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생명을 정의하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1970년대에 출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지금까지 시도된 생명에 대한 정 의를 크게 다섯 가지 유형(대사적 정의, 생리적 정의, 생화학적 정의 유전적 정의, 열역학적 정의)으로 분류하고 이들이 왜 만족스러운 정 의가 될 수 없는지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자체생성적 정의 하나를 더 추가하고 있다. 자체생성적 정의는 이 백과사전의 이전 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그간 생명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 정의가 비교 적 널리 수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생화학자이자 분자 생물학자인 루이시(Pier Luigi Luisi)는 생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데, 이는 자기생성적 정의의 대표적인 예이다.
하나의 체계는, 이것이 외부의 물질/에너지를 내부 과정 속으로 전환 시켜 자체를 유지하고 자신의 성분들을 생성해낼 수 있을 때, 살아 있 다고 말할 수 있다(Luisi, 2006: 25).18)
장회익은 이 정의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 약점을 지적한다. 자기 생성적 정의는 생명이 ‘살아 있음’을 계속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물질 과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자신의 한 부분으로 전환하고 노폐물과 노폐 에너지를 체계 밖으로 내보낸다고 말한다. 문제는 생명이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물질 또는 에너지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투라나는 이를 ‘물질에 대해서는 열려 있으나 관계의 동역학에 대해서는 닫혀 있다’(Maturana & Poerksen, 2004: 98; 장회익, 2014:74)는 말로 설명하려 하지만, 상세히 검토해
18) 루이시는 이 정의가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자체생성성(autopoiesis)’을 기준으로 한 정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Luisi, 2006: 155; 장회익, 2014: 91).
보면 이 체계는 관계에 대해서도 결코 닫혀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 다. 루이시가 생명으로 정의하는 자체생성적 체계는 그보다 더 큰 체 계인 지구 생태계 안에 놓여 있으며 생태계로부터 물질과 에너지의 공급을 받고 있다. 따라서 생태계에 대한 정의 없이 자체생성적 체계 를 생명을 정의하는 것은 생명의 일부분만을 생명으로 정의하는 문제 를 가져온다.
이런 문제로 인해 최근에는 개체가 아니라 개체들의 네트워크를 중 심으로 생명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생명이란 무 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한 애디 프로스(Addy Pross)는 생명을
“전체계적으로 자기 복제를 수행”하는, 달리 말해 “자체촉매적 능력을 유지해 나가는 화학반응 네트워크”라고 정의하며, “이것은 간단한 네 트워크에서 한 단계씩 복잡한 것으로 이행해 나아간다”(Pross, 2012:
179)라고 규정하여 생명의 진화까지를 설명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루이즈-미라조(Kapa Ruiz-Mirazo)와 모레노(Albaro Moreno)는 생명 의 정의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 의를 제시한다.
생명은 자기 복제를 하는 자율적 행위자들의 복잡한 네트워크이다.
여기서 각 행위자의 기본 조직은 물질적 기록들의 지시를 받게 되는데, 이 기록들은 총체적 네트워크가 진화해 나가는 열린 역사적 과정을 통해 생성된다(Ruiz-Mirazo & Moreno, 2011: 16; 장회익, 2014; 103).
장회익은 이 정의를 두 가지로 비판한다. 첫째, 이 정의에는 생명의 지시적 의미는 비교적 무난히 담겨 있지만 설명적 의미에 관해서는 미흡한 점이 있다. 둘째, 이 정의는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특수한 외 적 조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장 회익은 위의 정의를 수정하여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명을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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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그 안에 구현하 는 자체유지적 체계이다. 여기서 각 국소 질서의 기본 조직은 지속성을 지닌 규제물들에 의해 특정되는데, 이 규제물들은 열린 진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장회익, 2014: 105).
장회익은 일견 열역학 제 2법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이는 국소 질 서의 탄생이 우주 안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국소 질서 중에서 도 형태가 다른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가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현재의 물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더 나아가 자체촉매 적 국소 질서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이면서 탄생하는 이차 질서를 설명하면서, 가장 타당한 생명의 정의는 단순히 자기 복제를 하는 행 위자들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이 네트워크를 그 안에 구현하는 ‘자체 유지적 체계’이며, 이 세 가지(자기복제적 행위자, 그것들의 네트워크, 네트워크를 지탱하는 바탕 체계)를 포함하는 이차 질서 존재를 하나 의 존재론적 질서로 묶어낼 때 가장 타당한 생명의 단위를 얻을 수 있 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명 규정의 타당성을 ‘살아 있음’과 ‘죽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검토해 보자. 생명이 이차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체계 전체를 가 리킨다면, 다시 말해 외부의 조건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존재를 지칭한다면, 동식물이나 인간과 같은 개별 유기체는 특정 조건 하에서는 살아 있다는 기준을 만족하지만 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생명의 한 부분일 뿐 그 자체로 생명은 아니다. 죽음이라는 요소 역시 우리가 흔히 생명이라고 부르는 유기체 들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는 유기체들이 더 큰 생명 없이 살아 있 을 수 없는 ‘조건부 생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회익은 생명을 정 의하는 과정에서 낱생명을 뛰어넘는 온생명에 도달했지만, 생명을 제
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생명과 낱생명을 함께 보아야 하며 생명의 특성은 이들 사이의 관계를 밝힐 때 비로소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제 생명에 관한 이러한 연구가 우리의 관심사인 사회적 할인율의 결정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주는지 생각해 보자. 비용-편익 분석에서 할인율은 이자율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시간에 어느 정도의 가격 을 부과할지를 결정하는 요소이며, 할인율이 높을수록 미래 시점의 편 익은 현재 시점에서 낮게 평가된다. 특정 행위가 미래세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요인 하나는 미래 시점의 편익이 행위 가 이루어지는 현재 시점의 행위자 또는 수혜자들과는 무관한 개인들 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온생명 개념을 통해 생명을 바라본다 면 현재 시점은 개인들과 미래 시점의 이들과 무관한 개인들은 모두 지구-태양 생태계라는 온생명의 한 부분인 낱생명이며, 미래세대의 개 인들은 현 시점의 개인들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미래 시점의 편익의 가치를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온실가스 배출과 같이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행위는 현 시점의 개인들이 그 일부분인 온 생명 전체를 위협하는 것이므로 시점에 따른 가치의 증감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세대와 미래세대의 자원 분배 문제 는 경쟁이나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온생명이라는 체계의 지속을 최고 의 가치로 하는 유기적 역할 분배의 문제가 된다.
나. 생태학