그것의 ‘살아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대기, 물, 각종 영양소 등의 물질도 이에 포함되어야 한다. 다음 으로 둘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답은
‘살아 있는 세포’이지만,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것은 적절한 답이 아 니다. 세포는 그 주위에 이것을 살아있게 해 주는 특정한 조건과 환경 이 생성되지 않는 한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살아 있 음’이라는 특징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인간이나 동식물과 같은 ‘살아있는 유기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외부로부터 잘 조직 된 결정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에 한해서만 생명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다.
이 두 가지 답을 종합해 보면, 생명의 특징을 나타내는 기본 단위는 세포나 유기체가 아니라 그것의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까지 를 포함하는 거시적 단위임을 알 수 있다. 이 거시적 단위를 장회익은
‘온생명(global life)’이라 부르고, 세포, 유기체 등 전통적으로 개별 생 명체에 속한 것으로 간주해 온 생명 단위를 ‘낱생명(individual life)’이
라고 부른다. 이러한 생명 개념은 생명의 기본 단위를 ‘자립적으로 생 명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단위’로 정의한 것이다. 장회익은 낱 생명과 온생명의 관계를 가전 기기들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가전 기기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기기들뿐만 아니라 이미 가정 에 들어와 있는 전원과 전기 배선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집 안 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설치된 배선에 별 이상이 없는 한 개별 전기기 구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것이 독자적으로 그 모든 작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니다. 그러나 이 가전기기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발전소부 터 연결된 배선 전체까지 이해해야 한다. 이때 발전소에 해당하는 것이 태양이고, 가내 배선이 생태계이며, 개별 가전 기기가 낱생명이다. 여기 서 전기에 해당하는 것이 ‘생명’이다. (장회익, 2014: 26)
이러한 방식의 생명 규정은 장회익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해외의 다른 학자들도 이미 유사한 방식으로 생명을 규정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러시아의 과학자이자 과학사상가였던 베르나드스키(Vladimir I.
Vernadsky)는 1926년에 생물권(biosphere)이라는 개념을 실질적으로 창시하여 이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16) 그는 유기체와 유기체 를 둘러싼 환경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여 생명 이해의 새로운 차원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론물리학자로 후에 생 명 연구에 뛰어든 라세브스키(Nicolas Rashevsky)는 “상이한 물리적 현상들을 연결하여 유기체와 유기적 세계 전체의 생물학적 일체성을 나타내줄 원리를 모색”(Rosen, 1991: 112)하고자 했다.17)
16) 생물권(Биосфера)의 불역본은 1929년에 출판되었으나 제대로 된 영역본은 1998년에야 출간되었다(Vernadsky, 1998).
17) 장회익은 ‘생태계’나 ‘생물권’, 또는 ‘가이아’ 개념이 온생명 개념과 일부 공통 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온생명의 핵심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고 본다(장회익, 1998: 182-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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